치우천왕기 1 - 형제
이우혁 지음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십여 년 전, 한낱 무협지로만 생각했던 '퇴마록'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느꼈던 충격이 생각난다. 세련된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상상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렇게 이집트 신화와 중세유럽의 전설을 뒤지고 한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작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적지 않게 감동했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예술이다. 하지만 허구가 '그럴듯'해질수록, 독자들은 작품에 빨려들게 되어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이우혁은 그 2%의 '그럴듯함'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글장이다.

총 9권으로 구상된 <치우천왕기>에서, 아직 5권까지밖에 못 읽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대충의 스케일은 파악했다고 보기에 일단 첫 권의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서두의 <작가의 말>에 보면, 1994년 첫 구상에 들어간 이래, 얼마나 고심하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원고가 탄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최초에는 아예 사용 언어까지 당시의 말을 복원해보려 애썼다는 것, 중국 책들을 찾아 읽고, 현지를 답사하고, 최종고라 생각했던 원고를 파기하고... 이건 단순히 내세우기 위한 말이 아님은, 문장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노력한 흔적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치우천왕기>에서 가장 감탄스러운 부분은 주인공 캐릭터들의 통찰력이다. 주신과 지나족의 대결구도가점차 드러나는 가운데에서도 태산 회의에 가면 자신의 발을 틀림없이 고칠 거라고 판단한 희네(치우천)의 헤아림이나, 말투 속의 작은 단서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읽어내는 공손헌원(黃帝)의 지략 등은 절대 하루아침에 짜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작가의 수고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반면 은연중에 풍기는 남성우월주의 사고방식은 이 책에서 오히려 더 심해진 듯한 느낌이다. 희한하게 지금까지 이우혁의 글쓰기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절세미인인 여성 주인공들은 남성 주인공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헌신적 태도가 아름답게 묘사되는 반면, 남성 주인공은 사랑을 뿌리치고 자신의 갈 길을 가다 보면 여자 쪽에서 접근해오는 식이다. 소녀(素女)는 치우천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부족을 버리며 옛친구를 서슴없이 죽인다. 같은 카린족인 무라는 겉으로는 내색을 못해도 치우천을 흠모하며 부족에게서 추방당하고서도 계속 치우천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거의 선인의 경지에 오른 맥달도 어린시절에 한 번 만난 치우천을 계속 마음에 두고 가슴을 태운다. 그런데 치우천의 반응은? 군자의 도리답게 그녀들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결코 감정과 정서의 묘사가 소설의 전면에 부상하지 않는다. 반면 공손발을 못 잊어하는 치우비의 마음은 치우천의 '대의'아래 접히는 것이 미화된다. <왜란종결자>야 남존여비가 강했던 조선시대의 일이니 그렇다 치지만, 모계사회의 유풍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라면 좀 다른 구도를 시도해보아도 좋지 않았을까?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 남녀간의 심리묘사 기법이 별로 유려하지 못하다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둔하고, 여자들은 토라져서 우회적인 말로 탁탁 쏘아대는 게 전부다. 남자 주인공들이 여자들 감동시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여자를 구하는 패턴 하나 뿐이다. 작은 배려로 은은한 감동을 준다던가, 유머러스하게 부드러운 말로 여자의 마음을 풀어줄 줄 아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공손발과 치우비의 티격태격은 너무 질질 끌어서 싫증이 날 정도이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치우천왕의 행적 고증 문제. 치우학회 사람들과 만나보고 재야사서들은 제법 뒤져본 모양이지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치우에 관련된 창작 출판물은 지금껏 단 한 권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제내문경> 즉, 황제가 전했다는 최초의 의학서를 제외하고는 황제를 예찬하는 시집 두 권이 전부인 실정이었다.'라 섣불리 단정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박문기의 <대동이>(전6권, 정신세계사) <맥이>를 읽어보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 텐데...(작가의 말에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스토리에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존재를 몰랐거나 무시한 듯) <대동이>의 1권도 치우제와 황토인(지나인)의 대결국면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지만, <전국책> <춘추좌전> 등의 경서류, <산해경>이나 <포박자> 등의 도가류 서적들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정사의 기록을 보완한다. 게다가 최근에 쏟아져나오는 중국의 고고학 발굴 보고서, 도록들은 중국어를 잘 몰라도(웬만한 것들은 영어로도 병기되어 있다) 눈으로 형상은 파악할 수 있으니 참고했다면 소설의 배경 설정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는가. 고대사 연구자들이 이우혁을 같잖게 본다고 해서(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역사 이해를 오도할 가능성... 뭐 대충 그런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도 역사학자들을 만나보고 조언을 얻으려조차 않는다면 결국 손실은 자신의 작품 질에 반영되는 것  아닌가?

이 책만큼 별점 주기에 고민했던 경우도 없다. 드러난 흠들을 가지고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내 평가 기준으로는 별 셋이 적당하다. 그러나 주제가 워낙 참신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면이 좋아 넷을 줄까 하다가... 사실 별 0.5가 있었다면 셋 반을 주었겠다. 고심 끝에 반올림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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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철이 든 이래 문학과는 좀체 친해지지 않았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뉴에이지(문학 쪽에서는 뉴웨이브) 트렌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첫 번역이 나온 곳이 정신세계사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나는 정신세계사 팬이다. 웬만한 정신세계사 책은 거의 다 사거나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영향인지, 2000년대 들어 순수문학의 퇴조와 장르문학의 전면부상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2004년만으로 보았을 때는 판타지가 수그러드는 대신 추리-스릴러가 바톤터치를 한 듯하다) 고상하신 문학평론가 집단 일부에서는 문학의 타락이네 위기네 어쩌네 하셨던 것 같은데, 내가 볼 때 장르문학의 발전은 단순히 글쓰기 테크닉만이 아니라 신화적 상상력의 해방이란 점에서 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나같이 문학과 담 쌓은 인간까지 끌어들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실에 있던 <걷는 식물 트리피드>와 같은 SF문고들을 접해본 내게, 이 책은 SF의 개념정의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적인 지식들이 찔끔찔끔 언급되긴 하지만 그 난이도는 고등학교 과학 수준을 넘지 않는다.  결국 <신들의 사회>에서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도 신화와 종교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SF로 규정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신개념 판타지소설의 일종으로 이해한다. 꼭 중세 유럽풍의 배경만을 판타지로 규정하는 것도 사실 하나의 편견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젤라즈니의 다른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앞 리뷰들이 스무 개나 달린 이 책을 논한다는 건 좀 부담스럽긴 하다. 그러나 그 리뷰들이 감상적인 찬사 비중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기에 나는 약간은 분석적 차원에서 몇 자 적어본다.

많은 리뷰어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높게 치는 것을 SF와 인도 신화를 믹싱해낸 풍부한 상상력이라고 언급하는데, 그 점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 분명히 인도 신화의 코드를 차용하긴 했지만, 각 신들의 캐릭터를 좀더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해 본래 인도 신화 체계가 갖는 통일적인 판테온을 훼손하고 헝클어놓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파괴신으로서의 시바의 이미지를 정형화하기 위해 문예신으로서의 나타라지(춤추는 시바) 이미지 등을 아예 도입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 예이다.

내가 높게 보는 것은 소재의 기발함이나 상상력 등 외피가 아니라 오히려 문학적 글쓰기다. 지금 한국에서 판타지 붐이 꺾이는 것은 문학적 글쓰기 훈련이 되지 않은 인스턴트 작가들이 그저 신화적 요소들을 물량공세식으로 작품 않에 쓸어담으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처음엔 고유명사들이 신기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문학적으로 탄탄한 기반이 없는 창작활동은 소재가 동양이든 서양이든 결국 대여점 무협지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다.(실지로 요즘 서점가에서 판타지로 분류하는 책들은 대부분 대여점용 1회용품이다) 그러나 젤라즈니의 글은 약간은 냉소주의적이면서도 코믹한 위트와 재치가 톡톡 튄다. 브라흐만과 샘의 토론(105~111페이지)나 야마와 샘의 조우(181~193페이지) 등이 대표적인 예. 그러면서도 가끔 철학적 깊이가 담긴 문장을 던져주는데,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악업이란 우리 친구인 신들이 원치 않는 모든 것들을 뜻하네"(95페이지)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샘과 니리티 사이의 멋진 사상논쟁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6장까지에서 그려진 샘 정도의 캐릭터라면 그럴 만하지 않는가? 하지만 결말은 다소 조잡한 전투 장면 묘사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 점이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이 책은 판타지라고 하면 반지의 제왕 아류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다른 차원의 재미를 보여준다. 장르문학 팬들에게만이 아니라 책읽기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창조적 사고를 자극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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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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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를 제외하고 코엘료의 다른 작품은 못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코엘료 특유의 영감이 느껴진다.

<연금술사>에 비하면 스토리나 메시지 전달 방식이 좀더 복잡해지고(좋은 말로 하면 세련되어지고) 어떻게 보면 좀더 난해해진 것 같다. 성과 섹스라는 주제를 다루려다 보니 아무래도 좀 말을 에둘러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감을 일깨우는 글쓰기는 여전히 훌륭하다.

제네바 시가지 지도에서 베른 가를 찾아 넣어놓은 것이라든가, 포르투갈어를 원어에 충실하게 옮기려고 노력한 것도 좋게 봐 줄 만. 하지만 어차피 소설인데 굳이 지도까지...? 하는 생각도...

다만 표지는 영 아니다. <연금술사>는 표지 볼 때 벌써 내용이 팍 와 닿았는데...  <11분>은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듯.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표지를 연상시킨다. 녹색머리 여자도 내가 읽으면서 떠올린 마리아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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