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 한창 화제가 되었던 책 가운데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있었다. 어디서 정확히 수치를 본 건 아니지만 몇 주간 베스트셀러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도 만나면 그 얘기들을 해대고...

책 내용을 다 읽어보지는 않아 뭐라고 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두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아침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뭐 그런 게 요지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어감은(하긴 책 제목을 보면 당연히 그렇게 연상이 된다) 무조건 일찍 출근해서 뼈빠지게 일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건 기업 총수들이 추천도서에 넣고 단체구매를 해서였다는 후문도 돌았다.

내가 <아침형 인간> 증후군을 썩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 건, 그 아류작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해서였다. <아침형 인간>이 뜨기 시작하자 각종 <~형 인간>들이 출현했다. <새벽형 인간>이란 책이 나왔고, 그 책 광고 카피는 "세 시에 일어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였다! 세상에... 그래서 사람들과 농담으로 다음 책은 틀림없이 '철야형 인간'일 거란 이야기도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불과 서너달이 지난 지금, 아침형 인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베스트셀러 가운데에는 하루살이도 끼어 있다는 것을 실감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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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8-1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 정말 호감 안 가는 책이었는데.
사람을 노새로 만드는 이론이다...뭐 그런 반감이...ㅋㅋ

verdandy 2004-08-12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 책을 씹어먹듯이 자세히 써놓은 리뷰를 다른 잡지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의외로 귀담아둘 만한 게 있더군요.(머리가 맑은 아침시간을 활용하는 게 효율이 높다는 게 요지) 하지만 사람들이 그 부분보다 '무조건 일찍 출근'이란 뉘앙스만을 받아들였던 게 마음에 안 들었답니다.
 

학부 시절, 동문회에서 의대에 다니던 한 기수 위 고등학교 선배와 무척 친해졌다. 그 선배가 역사학을 무척 좋아한 것 외에, 우리 둘 다 고전음악을 좋아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이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당시 동문회는 군기가 좀 센 편이라 동문회 공식 모임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희한하게 그 선배와는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즐거워했다. 뭐였냐 하면... 역사학 연구가 추리소설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은 남겨진 물증을 가지고 사건을 재구성해들어간다. 역사학자는 남겨진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을 가지고 당시의 시대상을 추적한다. 지능적인 범인이 일부러 증거물을 흩뜨려놓으면, 유능한 탐정은 그 부분까지 고려하여 숙고해야 한다. 역사기록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의적으로 왜곡, 삭제, 축소, 은유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역사학자는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시대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중국인들이 남겨놓은 한문사료에서 주변민족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한꺼풀 벗기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듯 말이다.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먼 편이라 생각해왔지만, 최근에 나의 독서 패턴을 가만히 살펴보면 추리나 판타지 등의 소위 장르문학, 혹은 비주류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제법 찾아 읽은 편이었다. 역시 역사학에 대한 관심과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다빈치 코드>가 뜨는 현상, 그리고 대중역사서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있을 듯하다는 느낌이 문득 머리를 스치기에 정리한 생각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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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고대올림픽의 발상지 아테네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1896년 근대올림픽이 부활한 지 108년만의 일이고, 유럽통합 이후 유럽의 첫 올림픽이 되는 셈이니 유럽인들로서는 뭔가 뿌듯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의 못돼먹은 사고방식 중의 하나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마치 페르시아가 침략주의적인 정책을 가져서 일어난 전쟁이고, 전제주의적 아시아로부터 민주주의적 유럽문명을 수호한 성전인 양 선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페르시아는 사실 그리스 도시국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토지는 척박하고 지형은 험악하며 자원도 빈약한 에게해의 섬들을 풍요로운 오리엔트제국이 왜 탐낸단 말인가? 그때문에 아테네인들의 첫 사절단이 페르시아 궁정에 도달했을 때 페르시아인들이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신기함'에 지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그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그대들은 대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그리고 희한한 것은 1,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물러난 페르시아제국이 왜 망할 때까지 그리스를 더이상 침공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두 번의 전쟁 패배가 제국의 망신이라 생각했다면 분명히 페르시아는 장기전으로 돌입했을 것이고, 자원과 인력을 고려하면 그리스의 멸망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즉 문명간의 대결이니 어쩌니 하는 의미 부여는 유럽인들의 제멋대로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페르시아 나름으로는 두 번이나 혼내줬으니,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그리스계 식민지들이 더이상 준동하지 못하게 해놓았다고 평가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 전쟁의 기록은 그리스인들의 시각에서 기술한 자료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유명한 마라톤 경기는 바로 이렇게 유럽인들의 왜곡된 자존심의 결정판이다. 페르시아로부터 유럽문명을 지킨 영웅의 표상이니까. 그래서 나는 바로 이번 올림픽에서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의 국기를 단 마라톤 선수가 메인 스타디움에 일등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길 기원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유럽인들의 표정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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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웹상에서 초등학생들의 엽기 시험답안이 널리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개미를 삼등분하면’의 답란에 머리, 가슴, 배가 아닌 ‘죽는다’라든지, 이를테면, ‘찐 달걀을 먹을 때는’에 소금이 아닌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한다’는 둥의 그렇고 그런, 기타 등등.

엽기에 가슴 설렐 나이도 아닐뿐더러, 펀(Fun)하지 않으면 뻔할 뿐인 그 바닥의 정서에 이미 익숙한 터라, 나는 하릴없이 답안들의 전모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그 기타 등등 속에서-마치 기타줄이 끊어지는 느낌으로 나의 대뇌에 울림을 준 답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문) 부모님들은 왜 우리를 사랑하는 걸까요 답)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냔, 말이냔,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아니, 간단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지금 한국 사회에 주어진 가장 뻔하고도 펀한 명제이자 화두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식 내가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울컥, 하지 마라. 나 역시 가슴을 치며 찐 달걀을 삼키는 기분이다. 글쎄 나도 자식을 기르는 인간이라니까.

우선 묻겠는데, 당신은 왜 돈을 버는가 당신은 왜 재테크를 하며, 그럴 돈만 주어진다면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당신은 왜 당신의 사업체를 상장시키고자 노력하며, 당신의 사업체를 법인으로 전환시킨 후에도 51%의 주식을 끝끝내 손에 쥐려 하는가. 당신은 왜 그토록 굽실거리며, 왜 꼬리를 내렸으며, 또 그토록 비굴했는가 아니, 당신이 횡령을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당신은 왜 수수를 했으며, 혹은 사기를, 또는 축재를 숱한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하고 있는가 아니 그런 건 뉴스에나 날 법한 일이라 치부하고, 그래도 당신은 왜 기러기가 되어 이 땅에 홀로 남았나 혹은 당신이 다섯 군데, 여섯 군데의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며, 선생에게 봉투를 건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당신은 서울에, 강남의 학군에 목을 매며, 또 당신은 로또를 구입하고 타워팰리스를 꿈꾸는가 다 좋은데, 이 좁은 국토에서 끝끝내 묏자리를 봐두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저런저런, 아파도 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믿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얼씨구, 형이상학적이긴 해도-당신이, 당신의 꿈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기 혹시,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혹 당신에게 자녀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또 당신의 자녀에게 뭔가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저기 그러니까… 당신의 자녀를 매우, 몹시도, 무궁무진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까 사랑! 아아, 우리들의 터질 것 같은-맑고 깨끗한, 할 만큼 한, 하해와도 견줄 수 있다 일컬어지는! 그러니까 어버이 사랑! 그래도 자식뿐이고, 기댈 건 자식뿐이란 생각은 이제 그만 정리하자.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요는 이 땅의 자식사랑이 ‘독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습’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사회악이다. 자식은 더 이상 보험이 아니다. 자식은 통장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당신의 세습을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우리 아이는 다르다고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저런저런, 당신은 맹모(孟母)인가 아니다, 당신은 맹모(盲母)이다.

곧 가정의 달이 돌아온다. 우리들의, 이 끝없고 대책없는 어버이 사랑을 또 어찌해야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어쩌면 당신의 사랑에 당신의 아이조차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말이다.

박민규 소설가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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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빌트인 시스템이라 휘센 에어컨이 있다. 그러나 입주시 기능점검만 했을 뿐  사용해본 적이 없다. 전기료가 아까와서가 아니라 기온변화에 대한 면역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서이다.

20세기에 행해진 고고학적, 인류학적 발굴 결과 고대인들의 치아는 우리들보다 훨씬 튼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되어버린, 그래서 나자마자 아예 치과에서 뽑아버리곤 하는 사랑니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음식을 씹고 갈아먹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먹기 좋게 잘 가공된 식품들만 먹어대다 보니 이빨이 갈수록 퇴화한 것이다.

초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몽골인들의 시력은 우리가 흔히 쓰는 교정시력 수치로 환산하면 4.0~5.0에 달한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안경 쓰는 아이는 전체의 20%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 생소해져버린 '안경잡이'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들 가운데에서도 안경을 쓰는 아이가 안 쓰는 아이보다 많아졌다.

내가 에어컨을 멀리하게 된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어서였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학교나 식당이나 심지어 국립도서관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있는 곳은 기껏해야 금융기관 지점 정도? 여름방학이었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덥고,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선풍기가 없는 교실(보충수업)에서 공부를 하다가 더워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방법이라곤 기껏해야 수돗물에 세수 한 번 하고 오는 것. 그리고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는 것. 그리고 찬물 마시는 것.(그때만 해도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

부채질에도 지쳐버린 나는 그냥 눈을 감고 의자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책상에 엎드려 자면 입김이 돌아오니 더 뜨겁다) 팔은 무릎 위에 놓고 완전히 지쳐서 손가락도 까딱 못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더위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가 구름 속에 숨은 게 아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조금씩 조금씩 피부에서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흡은 고르고 조용했고(나중에 그게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으로 전환된 것임을 알았다) 머리는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하!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환경에 맞춰 자신의 생물학적 기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만일 지금의 더위가 인간이라는 종에 못 견딜 정도였다면, 우리는 이미 수백만년 전에 멸종했어야 맞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잖은가?

에어컨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백 년도 채 안 된다. 에너지 절약 문제는... 사실은 정말 본질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덥다고 에어컨을 황황 틀어대면 인류 종이 진화시켜 온 기온 적응 능력을 몇 세대 안에 까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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