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웹상에서 초등학생들의 엽기 시험답안이 널리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개미를 삼등분하면’의 답란에 머리, 가슴, 배가 아닌 ‘죽는다’라든지, 이를테면, ‘찐 달걀을 먹을 때는’에 소금이 아닌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한다’는 둥의 그렇고 그런, 기타 등등.

엽기에 가슴 설렐 나이도 아닐뿐더러, 펀(Fun)하지 않으면 뻔할 뿐인 그 바닥의 정서에 이미 익숙한 터라, 나는 하릴없이 답안들의 전모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그 기타 등등 속에서-마치 기타줄이 끊어지는 느낌으로 나의 대뇌에 울림을 준 답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문) 부모님들은 왜 우리를 사랑하는 걸까요 답)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냔, 말이냔,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아니, 간단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지금 한국 사회에 주어진 가장 뻔하고도 펀한 명제이자 화두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식 내가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울컥, 하지 마라. 나 역시 가슴을 치며 찐 달걀을 삼키는 기분이다. 글쎄 나도 자식을 기르는 인간이라니까.

우선 묻겠는데, 당신은 왜 돈을 버는가 당신은 왜 재테크를 하며, 그럴 돈만 주어진다면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부터 하는 것인가 당신은 왜 당신의 사업체를 상장시키고자 노력하며, 당신의 사업체를 법인으로 전환시킨 후에도 51%의 주식을 끝끝내 손에 쥐려 하는가. 당신은 왜 그토록 굽실거리며, 왜 꼬리를 내렸으며, 또 그토록 비굴했는가 아니, 당신이 횡령을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당신은 왜 수수를 했으며, 혹은 사기를, 또는 축재를 숱한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하고 있는가 아니 그런 건 뉴스에나 날 법한 일이라 치부하고, 그래도 당신은 왜 기러기가 되어 이 땅에 홀로 남았나 혹은 당신이 다섯 군데, 여섯 군데의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며, 선생에게 봉투를 건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당신은 서울에, 강남의 학군에 목을 매며, 또 당신은 로또를 구입하고 타워팰리스를 꿈꾸는가 다 좋은데, 이 좁은 국토에서 끝끝내 묏자리를 봐두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저런저런, 아파도 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믿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얼씨구, 형이상학적이긴 해도-당신이, 당신의 꿈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기 혹시,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혹 당신에게 자녀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또 당신의 자녀에게 뭔가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저기 그러니까… 당신의 자녀를 매우, 몹시도, 무궁무진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까 사랑! 아아, 우리들의 터질 것 같은-맑고 깨끗한, 할 만큼 한, 하해와도 견줄 수 있다 일컬어지는! 그러니까 어버이 사랑! 그래도 자식뿐이고, 기댈 건 자식뿐이란 생각은 이제 그만 정리하자.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요는 이 땅의 자식사랑이 ‘독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습’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사회악이다. 자식은 더 이상 보험이 아니다. 자식은 통장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당신의 세습을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우리 아이는 다르다고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저런저런, 당신은 맹모(孟母)인가 아니다, 당신은 맹모(盲母)이다.

곧 가정의 달이 돌아온다. 우리들의, 이 끝없고 대책없는 어버이 사랑을 또 어찌해야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어쩌면 당신의 사랑에 당신의 아이조차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말이다.

박민규 소설가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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