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동문회에서 의대에 다니던 한 기수 위 고등학교 선배와 무척 친해졌다. 그 선배가 역사학을 무척 좋아한 것 외에, 우리 둘 다 고전음악을 좋아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이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당시 동문회는 군기가 좀 센 편이라 동문회 공식 모임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희한하게 그 선배와는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즐거워했다. 뭐였냐 하면... 역사학 연구가 추리소설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은 남겨진 물증을 가지고 사건을 재구성해들어간다. 역사학자는 남겨진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을 가지고 당시의 시대상을 추적한다. 지능적인 범인이 일부러 증거물을 흩뜨려놓으면, 유능한 탐정은 그 부분까지 고려하여 숙고해야 한다. 역사기록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의적으로 왜곡, 삭제, 축소, 은유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역사학자는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시대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중국인들이 남겨놓은 한문사료에서 주변민족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한꺼풀 벗기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듯 말이다.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먼 편이라 생각해왔지만, 최근에 나의 독서 패턴을 가만히 살펴보면 추리나 판타지 등의 소위 장르문학, 혹은 비주류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제법 찾아 읽은 편이었다. 역시 역사학에 대한 관심과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다빈치 코드>가 뜨는 현상, 그리고 대중역사서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있을 듯하다는 느낌이 문득 머리를 스치기에 정리한 생각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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