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빌트인 시스템이라 휘센 에어컨이 있다. 그러나 입주시 기능점검만 했을 뿐  사용해본 적이 없다. 전기료가 아까와서가 아니라 기온변화에 대한 면역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서이다.

20세기에 행해진 고고학적, 인류학적 발굴 결과 고대인들의 치아는 우리들보다 훨씬 튼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되어버린, 그래서 나자마자 아예 치과에서 뽑아버리곤 하는 사랑니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음식을 씹고 갈아먹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먹기 좋게 잘 가공된 식품들만 먹어대다 보니 이빨이 갈수록 퇴화한 것이다.

초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몽골인들의 시력은 우리가 흔히 쓰는 교정시력 수치로 환산하면 4.0~5.0에 달한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안경 쓰는 아이는 전체의 20%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 생소해져버린 '안경잡이'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들 가운데에서도 안경을 쓰는 아이가 안 쓰는 아이보다 많아졌다.

내가 에어컨을 멀리하게 된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어서였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학교나 식당이나 심지어 국립도서관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있는 곳은 기껏해야 금융기관 지점 정도? 여름방학이었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덥고,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선풍기가 없는 교실(보충수업)에서 공부를 하다가 더워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방법이라곤 기껏해야 수돗물에 세수 한 번 하고 오는 것. 그리고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는 것. 그리고 찬물 마시는 것.(그때만 해도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

부채질에도 지쳐버린 나는 그냥 눈을 감고 의자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책상에 엎드려 자면 입김이 돌아오니 더 뜨겁다) 팔은 무릎 위에 놓고 완전히 지쳐서 손가락도 까딱 못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더위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가 구름 속에 숨은 게 아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조금씩 조금씩 피부에서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흡은 고르고 조용했고(나중에 그게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으로 전환된 것임을 알았다) 머리는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하!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환경에 맞춰 자신의 생물학적 기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만일 지금의 더위가 인간이라는 종에 못 견딜 정도였다면, 우리는 이미 수백만년 전에 멸종했어야 맞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잖은가?

에어컨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백 년도 채 안 된다. 에너지 절약 문제는... 사실은 정말 본질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덥다고 에어컨을 황황 틀어대면 인류 종이 진화시켜 온 기온 적응 능력을 몇 세대 안에 까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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