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님의 "[퍼온글] 클래식에 관심 있으신가요?"

훌륭한 책소개, '날 선' 코멘트 잘 읽었습니다. 짝짝짝~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쇼팽 프렐류드 - 마우리지오 폴리니 조합 정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만년의 쇼팽이 느꼈던 고독과 우울함, 향수를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요... 키신처럼 유니콘 위에서 천국을 뛰노는 연주나 아르헤리치의 여왕적 화려함(키신이나 아르헤리치 모두 협주곡만 들어봐서 비교하기가 좀 조심스럽습니다만)에 비해 쇼팽 정서에 더 근접해 있다고 느끼는 연주지요.

그런데 이 곡을 여름에 배당한 건 좀 의문이네요. '마요르카의 추억'이라 지중해의 밝은 태양을 연상했나? 마요르카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쇼팽 음악세계는 지중해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듯한데... 하긴 뭐 장마철도 '여름'이니 장마철용 감상곡으론 딱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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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에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나, 당신한테 실망했어요." "자네한테 정말 실망했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표현이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듣는 거나 말하는 거나...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의 뿌리를 캐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기껏해야 첫인상, 그사람과 나눈 몇 마디 말, 식사나 회식 한두번... 아주 친해진다고 해 봤자 레크이에이션을 공유하거나 여행을 함께 가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이덴티티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지 않은가. 또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작년에는 클래식을 좋아하던 사람이 올해는 락에 미칠 수도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게으름뱅이였던 사람이 이번주에는 작심하고 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끼가 넘쳐흘렀던 그 사람의 얌전하고 겸손한 오늘의 모습이 참성격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취득한 한줌의 정보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틀을 규정해버린다.

그러므로, '실망'이란 표현은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고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판단을 잘못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판단자의 실수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뭐 그리 잘났다고 떠들어댄단 말인가. 나라면 누군가에게 실망했다면 창피해서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이 돌아가는 구조는 그랬던 듯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참 비위도 좋다. 심한 경우는 상대방에게서 뭔가 양보와 사과를 끌어내기 위해, 고의로 토라진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이 말을 이용하는 듯하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보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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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7-08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람들은 늘 변하기 마련인데, 항상 과거의 어떤 사람을 기억하고 과거에 매여서 살죠.
이렇게 말하는 저도 가끔 십년만에 친구를 만나면, 저 친구 옛날엔 이랬는데 라고 얘기하게 되죠. 십년간 그 친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면서. 그래서 티비를 안본답니다. 과거의 유령들만 사는 것 같아서......

verdandy 2004-07-08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단순히 "실망했네"란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요. 요즘은 마음 속에서 '실망이다'란 생각이 드는 것을 경계하려 합니다. 실망이란 뭔가 '기대'한 데서 비롯하고, 기대란 자신의 틀을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 위에 덧씌우는 것이니까요.
 
 전출처 : 혜덕화님의 "길을 잃은 느낌"

혜덕화 님 덕분에, 오롯한 몸과 마음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이리 많은 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윤구병 선생님 글도 있네요... 꼭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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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집 <제세기> 가운데, '20년 동안의 달의 지배가 끝나고 나면...'이란 구절이 있다. 많은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이 이 부분을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는 시기가 20년간 계속된다는 의미로 풀었다. 물론, 개혁개방이나 중국의 경제대국 부상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1990년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소련이 해체될 때, 많은 철새들이 중국 위기론을 떠들어댔지만, 막상 현지에서 잔뼈가 굵었던 중국통들은 코웃음을 쳤다. 1988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1989년 천안문사태가 일어났을 때, 1997년 동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과격분자에 의한 신강 분리독립운동론이 시끄러웠을 때도 언론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중국은 바라보는 바깥 세상의 시선들을 비웃듯이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패권국가로 성장해왔다.

21세기 들어 떠오르는 국가 중국, 그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1993년, 나는 북경에서 인문학자인 쉬**교수를 만났을 때, 현 총리 후진타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당시 후진타오의 서열은 10위 바깥. 서방세계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1988년 라싸 소요사태 때 티벳자치구 공산당 총서기였는데, 직접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장갑차에 탄 채 현장에 뛰어들어 폭력으로 진압, 중국과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 때의 인상, 그리고 사진으로 본 인상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 느꼈기에, 당시 중국 지도층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쉬 교수에게 혹시 더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쉬 교수는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시큰둥... 그러나 후진타오는 1998년 국가 부주석이 되었고, 2003년 주룽지의 뒤를 이어 주석직을 승계,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도 꿰어찼다.

후진타오의 '출신성분'(이 말은 중국어 한자 직역어일 가능성이 높다)은 명청시대에 이름을 날린 휘주상인(우리나라로 치면 개성상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집안으로, 대학 시절 전공은 수력공학. 따라서 졸업 후에는 댐이나 수력발전소 현장에 근무한 정통 엔지니어가 되겠다. 놀라운 것은 구이저우성 당 총서기로 근무하던 시절 구이저우대학에서 시대를 따라잡기 위해 한 해 동안 컴퓨터공학을 청강하는데, 사무실에서 대학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결석한 적이 없었다 한다.

언젠가 중국 권력서열 차트를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50위까지의 리더 그룹은 모두 전공이 교통공학, 원자력공학, 기계공학, 물리학 등 공학도들로 꽉 채워져 있지 않은가! 후진타오만이 아니라 중국을 이끌어가는 집단이 모두 이런 엔지니어형 실용주의자들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선거 민주주의 전체에 비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TV에서 토론 잘하고, 선거 때 낮 안가리고 돌아다니며, '인간적 친화력'이 높은 보스들이 수십년간 정치를 좌지우지해오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 과연 정문술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중국의 저력이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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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만들고 나서 거의 두 달 만에 리스트와 리뷰가 완전히 짝을 맞추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분류가 될까, 이 책은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이 카테고리는 좀 이질적인 것 같은데... 둘로 나눠야 하지 않을까... 등등.

웹상에 만든 서재 다듬는 게 이리도 어려운데, 실제 종이책을 방 안에 쌓아놓은 서재를 정리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알라딘 깔끔서재 공모...? 난 꿈도 안 꾼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십여 년 전 책자의 책들을 깊이 밀어넣고 앞에 키작은 책들을 두 줄로 쌓을 때부터 이미 불안하더니, 논문 자료 모으면서 방바닥에서 책장 앞으로 다시 한 줄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완전히 두 손 들고 말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과 세계를 분류하고 정돈해서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 욕망이 과학과 문명을 발달시켜 왔고, 달나라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며 원자폭탄과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원자를 나노 단위로 쪼개들어가던 과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물질의 배후에서 질서잡힌 우주(코스모스)를 포착하지 못하고 카오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식을 사랑하고 지혜를 추구하면서 책을 찾는다. 그러나 그 책이 쌓여가면서 어느 날엔가는 책을 치우고, 쌓고, 정리하고, 분류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을 갉아먹는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책이란 대상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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