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나, 당신한테 실망했어요." "자네한테 정말 실망했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표현이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듣는 거나 말하는 거나...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의 뿌리를 캐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기껏해야 첫인상, 그사람과 나눈 몇 마디 말, 식사나 회식 한두번... 아주 친해진다고 해 봤자 레크이에이션을 공유하거나 여행을 함께 가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이덴티티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지 않은가. 또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작년에는 클래식을 좋아하던 사람이 올해는 락에 미칠 수도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게으름뱅이였던 사람이 이번주에는 작심하고 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끼가 넘쳐흘렀던 그 사람의 얌전하고 겸손한 오늘의 모습이 참성격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취득한 한줌의 정보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틀을 규정해버린다.
그러므로, '실망'이란 표현은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고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판단을 잘못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판단자의 실수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뭐 그리 잘났다고 떠들어댄단 말인가. 나라면 누군가에게 실망했다면 창피해서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이 돌아가는 구조는 그랬던 듯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참 비위도 좋다. 심한 경우는 상대방에게서 뭔가 양보와 사과를 끌어내기 위해, 고의로 토라진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이 말을 이용하는 듯하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보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