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영적 스승들께서 남기신 주옥같은 말씀을 책 한 권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붓다, 예수, 조로아스터, 노자, 그리고 현대에는 달라이라마,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틱낫한까지... 달마대사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동굴 밖에서 수 년을 정좌해서 기다리다 자기 팔을 잘라 바쳤다는 이조(二祖) 혜가의 에피소드는 마치 동화처럼 아득히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깨달음의 말들이 넘쳐난다. 서점과 도서관엔 위대한 스승들의 책이 가득하고,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멘트 곳곳에 영적 냄새를 풍기는(그래서 괜히 멋있어 보이는) 경구들을 인용하며, 수백만개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자막처리로 명상시나 아름다운 글들을 배경에 깔아놓는다. 막 개봉한 영화 제목이나 신제품 광고 카피에도 뭔가 근사한 깨달음의 말들이 들어가 있을 때가 참 많다.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수십 번은 영적 메시지에 노출되는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자.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옛날보다 영적으로 더 개화했는가?
모듯 것이 제자리다. 본질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문서작성과 상거래 결제는 온라인으로 처리되며 하룻밤에 대양을 건너 날아다니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과로사로 픽픽 쓰러진다. 빨래는 세탁기가 건조까지 끝내주고 원터치로 쾌적한 냉방과 아늑한 난방이 가능해졌으며 요리 재료는 편의점에서 3분OK 제품을 사다 먹지만 주부들은 여전히 가사노동에 시달린다. 교실엔 최첨단 프로젝터가 설치되고 공중파로 과외방송의 혜택을 누리지만 아이에게 학교는 여전히 지옥이다.
왜, 왜 그럴까? 이렇게 영적 메시지로 홍수가 나는 세상인데...?
붓다는 설법시에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해지는 시기, 이른바 정법의 시대가 5백년밖에 지속되지 않을 거라 했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수억의 신도를 가진 자신의 가르침이 이렇게 훌륭하게 번성하고 있는데 그 무슨 농담을...
말법시대란, 혹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란 악마가 나타나 경전을 불태우고 성직자들을 학살하는 버전이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곳곳에 깨달음의 텍스트가 범람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 가르침들을 보되(see) 보지 못한다(don't look). 눈길 닿는 곳마다 우물 천지건만 사람들의 마음밭은 계속 사막화되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