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온 김에 경주 가서 문화재 탐방을 하려고 해도 번번이 성사가 안 되었다.

이번에는 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불국사만이라도 가 보자고 남편과 약속을 하였다.

차를 안 가져왔기에 버스를 이용해서 가기로 하였다.


추석 다음 날, 우리 가족은 야심차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고속 버스 터미널은 몇 번 가봤지만 시외 버스 터미널은 나도 처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는 동안 남편이 불국사행 표를 구매한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시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손님이 우리 가족 하고 아가씨 이렇게 달랑 5명이었다. 


딸은 초중등 모두 경주로 수학여행을 오지 않아 경주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지지난 겨울, 작은 아빠가 안압지에 데려다줘서 구경한 적은 있다. 

안압지는 처음이었는데 운치 있고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깜깜할 때 구경해서 제대로 보진 못했다. 

내가 6학년 담임할 때는 고적답사로 경주까지 왔는데 

요즘은 백제권까지만 내려오는 추세인 듯하다.

아님 아예 제주도로 가던지.

서울에서 경주까지 또 시간 내서 내려오긴 쉽지 않다.

울산 온 김에 들르면 딱인데 그게 그렇게 안 되다가 이번에야 소원성취하였다.


하지만 버스 기다리느라 길에서 낭비한 시간이 꽤 많았고 기다리느라 지쳐

하루 동안 불국사 하나만 봤다.

물론 천천히 쉬엄쉬엄 보긴 했지만서도.

경주 여행할 때는 필히 차를 이용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택시도 거의 오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해서 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렌트할 걸 하고 많이 후회했다.


여름 날씨처럼 해도 쨍쨍 내리쬐서 걷는 것도 힘들고, 버스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불국 역에 내려 걸어가면 불국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버스를 타야했다.

한참을 기다려 불국사행 버스를 타고 드디어 불국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불국사 불국사 노래를 불렀는데

지난 번 내장사처럼 아이들이 실망하면 안 되는데.... 싶었다.

기우와는 달리 불국사는 여전히 위엄을 떨치고 있었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옆에서 바라본 청운교와 백운교는 정말 아름다웠다.

수퍼남매도 멋지다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실망하지 않아서 말이다.

연휴인데 그 정도면 별로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모두 "실크 로드" 쪽으로 몰린 거였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니 세월이 느껴졌다.

보수한답시고 세월을 지워버린 절도 많은데 불국사 대웅전은 빛바랜 현판이나 기와, 단청이 오랜 시간을 그대로 느끼게 해줬다.

고마웠다. 실망시키지 않아서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석가탑이 수리 중이라 아이들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보탑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연휴 전, 중간고사를 치른 딸이 오히려 나에게

이런저런 배경지식을 말해줬다.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과정을 쫑알쫑알 말해줬다. 

역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걸 귀담아 듣고 있었나 보다.

역사 공부는 정말 필요하다.

더불어 역사 선생님도 정말 중요하다. 

역사 선생님 덕분에 우리 딸이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게다가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주셔서 학부모로서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역사 선생님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준다는 생각만 해도 으윽~~ 끔찍하다. 


불국사의 회랑이 참 독특했다.

오래 전 고적답사 왔을 때는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와보니 경복궁과 비슷한 구조의 회랑이 보였다.

불국사가 엄청 큰 절이란 걸 알 수 있는 증거로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극락전 등 여러 건물이 있다는 것이다.

비로전에 -헷갈린다.-사람들이 오며가며 쌓은 돌탑이 셀 수 없이 많아 신기했다.

눈부신 햇살을 피하려고 대웅전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대웅전 후면에서 바라본 무설전은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진짜 잘 어울렸다.

깊은 가을에 오면 정말 환상 그 자체일 듯하다.

아마 그 때는 인파에 밀려다녀 제대로 구경은 못할테지만.


불국사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6학년 담임하면서 고적답사로, 이번에는 가족여행으로 세 번째다.

여전히 아름다워서 정말 고맙다.

수퍼남매도 가족 여행하면서 여러 절을 돌아다녔는데

불국사가 특이하고 가장 아름답단다. 천만다행이다.

너무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 석굴암은 포기했다.


배가 너무 고파 맛집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제주도 여행부터 우리 가족은 맛집을 꼭 찾아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인 듯하다. ㅋㅎㅎ

"맷돌순두부"가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진짜 사람이 많았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운 좋게 어떤 총각이 자신이 받은 번호표를 우리에게 줘서 대기 시간이 줄어들었다. 

우리 앞으로 50명 정도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진 않았다. 한 30분 정도 기다렸나보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어

고객 대기장소를 별도로 마련해 놨다.

거기서 음료도 팔고, 수제 아이스크림도 팔았다. 

순두부 찌개 1인분이 9000원인데

우린 3개만 시키고, 공기밥 1개를 시켰다.

밑반찬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주요리인 순두부 찌개에 순두부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어 좋았다.

아들과 난 원래부터 순두부를 좋아한데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30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근처에 순두부 집이 여러 개였는데 유독 그 집만 대기표 받고 기다리는 걸 보니 유명한 집이긴 한가보다.


갑자기 작은 아빠 집으로 가야 해서

울산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가 너무 안 와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어디 가냐고 묻길래

" 고속 버스 터미널요" 했다.

" 어디 가시는데에?"

" 울산요"

" 울산 갈라믄 시외 버스 터미널에 가야 하는데요"하시는 거다.

우린 모두 식겁했다.

기사님이 안 물어봤음 우린 울산에 못 돌아갈 뻔 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 막히는 길로 가시겠다고 하셔서 우리도 그게 좋다고 하였다.

기사님이 이런저 말씀을 하시는데 참 유쾌하신 분이셨다.

우리 타기 전에 내린 손님들도 "맷돌 순두부" 집 옆 낙지 먹으러 가는 건데

지금 "실크 로드" 행사 때문에 시내가 어지간히 막혀 안 막히는 길로 오셨다고 한다. 

기사님은 솔직히 말해 경주는 먹거리가 형편 없다고 하셨다. 

금방 우리가 순두부 먹고 나왔다고 하니

" 맛있습디꺼? 짜기만 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 시장하니까 맛있는 거지 경주 음식 짜기만 하고 맛 없습니데" 

경주 택시 기사님이 경주를 디스하시다니....

다른 건 몰라도 경주는 먹거리가 형편 없다고 솔직히 말씀하셨다.

짜고, 맵고 해서 맛집 추천해주면 욕 먹을까 봐 아예 말 안 한다고 하셨다.

짠 음식 때문에 경주는 고혈압 환자가 많아 내과가 잘 된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솜씨가 개그맨 저리 가라였다. 

기사님과 대화하다 보니 금방 시외버스 터미널에 당도하였다.

예전에 왔을 때  경주 터미널이 너무 작아 엄청 놀랐는데

여긴 그런대로 컸다. 확장한 건가.

그때는 단칸방처럼 너무 작아

'야~~ 이거 너무하다. 그래도 경주인데,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데 정말 시설이 낙후되었네!' 혼자 생각했었다.

많이 발전한 모습에 기뻤다. 


불국사 밖에 보지 못해 다음에 차 갖고 와서 제대로 찬찬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적 답사 때,  남산이 참 볼거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문화해설사가 설명해주시니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그 때 지금처럼 기록을 해 놨더라면 잊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건가보다.

경주여! 다시 올 때까지 여전히 아름답길 바란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5-09-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나들이 하셨네요. 석가탑이 아직 보수중이군요. 몇년전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불국사는 저도 초등수학여행 간 곳입니다. 고교 때도 학교간부수련회로 갔었고요. 여기선 멀지않아서 좋지요. 단풍이 들면 가봐야겠어요^^

수퍼남매맘 2015-09-30 22:45   좋아요 1 | URL
단풍 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요.
가까운 곳에 계셔서 좋으시겠어요.
마음 먹으면 갈 수 있고 말이에요.
석가탑 보수가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거군요.
귀한 문화재이니만큼 심혈을 기울여야겠죠.
숭례문 보면 진짜 화 나요.

세실 2015-10-0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태국으로 신혼여행 다녀온 해에 경주 갔다가 고풍스러움과 깔끔함, 고즈넉한 매력에 빠졌지요. 한동안 경주가 휴가지였답니다. 석굴암 산책길도 참 예뻐요.

수퍼남매맘 2015-10-01 10: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석굴암 산책길 수퍼남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차를 안 갖고 가서 포기했네요. 아쉬워요.
6학년 애들 데리고 갔을 때 엄청 큰 민달팽이도 많이 봤었는데...

일본 교토, 나라가 경주 같은 엣 정취가 느껴져서 참 좋았어요.

2015-10-01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율맘 2015-10-0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댓글 확인해요 빌려오라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