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는 거의 집에서 커피를 안 마시기 때문에 핸드 드립할 필요가 없었다.
방학이 되자 집에서 마셔야 하는데 1인분을 내리기에는 아깝고 번거롭기도 해서
노랑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을 꼬드겨 2인분을 내리곤 하였다.
한데 드립이 잘 안 되었다.
바야흐로 슬럼프였다.
아! 슬프다.
제주도 최마담은 완전 드립 잘하더구만!
첫 물을 부어 뜸을 들일 때, 일명 커피 빵이 생겨야 하는데 도대체 안 생겼다.
가스도 거의 나오지 않고 말이다.
왜 그러지?
원두를 갈아서 보관해 그런가?
아님 드립퍼가 안 좋아서 그런가? (내가 가진 것은 4-6인용이다. 2인분 하기에는 너무 크다.)
물 온도가 적당하지 않았나?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핸드 드립 동영상을 다시 보고....
나름대로 문제 요인을 간추려봤다.
첫째 핸드 밀로 가는 게 힘들어 분쇄 형태로 보관한 게 문제였던 듯하다.
둘째 드립퍼가 너무 크다. 하여 칼리타 1-2인용으로 갈아탔다.
이 두 가지 문제 해결을 해도 커피 빵이 안 생기면 어쩌지?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고...
때마침 원두가 떨어져서 폭풍 검색을 시작하였다.
커피 좋아하는 블로거가 올린 글을 보고,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원두 판매처를 알게 되었다.
예전에 사던 곳은 강배전으로 볶아 나랑은 좀 안 맞았다.
동네에서 여러 번 사먹었는데 왔다갔다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착했다.
보통 100그램 단위로 판매하는데 이 곳은 235그램을 판매해서 끌렸다.
100그램이면 10잔이 나오는 셈이니 금방 원두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500그램을 사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235그램이면 정말 적당한 듯하다.
내 스타일 아니면 또 동네 카페에서 사먹어야지 하며 진짜 시험 삼아 주문해봤다.
마침 칼리타 드립 세트도 판매하길래 함께 구매했다.
새벽에 주문했더니 다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도착했다. 주문하자마자 로스팅한다고 한다.
("미친 커피"라고 검색창에 치면 된다.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이름이다.)
개봉을 하고 핸드 드립 준비를 하였다.
핸드밀로 원두를 분쇄하고, 칼리타 1-2인용 드립퍼에 커피가루를 넣고, 적당하게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뜸들이기 위해 물을 수직으로 떨어뜨렸다.
핸드 드립에서 이 단계가 제일 중요하단다.
구수한 케냐AA 커피향이 올라오면서 가스가 배출되며 맛있는 커피빵이 올라왔다.
이 순간이 정말 신기하다.
커피가 숨 쉬는 것처럼 들숨, 날숨을 내뱉는 게 정말 재미있고, 신비롭다.
앗싸! 대성공이다.
자랑하려고 아들한테 와서 커피빵 보라고 하였더니 데면데면
이게 얼마만에 보는 커피빵이던가!
핸드 드립은 머그잔에 담는 게 아니라고 하여
아끼는 잔에 커피를 담았다. 물론 커피잔을 미리 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 이제 우아하게 마셔볼까?
음~~ 스멜!!! 행복하다.
실력이 녹슨 게 아니었어. 물론 최마담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서도.
듣자하니 제대로 핸드 드립을 하려면 최소한 1킬로그램? 아님 3킬로그램 ?(헷갈림)을 혼자서 내려봐야 된다고 한다.
그만큼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항상 초심을 잃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늘 노력해야쥐~~
언제나 처음처럼, 정성 들여서 말이다.
핸드 드립은 커피 갈 때, 물 부을 때마다 고소한 커피향이 올라와 정말 좋다.
솔직히 마실 때보다 커피를 내릴 때가 더 행복하다.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한테는 케냐AA 가 딱이다.
인도네시아 만델링도 산미가 별로 없어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세계 3대 커피라 불리는 블루 마운틴, 하와이 코나, 예맨 모카 마타리 커피도 마셔보고 싶다.
(동네 카페 사장님 말씀이 시중에 싸게 유통되는 3대 커피는 함유율이 아주 적어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셨다. )
그리고 또 뭐더라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나온 "루왁 커피"도 살다보면 마셔 볼 기회가 오지 않을까!
꿈 꾸는 것은 자유니까.
커피 좋아하는 지인들한테 여기 알려줘야겠다.
(글자를 지우고 싶은데 도저히 안 된다. 맥북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