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개인 봉사 활동으로 공립도서관 서가 정리를 하곤 한다.
이번 여름 방학에도 7시간을 채워야 해서 가까운 도서관에 미리 예약을 해 놨다.
봉사 첫날이다.
딸과 함께 자료 열람실로 갔다.
다른 사서가 보이지 않아 좀 연세가 있어 보이는 사서한테
" 봉사 활동 왔는데요" 라고 운을 뗐다.
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다.
잠시 후, 봉사 활동 기록 대장을 보더니 딸을 오라고 하였다.
함께 자리를 이동하였다.
딸이 기록하는 동안, 사서가 뭔가를 물어보길래 딸이 대답을 안하자
내가 대답을 했더니
" 엄마가 대답하지 말고, 아이가 대답하라"는 식으로 말을 툭 던졌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좀 기분이 나빴다.
" 고등학교 까지 엄마가 대답한다" 는 말까지 이어서 하였다.
좀 무안하고, 기분이 상했다. 마마걸을 길러내는 엄마로 보는 듯한 말투였다.
좀더 친절하고 상냥할 순 없을까!
" 어머니, 걱정 마시고 볼 일 보세요. 잘할 거예요 " 라고 말하면 얼마나 듣기 좋은가.
딸의 말을 들어봐도,
공공도서관에 두루 다녀봐도
학교 도서관 사서를 봐도 사서가 매우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종일 무거운 책을 들었다놨다 해야 하고,
대출업무 때문에 일일이 사람 상대해야 하는 등등
고충이 많다는 것 십분 이해한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봉사하러 오는 아이들이 책임감, 봉사심 없이 그저 시간 채우려고 오는데다
엄마들까지 함께와서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고 하니
귀찮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참 기분이 별로다.
지난 겨울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또 그러니
이 도서관에 민원을 넣어야 하나 순간 부르르 했다.
백화점 같은 서비스는 바라지 않는다.
명색이 도서관인데 좀더 포근함이 느껴지면 좋겠다.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에 나온 사서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도서관에 더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얼마 전 읽은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에도 남자 사서 한 명이 등장한다.
이 남자 사서는 몽주와 눈도 마주치고, 대화도 나누고,
몽주가 마술을 보여 줄 정도로 친분을 쌓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몽주의 쓰러져가는 이층집의 인테리어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책, 컴퓨터, 바코드만 보는 사서였다면
몽주와의 그런 친밀함은 생기지 않았을 게다.
책에서 본 사서는 이렇게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눈을 마주치고, 상냥하게 웃어주는데
현실은....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인가!
다녀본 도서관에서 그래도 좀 친절하다 싶었던 분이 두 명 있다.
한 분은 도봉도서관 아동 코너에 있는 분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지만 참 친절하셨다.
나머지 한 분은 도봉도서관 종합 열람실에 있던 남자 사서로서 대출하는 분한테 일일이 인사를 하셔서 기억에 남는다.
딸이 봉사하러 간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하여 지난 겨울과는 달리
시설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설과 외관이 아무리 좋아져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달라지지 않는 한 그 곳을 다니는 사람은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얼마 전 딸과 함께 마을 버스를 타는데
마을버스 기사가 승객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목이 아플텐데 매번 정류장마다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하차할 때 인사하고 내려야지 했는데 못 했다.
이런 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도, 도서관도, 주민센터도 기타 공공기관도 이 기사처럼 상냥한 분이 많아졌음 좋겠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묵묵히 제 할일만 하면 되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형식도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인상 잔뜩 쓴 얼굴보단 미소 띤 얼굴이 훨씬 좋지 않을까!
퉁명스런 말투보단 상냥한 말투가 서로 기분 좋지 않을까!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 못해 그 일을 하는 사람보다
기꺼이 그 일을 즐기며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린 더 행복하다.
한 사람의 친절과 미소가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