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이다. 밤새 어디를 갈까 연구한 남편이 단종의 무덤 "장릉"부터 가보자고 하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서야 영월에 단군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종에게 참 미안했다. 삼촌 수양대군 때문에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를 당하고, 급기야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한 단종이다.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가 호장 엄흥도에 의해 거둬져 안장되었다고 한다. 왕에서 쫓겨난 것도 원통한데 시신 또한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니..... 후세인 우리가 그를 찾아가지 않으면 얼마나 가여운가!
장릉까지 가는데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어제는 꾸물꾸물하더니 해가 나와서 서울에 가기 좋겠다 싶었다. 장릉은 생각보다 컸다. 왕의 능이니 당연한 거지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아무튼 단종의 시신을 거둔 호장 엄흥도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서슬퍼런 세조의 눈을 피해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 또한 위태로운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단종의 묘에는 무신이 없다. 무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서 문신 2개를 세웠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그 뒤에 양과 말 동상이 있는데 각각 무덤 쪽으로 엉덩이를 향하고 있었다. 참 특이했다. 이유가 있을 법하다. 아는 분은 알려주시길 바란다. 세자로 태어나 왕위에 올랐지만 삼촌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단종의 삶이 참 애처롭다. 차라리 왕이 아니었으면 오래 살 수 있었을 텐데....나중에 <단종애사>를 꼭 읽어봐야겠다. 수퍼남매는 아직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능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계속 "덥다" "다리 아프다" 투덜댔다. '이 녀석들아, 단종이 그 말 들으면 얼마나 슬프겠냐!' 500년된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참 멋졌다. 17세에 사약을 마시고 죽은 단종도 이제는 하늘에서 평안했으면 좋겠다. 조카 단종을 죽인 수양대군 세조가 세종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그런 아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참 놀라울 따름이다. 장릉에서 나와 주차장을 향해 걷다가 주전부리를 발견하였다. 메밀 전병인데 맛있어 보여 샀다. 메밀을 얇게 부쳐 그 안에 무채 같은 것을 넣어 돌돌 말아주는데 맛있었다. 더 살걸 그랬나 싶었다. 그걸로 요기를 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선돌이라는 곳인데 말 그대로 돌이 서 있다는 곳이다. 이 곳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만났다. 중국인이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놀랐다. 서울도, 경주도, 공주도, 제주도도 아닌 영월에 중국인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영월이 처음인데 말이다. 계속 이 팀들과 코스가 겹쳤다. 영월은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서 정선 보다 관광하기가 훨씬 편했다. 딸과 함께 "와! 로마 투어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차 조금 타고 가서 하차한 후 관광지 구경하고, 또 차 타고 가서 구경하고.... 로마 투어할 때도 해가 쨍쨍해서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차를 더 타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 때와 정말 똑같았다. 선돌은 입장료도 없고 그냥 조금 올라가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내려오면 된다. 선돌 아래 거북 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진 못 봤고 영화 촬영지였다고 한다.
단종이 처음 유배되었던 청령포에 갔다. 삼면이 강인 곳으로 단종 첫 유배지이다. 홍수가 나서 한 번 물에 잠긴 후로 단종을 뭍으로 나오게 했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 별것 아닌 듯하여 눈도장 찍고 가려고 했는데 어떤 분이 "가보면 달라요. 꼭 가보세요" 하는 말에 배표를 끊었다. 배는 30초만에 청령포에 데려다줬다. 자갈길을 걸어 소나무 숲에 이르니 역시 달랐다. 일단 시원한 그늘이 반겨줬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니 힘들었던 심신이 힘을 얻었다. 노산 대군(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난 후 노산대군이라 함)이 기거하던 곳에 들어갔다. 때마침 같은 배를 탔던 중국 단체관광객이 몰려 들어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소나무가 유명한지 소나무마다 번호표가 붙여 있었다. 한 때는 왕이었던 노산대군이 이렇게 외진 곳에 와서 언제 죽을지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걸 생각하니 참 안쓰러웠다. 노산대군의 한 맺힌 그 하루하루를 지켜봤던 "관음송"이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곳에 노산 대군이 앉아 있곤 하였다고 한다. 아까 그 여자분 말대로 청령포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 소나무숲을 걸으며 노산대군의 슬픈 사연을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했다. 노산 대군이 쌓아올린 망향탑도 있었다. 청령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득한 마음으로 한양쪽을 바라봤을 노산대군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청령포를 한 바퀴 돌고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체력이 방전되고 말았다. 더 이상 투어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쉬었다. 주변에 적당한 식당이 없어보여 점심은 올라가면서 휴게소에서 먹기로 결정하였다. 편의점 바로 옆에 로스터리 카페가 있어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맛이 좋아서 원두를 좀 샀다. 날씨도 쾌청한데 "별마로 천문대"를 못 가서 못내 아쉽다. 오늘 같은 날씨면 별도 정말 많이 보일텐데..... 혼자 외로이 있을 온이를 생각하니 하루 더 머무를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하였다.
다음 여행은 꼭 전라권을 가보고 싶다. 내 고향 여수를 비롯하여, 해남 땅끝 마을, 전주, 남원, 광주 등등 가볼 곳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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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5총사, 낙산사 해수 관음상
선돌, 짚 와이어에서 보이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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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동굴 종유석, 청령포 관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