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보물 찾기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
도서실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구태의연한 행사는 지양하고 싶었다.
책과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독후감을 잘 쓰지 못해도
책을 가지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도서실이 즐겁고, 행복한 곳임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그 중에 꼭 해 보고 싶었던 행사가 바로 책 속 보물 찾기 였다.
행사를 기획할 때 평소에 책 좋아하고 도서실 자주 오는 아이를 대상으로 놓지 않는다.
정반대의 아이를 생각하며 행사를 기획한다.
일 년에 한 번도 도서실 안 오는 아이가 어떤 행사를 해야 도서실로 발걸음을 옮길까! 그걸 먼저 생각한다.
책과 거리가 먼 아이를 도서실로 오게 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독후감 쓰기 행사를 해서는 그 아이를 도서실로 오게 못 한다.
즐겁고 재밌고 독특한 행사를 해야 한다.
바로 보물 찾기 같은 것이다.
도서실에 있는 책 속에 보물 딱지를 숨겨 놓고 찾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 방송 조회를 통해 취지와 방법, 주의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보물 딱지를 찾기 위해 대출도 하지 않으면서 이 책 저 책을 들춰봐선 절대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이들이 좀더 도서실을 친근하게 여기고,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독후감을 잘 쓰지 못해도
보물 찾는 재미삼아 도서실을 찾아와주길 바랐다.
시기상조였을까?
보물찾기기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사서 선생님한테서 쪽지가 날라왔다.
아이들이 보물 찾는다고 책을 들쑤시고 정리를 하나도 안 하고 가서
도서실이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방송까지 하면서 주의점을 조목조목 말했는데 실망스러웠다.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면서도
아이들이니까 더더욱 양심을 지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게 양심 지키기, 질서 지키기, 인성 교육인데 말이다.
욕심에 눈이 먼 아이들의 양심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한 명의 아이가 들추기 시작하니 너도나도 규칙을 어겼다.
그자리에서 책을 거꾸로 들어서 턴 후
그대로 던져 놓고 간 모양이다.
사서 선생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책을 서가에 정리해야 해서 너무 힘드셨을 테다.
난 기획을 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일을 하시는 분은 사서 선생님이기 때문에 정말 죄송했다.
사서 샘의 쪽지를 보고
각 교실로 다시 쪽지를 보냈다.
아이들의 무질서함을 낱낱이 고하고
다음 날도 이렇게 규칙을 지키지 않고 도서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면 더 이상 이벤트를 진행하지 못한다고
꼭 아이들에게 전해 주십사 하고 말이다.
아울러 담임 선생님들의 지도와 협조를 부탁 드렸다.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한 번 더 강조하고, 잔소리를 하면 좀 나아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양심을 지켜야 함을 알려주고 싶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직접 실천할 기회를 주고 싶다.
양심, 질서, 시민의식은 교과서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스스로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양심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함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
일본이나 북유럽에서 이런 행사를 했어도 똑같은 결과가 벌어졌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우리 학교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아이들은 너무 쉽게 양심, 질서, 규칙을 무시한다.
양심, 질서, 규칙을 지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깔보는 경향이 짙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은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않던가!
교실을 비롯해서
놀이터,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공공장소에서도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제 멋대로 행동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히 무단횡단을 하는 엄마,
카메라 촬영 금지라고 써진 장소에서 플래쉬를 터뜨려 가며 사진 찍는 아빠,
길거리에다 아무렇지 않게 침이나 가래를 뱉는 어른,
장애인 차량도 아닌데 버젓이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하는 어른을 우린 자주 목격하곤 한다.
어릴 때부터 보고자란 것이 양심, 질서, 규칙을 무시한 어른들의 행동이니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어쩌면 당연할 결과인 지도 모른다.
도덕성을 햠양하고 훈련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유아기, 아동기)에
우린 영어 조기 교육, 선행. 경쟁을 강조하면서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하루가 지나고
다시 도서실로 가봤다.
사서 선생님께 조심히 물어봤다.
"조금 사정이 나아졌나요?"
조금 개선은 되었지만 아직도 책을 내팽개치고 가는 아이들 때문에 30일까지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신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미담이 있다.
4학년 담임 중 한 분이 점심 시간에 반 아이들을 보내주셔서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교과서에 활자로 되어 있는 양심, 질서, 규칙이 아니라
아이의 삶 속에 살아 움직여 실천하는 양심, 질서, 규칙은 만날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