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시다. 재작년부터이다.

나이는 90세시다.

얼마 전부터는 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얼굴은 기억하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내 얼굴도 잊어버릴 수 있다.

아버지가 날 잊어버리기 전에 내가 아버지를 더 기억해야겠다.

 

차매란

대뇌 신경 세포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본질적으로 상실되는 .

주로 노인에게 나타난다

이 말에 의하면 더 좋아질 리는 없을 듯하다.

 

지난 주 수요일 친정에 들러서 아버지에게 성경을 읽어드렸다.

아버지 좋아하시던 시편과 잠언 9편을 각각 읽어드렸다.

아버지는 이제 식기도할 때도 중언부언하시고, 횡설수설하신다.

그 좋아하던 기도도 자신이 없어서 하지 않으시려고 다른 사람한테 떠민다.

병원에서는 이 정도는 초기 증세라고 한다.

나이에 비하면 그런가 보다.

 

3주마다 엄마 약 갈아드리러(인슐린) 친정에 가는데 그때마다 그림책을 읽어드려야겠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차 타고 오면서 후회를 하였다.

일 년 동안 쭈욱 그랬다면 딸의 이름을 기억 못하진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림책을 몇 권 갔다 놓고 도우미 오실 때마다 읽어주라고 해야겠다.

(큰언니가 도우미 신청을 해서 됐다. 수요일마다 2시간 봉사를 온단다.)

나도 갈 때마다 읽어드리고.

전에 최은의 선생님이 병환 중인 친정 어머니께 그림책을 읽어드린다고 하셨늗데

나는 왜 그 말을 듣고나서 당장 실천하지 못했을까!

 

내가 기억하는 우리 아버지는 소처럼 부지런하고, 자상하시고, 정의롭고, 명석한 분이시다.

난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다. 외모도 성격도 아버지를 더 닮았다.

아버지는 교회 장로일을 하시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셨다.

비리 저지른 목사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게 장로가 해야 할 일이라며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셨다.

집에 도둑이 들면 위험을 무릅쓰고 도둑을 쫒아가는 분이셨다.

세 딸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매를 드신 적이 없으시다.

내가 딱 한 번 맞을 뻔했는데

작은 언니한테 대들다가 아버지한테 빗자루로 맞을 뻔하였다.

얼른 잘못 했다고 하여 맞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늘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을 정말 성실히 묵묵히 하시는 분이었다.

딸들이 다 출가하고

부모님 두 분이 살 때는

단 한 번도 허리 아픈 엄마한테 설거지를 맡기지 않은 분이셨다.

내가 결혼하고 우리 집에 오실 때도 늘 빗자루를 들고 다니시며 여기저기를 쓸고 닦아주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 설거지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셨다.

면도하는 것도 잊어버리셨다.

손톱도 혼자 못 깎아 내가 깎아드렸다.

아기처럼 엄마가 안 계시면 불안해 하신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게 된 데는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다.

워낙 꼼꼼하고 완벽주의라서 남에게서 요만한 쓴 소리를 들으시면 그걸 속에 꼭꼭 담으시는 분이다.

아파트 노인당 회장을 하시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가족은 아버지의 그런 셩격을 알길래 하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아버지의 책임감을 누가 당하랴!

몇 년 동안 그 일을 하시더니 결국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 이렇게 되신 게 아닌가 싶다.

 

옆에서 간호하시는 엄마가 더 걱정이다.

아버지는 기억을 잊어가는 것이지만

엄마는 옆에서 그런 아버지를 늘 보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으니 말이다.

엄마도 당뇨환자라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데....

엄마는 성격이 붙 같아서 참지를 못한다.

딸들이 갈 때마다 하소연하는 걸로 마음을 푸신다.

두 분이 하루종일 아무 말 안 하고 있을 때도 많다고 한다.

엄마가 자꾸 이야기를 시켜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화가 나서 아버지랑 싸우게 된단다.

자꾸 예전의 아버지와 비교가 되어 그렇겠지.

 

어제는 큰언니내외, 작은언니가 부모님을 모시고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

부모님이 전부터 이사 온 집 구경오고 싶어하셨는데 이제야 오시게 되었다.

그림책 챙겨 보낸다는 걸 또 깜빡했다.

 

아버지의 병이 아주 서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4-04-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눈물 나요. 치매를 앓고 계시는군요.
그림책 읽어드리면 좋구나. 기억해야 겠어요.
전 시부모님네랑 3분 거리에 살지만 고 3 부모라는 핑계로 가지도 못하네요. ㅜㅜㅜ

수퍼남매맘 2014-04-14 17:34   좋아요 0 | URL
지속적이고 본질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니 마음을 비우고
아버지의 병이 서서히 진행되기만을 기도합니다.
가장 큰 효도가 얼굴 자주 보여드리는 건데 저도 게을러서 못하고 있네요.

꿈꾸는섬 2014-04-1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부모님께 그림책을 읽어드리는 것 좋겠어요.
치매 앓고 계시니 가족분들 마음이 많이 안좋겠어요.ㅜㅜ
저희 돌아가신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서히 진행되어 친정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었거든요.ㅜㅜ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ㅜㅜ

수퍼남매맘 2014-04-15 20:56   좋아요 0 | URL
엄마가 제일 속 상하고 힘드시죠. 아기 같이 되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봐야 하시니까요.
치매 앓는 본인은 기억을 잃어갈 뿐 힘든 것을 못 느낀대요.
옆에서 간호하는 가족이 가장 힘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순오기 2014-04-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ㅠ
자주 얼굴을 뵈어 드리면 더 낫겠지요.
경로당 어르신들께 재작년부터 그림책 읽어드리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는데 많이들 좋아하셨어요.
재밌고 밝은 이야기책을 읽어드리면 좋겠네요.

수퍼남매맘 2014-04-15 20: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재밌고 밝은 책을 가져가서 읽어드려야겠어요.
옛이야기가 최고인 듯 싶어요.

모두들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