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온 가족이 처음으로 영화를 함께 보러갔다.
둘째에게는 다소 어렵고 지루한 영화가 될 수 있으나 누나도 <변호인>을 보겠다고 하니 동생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2시간 넘는 런닝 타임 동안 둘째는 졸지 않고 끝까지 잘 봤다. 대견하게도.
이 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고문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깨달은 듯하다.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딸이 이 영화를 볼 때 울었단다.
드라마 보면서도 잘 우는 난 오히려 눈물이 안 났다.
어느 장면에서 울었냐고 하자
송우석 변호사가 국밥집 아들 박진우 학생을 변호하는 대목이란다.
딸과 나는 송우석 변호사가 멋지게-맞는 말을 할 때마다- 변호를 할 때마다 박수를 쳤다.
가슴이 후련했다.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판사, 검사, 고문 변호사를 향해 던지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이었다.
" 국가는 국민이다" 라는 말은 당연한데도 지금도 그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이기에 더 뭉클하였던 장면이었다.
난 국밥집 아주머니와 변호사가 면회실에서 진우를 만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가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의 절절함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두 달 동안 생사도 알지 못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아들을 찾아다녔을 어머니,
그 절망 끝에 찾아간 송 변호사,
그 둘이 면회실에서 만난 진우는 예전의 진우가 아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똑같은 말을 되뇌이고,
진우의 온몸은 고문의 흔적으로 가득차 있었다.
분노, 분노,분노
누가 진우를 이렇게 만들었나!
그걸 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물론 살아 있어서 다행이지만
멀쩡하던 아들이 그렇게 바보처럼,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는 걸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우리 역사 속에서는 수많은 진우와 그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내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자녀의 죽음을 허망하게 지켜보던 어머니.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한 자녀의 만신창이된 몸을 지켜보던 어머니.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스스로 몸을 불사른 자녀의 시신을 부둥켜 안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들이 있었다.
내가 어머니인 까닭에 국보법 위반으로 피의자 신분이 된 진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다가왔다.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먹먹하다.
학벌도 부족하고, 인맥도 부족한 송 변호사가
돈만을 바라보고 등기와 세무 전문 변호사일을 할 때는 친구도, 다른 변호사들도 그를 벌레 보듯이 쳐다본다.
돈은 많이 벌었을지 몰라도 그의 곁에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송 변호사가 인권변호사가 되어 정의를 위해 앞장서다 수의를 입게 되자
그를 변호하겠다는 수많은 변호사가 재판정에 스스로 나온다.
돈은 잃었지만 뜻을 같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송 변호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엔딩 장면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명제를 생각나게 한다.
딸은 그 장면을 보고 " 사람이 먼저다"가 떠올랐단다.
난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부와 명예를 위해 살 것인지
사람을 위해 살 것인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