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을 하기 전에 그래도 빼먹지 않고 꼭 하는 행사가 바로 장기 자랑이다. 올해부터 전면 놀토가 실시되는 바람에 고학년은 아직도 교과서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해 하루에 국어3시간, 수학 2시간 등을 공부하느라 교사와 아이들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저학년은 좀 덜하지만 예년에 비해 여유가 없는 건 사실이다. 학기말에 가면 좀 널럴하게 하고 싶은 행사도 하고, 아이들과도 좀 여유있게 보내곤 했는데 이젠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난 진도가 다 끝나서 나에게 주어진 재량 시간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어제는 학급 음악회와 장기 자랑을 하였고, 오늘은 <마당을 나온 암탉>애니를 봤다.

 

매년 학급 잔치 즉 책거리 행사로 장기 자랑를 한다고 하면 남자 아이들은 주로 태권도, 여자 아이들은 노래나 악기 연주만 해서 다양성이 부족한 듯하여 이번에는 아예 음악회를 따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메뉴가 좀 더 다양해지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1주일 전부터 학급 음악회가 있다고 예고를 하고 연습을 숙제로 내 주었다. 막판에 장기 자랑도 같이 하게 되었다. 방송반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동영상 촬영도 했다. (삼각대 위에 디카를 설치해 놓았다.)

 

순서 정하기는 제비 뽑기로 정하였다. 순서가 정해지고 나자 한 명씩 차례대로 무대로 불렀다. 나는 반대편에서 촬영을 하고....

리코더를 하는 아이, 노래를 하는 아이, 소고 치며 노래 부르는 아이,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아이, 멜로디언을 치는 아이,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 등등 그래도 다양한 음악회가 되었다. 디카로 찍으면서 보니 자신 있게 하는 아이와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아이들 일기장을 살펴 보니 많이 긴장되었다고 썼다. 그것도 무대이니 당연히 떨리겠지.

 

지난 학교는 강당 같은 곳이 있어서 피아노 연주도 가능했는데 여기는 아직 내가 시설들을 다 파악하지 못해서 그냥 교실에서 하였다. 피아노 연주가 불가능해서 자신이 휴대할 수 있는 악기로 한정지었다. 그게 좀 아쉽다.   교장 선생님이 노래나 악기 연주를 좋아하셔서 1인 1악기 다루는 것이 학교 교육 목표에도 명시되어 있고, 나 또한 악기를 한 가지씩 다룰 수 있으면 인생을 좀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악기 하나씩은 다루는 게 좋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그리고 일단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은 폼도 나고, 사회 생활할 때 후한 점수를 받는다. 또 스트레스 해소에도 아주 좋다. 요즘 딸을 보니 스트레스 좀 받는 싶으면 피아노 연주를 하더구만. 그래서 정서 안정면에서 악기 하나는 연주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내 단짝 친구의 남친이 정말 바이올린을 잘 켰다. 공부는 잘했지만 키가 작아서 좀 볼품이 없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기차 안에서 그 아이가 바이올린으로 뽕짝(트로트)을 연주했다. 함께 있던 여자 아이들 모두 입을 쩌억 벌리고 감탄을 하며 "오빠, 오빠"를 외쳤다. 그 때 느낀 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돼.' 이거였다.

 

아직 1학년이라서 연주가 서투르지만 제법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2학기에는 더 나은 실력을 보여 줄 거라고 믿는다. 작년 아이들은 나에게 실로폰을 배워서 실로폰 연주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기 전에는 음악을 참 좋아했었다. 지금도 물론 음악을 좋아하지만서도.  악기를 못 다루는 아이들은 대부분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일단 작고, 고른 노래가 신선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웠다. 곡 선정도 중요한데 말이다. 그래도 한 학기에 한 번 하는 학급 행사인데 이럴 때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도 물심양면 도와주시면 아이의 기도 살리고, 친구들에게 관심도 받고 좋다.

 

학급 행사를 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간식을 아이 편에 보내주신 몇 분의 학부모님이 계셔서 아이들은 축제의 날이 되었다. 빼빼로에 아이와 엄마가 직접 만든 쿠키, 요구르트, 거기다 막대사탕까지. 뜻하지 않은 간식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를  정도로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고 이어서 장기 자랑을 하였다. 음악회는 일 주일 전에 예고를 해서 준비가 그런 대로 됐는데 장기 자랑은 예고를 3일 전에 해서 미처 준비를 못 하고 나온 아이가 몇 명 보였다. 즉흥적으로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순발력은 칭찬할 만하다.  한 명은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

 

장기 자랑은 말 그대로 자신의 장기를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숨겨져 있는 기를 재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평소에 모르던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는 수가 제법 있다.   태티서의 "트윙클"을 춰 준 여자 아이 6명, 격파까지 선 보인 무술단 3명, 태권도를 선 보인 남자 아이 세 명, 마술, 풍차 돌리기 (급조한 티가 남), 노래 등등이 있었다. 역시 연습을 해 오고 준비물도 철저히 해 온 아이들이 자신감 있게 잘하고 친구들에게도 박수를 많이 받았다. 송판 격파를 하자 난리가 났다. 아이들도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해 온 아이들의 무대에 호응도가 높았다.  일기를 보니 어제 있었던 음악회와 장기 자랑에 대해 자세히 잘 썼다. 생각과 느낌 쓰란 말을 안 했어도 알아서들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쓴 걸 보고 "아이들에게 억지로 생각과 느낌을 쓰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윤태규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체험을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쓴다. 친구가 전학갔을 때는 슬프다는 느낌을 ,장기 자랑을 할 때는 떨리면서도 재밌었다는 느낌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 썼다.

 

모든 행사를 다 마치고 음악회 분야만 금, 은, 동메달을 투표로 뽑았다. 포스트 잇을 나눠 주고 자기 빼고 잘한 친구들 세 명의 이름을 적어 보라고 했다. 전에 투표를 해 본 아이들은 이번에는 실수 없이 잘했다. 비밀 투표이니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줬다. 하지만 벌써 저 쪽에서 " 나 @@@ 적었는데......" 하며 비밀을 발설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칠판에 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써 줬다. 마지막 순서에 나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가 금메달, 멜로디언을 양손으로 연주한 차 ##가 은메달, 오카리나를 연주한 **가 동메달을 수상하였다. 1학년이긴 해도 정확하게 누가 잘했는지 아는 게 기특하다. 점점 심사하는 실력도 좋아지고 있는 울 반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하고 느끼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뭐든지 잘한다. 그만큼 욕심이 있어서인가 보다. 다른 샘들도 한결같이 그 말씀을 하신다. 공부 잘하는 애가 운동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루고,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추고.....한 마디로 엄친아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그게 바로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우리 몸에서 나오는 물질 "도파민" 때문이라고 한다. 도파민이라는 물질은 내적 동기 부여를 해 주어서, 무슨 일이든지 도전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성취감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은 도파민이 나오지 않고, 따라서 도전을 무서워하며, 계속 소극적인 상태로 지내게 되어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공부 시간에 소극적인 아이들은 이런 행사에도 항상 소극적이다. 고학년은 이런게 고착회되어 교사나 부모가 도와주기 어렵다. 하지만 저학년은 이런 행사 계획이 있을 때 부모님이 옆에서 적극적으로 거들어서  이번 기회에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도파민"이 분비되게 할 수 있는데 어제 촬영하다 보니 안타까운 아이가 몇 있다.

 

지난 학교에서 내가 참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길  본인은 꼭 학기말에 학급 장기 자랑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야 애들이 성장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씀이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보는 거야 말로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작년에 딸이 학급 장기 자랑 때문에 며칠씩 기타 연습을 하고, 연주회를 위해 피아노를 계속 연습하는 걸 보니 이런 행사들이 아이들에게  연습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학식 날까지 교과서 진도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담임이 이런 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이들이 국어와 수학 공부 한 것은 기억 안 나도, 이런 행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수업일수가 줄어들면 당연히 공부의 양도 대량 축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은 이런 행사를 스스로 준비하고, 실제로 무대에 서 보면서 성장한다. 이게 바로 자기주도학습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한 학기에 한 번이라도 이런 행사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수업 시수 좀 줄여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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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7-1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장기자랑시간이라....전 별다른 장기가 없어서 장기 자랑시간이면 항상 맨뒤에 숨어있던 기억이 나네요ㅜ.ㅜ

수퍼남매맘 2012-07-21 11:57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뒤에 숨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처럼... 아이들도 변화의 가능성을 봐야겠네요.

희망찬샘 2012-07-22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번째 쓰는 댓글이에요. 쓰다 날아가고 쓰다 날아아고... ㅜㅜ (이거 쓰는데 3일 걸렸네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시간을 선물하셨네요. 저학년이랑 생일잔치할 때는 장기자랑에 열심히 참여하던데...
그래서 1학기와 2학기 연주 솜씨가 달라진 거 보고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뿌듯했는데, 고학년들은 장기자랑 하라니 부끄럽다는 이유로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해요. 학기를 마무리하는 장기자랑 시간은 참 근사하네요. 우리랑 방학식이 같으니 개학도 비슷하겠네요. '즐방' 보내세요. ^^

수퍼남매맘 2012-07-22 12:00   좋아요 0 | URL
저학년은 뭐든지 열심히 하고, 고학년 갈수록 뭐든시 시시해 하고.... 개학식은 8월 20일이에요. 10일이나 짧아졌어요.희망찬샘도 알찬 방학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