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욕심과 너구리의 섭섭함
1
어물쩡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7급 시험도 어느덧 90일 남짓. 될 리 없다 생각하지만 9급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다 된 건 또 아니어서 부푼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독서를 버려야 한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오리도 너구리도 되지 못한다. 오리너구리가 되고 만다……. 잠깐만, 오리너구리라는 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 것인가요, 아니면 오리이면서 너구리기도 한 것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그럴 리가.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 했다. 근데 나한텐 그 때라는 게 없었던 것 같다. 나한텐 때가 없어, 그 때는 공부에 다 있지. 이 말장난은 마치, “치킨은 살 안 쪄, 살은 니가 쪄.” 분위긴데, 지금 이따위 쓰레기 같은 말장난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때도 없는 공부를 이틀 연짱 해댔기 때문인 것 같다. syo를 용서 하시옵소서. syo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옵니다…….
한줄 요약 : 일단 오리가 되어야겠다.
2
화요일 밤부터 눈두덩이 어쩐지 무겁더라니, 아침에 거울 속에서 다래끼를 만났다. 안녕, 다래끼새끼야. 또 만났구나. 니가 무슨 올림픽이니 월드컵이니, 왜 이렇게 쓸데없이 주기적이니? 지난 번 다래끼를 잡아 죽이러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 말씀이, 사람의 눈꺼풀 주위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거기서 알게 모르게 노폐물이 배출되어야 그게 사람인 법인데, syo의 눈꺼풀 주변의 구멍은 거진 막혀 있는 상태라고. 아니 선생님, 그렇다면 저는 다래끼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며 선생님은 칼로 syo의 눈두덩을 찢고 다래끼를 짜내셨다. 마음의 준비는커녕 동의도 없이! 그런 따가운 기억이 남았기에, 이번에는 다래끼새끼가 다래끼어른이 되기 전에 약물의 힘을 빌려 제거하고자 일찌감치 병원에 찾아갔다. 성공적이었다. 3일치 약을 받아왔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다시 방문하세요,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이목구비는 아무래도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요- 라는 비음성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꼬박꼬박 안약을 넣어가며 5회분의 약을 복용한 시점에서 다래끼는 눈 녹듯 눈에서 사라졌다.
대신 찾아온 뜻밖의 손님이 ㅍㅍㅅㅅ였다(이것은 특정 이슈 큐레이팅 사이트의 이름도 아니고, 남정네들이 좋아하는 특정 익스트림 어덜트 스포츠(?)의 초성도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기후 현상에 가깝다고 하겠다. 천둥소리를 동반하는 갈색 물폭탄……).
뭘 잘못 먹은 것도 없다. 심지어 아프지도 않다. 다른 것 없는 순수한 ㅍㅍㅅㅅ. 대체 왜? 달라진 거라고는 안약 넣고 알약 먹은 것 밖에……. 혹시?
따가운 응꼬를 어루만지며(진짜 그러지는 않았어요) 욕실에서 뛰쳐나와 바로 약봉지를 낚아챘다. 겉면에 내가 삼킨 알약의 이름과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가 봐도 아야하는 위장처럼 생긴 쪼꼬미 아이콘(?)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 쓰여 있다. 소화 장애가 있을 수 있어요. 있어요도 아니고 있을 수 있어요인데 그 확률에 덜컥 걸리다니. 이래서 늙으면 서럽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있을 수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있을 수 있을 수 있어요? 그것도 아니면, 있을 수 있을 수 있을 수 ……. (닭똥 같은 눈물)
한줄 요약 1 : 요즘 약봉지는 참 친절하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한줄 요약 2 :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한줄 요약 3 : 한줄 요약 2는 사실 두 줄 요약이다.
한줄 요약 4 : 한줄 요약 3까지 붙일 거면 차라리 요약이라 하질 마라.
한줄 요약 5 : 그러면서 또 한 줄을 더 썼다.
한줄 요약 6 : 대체 언제까지 이럴 텐가.
3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쥔 팔을 천장 쪽으로 쭉 뻗은 채 읽다가 떨어뜨려서 코끝을 얻어맞음. 눈물이 핑 돌았음. 하드한 커버와 소프트한 코끝. 주르륵 흐르는 눈물.
우리들의 꿈 모리재에서
우리는 인생이 적인 책을 두터운 밤으로 찢으며 진로에 대하여, 노동과 혁명에 대하여
떠들었다. 단 한 줄로 씌어지는 인생을 갖고 싶다고,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공설 운동장 가까운 형의 자취방 막걸리 마시며 배웠던 동지가를 함께 부르다
이런 고백,
형, 그런데 나는 엄마 때문에, 엄마 때문에, 하다가 울먹거리는. 말하자면
결국 사랑은 문장마다 튀어나온 돌부리 같아서 매번 넘어지기 위하여, 알지도 못하는
도착지 따위에 영영 도착하지 않기 위하여,
픽, 픽, 제 발로 쓰러져 쳐다보면, 언젠가 퐁당 던져버린 반지의 금빛 테를 가진
달
같은 것. 그저 형, 형 부르다
날 밝으면,
태양이 오렌지색 공을 치고 있는 모리재. 팡팡 터지면서 그런데도 아무도 모르게
추위처럼 쉴 새 없이 공은 날아와
멍든 산에, 쑥쑥 멍처럼 자라 어느 날 푸른 숲의 서러움이 꼿꼿한 서릿발 나무둥치로 일어서는
모리재.
이제 우리의 인생은 멀리 그러나 거기서
우리는.
_ 신용목, 〈모리재〉 부분
시인의 말은 우리의 말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말이겠으나, 그 크게 다를 것 없는 말에 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에겐 그 말이 정확한지 적확한지 정교한지 정밀한지 판단할 자격이 끝없이 유보되는 것은 아닐까. 시가 아닌 것들에 대해 시가 지닌 치외법권이나 시인이 아닌 이들에 대해 시인이 지닌 면책특권 같은 것.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 온순한 자세로 가슴을 열고 시가 내 마음에 어떤 불을 붙이는지, 그 불이 또 어떤 나를 만드는지 같은 생각에 그저 몰두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해는 종종 낮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공감은 때로 사람의 일이 아님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게 우선. 시인의 마음을 짐작하기보다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먼저. 단 한 줄로 씌어지는 인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문장에 내가 박아 넣고 싶은 단어 역시 사랑인지, 사랑이라면 이 사랑이 그 사랑인지, 혹시 그 사랑이 문장마다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알지 못하는 도착지에 도착하는 일을 영영 유예시키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인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입과 닮았는지, 그런 것들을 일단. 아니다, 흐르는 눈물을, 아니다, 아픈 코끝을 만져주는 것이 처음.
4
며칠 전 「재희」를 읽지 않았다면 『대도시의 사랑법』을 구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발간되자마자 호평에 혹해 샀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아직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벌써 대충 일 년이다. 어찌 되었건 박상영 작가님의 소설은 나오는 족족 다 사 제끼는 추세. 이걸로 또 묵은지나 만드나요…….
독서실로…….
--- 읽은 ---
+ 나의 끝 거창 / 신용목 : ~ 127
+ 이코노크러시 / 조 얼 외 : 150 ~ 306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장 지글러 : 77 ~ 199
--- 읽는 ---
= 소설을 살다 / 이승우 : ~ 95
= 길 위의 독서 / 전성원 : ~ 80
= 크로스 사이언스 / 홍성욱 : ~ 196
= 자본가의 탄생 / 그레그 스타인메츠 : ~ 171
=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 신승철 : 82 ~ 188
=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 / 데이비드 프리드먼 :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