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요거트
1
syo는 서울말을 한다. 규정이 있다. 이렇다.
하나, 지금 이 공간에서 서울말 쓰는 사람의 수가 아닌 사람의 수 이상일 때 서울말을 쓴다.
둘, 일대일의 대화에서 눈앞에 있는 이가 syo의 대구말을 1년 이상 들어온 지인일 경우를 제외하면 서울말을 쓴다.
셋, 애인과 단둘이 있을 때는 서울말로 애교떤다.
넷, 발표, 면접장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적 말하기를 해야 할 때는 서울말로 조진다.
다섯, 가게에선 서울말로 지른다.
여섯, 아가나 멍뭉이를 만나면 서울말로 발광한다.
일곱, 다정한 사람인 척하고 싶을 땐 서울말로 능청넝청.
여덟, 초면엔 서울말로 거리를 잰다.
아홉,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 할 땐 서울말로 구라친다.
그리고 열, 아무래도 서울말을 쓰고 싶을 땐 그냥 서울말을 쓴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 다 이 자리에서 지어냈습니다. 그냥 어지간하면 서울말.
2
수학 과외로 생명 부지하던 때가 있었다. syo가 평생 벌어본 얼마 안 되는 돈의 9할 5푼이 학부모님들 호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니 생명 부지라는 소박한(?) 말은 어폐가 있겠다. 하여간 초중고딩 가리지 않고 막 가르쳐댔는데, 특히 초딩들은 대구말을 재미있어하면서도 잘 못 알아듣거나 잘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말을 쓰기로 했다. 다음 시간부터 내가 서울말을 쓸 거야, 이런 예고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했다. 그랬구나, 그간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 호식이(가명, 12, 서울 송파구 거주)가 숙제를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었구나, 그 동안 얼마나 숙제가 하고 싶었을까, 내가 참 잘못하였구나, 앞으로는 우리 호식이를 위하여 꼭 서울말로 숙제를 내 줄게, 그런데 호식아 그거 아니? 어차피 아라비아 숫자는 대구말이나 서울말이나 똑같다는 것을? 서울말로 오십오 쪽은 대구말로도 오십오 쪽이란다? 요놈아?
그런데 사실 같지가 않다.
3
서울에서 중고등대학대학원을 줄줄이 마치고 서울 경기 지역에서 교사의 경력을 쌓다 대구로 내려온 음악교사가 있다. 어느덧 대구 생활도 도합 5년쯤. 그럼에도 그녀의 서울말은 흐트러짐이 없다. 대신 그녀는 대구말을 흐트러트린다. 어디서 자꾸 이상한 말을 배워 와서 제대로 발음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온다. 일요일, 수목원을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물었다. ‘블루베리 요거트’ 해봐. 표준발음규정 제 3항 및 7항에 의거, 당연히 서울말로 발음했다. 블루베리 요거트. 아니 그거 말고. 애들이 자꾸 나한테 블루베리 요거트 해보라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거든? 그랬더니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억양 하나도 없이 발음할 수 있냐는 거야. 애들은 어떻게 하냐면, 어떻게 하더라? syo가 읊었다. 블↘루→베↑리→요↘거↑트↘ 맞았어. 바로 그거야.
그렇겠지. 맞겠지. 몇 년짜린데 이게.
4
대구에 살아본 적은 없어서 교토 사투리를 쓰는 것처럼 대구 사투리를 직접 써볼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자주 접하게 되면서 대구 사람들의 고유한 억양과 사투리를 알아들을 때는 무척 즐겁다. 대구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단순히 억양이나 말투 등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나는 대구 사람들의 직설적인 표현을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말은 솔직하고 농담은 화끈하다. 말 때문인지 한 번 사귄 친구들과 ‘찐하게’ 지낸다는 느낌도 있고, 나를 포장하거나 표정을 애써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에 내가 감정을 감추려 들거나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순간 대구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채고 놀릴 것 같다. 대구에 내려가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경계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속시원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해지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대구 사람들처럼 말을 하고 싶어 언젠가 대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_ 로버트 파우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287쪽
오버다. 약간 오리엔탈리즘 같은 느낌도 있고. 두 군데 말을 다 하는 syo는 안다. 그건 그냥 성격이고 입장이에요, 케바케구요. 파우저 선생님.
5
서울말을 한다지만 능숙한 것은 아니라, 알아채는 사람과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알아챘는데 못 알아챈 척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 모자란 서울말과 관련된 소소한 사건도 한바닥이다.
--- 읽은 ---



+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로버트 파우저 : 79 ~ 342
+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 손승현 : ~ 259
+ 길 위의 독서 / 전성원 : 194 ~ 399
--- 읽는 ---




= 대항해시대의 탄생 / 송동훈 : ~ 122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지그문트 바우만 : ~ 54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박상영 : ~ 81
= 이렇게 쉬운 통계학 / 혼마루 료 :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