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만들기 위해 사전을 찢는

 

 

그러니까 그것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이다. 호숫가를 거닐다 마주치는 새들에게 저마다 이름 하나씩 붙여주려고 맞댄 두 이마다.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마주앉아 A4 이면지에 그려보는 미래의 타임라인이다. 그 시간의 교차다. 아니면 그것은, 하늘까지 치솟은 아파트 그림자 아래서 잘게 쪼개진 노을의 파편을 빗겨 맞으며 일부러 놓쳤던 버스의 행렬이거나 다음 거 타, 다음 거 탈래, 기약 없이 유예되는 아쉬움일 것이다. 혹은, 아침의 해장국 가게에서 들은 두 사람 잘 어울린다는 뜻밖의 칭찬이거나, 그 가게로 가는 길에 건너야 했던 중랑천 어느 다리 위에서 잡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작고 하얀 손이었거나, 작고 초라한 용기였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눈물 흘리는 모습 보이면 이 마음이 아플까봐 얼른 사라진 저 마음과, 돌아봐 눈 마주치면 저 마음 그 자리에 돌처럼 서서 한없이 눈물 흘릴까봐 끝내 돌아보지 않은 이 마음의 대칭적 협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끌어다 잡은 손에 예상치 못했던 온기 같은 것이 있어서 이 손을 잡고 있는 동안이라면 마음이 무너져도 좋지 않을까 품어 본 위태로운 욕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불가능했고 불가능해야만 했던 욕심이 먼지로 바스라지는 동안 그 안에서 발견한 앙상한 자화상, 익명의 공간에서 누리는 비익명적 기쁨의 단맛, 도무지 바닥을 알 수 없는 맹목적 애정, 돌고 도는 시간과 돌고 도는 호변, 제주도의 밤과 풍차와 전기차, 자꾸만 아름다워지는 어느 동거의 기억, 끝없이 기쁜 설거지, 서로 내가 버리겠다고 다투는 음식물 쓰레기, 자꾸만 만지고 싶은 몸, 닿지 않은 순간에도 닿아 있는 입술, , 뒤에서 안아주기, 안기기, 슈만, 쇼스타코비치, 김환기, 이우환, 눈빛, 감아도 떠도 늘 발견되는 눈빛, 눈빛, , , .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심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어떤 시점을명확히 구별되면서도 특별한 순간에 일어난 일과 같은자신의 존재 속으로 파고드는 돌파구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어쩌면 그 기억은 틀렸을지도 모른다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나우리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될 거라는 통찰의 순간눈에 대한 사랑은 실제로는 어떤 급작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어쩌면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페터 회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밤새도록 파고드는 밤섬머리를 들이받아

 가장자리에 아름다운 세모래밭을 만듭니다

 그러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자욱한 철새들이

 거기에 매서운 첫 획들을 찍는데

 그중엔 아주 작은 아기 것도 섞여 있어

 파도가 다시 와선 뺨 부비곤 했답니다

이시영발자국전문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해'라는 당위나 의무가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라는 경우의 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그러한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꽉 짜인 일상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지우발성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그 말인즉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삶은 문제 제기를 통해 여러 가지 답을 선택하는 과정이지모든 문제가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문제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만능열쇠와 같은 하나의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만약 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내가 살아온 삶 속에 있을 겁니다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겠지요나는 계속 살아나가는 존재이고 그 답들도 계속 구성 중입니다.

신승철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당신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것이게 기적이다책을 읽고 나니 지금 다른 곳에서 잠들어 있을 사람의 구부정한 등이보고 싶다잠든 등을 사랑하는 것내 취미다.

장석주박연준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 읽은 ---

+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 이시영 : ~ 155

+ 소설보다 가을 2018 / 박상영 외 : 73 ~ 170

+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 그레이슨 페리 : 60 ~ 187

 

 

 

--- 읽는 ---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장 지글러 : ~ 77

= 이코노크러시 / 조 얼 외 : ~ 150

=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 신승철 : ~ 82

= IFRS 회계원리 / 최창규 외 :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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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7-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좋네요! 난 시간이 많으면 딴 짓하고 책읽을려면 시간이 없고 글쓸려고 모니터 앞에 앉으니 컴터 고장나고 ...결국 a/s맡겨야 할듯 ...이래저래 핑계와 변명으로 하루를 나네요 ㅋㅋㅋㅋ

syo 2019-07-09 12:12   좋아요 1 | URL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고 그런 것이지요. 곧 있으면 다시 돌아와 빠바박 쓰실 거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19-07-0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는 예전에 절판되었다가 사람들이
마구 재출간해 달라고 해서 다시 나왔을
적에 쟁여 두기는 했는데 미처 못 읽고
있네요. 아마 두께 때문에?


syo 2019-07-09 12:13   좋아요 0 | URL
잘 안 넘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레삭매냐님처럼 단련된 소설 독자께서는 공감을 못하실 수도 있으나.....

단발머리 2019-07-0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하면 김연수가 생각나요. 얼마나 근사한 책이라 칭찬을 했던지요. 항상 ‘읽어야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책이라고 할까요? ㅎㅎㅎㅎ

syo 2019-07-09 12:14   좋아요 0 | URL
엄청나다.... 엄청나... 이런 생각은 하고 있는데, 엄청나게 잘 안 넘어가요......

뒷북소녀 2019-07-09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보고 이러면 안되는데...<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이 책 표지가 좀... 재미없게 생겼네요. 작가는 마음에 드는데요.ㅋㅋㅋ

syo 2019-07-09 16:39   좋아요 0 | URL
저 표지 칭찬하는 사람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 저랬는지 모르겠어요......

2019-07-10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2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