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러스님과 하루의 1/4
※ 이 글은 책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syo의 글이 가끔 그런 것처럼요.
※ 이 글은 재미를 위해 약간의 과장과 편집 과정을 거친 결과물입니다. syo의 인생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요.
리뷰 기계는 무엇을 원하는가
미세먼지가 있다고는 하는데 미세하여 잘 보이지 않고 뜻밖에 봄처럼 따뜻한 1월의 첫 번째 토요일 오후, syo는 알라딘의 리뷰기계로 이름난 cyrus(이하 사이러스, 시루스 박사, c, 기타 등등)님과의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에 올라 흔들흔들,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에 젖어 있었다. ‘리뷰’기계니까 책을? 리뷰‘기계’니까 윤활유나 부동액을? 채 정하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아직 15분이나 남았건만 이미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다는 문자를 보내오는 매너남. syo의 마음은 급해지고, 결국 교보문고가 카센터보다 더 가깝다는 이유로 선물은 책으로 결정. 부디 그가 불스원샷이 아니라 푸코를 사들고 왔다고 서운해 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리뷰 기계는 남의 가게 문을 연다
우리가 만나 향한 곳은 대구 경상감영공원 근처 ‘스몰토크’라는 카페였다. 교양이 넘치는 사장님께서 대구 지역 인문학 부흥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시겠노라 오픈하셨는데, 많은 독서모임이 아지트로 사용하는 뜻깊은 곳이라는 시루스 박사의 설명에는 어쩐지 자부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c : 근데 오늘은 아직 안 연 것 같아요.
s : 네?
c : 사장님이 출근 전이세요.
s : 네.....
c : 그래서 제가 열려구요.
s : 네?
c : 괜찮아요.
s : 아 네, 물론 괜찮겠지요. 괜찮으니까 여시는 거겠지요......
c : (씨익)
성큼성큼 걸어서 스몰토크에 도착. 카페 입구 옆 전봇대에서는 수리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무슨 세탁기같이 생긴 하얀 통에 인터넷 기사님인지 전기 기사님인지 하여간 기사님인 건 확실해 보이는 기사님께서 올라타 전봇대에 붙은 뭔가를 낑낑대며 고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에서 핸드폰과 도어락을 번갈아 쳐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눌러대고 있는 우리의 사이러스님, 들고 있던 에코백마저 syo에게 맡기고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syo는 그 낑낑과 열심의 현장에서 다섯 발쯤 물러나 팔짱을 끼고서, 오늘 처음 만났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두 남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앙상블을 지켜보며 잠시 햇살을 만끽하였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우리는 2층, 카페로 올라갔다.
c : 사장님이 심지어 바리스타세요.
s : 오, 단순한 인문학 마니아가 아니시군요.
c : 곧 사장님이 오시면, 맛있는 커피를 드실 수 있을 거예요.
s : 네, 물이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죠.
c : 네.
s : (정수기에서 물 두 컵을 떠 와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자,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c : (씨익)
카페는 한 귀퉁이에 커피머신과 간단한 조리 시설이 구비된 장방형 공간으로, 어느 위치에 있든 카페 전체가 눈에 훤히 들어오는데다가 테이블 수에도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개방적이고 시원시원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카운터 아래쪽에 흘끗 보이는 재활용 쓰레기들 속에서 무시할 수 없는 양의 소주 pet병과 피자 박스가 발견되었는데, 아무래도 연말연시에 이 공간에서 벌어졌을 뻑적지근한 파티의 흔적으로 추정되었다. 소주와 피자? 아, 아무래도 나 여기,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리뷰 기계는 피부가 좋다
동생이라는 사실은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댁도 나도 30대인데, 혼자 이래도 됩니까? 라는 말을 차마 하지는 못했다. 나는 초반 님은 중반, 이라는 대답이 나올까 봐. 하긴, 언제부턴가 1년 1년이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s는 c로부터 3번은 달라진 것이니까, ‘같은’이라는 말을 넣고 비비는 것은 언감생심이 아닐는지?
c : 저보다 서너 살 많으신 걸로 알았는데, 와, 그렇게 안 보이세요.
s : 됐거든요.
c : 진짜예요ㅎㅎㅎㅎ
s : 이미 책도 받으셨고 제가 더 드릴 것도 없는 마당에 굳이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c : (씨익)
리뷰 기계는 직진한다
c : 사실, 제가 그렇게 독서 경력이 긴 것은 아니에요. 지금처럼 책 읽고, 뭐라도 쓰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2010년쯤?
s : 기원전이요?
c : 군대에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싶어 미치겠더라구요. 근데 군대에서는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잖아요.
s : 그렇죠.
c : 입대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다리가 많이 아팠어요. 원래부터 종종 그랬거든요. 며칠 쉬면 낫고 그랬는데, 군대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군 병원에 두어 달 입원해 있었어요.
s : 아......
c : 근데, 거긴 책이 많더라구요. 다 읽었죠.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s : 사이러스 비긴즈로구만요.
c : 그렇게 아팠던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생각해보면 크고 작은 계기들이 굉장히 우연하게 겹치고 겹쳐서 오늘의 제가 된 것 같아요.
s : 그러니까 의미 있는 독서생활을 시작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버젓이 리뷰기계가 되신 게로군요. 쩐다.
c : 아, 제대하고 서울에 무슨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거기서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s : 강연을 들으러 서울까지 가셨다구요? 게다가 서울 독서모임을 덜컥?
c : 네, 한 달에 한 번, 기차타고 서울에 올라가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당일로 내려왔죠.
s : (말잇못)
c : 젊었으니까요. 매번 모임을 마치면 막차, 그러니까 제 기억에는 새벽 2시 45분쯤이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그 막차 시간까지 뒤풀이랄까, 술 엄청 마시고는 기차에 구겨져서 대구로 내려오고 그랬죠.
s : 솔직히 말해 봐요. 책이에요, 술이에요?
c : (씨익)
리뷰 기계는 걱정한다
s : 사이러스님은 리뷰기계라고 제가 늘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 그건 반만 농담이었어요. 가끔 사이러스님이 알라딘에서 구비한 인공지능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오늘도 로봇이 나오면 어떡하지 했는데......
c : 그러셨어요?
s : 네, 그러셨어요. 글도 글이지만 댓글이요. 사이러스님은 댓글달기 왕이 되실만큼 소통을 많이 하시는 편이고 제 글에도 댓글을 자주 달아주시지만, 어쩐지 사이러스님과 댓글을 주고받으면 항상 담소가 아니라 토론이 되는 느낌? 농담 같은 것도 안하시고, ㅋㅋㅋ랄지 ㅎㅎㅎ 같은 것도 별로 없고....
c : 전 소통 좋아해요. 좋아하는 분들 글 읽으면 꼭 댓글을 달아요. 근데 그게 억지로 다는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서 달거든요. 물론 농담도 하고 싶죠. 그런데 뭐랄까, 오해를 받는 일이 좀 많았어요. 그런 마음으로 쓴 게 아닌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 뭐 그런 거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지적해주신 분들 말씀이 다 맞았어요. 제가 뉘앙스를 다루는 능력이 부족해요. 그래서 더 농담 같은 글, 격 없이 친한 사람끼리 나누는 대화 같은 댓글을 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s : 저는 오히려 댓글 자체를 잘 못 달겠어요. 막 한바닥씩 댓글로 소통하시는 분들 보면 존경스러워요. 부럽구요.
c : 댓글로 소통 잘 하시잖아요. 친한 분들도 많으시고.
s : 제 생각에는, 평소에 쓰는 글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맨날 쓰는 글 자체가 에피소드에, 잡설에, 농담에...... 하여간 가벼운 글을 자주 쓰잖아요. 그러니까 댓글에서 가벼운 농담이나 장난을 쳐도, syo 쟤는 원래 저런 글 쓰는 애니까, 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다른 분들이 귀엽게 봐주시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쪽으로 해석을 해 주시는 거죠. 반면 사이러스님의 글을 통해서 사이러스님의 이미지를 구축하신 분들은 아마 농담이나 신소리를 하는 사이러스님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토씨 하나까지 똑같은 농담을 해도 syo는 이해받는 폭이 넓은 반면, 사이러스님은 쟤 갑자기 왜 저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c :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s : 근데 만나보니까, 사이러스님, 확실히 다르네요. 말이 많아. 대체 알라딘에서는 어떻게 참아요?
c : (씨익)
리뷰 기계는 격려한다
s : 사이러스님의 2018년은 페미니즘의 해였죠. 대단했어요. 작년 한 해 알라딘의 페미니즘 책 리뷰 절반은 사이러스님이 혼자 한 것 같아.
c : 그렇지만 2018년은 syo님의 해였죠. 매주 뉴스레터가 오면 항상 syo님 글이 소개되요. 핵인싸가 되신 걸 축하해요.
s : 사실 되게 깜짝 놀랐어요. 연말에 syo award라고 되도 안한 글을 썼거든요? 전 그 글에 그렇게 댓글이 많이 달릴 줄 몰랐어요.
c : 뭘 되도 안한 글이래. 좋았어요. 다들 좋아했잖아요.
s : 전 제 글이, 그렇게 댓글 많이 받고 좋아요 많이 받아먹을 가치가 있는지 항상 걱정해요. 알라딘은 책에 대해 쓰는 데잖아요. 이름도 그냥 블로그가 아니라 ‘서재’잖아요. 근데 전 항상 신변잡기나 써 올리지 책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못 해요. 제가 사이러스님께 제일 부러운 것도 그거예요. 전, 사이러스님이 쓰는 그런 제대로 된 리뷰를 쓰질 못하겠어요. 요약도 안 되고 정리도 안 되고. 책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맨날......
c :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거 아닐까요? syo님 글 좋아하시는 분들이 syo님께 바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알라딘이라고 꼭 책 이야기만 할 필요가 있나요. 책 이야기도 좋지만 소소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있으면 좋잖아요. 겸손이 지나치신데요.
s : 왜, 책 검색하면, 거기에 리뷰랑 페이퍼랑 다 연결이 되잖아요. 어떤 분이 책 정보 얻으려고 딱 검색을 한 거야. 출판사 책 소개, 목차, 작가 정보 같은 거 다 읽고 이제 일반 독자들 평을 보겠다고 스크롤을 내린 거지. 근데, syo란 놈이 쓴 글이 막 3개씩 있네? 근데 눌러봤더니, 책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지 연애 이야기나 하고 앉았어! 이러면, 이건 공해잖아요, 디지털 공해.
c : 구매자 리뷰가 먼저 게시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빌려서 읽고 쓰는 글들은 어지간해서 노출이 안 됩니다(단호).
s : 그게 또 그런가요.
c : 쓸데없는 걱정이세요(역시 단호).
s : 알라딘에서의 syo는 2018년 되게 빛났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세상에서의 인간 손OO에게는 정말 형편없는 한해였어요. 떨어질 만해서 떨어졌지만 어쨌든 준비하던 시험도 떨어졌고, 이런 저런 일로 자존감이 떨어지다 못해 거의 없어졌어요. 두 세상에서의 syo가 완전히 다른 거죠. 그래도 안 죽고 버텨요. 알라딘이 없었고, 알라딘에서 제게 오구오구 해주시는 서재친구들이 없었으면, 아마 실제 세상에서의 저는 벌써 무너졌을 거예요. 모르겠어요. 이게 다 디지털 세상에 만든 가짜 자아에 집착하는 일이고, 현실을 등한시 하는 일이고,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경멸하는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인간과 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라도 없으면 완전히 무너지는 인간도 있는 거예요. 살려고 매달리는 인간이죠. 현실에 든든한 기반이 없어서...... 그래서 저한테는 알라딘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목숨줄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전장치 정도는 되는. 그래서 더욱 저는 알라딘에 폐 끼치기가 싫고 무서워요. 물 흐려놓는 걸까봐 걱정 돼요.
c : 아, 무슨 마음이신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s : 알긴 뭘 알아, 양쪽 세상에서 다 튼튼한 당신이 뭘 안다고!
c : (씨익)
리뷰 기계는 영업한다
c : 이 카페는 만나서 이야기하기 너무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사장님이랑도 친해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이렇게 앉아서 수다 떨어도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s : 사장님 이러다가 망하시면 어떡해요.
c : 다른 데서 버셔서 여기에 부으시는 것 같아요. 말씀드린대로, 사장님은 이런 공간을 제공하는 일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시는 좋은 분이거든요.
s : 대단하신 것 같아요.
c : 이런 공간이 없었으면, 되게 많은 독서 모임들이 열리기 힘들었을 거예요. 저기 칠판 보이시죠? 저기 써 있는 게 한달 독서 모임 일정이에요.
s : 되게 빽빽하네요?
c : 그렇죠. 저기 저기, 레드 스타킹도 적혀 있어요.
s : 그러네요.
c : 오시죠?
s : ......네?
c : (씨익)
s : 저는 알면 깝칠 것 같아서 무서워요. 견해가 생기는 게 겁이 나는 분야가 있는데, 그게 페미니즘이에요. 아직 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겁이 나는 상황인데, 근데 제가 알면 또 깝치거든요. 알면 말하고 싶어져요. 근데 안다고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알고 모르고는 말할 수 있고 없고와는 완전히 다른 평면인데.
c : 그렇죠. 그렇죠.
s : 꼭 젠더 문제와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잘난 척 하는 걸 좋아해놔서, 아는 걸 신나서 말하다보면 말하는 중에 다른 생각을 못하는 거라. 그래서 말실수를 하는 거죠. 해선 안 될 말, 할 수 없는 말을 그냥 안다는 이유로 뽐내고 싶어서 막 뱉은 경험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아예 말하지 말아야 하거나 말할 자격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뽐낼 만큼 알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생각? 그냥 듣는데 집중하자는 생각?
c : 맞아요. 저도 레드 스타킹 모임을 통해 정말 많이 배우고 들어요. 제가 말할 수도 없고 말할 줄도 모르는 것들을 되게 많이 들려주세요. 전 그냥 하루 종일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오는 날도 있어요.
s : 그렇군요.
c : 되게 많이 배워요. 오프라인에 정말 고수분들이 많아서, 꼭 페미니즘 독서 모임 아니더라도 독서 모임 하는 게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혼자 쓰고 읽을 때보다 같은 책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체화랄까? 확실히 피부에 확 박히고 오래 가더라구요.
s : 오오.....
c : 오실 거죠?
s : ......네?
c : (씨익)
s : 철학은 정말 비전공자가 혼자 공부하기가 만만치가 않아요. 계보 같은 게 있잖아요.
c : 정말 그렇더라구요.
s : 예를 들어서 마르크스를 알려면 헤겔을 알아야 하는데, 이게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내가 마르크스를 ‘얼마나’ 알고 싶은가에 따라서 헤겔을 따로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이 되는 거거든요. 근데 나는 내가 ‘얼마나’ 알아야 되는지를 알 수 없잖아. 그럼 마르크스 읽으려고 헤겔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기가 어렵고, 괜히 필요 범위를 넘어서 헤겔에 손댔다가 마르크스에 가졌던 흥미까지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철학자는 없으니 제대로 하자면 결국은 플라톤까지 쫓아올라가야 되고 막 그러니까 끈기 없는 저 같은 놈은 그냥 지는 거죠 뭐.
c : 저도 철학책 읽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철학책 읽는 분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저희 모임에도 혼자서 헤겔 읽는 분이 계신데, 아우라가 장난 아니죠.
s : 우와..... 혼자 헤겔. 대박
c : 오셔서 보시죠?
s : ......
c : (씨익)
리뷰 기계는 반역자를 고발한다
s : 솔직히 알라딘은 알라디너 좀 홀대하는 것 같아.
c : (끄덕끄덕)
s : 알라디너 뿐 아니라, 뭔가 다른 부대시설(?)도 좀 부족해요. 얼마 전에 우연히 유계영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검색을 해 봤거든요? 그리고 그 시인이 한 달에 한 번 시집을 읽고 리뷰를 연재하는 걸 발견했어요. 거길 눌러보니까, 거기가 예스24더라구요? 가봤더니, 예스는 소설가, 시인, 작가들한테 원고를 청탁 해서 리뷰랄지, 에세이랄지, 뭐 이런 것들을 싣는 섹션이 따로 있더라구요. 한참 거기를 둘러보다가 알라딘에 다시 왔더니, 갑자기 뭔가 초라해 보이는 이 공간.....
c : (맞아맞아)
s : 북플 어플도 그래요. 소소한 버그 엄청 많아.
c : (그럼그럼)
s : 우리가 힘을 길러서 다 뒤집어 엎어야 돼!
c : (옳소옳소)
s : “주식회사 알라딘커뮤니케이션 주최, 2020년 제주도 알라디너의 푸른 밤” 개최를 위하여 우리가 뭉쳐서 투쟁하자!
c : (하자하자)
s : 근데, 사이러스님 아까부터 왜 말씀이 없으세요. 눈빛은 굉장히 맞장군데.
c : syo님, 오늘 우리 만난 거, 페이퍼로 써서 올리실 거죠?
s : 설마......
c : (씨익)
※ 웃자고 과장한 것이지, 실제 사이러스님은 알라딘 시스템이나 정책에 문제점이 생길 때마다 발벗고 나서서 의견을 수렴하고 시정을 요구하여 이런 저런 변화를 이끌어 낸 경험을 가진 강단 있는 싸움꾼임을 알립니다. 만세.
c : 일단, 우리가 대구 지역에서 알라디너 모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에 밀릴 필요가 없어요. 헤게모니를 가져와야 돼.
s : 제가 알기로는 k님이 대구 인근에 사시는 걸로.
c : 저도 b님과 r님이 대구에 사시는 걸로 알아요.
s : 찾아보면 더 있을 거야 그쵸?
c : 다음에 y님이랑 함께 만나서 논의를 해보자구요.
s : 와, 좋다 좋다.
c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울에 밀려서는 안 됩니다. 대구에서도 할 수 있어요.
s : .....아, 네.
c : (씨익)
리뷰 기계는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이외에도 소세키와 샐린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부터, 청춘과 사랑의 (슬픈) 편린들, 책과 결혼과 서재와 부모님, 젊은 나이에 겪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육체적 고통 같은 깊은 이야기들까지 골고루 오고갔으나, 손가락에 눈물이 젖어 차마 다 옮길 수는 없겠다. 장장 여섯 시간의 쉼 없는 수다를 마친 두 남자는 각자의 방향에 펼쳐져 있는 어둠을 헤치며 걸어갔다.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그게 별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syo는 쉬지 않고 육박해오는 영업의 촉수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재정립된 그의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 이 남자, 빵빵 터지지는 않아도 솔찬히 재밌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는데, 것 참. 오늘 풀린 고삐가 너무 꽉 죄어지기 전에, 다시 만나 또 실컷 떠들어도 좋겠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났는데 막상 책 이야기는 별로 못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여섯 시간을 순간처럼 불살랐던 걸까? 하여간 말 많은 남자들은 곤란하다.
--- 읽은 ---




고종석, 황인숙,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이완배, 『마르크스 씨, 경제 좀 아세요?』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정석, 『도시의 발견』
--- 읽는 ---





김정선,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조동범, 『보통의 식탁』
김민주, 『김민주의 트렌트로 읽는 세계사』
김현진, 『진심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