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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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좀 읽다가 만 것이 <전망 좋은 방> 이었는지 <하워즈 엔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첫 머리가 좀 익숙한 걸 보니 <전망좋은 방> 이었던 것 같다. (하워즈 엔드를 읽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작가 소개를 보고 블룸즈버리 그룹의 휴 메러디스가 맞나 생각했고, 그리고 H.O.M. 에게 헌사를 남긴 걸 보고 뭔가 느낌이 와서 -언젠가부터 작가들의 헌사에 (당연하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풀 네임이 아닌 애칭이나 약자로 남길 때에는 대개 비밀스럽다는 걸 (자식이나 조카들일 때도 있지만) 알게 됐다. 나도 사사를 써 보았고 사람들이 당시 연애중인 상대에게 특별한 사사를 넣을 것인지 고민을 했던 걸 많이 봐서 그 느낌을 이해한다. 연인을 위해 한 부를 따로 만드는 수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 헌사에서 본문을 건너뛰어 연보로 넘어가 읽었고, 거기서 휴 메러디스와 포스터가 연인관계였음을, 그러니까 포스터가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이었음을 알았다.

연보에 의하면 그의 인생에는 얼마간 불행이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잃었고 변태 성욕자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괴롭힘도 그의 성적 취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드러내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민감하고 잔인하니까). 지적인 성취를 인정받았으나 사랑에 있어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 그의 애인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당연하게도 여성과) 결혼을 했다 - 휴 메러디스와는 육체적인 관계가 배제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메러디스의 결혼 이후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하고 그 이후 출간한 이 소설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 소설은 허례허식보다 진실이 중요하고 인생, 특히 사랑에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성적 취향, 그리고 그의 애인들이 여성과 결혼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런 배경을 알고나서 소설을 읽게 되어 자꾸 그런 쪽으로 생각이 달려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무신론자인 것도 자연스럽고 (에머슨의 아버지처럼). 그의 사랑은 종교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으니까.

이 소설이 ‘영국 사회의 계층 간 갈등과 가치관의 대립’을 그려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이성애와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의견제시로도 보인다. (책 뒤에 실은 평론이나 역자 후기 등에 이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이 책은 2005년에 출판되었고, 요즘에 비해 그 때는 이런 의견을 언급하는 것을 좀더 조심스러워했던 시기다)

포스터는 래드클리프 홀의 레즈비언 소설 <고독의 우물> 의 출판 금지에 대해서도 항의를 했고, 예술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많이 내었는데, 그 자신의 이야기는 할 수 없었더라도 그가 한 일이 그의 배경과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과 휴 메러디스를 모델로 한 남성 동성애 소설 <모리스>를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판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그의 사망 1년 후 <모리스>가 출판됐다)

포스터의 아이러니한 문체, 비꼬는 듯한 유머, 그럼에도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맘에 든다. 더 읽어보고 싶다. 그는 가장 맘에 들었던 책이 <기나긴 여행>이라고 했고, <하워즈 엔드>도 궁금하고.. 그러나 <모리스>가 궁금하다. 사실 그의 인생이 가장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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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03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리스>가 거의 자전적 이야기라 포스터의 인생이 궁금하시다면 <모리스>부터 읽으시는 걸 추천드려요!

건수하 2022-03-04 04:0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모리스> 추천 감사해요! 사실 <전망좋은 방> 얘기는 별로 안썼지만 좋았거든요 :) <모리스>가 궁금한데 더 알기 전에 소설들을 좀더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저 혼자 느껴보고 싶어서… <모리스>도 꼭 읽어볼게요!

새파랑 2022-03-03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리스 완전 좋았어요~!! 전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보다 더 좋더라구요~!!

잠자냥 2022-03-03 23:53   좋아요 2 | URL
그것은 야하지 않아서 ㅋㅋㅋㅋ

건수하 2022-03-04 04:09   좋아요 1 | URL
저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안 읽어서… 그건 야하지 않고 <모리스>가 야하군요. 잘 기억해 두는 것으로 :)

새파랑 2022-03-04 06:20   좋아요 2 | URL
앗 그 반대 입니다~!!

잠자냥 2022-03-04 08:29   좋아요 2 | URL
네네, 모리스는 하나도 안 야해요. 그 시대에 포스터가 그렇게 쓸 수는 없었을 거예요!

건수하 2022-03-04 08:55   좋아요 2 | URL
아 잠자냥님이 야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신거였군요 제가 불순해서 오해를… ^^ 맞아요 그 시대에는 그랬겠네요!
 
[eBook]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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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이야기와 그 사이 4개의 막간극으로 구성된 책. 막간극에서는 이전의 이야기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약간 바꿔 주인공이 죽지 않고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 하나의 이야기라고도, 다섯 개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야기.
전체 이야기는 폴란드 근방 갈리시아(갈리치아)에서 살던 한 유대인 여성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시기상 1차대전 이전부터 2차대전, 냉전 시대를 거쳐 독일 통일 이후까지를 다룬다. 폴란드 지역에서의 유대인의 탄압, 두 차례의 큰 전쟁과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에서 살아남기, 이후 동독과 통일 독일에서의 삶..

한 인간의 삶은 여러 우연적 요소와 수많은 가능성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소설의 구성은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닌 그 시대의 여러 사람들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역사가 단순히 개개인 삶의 합이 아닌 큰 트렌드라면, 소설은 그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디테일이라고 할까. 그래서 소설이 좋고 이 소설도 좋았다.

하나의 삶에는 매번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전선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그 모든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난 일상 내내 내 시체랑 같이 살아간다는 말이잖아, 안 그래? 자라고, 늙고, 그래서 언젠가 내 시체가 완성되면, 그러면 죽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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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9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아요~^^

건수하 2022-02-28 02: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안녕하세요~ 제목이 멋지죠? 소설에서 제목의 의미는 멋지기만 하진 않지만... 표현이 참 멋져요 :)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
 

다시 폴란드 근방의 유대인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왜 요즘 자꾸 이쪽으로 수렴되는 것인지.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 아기가 살아있던 1초와 이제는 살아있지 않은 1초 사이에는 얼마나 긴 순간이 가로놓였는가. 그런 한순간과 한순간을 거르는 것이 정녕 시간일까.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만 하는 그 무엇인데 아직 적당한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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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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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한국 소설에는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더 강하게 감정이입이 된다. 괴로운 이야기라도 담담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하고 비전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던 <여성과 광기>를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바로 넉다운 되어버렸다. 강화길, 들어보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가 그녀의 힘일까.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 그것들끼리 꼬여 가라앉아버렸다. 시간을 좀 두고 다시 마주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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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런던 - <채링 크로스 84번지> 헬레인 한프의 런던 여행
헬레인 한프 지음, 심혜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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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의 작가가 런던에 가서 그녀의 책을 읽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 이 책에 책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다들 <채링크로스 ~>를 읽었을 테니까 굳이 말 안해도 이심전심. 헬레인 한프의 글을 좋아했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중간에 나오는 런던구경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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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26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하 님 런던 풍경 궁금해요^^

건수하 2021-12-26 20:35   좋아요 0 | URL
풍경 저도 궁금해요 ㅎㅎ
예전에는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런던 시내만 며칠 봤는지라 (그 중 박물관도 두 곳이나 갔었구요)

다시 가게 된다면 햄스테드 히스와 세인트폴 대성당을 찬찬히 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1-12-26 20:39   좋아요 0 | URL
오호 전 왜 수하 님이 지금 런던에 계신다고 생각한 걸까요 ㅎㅎ 꿈을 꾼 걸까요. 그래서 런던풍경 보여달라는 말이었어요. ㅋ
세인트폴 대성당 전 2018년 유월초에 갔어요. ^^

건수하 2021-12-26 20:41   좋아요 1 | URL
아 저 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게 생각하신 거였군요 ^^;;;


저는 지금 남반구에 있어요 :)

새파랑 2021-12-26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링크로스의 속편 격인 책인가 보네요~ 런던은 안가봤지만 책을 통해 가봐야겠군요 ^^

건수하 2021-12-26 20:36   좋아요 1 | URL
네 속편 격인데.. 이 책에는 책 이야기는 거의 안 나와요. 사람 이야기와 런던 이야기가 거의 다예요.
새파랑님 이 책이랑,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보시면 일단 세인트폴 대성당을 꼭 보고싶어지실 거예요 :)

scott 2021-12-26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링 크로스 84 서점 있었던 자리에 맥 버거가 들어섰다가 현재는 파스타 가게로 바뀌었습니다!
런던은 어디를 가도 흥미로움으로 가득 !ㅎㅎ

건수하 2021-12-26 20:42   좋아요 1 | URL
앗 ㅎㅎ 그렇군요. 세월은 흐르니…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에 이어 이 책에서도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이 나와서 거기도 가보고 싶어졌네요 ^^

다락방 2021-12-27 08:37   좋아요 0 | URL
제가 맥 버거였을 때 찾아갔었어요. 아무리 봐도 주소가 여기가 맞는데 싶어 옆 서점에 가 ‘여기가 혹시 거기 아니니? 물었더니 맞다면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채링크로스 84번지에 가보고 싶어서 런던을 갔는데 그게 없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파스타.. 가게가 되었나요. 아아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