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들이 두렵다
비벡 슈라야 지음, 현아율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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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들이 두렵다>를 페미니즘 책모임에서 같이 읽기로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이 페미니즘 관련 책인 줄 알았다. 

폭력과 관련된 책일까? 그런데 남자들이 두렵다니, 그래 두려울 수도 있지. 그렇지만 좀 나약해 보이기도 해서 맘에 들지 않았다. 

남자들이 저 책 제목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오히려 책을 집어들게 하는 효과가 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책의 색깔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단 책모임에서 같이 읽기로 하고 나서 책소개를 보니 이 책은, 아예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페미니즘 관련 책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을 나약하다고 생각하면 표지에 쓰인 색깔은 너무 강렬했다. 


책을 받아서 읽어보려다가 뒤를 보니.. 뒤표지에는 반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부제는 앞표지가 아닌 뒤표지에 적혀 있었다. 

나름 노린 표지 디자인이었던 거다. 앞표지를 보고 응? 하며 이 책을 집어들어 뒤표지를 봤다면 내용이 궁금해질 것이다. 

일반 남성들이 앞표지를 보고 궁금해져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것은 표지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하려고 했으나, 그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 도서라는 팝업이 떴다. 이건 그냥 기본으로 들어가 있는 옵션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알라딘에서 책을 등록할 때 선택해서 설정할 수 있는 값인가보다. 그럼 스포일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냥 쓰는 걸로...




이 책은 mtf (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가 본인의 경험을 쓴 에세이다. 저자는 어릴적 '남성적'이지 않은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는 남자들을 두려워했고, 남성적으로 행동하려 애썼다. 남성들은, 그리고 여성들은 저자의 정체성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남성성'에 맞지 않고 모호하며 '정상적'인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아서 저자를 두려워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의 '두려워하다' 의 의미는 약간 다른 것 같지만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직접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은근한 공포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며 '남성성' 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성'이 무엇인가는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남성성' 이라는 것에 대해 사실 관심도 없었다. 막상 남성성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남성을 정의하기 위해 타자인 여성을 필요로했다는 <제2의 성>의 구절이 떠오르면서 사실 '남성성' 이라는 것은 '여성성' 이라는 개념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적이지 않은 것'이 '남성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페미니즘이 왜 구체적인 경험의 공유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다. 이 책의 맨 앞에는 어슐러 K. 르귄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여자들이 말을 하면 많은 남자가, 심지어는 여자들도 겁을 먹고 화를 낸다. 

이 야만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이 진실을 말하려면 전복적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짓눌리고 억눌린 당신은 탈주하고 전복한다. 우리는 화산 같은 존재다. 

우리 여자들이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서, 인간의 진실로서 말하는 순간, 모든 지형도가 뒤바뀔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산맥들이 생각날 것이다. 




mtf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조금은 전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책은 머리로 조금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다룬 책이 많은가? 나만 안 읽어봤는지도 모르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해 잘 모르고 '남성성' 에 대해서도 관심이 별로 없었던 나에겐 새로웠다. 잘 정리된 서문이나 해제가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뭔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서문이나 해제에서 정리해주었다면 이 책만 읽고 끝났겠지.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목적에 잘 부합하는 것 같다. 


내용이 아주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별 다섯 개. 



+ ftm 트랜스젠더의 경험도 궁금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스스로의 내적 편견을 인식하게끔 하는 (나아가 편견을 버리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누군가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일까? 나의 인간성은 어째서 내가 어떻게 희생되고 침해당했는지를 고백할 때만 가시화되고 관심을 받는 걸까? - P77

남성성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예외를 갈망할 게 아니라 지금의 기준선 자체에 맞서야 한다. 아무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여자를 위해 출입문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페미니스트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인종주의,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를 비롯한 온갖 억압을 경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전형적인 남자‘의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해도 ‘좋은 남자‘라는 신화를 영속화하고 예찬하는 한, 결과적으로 지금의 기준선을 눈감아주는 데 공모하게 될 뿐이다. - P86

두려움은 어떤 존재라도 될 수 있는 당신의 잠재력을 제한한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너무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당신이 얼마나 자주 외모와 행동, 그리고 감정에 대한 열망을 내팽개쳐왔는지 떠올려보라. 내 경우까지 갈 것도 없이, 무엇이 여성적이고 무엇이 남성적이라는 사고방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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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18 21: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없애고자 한다면 굳이 트랜스젠더가 될 이유도 없지 않은지. 여성으로 성별을 바꿔봤자 여성성에 갇히는데 왜? 아아아아 저는 이 문제는 어렵네요

건수하 2023-02-18 21:34   좋아요 2 | URL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을 너무 좁은 범위로 한정하고 강제하지 말자는 이야기 아닐까요?
트랜스젠더들이 어떨 때 트랜지션을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생물학적 성에 맞는 ‘정상성‘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굳이 트랜지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도...

난티나무 2023-02-19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감아주는데 공모하지 않기!!!!!!!

건수하 2023-02-22 10:08   좋아요 0 | URL
이 문장 옮기는데

얼마전 다락방님이 <여자는 인질이다> 라는 책에서 인용하셨던,

여자에게 성폭력을 가해서 남근이 위고 여근이 아래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남자는 일부지만, 결국 일부 남자의 폭력이 늘수록 모든 남자가 더 큰 이득을 보게 된다.

라는 문장이 생각났어요. 공모란 그런 것..

 
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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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첫번째 책. 에밀리 디킨슨을 바버라 쿠니가 그려서 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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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뜨 2 창비세계문학 82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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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의 성공 이후 대중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노력 (설정과 결말 모두) 을 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하여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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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겨진 베일 (워터프루프북) 쏜살 문고
조지 엘리엇 지음, 정윤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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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이라 해야할 지 예지라 해야할지.. 어쨌든 뭔가를 꿰뚫어보는 걸 베일이 벗겨졌다라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심리 묘사가 좋았다. 이 책이 2022년의 99번째 책인데 한 권 더 채울 수 있을까 (채운다면 다미여가 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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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6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하 님, 백권째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화이팅!!

건수하 2022-12-26 15:56   좋아요 0 | URL
네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걸로 ^^!!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12-26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미여를 100 번째의 책으로!!!!
아자아자...파이팅입니다^^
 
제인 에어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66
샬럿 브론테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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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하권. 이성을 중시하고 자립하고자 하는 면에서 내가 <제인 에어> 혹은 유사한 소설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느꼈다. 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은 더 많겠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은 많지 않았겠지. 그래서 로체스터에게 돌아갈 때 더 실망했던 것 같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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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07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체스터에게 돌아가서 실망 쪼매 했어요. 특히 버사가 죽어서 둘이 결혼을 결심한 것은...아직도 납득이 안되는..ㅋㅋㅋ
하지만 제인의 기나긴 삶의 여정은 생각해 보면 가히 압도적이라 평가받을만 하단 생각이 듭니다.

건수하 2022-12-08 09:12   좋아요 1 | URL
어릴 때 그 부분 읽고 크게 실망했던 것만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그 부분은 좀 맘에 안 들지만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2-12-15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5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