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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관리 계급에 대한 비판 -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진보주의자를 고발한다
캐서린 류 지음, 이대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25년 2월
평점 :
잠자냥님이 추천하셔서 (별은 네 개라고 하셨지만) 읽어본 책.
제목이 거창한데.. 미국의 소위 '강남좌파' 를 비판한다는 책이다.
원제는 <Virtue Hoarders 덕목을 모으는 자들> 으로, 전문·관리 계층 (Professional Managerial Class - 책에서는 계속 PMC라는 약자로 쓴다) 들이 소위 진보적 가치 (다양성, 포용, 성평등, 환경 보호, 채식주의 등) 와 특별한 취향, 문화적 성향을 근거로 노동자 계급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과 지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나의 계급으로서 그들은 독서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음식을 먹고, 건강을 챙기고, 성생활을 영위했다.
자신들이 인류 역사상 문화적·정서적으로 가장 진보한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12-13쪽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몇몇 정치인들의 사생활 - 특히 자녀 교육이나 대학 진학 등 - 이 그들이 내세우는 청렴함과 공정함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위법한 것이 아니라면 처벌받을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전처럼 신뢰하게 되지는 않았다.
PMC는 한 정의에 따르면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봉급을 받는 정신노동자들" 로
"노동의 사회적 분업에서 그들의 주요 기능은 대체로 자본주의 문화와 자본주의 계급 관계의 재생산" 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업종으로 문화산업 개발자, 기자, 소프트웨어 기술자, 과학자, 교수, 의사, 은행가, 변호사를 예로 들었다.
정치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한국의 정치인의 다수가 이전에 저 업종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작년에 나와 나름 잠시 핫했던 <야망계급론> 이란 책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읽지는 않았다), 나도 대체로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고 관련된 책을 읽고, 정신 노동을 하고 있다. 사실 저기 언급된 업종 중 하나의 일을 하고 있기는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 딱히 이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데 기여할 만한 것은 없어서 PMC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하는 일 자체가 기여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업종에 속한 사람이 갖는 공통점이 있을 수는 있겠다. 어쨌든 행동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읽고 만족하기만 하니까 진보적 언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그동안 많이 해 봤다. 요즘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ly correctness 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이런 맥락인 것 같고, 그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모두가 대학에 가려고 애쓰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될 거라는 턱없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사교육을 시키게 되었고, 말로는 대학을 안 가고 하고싶은 일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 아이가 학원 숙제를 안하거나 할 때 너의 선택이다 하고 - 그냥 놔두지 못한다 (내가 돈을 내서 그런 걸까? --;). 한 번은 아이에게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가 학원을 다니는 목적이 아니므로 너가 이렇게 열심히 안할 거면 학원은 그만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기는 대학에 못 갈 거라며, 그럼 엄마한테 평생 빌붙어 살겠다고 해서 -_- 대학에 가든 안가든 성인이 되면 빌붙어 사는 것은 절대 안되고 자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참고로 아이는 초등학생이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
서론
1 전문성의 경계 ‘넘기’
2 전문·관리 계급과 자녀
3 전문·관리 계급과 독서
4 전문·관리 계급과 성생활
결론
중 2장에 기대가 있었다. 정확히 어떤 기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들은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가...막연히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
물론 152쪽의 얇은 책이라 좀더 부담없이 읽기 시작한 것도 있다.
기대했던 자녀 교육 부분은 사실 내용이 많지 않았는데, (미국을 따라한)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제도에 우리나라의 PMC들이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커짐에 따라 사회 이동이 모든 인종과 종족 집단에서 감소하면서,
PMC 가정은 이제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자기 자녀의 성공을 도우려고 노골적인 뇌물과 교묘한 속임수 전략을 비롯해
갈수록 화려해지는 고가의 어린이 돌봄 장비와 육아 기법의 실험실이 되었다.
78쪽
(고가의 어린이 돌봄 장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모든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고 모든 젠더·인종·성별·성정체성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와 평등을 창출할 능력을 유일하게 갖추었다고 생각했던 나라에서,
미국의 제도는 지능과 노력의 대가를 소수에게 배분하는 데 갈수록 능란해지고 있다.
100-101쪽
이 문장은 의외로 3장 전문·관리 계급의 독서 에서 나왔다. 독서, 독서의 방식도 PMC 계급을 공고히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책에 집착하는 자인지라 2장보다 오히려 여기에서 좀 찔렸다. 사실 PMC에 속하지 않더라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행동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론에서는 이 책의 대상 독자가 PMC이고, 그들의 자기 비판을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진보적 가치를 향유하고 만족하는데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뭔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회주의 지식인은 미덕과 박식, 초연함의 가면을 거부해야 하고, 노동자와 피착취자 편에서 계급 투쟁의 장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139쪽
최근 한 정당이 당내에서 일어난 성적 괴롭힘 사례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고 나니 한국의 PMC들도 각성과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한국의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보적인가 하는 생각도. 주로 그들을 진보라고 분류하는 것은 보수세력이지만, 그들 스스로도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부끄럽지 않기를, 계속 위성정당으로만 있을 게 아니라 원내에 진출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일반 대중을 의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어본다.
우파 평론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경청하면서, 그 느낌을 반동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기로 삼았다. 도널드 트럼프만큼 PMC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동원하는 데 유능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PMC의 자유주의가 대중과 대중 이익의 적이라고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주장해 온 보수주의적 선전을 활용하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트럼프는 절대로 미덕이 있는 척하지 않았다. 그의 이드 주도적인 정치와 통제력 결여는 자유주의적 초자아에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느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핵심 요소였다. 포퓰리즘으로 포장된 반동적 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PMC의 미덕 쌓기의 또 다른 도구가 되어버린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PMC에 맞서는 좌파의 투쟁이 필요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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