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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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커피와 외로움과 가난과 그리고 목숨을 하루 종일 죽이면서 나는 그대로 살아 있기로 한다.’(22쪽) 나에게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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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24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자평 멋져 근사해.. 😍

독서괭 2022-01-25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자평 멋져 근사해..2 😍😍
이 시대 마지막 시인이라니!!

- 2022-01-27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겐 첫번째 시인인데... 마지막 시인 되버렸졍. 승자찡...

잠자냥 2022-01-27 08:53   좋아요 1 | URL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여~~
 
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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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쌓아가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모든 인물의 심리 묘사가 압권이지만, 필, 이 악마와도 같은 못난(?) 남자의 뒤틀린 심리 묘사는 진짜 대단하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밉상인데 마지막엔 그래서 더 연민이 인다. 그가 자기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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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3 0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새비지 이름 기억해야지요. 읽을 책만 자꾸 늘어나는 서재는 그래서 좋습니다. ^^

잠자냥 2022-01-23 01:39   좋아요 3 | URL
네 그게 서재의 매력이겠죠. ㅎㅎ

그레이스 2022-01-23 0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있군요
그러나 저는 원작소설로!

잠자냥 2022-01-23 01:40   좋아요 3 | URL
저는 이제 영화도 보려고요. 원작을 보니 영화도 더 궁금해집니다. 이 작품을 제인 캠피온 감독은 어떻게 스크린으로 재현했을지.

coolcat329 2022-01-23 09: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묘사가 압권이군요! 부럽습니다. 책읽고 영화까지~^^

잠자냥 2022-01-23 11:56   좋아요 3 | URL
영화를 먼저 볼뻔했는데 원작을 먼저 읽기를 잘한 거 같아요~

청아 2022-01-23 0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악마와도 같은 못난 남자의 뒤틀린 심리묘사‘,‘밉상인데 마지막에 연민이있다‘저 이런거 너무 좋아해요!!ㅎㅎ

잠자냥 2022-01-23 11:58   좋아요 2 | URL
네 그 밉상 인물 연기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했더라고요. 왠지 더 밉상으로 보일 듯. ㅋㅋㅋ

- 2022-01-24 11:37   좋아요 2 | URL
백자 평 보니 책으로도 읽어보구 싶어요. ㅋㅋ 영화로 봤을 때는 한 마초남의 숨겨진 내면(?) 정도로 생각했는 데... 베네딕트 컴버배치 연기 진짜 개 밉상이엇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파워 오브 도그 적인 밉상이었어여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에 좀 짠 하고ㅋㅋㅋㅋㅋㅋ 영화가 수작이었나 보네요 ㅋㅋ

mini74 2022-01-23 0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징글징글 밉상인데 마지막엔 연민이라니 궁금해지네요. 재목도 재미있고~~

잠자냥 2022-01-23 11:59   좋아요 3 | URL
네 한번 읽어보세요. 책 자체도 재미납니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마리즈 콩데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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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낯선 장소와 사건, 잘 알지 못했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을 읽으며 나는 스마트폰으로 ‘과들루프’를 검색해 그 나라의 위치와 역사 등을 짧게나마 살펴보고 책 속으로 돌아갔다. 과들루프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영토이다. 지도를 넓게 펼쳐서 대서양, 카리브해 연안의 과들루프에 이어 아프리카의 말리를 건너 프랑스까지 한눈에 살펴보니 얼핏 삼각형을 이룬다. 말리 또한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곳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은 쌍둥이 남매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나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간 여정이기도 하다.

이반과 이바나, 두 남매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이다. 엄마인 시몬의 자궁 속에서 열 달 동안 꼭 붙어 지내다가 울음소리와 함께 각자의 삶으로 던져지지만, 아직은 그 세상이 낯설기만 해 여전히 서로를 껴안고 잠든다. 아버지는 없다. 시몬도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남으로써 그녀 주변의 많은 여자들처럼 미혼모가 된 것이다. ‘왜 어떤 땅은 유독 다른 땅보다 미혼모들로 넘쳐날까? 그곳 여자들이 더 예쁘고 더 유혹적이어서? 그곳 남자들의 피가 더 뜨거워서? 그 반대다. 오히려 극심한 곤궁에 처한 곳이어서다. 성행위만이 유일한 기쁨인 곳. 그곳에서는 성행위를 통해 남자들은 위업을 달성한 듯한 느낌을 받고, 여자들은 사랑받는다는 환상을 얻는다.’(56쪽)

시몬은 남매에게 이반과 이바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반, 온 러시아를 다스린 차르의 이름이며 이바나는 그 이름의 여성형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남매의 어린 시절은 나름 행복하다.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과 카리브해 지역의 찬란한 햇살, 눈부신 바다 등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들이 자라남에 따라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미혼모의 자식인 데다가 피부색이 검다. 게다가 이 과들루프는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이제는 해외 주(州)가 되었지만 본토에 비해 극심하게 소외되고 궁핍한 땅이다.

이곳에서 힘 있는 자들은 모두가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고, 이반과 이바나처럼 피부색이 짙은 이들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두 아이는 자신들의 피부가 검고 곱슬머리라는 것을, 어머니가 형편없는 보수를 받으며 밭에서 지치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단번에 깨닫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남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들은 저마다 결심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이좋은 쌍둥이라도 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는 것과 다짐은 꽤 다르다. 이바나가 사회에 순응해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좀 더 낫게 꾸려가고자 애쓴다면 이반은 자신을 가난뱅이에 검은 피부로 태어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반항한다. 물론 거기에는 이반을 향한 뜻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영향을 준다.


거짓과 신화, 가식은 무너졌다. 그는 부당하고 독단적인 제국주의적 지배력 아래 보낸 세월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폐해들이 초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67쪽)

이 나라를 떠나야 해. 여긴 독창적인 것이라곤 창조된 적이 없고, 좋은 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는 유럽의 한 속국일 뿐이야. 유럽으로 가서 거기서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쳐야 해. 이반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유럽으로 가기를 바랐지만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더 나은 삶, 그가 과들루프와 말리에서 경험한 것보다 나은 삶의 조건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123쪽)


이반과 이바나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과들루프를 떠나 아프리카의 말리,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역경을 거쳐 본토인 프랑스에 도착한다. 이 두 남매는 정말로 가난을 벗어나고 자기들이 각자 결심했던 것처럼 엄마를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의 제목에서 그럴 수 없음을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슬픈 운명’이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반과 이바나 남매의 남다른 애정은 삶의 매고비마다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애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바나가 이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수록 이반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계속 휘말리고, 그럼으로써 이 둘의 운명은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을 때와는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두 아이는 서로 너무 좋아해서 해치지 못해요.” 그녀는 사랑이 반反-사랑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가 이렇게 노래했다는 걸,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죽이지.”(57쪽)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반과 이바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쌍둥이로 태어난 사이좋은 남매라지만 근친상간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뭇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 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인물들이 그런 관계로 등장하기도 해서 작가 마리즈 콩데는 이런 독특한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계속 질문하게 된다, 마리즈 콩데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전후로 일어난 산발적인 테러 사건 중 한 사건에 특히 주목했다. ‘아메디 쿨리발리’라는 말리 출신 테러리스트가 갓 임용된 마르티니크 출신의 스물여섯 살 여성 경찰관 ‘클라리사 장필립’을 파리 근교 몽루주에서 총으로 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극단주의 테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테러리스트에게 희생당한 검은 피부의 여성 경찰관-한 사람은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말리 출신이고 나머지 한 사람도 여전히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의 하나인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그리고 그 사고를 접한 마리즈 콩데 그 자신도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이 테러 사건에 얽힌 인물을 중심으로 상상을 더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똑같이 검은 피부를 지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로, 한 사람은 그런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경찰관으로 대치하다 프랑스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같은 아프리카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을 그들이 그렇게 대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반과 이바나처럼 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서로 다정히 지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났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나 삶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반이 깨뜨려버리고 싶던 그 사회에 나날이 더 순종적으로 변해간 이바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상을 향한 분노만을 품은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모해간 이반의 삶이 잘못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부조리한 삶을 잉태하게 한 세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판단은 이 책을 읽는 이들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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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누워서 폰으로 읽다가 제대로 읽으려고 맥북 켰다. 페이퍼만으로도 압도되는 어떤 지점이 있네요. 굉장히 강렬한 소설일 것 같고. 소설의 세계는 참 멋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에 접속하는 거 좀 두렵지만 언젠가는 꼭 ___++

잠자냥 2022-01-22 13:06   좋아요 1 | URL
누워서 맥북으로 읽지 ㅋㅋㅋㅋㅋㅋ

- 2022-01-22 13:48   좋아요 1 | URL
맥북을 눕히는 게 더 일이여 ㅋㅋㅋ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 산책길에 만난 냥도리 인문학
박순찬 그림, 박홍순 글 / 비아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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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보자마자 홀린듯이 사버렸다. 분명히 인문, 철학책인데 왜 나는 책을 보며 실실 웃고 있는가?! 냥도리들이 너모 귀여워서 미춰버리겠네! 냥이들이 넘나 귀여워서 글이 잘 눈에 안 들어올 지경. 이 책 속 띵언- “고양이를 버린 자들이여 지옥의 입구에서 모든 희망을 버려라” by 냥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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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19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트 뿅뿅 하는 책이로군요?
제목도 재밌는?
고.맙.소!!^^

잠자냥 2022-01-19 22:45   좋아요 4 | URL
냥 사랑에 눈멀어 별 다섯 주는 그런 책입니다. ㅋㅋㅋ

- 2022-01-20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냥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입에 미소 지어져 ㅋㅋㅋ

잠자냥 2022-01-20 10:21   좋아요 1 | URL
너모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ㅋ
 
모리츠 단편집 지만지 고전선집
모리츠 지그몬드 지음, 유진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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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화려한 것도, 이야기가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것도, 또 그렇다고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라거나 상징이 오묘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무릎을 칠 만큼 기막힌 것도 아닌, 그저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 있다. 담백하게 써내려갔는데 그것이 그대로 삶인 그런 글, 내게는 체호프의 단편들이 그렇다. 그런데 여기 읽고 있노라니 문득 체호프의 단편들을 읽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모리츠 지그몬드. 모리츠는 1879년에 헝가리 동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려 아홉 형제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가난에 찌든 생활을 했고, 이렇게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했던 삶은 그의 생애에 걸쳐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특히 그는 민요를 수집하고자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을 바탕 삼아 헝가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자연주의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모리츠 단편집》에도 그러한 경향의 작품들이 10편 실려 있다. 초기작부터 중기,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실려 있어 작가로서 변화의 과정을 엿볼 수도 있다. 처음 읽는 작가의 경우 첫인상이 중요하다. <유디트와 에스테르>가 내게는 모리츠를 첫인상을 결정짓는 작품이었는데 한 두 페이지 읽었는데도, 어쩐지 이 작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유디트’와 ‘에스테르’ 두 가정주부로, 두 사람은 친척관계이다. 화자는 유디트의 어린 아들로 이 소년의 눈으로 두 여인의 심리가 절묘하게 그려진다. 상류층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소년의 집안은 몰락을 겪어 이제는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생활을 하고 있다. 살던 곳을 떠나야만 했을 때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그래도 친척이 살고 있는 고장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이곳, 그러니까 ‘빈체’ 아저씨가 살고 있는 마을로 숨어든다. 그러나 이 선택은 소년은 물론 소년의 어머니인 유디트에게 큰 상처를 준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소년의 가족을 늘 시기하던 빈체 아저씨와 그의 아내 에스테르는 이제 몰락해 찾아온 그들을 종처럼 대한다. 특히 에스테르는 유디트를 더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마부 출신인데 비해 유디트는 집안사람들이 대부분 남작, 백작인 그야말로 진짜 귀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이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다. 자존심이 센 유디트는 유디트대로 아무리 궁핍해도 에스테르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어린 아들을 위해 비굴하게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우유 때문이다.

소년은 우유를 무척 좋아하는데, 가난한 이 집에는 우유를 얻을 젖소가 한 마리도 없다. 돈이 생길 때만 겨우 우유를 구할 수 있는데 그런 일도 극히 드물다. 그에 비해  에스테르의 집에는 젖소가 얼마나 많은가! 소년은 가난하면서도 예쁘고 자존심 센 엄마가 원망스럽다. 자존심을 버리고 동네 여인들과 말이라도 섞으면 우유를 얻기 쉬울 텐데,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소년은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어느 날, 빈체 아저씨네 집, 그러니까 에스테르에게 우유를 얻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엄마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년은 빈체 아저씨네 집에 갔다가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보고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우유를 얻지 못했다고 힘없이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유디트. 그런데 뜻밖에도 며칠 후 에스테르가 유디트의 집에 우유를 들고 찾아온다. 에스테르는 왜 제 발로 우유를 들고 찾아왔을까? 소년이 제 엄마에게 자신이 본 일을 고자질 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에스테르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별것 아닌 듯한 사건을 다룬 이 소박한 작품의 끝부분을 읽다가 유디트의 어떤 행동 때문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냈는데, 이윽고 그녀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또 그 이후의 또 다른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가난하고 몰락했어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또 그 자존심을 꺾어야 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고..... <유디트와 에스테르>는 이렇게 가난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는 두 사람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양 구유> 또한 가난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한 농부가 늙은 아내와 다 성장한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들들은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데 집안은 가난을 면치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최소한 한 끼는 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 가난한 집구석에도 아버지가 뭔가를 남겼는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유산을 나눌 시간이 다가온다. 죽은 아버지에게 숨겨둔 땅이라도 있는가 싶어 궁금증이 커질 즈음, 그 유산이라는 게 다 낡아빠진 배낭과 부츠 등등 낡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잡동사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헛웃음이 절로난다. 그러나 아들들을 비롯해 노파는 유산을 나누는 데 사뭇 진지하다. 누가 더 좋은 걸 갖고 갈까 싶어 전전긍긍이다. 형제 사이도, 어머니와 자식 사이도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잡동사니 유산 분배 앞에서는 자칫 잘못하다가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다. 태어나서 뭔가를 나눈다는 생소한 경험을 하면서 그들은 ‘소유’라는 개념 앞에서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 허름한 이 집 잡동사니 사이에서 자랐지만 물건을 선택하거나 어떤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 주변의 가족 공동체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가구와 옷 그리고 심지어는 멍에에 박을 녹슨 못 하나까지도 각자의 것으로 바뀌어버렸고, 지금까지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개인 소유라는 것이 극도로 끔찍한 고통과 저주를 동반한 채 그들 사이에 등장했으며 그들이 계속해서 뒤지고 있던 못쓰게 된 자질구레한 소지품 때문에 서로에게 칼을 들이댈 수도 있었다.(<양구유>, 《모리츠 단편집》, 43쪽)


노파는 한술 더 떠 아들들이 제발 각자 떠나주길 바라고 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식들 중 누군가가 그녀와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계속되는 가난을 혐오했고 어떻게든 이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만을 치를 떨며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머슴살이 하는 아들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편히 살기를 바라는 게 마땅한 일 아닌가 싶을 텐데, 사실 이 집안은 이제 주인집으로부터 쫓겨나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상태이다. 다행히 노파는 목사의 부인으로부터 목사관에 들어와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남은 평생을 살라고 제안을 받은 상태이다. 그 집안은 얼마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가! 노파는 아들들을 당장 떼어버리고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모님의 부엌으로 가기만을 고대’(38쪽)한다. 노파의 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작품에는 그동안 너무나 빈곤하게 살아서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득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탐욕을 부리는 인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는데, 이 노파와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얼마나 가난한 삶이 고되기에 저렇게까지 할까 싶어서 한 편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린 작품은 그밖에도 여럿 있다. 버림받은 고아가 세상으로부터 냉대받는 현실을 담담히 묘사한 <아르바츠커>, 이웃에 동냥하며 떠돌이 삶을 사는 한 거짓말쟁이 소년의 이야기인 <거짓말쟁이>, 마찬가지로 부모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끝내 궁핍으로 말미암아 몸을 팔아야 할 상황까지 내몰리는 소녀의 이야기 <치베> 등등 이 책 속 주인공들은 거의가 가난한 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그들의 삶이 척박하고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소녀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차게 주장하기도 하며(‘치베’), 비록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꼬마이지만 그 거짓말은 늘 남을 웃기거나  상대를 위하려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거짓말쟁이’). 이렇게 순수함과 선함을 잃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 비해 가진 자들의 행태는 ‘선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도리어 무엇을 위한 선함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픈 아이를 미신만 믿고 방치한다고 나무라는 귀족 부인의 모습(‘돼지치기의 가장 더러운 셔츠’)이나, 딸의 가난한 학급 친구에게 매일 밥을 먹여주는 대신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일을 도와야한다는 조건을 달고, 장작을 패러 온 그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박사의 모습(‘이해할 수 없는 일’) 등을 통해 작가는 제 아무리 선한 의도로 가진 자가 없는 사람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아주 잘했다. 그럼 아빠 성함은 어떻게 되니?”
“아빠요.”
펀니커가 대답했다.
“넌 그렇게 부르겠지. 하지만 남들은 어떻게 부르니?”
“당신이요.”
펀니거카 말했다.
“아빠의 성함을 모르니? 버르거 야노시라든가? 아니면 코바치 미하이? 뭔가 다른 이름이 있을 게다. 자! 그 다른 이름이 뭐지?”
“모르겠어요.”
“에이, 네 아빠는 아직 그것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나 보구나....”
“사람들이 널 뭐라고 부르지?”
자기의 딸을 바라보았다.
“벌리커요.”
벌리커가 대답했다.
“그래그래, 그럼 사람들이 날 뭐라고 부르지?”
“아빠라고요.”
“아이, 바보! 멍텅구리!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부르냐고?” (<이해할 수 없는 일>, 《모리츠 단편집》, 91쪽)


밥을 먹으러 온 딸의 친구에게 박사는 그 아이 아버지의 성함을 묻는데, 천진한 소녀의 대답은 ‘아빠’이다. 이 장면에서는 크게 웃음이 나온다. 이 책에 실린 10편 모두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처참한 삶을 그리고 있어 전체 분위기는 어둡지만 그런 중에도 위의 장면처럼 큭큭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이 가진 자나 귀족 앞에서 마냥 비굴하게 굴지 않고 자기 할 말은 확실히 하는 장면들이 많아 그 모습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비록 방법이 조금 어긋나 그 선의의 빛이 바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속의 가진 자들 또한 저마다 나름대로 선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 이 단편집에서는 진정한 악인은 만나 볼 수 없다. 그런 점 또한 《모리츠 단편집》의 매력이 아닐까. 결국 작가는 인간의 선함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구나 싶어 책을 내려놓을 때쯤이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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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9 10: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잠자냥님이 헝가리 체호프라고 알려주셔서 이 책은 새책으로 바로 구매했습니다~! 오늘 도착한다고 하던데 완전완전 기대됩니다. 별이 다섯개라니~! (리뷰는 실눈 뜨고 읽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2-01-19 10:45   좋아요 4 | URL
책 읽기 전 실눈 뜨고 리뷰 읽는 거 공감입니다. ㅋㅋㅋ 저도 그렇거든요.
새파랑님이 읽으실 때도 체호프스러움이 느껴지길 바라겠습니다!

다락방 2022-01-19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읽기 전이라도 실눈 뜨고 읽지 않고 크게 눈 뜨고 읽습니다. 그러다 스포를 만나면 그도 다 어쩔 수 없는 일.
저도 이 책 사겠습니다. (읽겠습니다를 못쓰는 이 마음..)

잠자냥 2022-01-19 12:28   좋아요 2 | URL
와, 역시 담대한 다부장~ 전 제가 읽으려고 마음 먹은 책 (특히 문학은) 줄거리 부분은 거의 넘어가는 편이에요.

다락방 2022-01-19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이지수는 얼마 안되는데 책값은 왜이래요? ㅜㅜ

잠자냥 2022-01-19 12:27   좋아요 3 | URL
ㅋㅋㅋ 지만지 책 가격 정말 사악하죠. ㅎㅎㅎ ㅠㅠ

잠자냥 2022-01-19 12:32   좋아요 3 | URL
지만지책은 적립금이 아닌 내 돈 다주고 사려면 교보에서 사세요. 그나마 교보가 10%로 할인 가장 많이 함... 예스24는 할인 0% 알라딘은 5%입니다.

아니면 전자책을 노리는 방법도 있는데, 이 책은 찾아보니 교보에서 전자책 출간되어서.... 최종 10,660원에 살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1-19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헝가리 체호프!
가난한 삶 속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
왠지 알것 같음요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 생각나요

잠자냥 2022-01-19 21:59   좋아요 2 | URL
오호, 저는 그 책은 못 읽었는데 궁금해지네요.

mini74 2022-02-10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냥님 ~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리옵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도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2-10 1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적립금 잔고는 마르지 않는군요~!! 축하드립니다 ^^

독서괭 2022-02-10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체호프를 안 읽어서 댓글을 못 달았던 이 리뷰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