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ex Signs - 여성을 위한 심리점성학
주디스 베넷 지음, 신성림 옮김 / 이프(if)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중에 소설은 전혀 안 읽는 사람도 많다. 자기계발서, 실용서, 인문 경영학 저서, 외국어 학습서 등등... 처음에는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책만 계속 읽을 수 있단 말인지 놀랐지만 그들도 나에게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역시 세상은 다양한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취향을 무의식적으로 약간 폄하했던 나를 반성했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더 잘(?) 나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협소한 관찰에서 나온 의견입니다.)
나는 사실 영양가 없는 소설만 읽는 게 아니다. 더 영양가 없다는 만화책도 읽고 가끔 한 두 편만 겨우 읽을 수 있는 시도 산다. 내가 사는 책 중에 가장 실용적인 분야는 잡지와 요리서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꽂히면 미친 듯이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책이 있다. 바로 심리학서. 그리고 점성학, 사주같은 책들...
고등학교 3년을 미션 스쿨에서 보내고 졸업 후에도 힘들 때마다 교회를 가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일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하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늘 포기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하루에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게 불행도 슬픔도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해 신께도 의지할 마음을 쉬이 접고 마는 문제가 더 근본적이지만.
종교도 잘 갖지 못하고 숫자 4가 재수가 없다느니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 따위의 미신을 잘 믿지 않지만 나는 희안하게 점성술을 잘 믿는다. 사주도 조금. 혈액형은 진짜 어쩌다 한 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태어날 시간이나 온 몸을 돌아다니는 피 유형이 내 인생을 뭘 결정지어준다는 건지 연관성 따위는 없지만 사람이 그리 팍팍하게 살면 쓰나.
실제로 내 독서 사이클을 보면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이런 희안한 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몇 년이나 전에 절판이 되었지만 요즘은 중고시장의 힘으로 결국 손에 넣은 책. 전에 학교 여성학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보고 몇 달전에 결국 구매했다. 시기적으로 많이 힘들었었고 또 역시나 이런 책에서 자그마한 구원이라도 얻어 볼까해서 열심히 찾았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처음에 느꼈던 감동(?)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요 몇 년 사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인간이 되었거나 아니면 좀 더 시니컬한 인간이 되었거나. 애시당초 스스로 찾아야할 자기 정체성을 별자리에 기대보려는 알량한 생각도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점성학 책 중에 가장 애정하는 책이다. 의외로. 의외로! 저자가 심리 상담사를 꽤 오랜기간 하면서 여성들의 고충을 듣고 나름대로의 점성차트를 만들어 분석한 내용이라 꼭 자기의 별자리가 아니더라도 딱 맞는 유형이 있다. 10년 전의 혈액형 심리학보다 오늘의 혈액형 심리학이 더 맞는 것처럼 나름 점성학 같은 것도 오랜 관찰의 결과, 심지어 심층적인 관찰의 통계라 맞는 부분이 많다.
뭐 이런 것들이 무조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믿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사주 시장이 엄청나게 큰 것이 그들이 일종의 정신 상담사 역할까지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점을 보러 가겠다하는 건 위로를 받고 싶다는 희망의 표시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별자리도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가 변하듯이 자신의 흐름도 변하고, 태양의 위치를 중심으로 변하기 때문에 꼭 자신의 별자리만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35가지의 특성을 보고 자신과 가장 맞다고 생각되면 지금 자신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제목이 Sex Sign인 만큼 자기의 욕망을 확인하고 사랑을 주고 받는 일, 인간관계를 정립하고 분노를 이해하는 데 이용하면 좋다. 다만 여자에 한해. 그러고 보니 왜 남자를 위한 심리 점성학 책은 없는 것일까... 아마 큰 고객이 되기 힘들어서?
나는 원래 게자리인데, 뭐 아주 틀린 점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게자리에서 제시하는 그리 (남의 평가로)편안한 여성은 아니므로 역시 건너 뛰기로 하고 다른 것을 찾았다. 읽다보면 별자리 중에 서로 비슷한 유형도 있고 읽다보면 다른 쪽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 책을 읽을 때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정확히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그게 맞는 것을 읽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여성이 되고 싶다고 굳이 무리하며 생각을 맞출 필요가 없다.
다 들어 낼 수는 없지만 변덕스러운, 일관성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등등의 키워드에서 나는 쌍둥이자리에 가깝다고 확신했다. 요즘 팟 캐스트에서 애니어그램에 관련한 프로그램을 듣는데 거기서도 7 유형이 나왔다. 7 유형은 재미를 찾아 약간 뭐든 뛰어드는 형이라고 하는데, 여기 쌍둥이자리에서도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이 '뛰어든다'는 말이라고.
친구들도 새로운 것에 대한 나의 초기에만 바짝 타오르는 열정에 질린 상태이다. 다만 쌍둥이자리 여성은 대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행동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하는데... 과연...
안 그래도 쌍둥이자리 여성이 배워야 할 점이 '권태'라고 하는데 정말 참고해야겠다. 또 공감하려는 능력을 키우는 법도 번호까지 매겨서 세세하게 알려주는 주디스 언니 짱짱. 하지만 슬프게도 저자는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이 책은 주디스 베넷의 사후에 친구, 동료의 헌신으로 이룩한 책이다. 평소 이렇게 사람을 잘 관찰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느낌을 드는 말투를 구사하는 그녀에게 이런 멋진 친구들이 없을리 없지.
마지막 장에 제시하는 '우주적 여성'은 모든 별자리를 가진 완결된 여성이다. 이 책이 점성학보다는 페미니즘에 가깝다는 것은 바로 이런 궁극적인 따뜻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심리점성학 책을 찾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해주는 따뜻한 위로와 그럼에도 따끔하게 행복해지는 길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일도 받아들어야 한다. 결국에는 우주적 여성이 목표가 되어야겠지.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행복해질 필요만 있을 뿐.
*사족: 희안하게도 속 시원하게 뭔가 확정적인 답을 듣고 싶다가도 사주가가 즉답을 하면 바로 선무당이라고 확 반감이 생기는 건 왜일까. 역시 한 길 사람 속은 참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