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 스페셜 에디션 콤보팩 (2disc: BD+DVD)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크 피기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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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를 떠나는 소회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짧은 사람의 인생에 도시를 옮긴다는 것은 어쩌면 어느 시대가 끝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떠나기 싫어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원하게 볼 일을 본 것처럼 개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떠나려는 곳에서 큰 드라마가 있기라도 한다면 짧게 감상을 말하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 라스베가스를 떠나려는 여자가 있다. 한 때 머물렀던 곳을 떠나려는 여자는 담담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여자는 창녀다. 아마도 LA에서 배우를 하려다 실패하고 제대로 안 풀린 여자는 라스베가스에 와서 비극적이게도 이민자 출신의 악덕 포주에게 걸려 밤의 길거리에서 자신의 성을 흥정하는 생활을 억지로 강요당하고 있다. 폭력과 성이 얽힌 이 관계에서도 여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그를 옹호한다. 허벅지를 긁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긁지 않더군요, 라고.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난 밤은 남자가 자기가 살던 도시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라스베가스로 온 첫날 밤이었다. 그들은 자주 부딪쳤고 남자는 여자를 잠시동안 샀다. 술병이 늘어진 허름한 모텔에서 둘은 밤을 함께 보낸다. 그저 껴안고 이야기만 하면서. 술병에 둘러쌓인 남자는 술에 취해 있는 동안 호방하고 매력적으로 굴었다. 물론 문제도 일으켰지만. 남자는 신나게 술을 마신다. 그가 라스베가스로 온 이유는 의사에게 가보라는 동료와 상사의 권유를 완전히 무시하며 직장까지 잃게 되는 구제불능의 알콜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 술을 파는 사람까지 술을 안 팔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의 알콜중독증은 꽤 오래된 것이어서 아내와 아이마저 떠나갔는데 그는 술을 마셔서 이혼을 당한건지, 이혼을 당해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 판단도 잘 되지 않는다. 그가 라스베가스로 향한 이유도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성욕보다 수면욕을 느끼는 상대가 같이 살기 적합한 상대라고 했던가. 그들은 서로에게 깊이 빠졌고 얼마 남지 않은 끝을 알면서도 손을 잡는다. 다행인지 악덕 포주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여자는 그의 손에서 풀려난다. 여자는 중증 술주정뱅이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는 딱 하나만 부탁한다. 자기한테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자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휴대용 술병까지 선물로 주면서.


남자의 잔고는 금방 떨어졌다. 남자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벌벌 떨리는 상황에서 생계를 책임질 쪽은 바로 여자. 하지만 할 줄 아는 일이 있어야지. 이제는 라스베가스에 남을 이유도 생겼으나 여자의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은 똑같다. 여자는 포주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기꺼이 몸을 판다. (쉣!!) 구제불능 알콜의존증의 남자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킨다. 하루종일 술에 절어 있어 데이트를 즐기다 난동을 피워서 출입금지 당한다. 이제 라스베가스에서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그들은 어느 곳에 가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점점 지친 여자는 결국 그에게 의사에게 가볼 것을 권유한다. 그는 실망한다. 역시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닌지 악세서리를 선물하면서 여자 직업에 대한 잔인한 말까지 한다. 드럽게 못난 새끼! 그는 여자에게 보란듯이 다른 여자를 사기까지 하자 여자는 그를 집에서 쫓아낸다. 계속 거리를 배회하며 생활하는 여자. 급기야 위험한 일까지 당하고 집주인에게 쫓겨나기까지 한다. 그런 여자에게 밤늦게 전화가 걸려온다. 말없는 상대방. 여자는 남자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마지막까지 보드카 술병을 놓지 못하는 남자는 자신에게 온 천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가장 흔한 술버릇인 했던 말 반복하기처럼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고 구제불능의 남자는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여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그를 사랑했노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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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어느 영화 평론가가 나와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소개하면서 아주 아름다운 영화라고 했는데, 역시나 남자였다. 특히 평론가에게는 여자가 남자에게 술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멋있었다면서 목을 끓였다. 크-


"비록 구제불능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해주는게 진짜 사랑은 아닌지... 사랑한다는 말보다 너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어쩌고 저쩌고..." (당연히 기억의 왜곡이 있음)


감성잡지가 넘치던 시절에 10대를 보냈던 나는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박혔다.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지~ 같은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막상 이 영화를 못봤다. 시놉시스만 봐도 무서워서. 그래서 이 영화는 멋있는 제목과 스팅의 쓸씁한 목소리와 더불어 내 환상 속에서 더 멋있게 부풀고 있었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어,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공짜 영화로 보게 된 영화.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울어버렸다. 당연히 알콜중독자 시끼 때문에 운 게 아니라 여자의 입장에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두 영혼의 흔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지만 짧아서 아름다운 이야기다. 


영화 포스터에는 "사랑이 짧으면 슬픔은 길어진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과연.... 


과연 이게 사랑일까, 싶은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연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같다. 닮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한두달의 짧은 시간 동안 행복했다는 게 중요할 뿐. 그리고 여자에게는 팍팍한 인생에 달콤한 경험이 아주아주 필요한 것 뿐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기가 편한 식으로 상대방을 변하게 하려는 폭력도 동의가 힘들지만 이미 너무나 망가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정말 짧아서 가능한 일은 아닐까? 알콜에 절어서 폭주하는 남자는 삶이 더 길어졌으면 그 난동이 다 여자에게 향할 것이 너무도 뻔하잖아. 언제나 인생은 길다는 게 문젠데.


아마 스무살 때 봤으면 그저 아름다운 숭고한 사랑 얘기라고 느꼈을 것 같은데(아니면 아무것도 못 느끼지만 스스로 세뇌했겠지) 서른이 되서 보니.. 여자에게 아마 저런 사랑이 필요했을 거라는 연민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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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 씨의 일요일 그레고 씨의 드로잉 노트 1
요셉 요한슨.조성민 지음 / 위고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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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이웃은 아시겠지만 나는 요즘 그림 일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소모임에서 하는 거라 공식적으로는 끝났지만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두뇌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한가지에 꽂히면 계속 그것만 해야되어 요즘은 그 재밌는 추리소설도 잠시 쉬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 예전부터 모아온 그림 관련 책을 뒤적거리는 재미에 빠져있다.

누누히 대니 그레고리를 좋아한다고 밝혔지만 이 조성민도 완전 짱!
전공자(아마도?) 특유의 연필선과 내공이 있다. 유럽식 건물과 주방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역시 또 다시 유럽, 유우럽을 가야한다는 충동질을 들게 한다. 예쁜 피사체를 나도 이렇게 담아 보고 싶다는 느낌과 그냥 잘생긴 오빠들을 다시 보고 싶은 소녀의 마음이 요동친다..ㅋㅋ

언어 공부를 하려면 바로 책부터 구비해야하고 새 공책을 사야하는 습관성 작심삼일 언어학습자로서 유럽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은 마음이 크다. 유투브만 틀어도 외국어를 꽁으로 가르쳐주는 이런 오픈 소스 시대에 하드웨어를 구비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네이버에만 쳐도 유럽의 고성이 나오고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버젓이 잘 나오는데도 괜히 직접 가고 싶다. (실상은 가서 사진 찍기 바쁠거면서...아니면 소매치기 피하느라 피해의식 만땅의 여행자가 될수도 있지...)

하지만 역시 책의 미덕은 내용이 잘 드러나는 파격적인 구도와 불독 요나스의 씹덕 포인트, 그리고 유우머다. 유머러스한 그림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진정 고수!

저자의 다음책이 나오면 바로 살거다.

결론은.... 유럽을, 유럽을 가고 싶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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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06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습관성 작심삼일자, 저도요.
뽈쥐님 그림일기 그리는데는 시간 많이 걸리지만 나중에 모이면 꽤 좋은 기록 될 수도 있을거예요. 자주 보러 올게요. 좋은밤되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7-02-07 09:21   좋아요 1 | URL
서니님께서 응원을 해주셔서 신나는 마음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즐거워요. 서니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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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http://m.nocutnews.co.kr/news/4673561
[카드뉴스] 한밤준 여직원에 카톡 보낸 낙하산 사장


글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말이 진짜인지 늘 의문이긴 했지만 내가 이 시끼의 책을 읽고 진짜 쌍욕을 했다. ㅆ벌 이런 개썅샹바같은 ㅆ끼야?! 오십프로로 샀던 나의 손목을 자르고 싶은 최초의 책이었음.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하던 놈들 중에도 특히나 입에 걸레를 물었나.. 수준이었는데 역시 남들을 강력하게 교화시키려는 놈들 치고 정상적인 인간 하나 없다니까. 제발 니들 인생이나 잘 사세요. 깜냥도 안 되는 새끼가 그냥 인기도 없는 밴드에서 대장 노릇만 하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왜 들어갔어 것도 사장씩이나. 이런 놈들이 또 감투는 졸라 밝혀요 그릇도 안 되는 것들이.

성추행을 하든 밑에 사람들을 들들 볶아서 반이 나가 떨어져도 옷만 벗으면 끝이구나.

요즘 세상 시끌해서 이런 놈들은 뭐 주목도 못 받겠지만 혹시라도 책 사시려거든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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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1-1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김형태가 그 김형태였습니까 ? 맙소사 !!! 원래 저도 환신해 밴드 존나 욕했었는데.. 역시나... 그렇군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11-16 14:38   좋아요 0 | URL
네 그 김형태가 그 김형태 맞습니다. 이거 뭐 하는 시끼야? 했는데... 역시나... 이런 시끼였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1-16 16:26   좋아요 0 | URL
황신혜 밴드 사람들이 좋다고 지랄할 때 저는 황신혜 밴드 꼰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역시..... 제 버릇 버리지 못하는군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11-16 16:56   좋아요 0 | URL
황신혜 밴드가 유명한가요..? 사실 전 노래도 안 들어봐서... 언제 서평에서 대차게 까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 이런 계기를 만들어주네요. 문제는 이 인간이 별로 안 유명해서 타격도 별로 없겠네요..쩝

곰곰생각하는발 2016-11-1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더그라운드 그룹이었는데 사실.. 좀 뽕끼가 강렬해서 주류에 포섭되지못한 딴따라 정도요 ?
 


오래 전에 없어진 출판사의 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중고책 시장의 매력이기도 하다.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케잌을 굽는 여자]라는 책이 줄거리가 잠깐 소개되었는데 너무 읽어보고 싶어서 막 찾다가 국내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좌절한 책인데 우연히 기적적으로 한 분이 중고책으로 팔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즉각 구매를 했다. 알고보니 1993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온 책이었다.


지금에 보면 좀 웃기긴한데 큰 케이크 위에 실로 데코레이션을 한 표지디자인은 꽤 신경을 쓴 느낌이다. '그것은' '원한다'와 같은 너무 솔직한 번역이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페이지가 하나 바뀌는 등의 엄청난 인쇄 실수는 있었지만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출판사에 항의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된다. 요즘 번역가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을,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원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 책을 다 읽는데 방해를 했지만 내가 읽어보고 싶었던 그 장면이 거의 끝에 나와서 오랜만에 꾸역꾸역 다 읽었다.


[케잌을 굽는 여자]의 원제는 [The edible woman]이다.

원서 표지를 보니 개인적으로 3번째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분명히 줄거리만 보면 굉장히 도발적인 이야기 같았는데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1960년에 이런 얘기가 나오다니 하면서 놀라긴 하는데... 솔직히 요즘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캐나다 사정은 어떤지야 모르겠지만 지금 여자들도 직장을 갖는 것은 일반적이긴 해도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일선에서 멀어지는 일도 많고, 사실 일자리를 갖는 것도 가계의 수입이 너무 적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시와 비교에서 크게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을지 여러모로 씁쓸한 책이었다. 아무튼 여성들에게 가하는 사회적인 억업에 대한 목소리를 캐나다에서 최초로 냈다고 하는데서(뭐 근데 세계적으로도 꽤 빠른 것이 아닐지.) 매우 훌륭하고 용감한 작품이라 하겠다.


너무 잘된 번역을 읽어도 그렇고 이상한 번역을 읽어도 그렇고 원서를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 중에서는 원서 자체가 만연체로 쓰는 경우가 많더라. 가독성 떨어지는 [케잌 굽는 여자]를 읽고보니 딱히 원서를 확인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일단 내용 자체가 그닥 재미는... 없다.


대학을 졸업해서 시장조사회사에서 일하는 마리안은 잘생기고 미래가 창창해보이는 피터와 약혼한 상태다. 별 일이 없으면 그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회사 동료와 상사는 곧 마리안이 그만둘 것을 예상하고 미묘한 질투와 개운하지 않은 축하를 보낸다. 반면 마리안과 같이 사는 애인슬리는 야한 옷차림과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아래층의 보수적인 주인집 여자와 자꾸 트러블을 일으킨다. 심지어 딱히 남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애인슬리는 마리안의 결혼 계획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애인슬리는 매우 트인 인물로 결혼 제도를 부정하지만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를 생각을 하고 계획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지금 생각에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인물. 요즘도 전문직 여자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을 감행한다.


"오, 설명하기도 지겨운 일이야. 왜 그런 속물적인 말을 사용하니? 출산은 합법적인 거야. 그렇지 않니? 넌 고상한 체하는데, 마리안, 그런 게 이 사회를 망치는 태도라구."(p.66)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기 애들에게 물려줄 형질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아마 맹목적으로 결혼에 뛰어들지는 않을 거야. 인종은 퇴하하고 있고 그건 모두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그들의 저능한 유전자를 물려주기 때문이야. 그리고 의학은 과거의 방식처럼 유전인자들을 있는 그대로 선택하려고는 하지 않지."(p.67-68)  


마리안은 회사생활과 애인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런 감정으로 노이로제에 걸린 마리안은 점점 몸에서 음식을 거부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조사차로 여러 집을 방문하던 마리안은 던컨이라는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마른 영문학 대학원생 던컨을 만난다. 던컨은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부류인데 이 결혼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마리안은 그에게 이상하게 빠져들고 만다. 아마 그가 던진 이런 말 때문이 아닐까.


"이봐요, 왜 이같은 하찮은 일을 하죠? 살찐 너저분한 부인네들이나 그런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요."

"오," 나는 고위직-아마 더 고급인- 인 시리제 나의 업무를 설명함으로써 내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의도는 없이 최대한 위엄을 갖추고 말했다.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죠. 요즘 학사 학위쯤으로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p.85)  


인용할 말 중에 우성학적인 시선이나 직업의 귀천을 구분해 놓은 것이나 요즘 시선으로는 뜨악할만한 내용도 있지만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결혼에 몸을 던지려는 처지나 자유분방한 친구 옆에 살면서 뭔가 울컥하는 상황이라면 도덕적인 기준을 넘어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얘기들이다.


결국 도피처로 삼아 보려고 하던 던컨은 복선대로 믿을만한 인간은 아니었고..(내 기준으론 가부장적인 피터보다 얘가 완전 개쓰레기) 싸구려 모텔에서 보낸 비루한 밤을 마지막으로 마리안은 아랫집 여자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욕실청소를 빼먹고 전화로 피터를 집으로 초대한다. 마리안은 갑자기 케이크를 만들 재료를 구입하러 슈퍼에 간다. 그리고 분주하게 케이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는 사람, 여자의 모양으로 성형을 하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하게 아이싱을 마친 마리안의 케이크는 마리안을 보고 있었고 피터가 들어왔다. 


"나를 당신에게 동화시키려고 했죠. 하지만 난 당신에게 줄 대체품을 만들었어요. 당신이 훨씬 더 좋아할 것으로요. 이것이 당신이 내내 정말로 원했던 것이에요. 그렇지 않은가요? 포크를 드리죠."(p.400)


마침내 마리안은 음식을 떠먹을 수 있었고 피터는 당황해서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때마침 온 애인슬리도 그런 기괴한 장면을 보고 아래층 여자같은 표정을 짓는다. 진짜 애아빠 대신 같이 양육해줄 남자를 찾은 애인슬리가 떠난 자리를 청소하며 던컨을 부른다. 같이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


"아마 피터가 나를 파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내가 그를 파멸시키던가요. 또는 우리 둘 다 서로를 파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죠. 그게 어쨌다는 말이죠? 무슨 문제가 돼요? 당신은 이제 당신의 실체를 되찾은 거예요. 먹혀지는 자에서 먹는 자가 된 거죠." (p.410)


물론 내 기준 나쁜 남자인 던컨은 남은 초콜릿까지 긁어먹고 맛있다고 말한다.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대학나온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논평과 여자의 돌발 행동에 관해 참지 못하는 남자들의 인식같은 것처럼 요즘에 와서는 어느 정도 개선된 내용도 있어서 조금 의아한 부분도 있지만 당시에는 꽤 도발적인 시선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앞의 편집부에서 서문에 쓴 내용 중에는 던컨을 꽤 옹호하는 것 같은 시선이 있어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같은 대학원생 친구들보다는 현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는 깨인 남자로 나오긴 하지만 던컨은 그냥 그런 말로 여자를 자신의 유희에 이용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말 잘하는 이기적인 놈인데...? 너무 내 기준인가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책임감없는 피터보다 더 쓰레기인 것 같다.


93년 당시에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낸 출판사답게 편집부의 생각도 깨어있긴 하지만 2000년도에 오니 또 시선이 달라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수동적이고 '진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도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여자의 형상을 한 케이크를 구워서 먹인다'는 줄거리를 보고 에로틱한 내용인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약간의 실망(?)도 있었지만 사실 누구보다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먹으면서 거식증을 고치는 마리안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 케이크였을 것이다. 앞뒤가 안 보이는 답답한 상황에 어쨌든 살아갈 수 있는 잠깐의 따뜻함을 주는 음식의 존재는 소중하니까. 특히 여자의 모양으로 만들어 직접 입으로 밀어넣는 자학같은 행위가 어느 순간에는 필요하니까. 자학을 하면서 땅을 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풀려본 사람이 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떤 사람에게는 자학이라기보다는 여자 모양 케이크를 먹으면서 자신을 채운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국내판 [The edible woman]. 영드 스킨스에서도 인용이 된 모양인데 여기서 다시 번역이 된다면 잘 팔릴지는 미지수.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거의 초창기 작품이라 그런지 좀 전위적인(?) 느낌이 난다. 번역의 탓일 수도 있지만 다시 매끄럽게 번역된다면 나는 다시 읽어볼 의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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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리뷰라도 좀 찾아보려고 책 검색을 했는데 이 출판사인 '새와 물고기'의 당시 사장이었던 사람이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2010년 뉴웨이브 문학상을 탄 [굿바이,욘더](김장환)라는데 당시엔 국내에서 나오기 어려운 작품을 내서 나름 마니아가 있었던 출판사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지금은 뉴질랜드로 이민가서 조용히 저술활동을 하는 중이라는데 관심있는 분야면 읽어봐도 좋을 듯. 리뷰를 보니 평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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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걸 뽈쥐님이... ㅎㅎㅎ 저는 이 책이 도서관 보존서고에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빌려서 읽었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번역이라서 읽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인상적인 장면의 결말은 잊지 않았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었는데, 몇 년 전에 앨리스 먼로가 받았기 때문에 캐나다 출신 작가의 수상 소식은 몇 년 간 어려울 듯합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6-10-11 13:54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도 검색되는 리뷰가 싸이러스님의 것이 맞았군요!! 파격적인 결말에다 막상 전 여잔데도 읽고나니 별 할 말이 없었는데 싸이러스님의 리뷰는 정말 알차더라구요.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었어요ㅎㅎ 번역은 역시 저만 읽기 힘든게 아니었군요. 재발행될지 모르지만 다음 번에는 훨씬 매끄러운 번역이 되면 좋겠네요.ㅠㅠ
치, 노벨상이면 국적 상관없이 잘 쓰는 사람한테 줘야되는 게 아니냐고 외치고 싶지만... 뭐 저도 이제 그렇게 순진한 사람은 아니라서 수상은 힘들 거라는데 한 표 던집니다.^^

 

작가의 개인사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긴 하지만 모르면 몰라도 알고 나서는 영향을 안 받기는 힘든 일이다. 특히 작가의 인생이 특별히 기구하거나 괴벽이 있는 경우에는 머리에 한 번 박히면 읽는 동안 거기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의외로 작품이 밝거나 엽기적이라면 모르겠는데 대체로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묘하게 쓴 사람의 인생처럼 음울하거나 슬프게 담담한 경우가 많다.


의외로 많이 회자되는 작가라 오프라인 중고샵에 들른 김에 사온 한 권. 얇아서 운동하고 돌아오는 30분 걸리는 길에 가뿐이 들고 오기에 부담이 없었다. 엣된 얼굴에 담배를 들고 있어서 그런가(나는 왜 이딴 편견을 갖고 있는가)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 나는 표지사진은 구글에 작가 이름을 치면 흔히 떠돌아 다니는 대표 사진인 듯 했다. 담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듯. 


요즘 미드에서 담배를 줄줄이 펴대면 완전 루져 취급을 하는 분위기던데 환갑인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 때 왔던 미국인 원어민 교사가 맞담배를 폈다는 얘기를 골백번 하는 걸 보면 예전에는 담배를 오히려 권하기도 했다는 사회 분위기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참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못 참는 이 나라 문화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담배피는 여자를 왠지 자유로운 성향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 편견쟁이인가 보다.


번역은 생전에 영문번역과 에세이로도 유명했던 장영희 교수가 해서 그런지 거슬리는 문장 하나 없이 깔끔하다. 원문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역자 장영희도 꽤 오랜기간 암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암으로 작고한 교수로 알려진 사람이라 더욱 절절한 번역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뒤에 딸린 작가 연보에 매컬러스는 어릴 때는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았다가 류머티즘이 생기고 뇌졸중으로 서른살부터 휠체어 생활을 시작해서 결국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평생 죽음이 곁에 따라다리는 (쉽게 단정하기 미안하지만)암울한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잔인한 사랑의 속성과 정신적인 고립을 하는 외로운 인생을 자주 그린 작가답게 슬픈 개인사를 '인간 승리'로 극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고 작가에 입문한 사건도 지하철에서 아버지가 마련해 준 음대 등록금을 잃어버려서 였다고 한다. 게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난 결혼 생활은 질투, 알코올 중독, 외도, 우울증, 자살기도로 얼룩지기도 했다. 나는 '인간 승리' 스토리에 딱히 공감을 못 하는 터라 힘든 상황에 엄청난 에너지를 내면서 극복하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절망에 빠진 삶을 사는 사람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어 글에서 힘이 느껴진다.


제목부터 슬픈 [슬픈 카페의 노래]는 슬픈 이야기다. 사랑이 떠나가고 가슴에 멍이 드는 이야기. 근데 하필 그게 일생일대의 사랑이라 다음부터는 밥도 잘 못 먹는 이야기. 90년대 노래를 자주 듣는데 실컷 잘 따라 부르다가 가끔 너무 절절한 가사에 '뭐 이리 청승맞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요즘의 신나는 노래와 비교하면 로미오와 줄리엣, 모든 세상을 저주하는 중2병 환자들 아닌지 의심스러운 가사도 있다. 유행가는 현학적인 것보다 청승맞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가끔은 청승모드 뚝뚝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겨울 때가 있다. 타인의 슬픔을 쉽게 생각하는 일은 나쁘지만 '내 사랑은 정말 최고였는데...'같은 류의 착각은 들어주기가 괴롭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전에 살던 아파트에 좀 선하게(?) 미친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엄마가 반상회에서 들은 소문을 듣고 보니 그 언니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살집이 좀 있어도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꾸미면 예쁘장한 얼굴이란 것도 느꼈는데 사실은 이대까지 나온 여자에 직업도 좋은 편이었는데 첫사랑에 크게 데이고 나서 정신을 확 놔버렸다고 한다.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한 얘기도 아니었을테니 소문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예쁘장한 외형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사랑해야 그 사람을 잃으면 미치기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헤어지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된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미스' 어밀리어는 약간 사시에 기골이 장대한 잘생긴 여자다. 여장부다운 외모와 같이 물건을 잘 만드는 재주도 있었고 사업수완도 좋았다. 꽤 재산을 축적한 그녀였지만 손해보는 걸 참을 수 없어하는 성격에 걸핏하면 소송을 거는 게 취미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을 마을 사람 대부분은 호감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 스스로 사람 다루는 걸 어려워 했지만 몇 선량한 사람들은 그녀의 불우한 가정사를 알고 이해해주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을 '꼬마'라고 불러주던 아버지도 그리 오래 살지 못했던 거였다. 어느 날 라이먼이라는 꼽추가 미스 어밀리어의 가게에 흘러들어 왔고 모두들 미스 어밀리어가 그를 흠씬 두들겨 패서 쫓겨내리라 예상했지만 그는 바로 다음 날 카페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꼽추는 보기에 나이를 가늠할 수도 없었고 호감가는 외모도 아닌데다 별로 공손하거나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아이처럼 즉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재주라나. 


작은 마을에 생긴 카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기 충분했고 하나의 문화 시설처럼 되었다. 꼽추는 허풍이 심하고 사람을 사정없이 캐고다니면서 싸움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그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여전히 딱딱하고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어도 카페같은 것을 운영하게 된 걸 보면 그는 보통 사람 이상이었다. 꼽추는 마을에서 미스 어밀리어를 그냥 '어밀리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그녀가 결혼했던 열흘간의 일만 아니면 그에게 모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면 좋았는데 불행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미스 어밀리어의 전 남편이 마을을 찾아온 것이다. 그를 반기지 않는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그랬다. 심지어 그의 동생과 그를 사랑으로 키워준 부인까지. 마빈 메이시는 악명높은 범죄자였고 미스 어밀리어에게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지독히도 나쁜 놈이었다. 그에게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런 환경이 그의 인생에 나쁘게 발현된 경우였다. 그는 큰 키에 근육질 몸매, 잘생긴 외모로 참한 여자들의 인생을 망쳐 놓기도 했고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질렸다. 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게도 미스 어밀리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후 2년 동안 스스로 착실한 인생을 살면서 변화했다. 그는 돈을 모으고 행실도 바르게 했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에게 청혼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미스 어밀리어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했고 절망해서 술을 마셨다. 그럴 때마다 미스 어밀리어는 그를 때렸다. 마빈 메이시는 마지막 자신의 사랑의 징표로 그의 재산을 모두 그녀의 앞으로 돌려놨는데 그게 결국은 그가 한 푼도 없이 마을을 쫓겨나게 되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 그는 마을을 떠나서 더 범죄를 진화시키게 되어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까지 한다.


그는 돌아오면서 마을에 불운을 몰고 왔다. 꼽추는 잘생긴 그에게 반해서 하루종일 쫓아다녔고 그는 꼽추를 벌레 보듯이 멸시했다. 매사에 정확한 미스 어밀리어는 잠을 못 자면서 판단력이 흐려졌고 꼽추를 쫓아내지도 않고 세 사람이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결전의 날을 기다리면서. 결국 둘은 싸움에 붙는데 아무리해도 결판이 나지 않는 싸움은 결국 미스 어밀리어가 사랑하는 꼽추의 행동으로 인해 완전히 지게 된다. 싸움에 져서 미스 어밀리어가 뻗어 있는 사이에 두 사람은 미스 어밀리어의 재산을 털어가고 미스 어밀리어가 만들어 놓은 음식에 독을 타고, 욕을 써놓고 마을을 떠나버린다.


그 후, 미스 어밀리어는 생기를 잃었고 카페는 쇠락한다. 그녀는 꼽추를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p. 115)








중고샵에서 책을 사다보니 가끔은 전 주인의 흔적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지저분하면 문제가 되는데 아래 인용문이 알폰소 꾸에또의 [고래 여인의 속삭임]에서 첫 장에 인용됐다고 하는 정보가 있었다. 


미스 어밀리어는 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고 머리털은 희끗희끗해져갔다. 그녀의 얼굴은 수척해졌으며 단단했던 온몸의 근육들은 쪼그라들어 노처녀가 히스테리를 부릴 때처럼 날이 갈수록 여위어갔다. 그리고 회색 눈동자는 나날이 조금더 심하게 가운데로 모여서 마치 슬픔과 고독의 눈및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간절해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p.131-132)  


갑자기 소설[밑줄 긋는 남자]가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호사를 누려도 되겠지 싶었는데 슬프게도 여자 글씨였다. 뭐 손이 고운 남자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참에 [고래 여인의 속삭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사람이 한 번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간 자리는 유난히 황량한 법이다. 그런데 상대방을 잃고나서 자신을 방치할 정도로의 아픈 사랑은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노래했지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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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쩐지 제목이 들어본 것 같아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17 19:16   좋아요 1 | URL
우울할 때는 읽으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붸붸 꼬인 세 인물의 마성의 매력이 뭔지 도무지 이해가 잘 안가서요.ㅎㅎ 이번 추석에는 너무 많이 먹네요. 서니님도 남은 추석 연휴 잘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