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 스페셜 에디션 콤보팩 (2disc: BD+DVD)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크 피기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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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를 떠나는 소회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짧은 사람의 인생에 도시를 옮긴다는 것은 어쩌면 어느 시대가 끝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떠나기 싫어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원하게 볼 일을 본 것처럼 개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떠나려는 곳에서 큰 드라마가 있기라도 한다면 짧게 감상을 말하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 라스베가스를 떠나려는 여자가 있다. 한 때 머물렀던 곳을 떠나려는 여자는 담담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여자는 창녀다. 아마도 LA에서 배우를 하려다 실패하고 제대로 안 풀린 여자는 라스베가스에 와서 비극적이게도 이민자 출신의 악덕 포주에게 걸려 밤의 길거리에서 자신의 성을 흥정하는 생활을 억지로 강요당하고 있다. 폭력과 성이 얽힌 이 관계에서도 여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그를 옹호한다. 허벅지를 긁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긁지 않더군요, 라고.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난 밤은 남자가 자기가 살던 도시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라스베가스로 온 첫날 밤이었다. 그들은 자주 부딪쳤고 남자는 여자를 잠시동안 샀다. 술병이 늘어진 허름한 모텔에서 둘은 밤을 함께 보낸다. 그저 껴안고 이야기만 하면서. 술병에 둘러쌓인 남자는 술에 취해 있는 동안 호방하고 매력적으로 굴었다. 물론 문제도 일으켰지만. 남자는 신나게 술을 마신다. 그가 라스베가스로 온 이유는 의사에게 가보라는 동료와 상사의 권유를 완전히 무시하며 직장까지 잃게 되는 구제불능의 알콜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 술을 파는 사람까지 술을 안 팔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의 알콜중독증은 꽤 오래된 것이어서 아내와 아이마저 떠나갔는데 그는 술을 마셔서 이혼을 당한건지, 이혼을 당해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 판단도 잘 되지 않는다. 그가 라스베가스로 향한 이유도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성욕보다 수면욕을 느끼는 상대가 같이 살기 적합한 상대라고 했던가. 그들은 서로에게 깊이 빠졌고 얼마 남지 않은 끝을 알면서도 손을 잡는다. 다행인지 악덕 포주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여자는 그의 손에서 풀려난다. 여자는 중증 술주정뱅이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는 딱 하나만 부탁한다. 자기한테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자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휴대용 술병까지 선물로 주면서.


남자의 잔고는 금방 떨어졌다. 남자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벌벌 떨리는 상황에서 생계를 책임질 쪽은 바로 여자. 하지만 할 줄 아는 일이 있어야지. 이제는 라스베가스에 남을 이유도 생겼으나 여자의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은 똑같다. 여자는 포주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기꺼이 몸을 판다. (쉣!!) 구제불능 알콜의존증의 남자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킨다. 하루종일 술에 절어 있어 데이트를 즐기다 난동을 피워서 출입금지 당한다. 이제 라스베가스에서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그들은 어느 곳에 가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점점 지친 여자는 결국 그에게 의사에게 가볼 것을 권유한다. 그는 실망한다. 역시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닌지 악세서리를 선물하면서 여자 직업에 대한 잔인한 말까지 한다. 드럽게 못난 새끼! 그는 여자에게 보란듯이 다른 여자를 사기까지 하자 여자는 그를 집에서 쫓아낸다. 계속 거리를 배회하며 생활하는 여자. 급기야 위험한 일까지 당하고 집주인에게 쫓겨나기까지 한다. 그런 여자에게 밤늦게 전화가 걸려온다. 말없는 상대방. 여자는 남자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마지막까지 보드카 술병을 놓지 못하는 남자는 자신에게 온 천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가장 흔한 술버릇인 했던 말 반복하기처럼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고 구제불능의 남자는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여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그를 사랑했노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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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어느 영화 평론가가 나와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소개하면서 아주 아름다운 영화라고 했는데, 역시나 남자였다. 특히 평론가에게는 여자가 남자에게 술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멋있었다면서 목을 끓였다. 크-


"비록 구제불능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해주는게 진짜 사랑은 아닌지... 사랑한다는 말보다 너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어쩌고 저쩌고..." (당연히 기억의 왜곡이 있음)


감성잡지가 넘치던 시절에 10대를 보냈던 나는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박혔다.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지~ 같은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막상 이 영화를 못봤다. 시놉시스만 봐도 무서워서. 그래서 이 영화는 멋있는 제목과 스팅의 쓸씁한 목소리와 더불어 내 환상 속에서 더 멋있게 부풀고 있었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어,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공짜 영화로 보게 된 영화.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울어버렸다. 당연히 알콜중독자 시끼 때문에 운 게 아니라 여자의 입장에 감정 이입을 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두 영혼의 흔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지만 짧아서 아름다운 이야기다. 


영화 포스터에는 "사랑이 짧으면 슬픔은 길어진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과연.... 


과연 이게 사랑일까, 싶은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연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같다. 닮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한두달의 짧은 시간 동안 행복했다는 게 중요할 뿐. 그리고 여자에게는 팍팍한 인생에 달콤한 경험이 아주아주 필요한 것 뿐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기가 편한 식으로 상대방을 변하게 하려는 폭력도 동의가 힘들지만 이미 너무나 망가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정말 짧아서 가능한 일은 아닐까? 알콜에 절어서 폭주하는 남자는 삶이 더 길어졌으면 그 난동이 다 여자에게 향할 것이 너무도 뻔하잖아. 언제나 인생은 길다는 게 문젠데.


아마 스무살 때 봤으면 그저 아름다운 숭고한 사랑 얘기라고 느꼈을 것 같은데(아니면 아무것도 못 느끼지만 스스로 세뇌했겠지) 서른이 되서 보니.. 여자에게 아마 저런 사랑이 필요했을 거라는 연민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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