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밤의 클라라
카트린 로캉드로 지음, 최정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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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은 클라라. 본명은 따로 있다. 하지만 대게는 클라라로 쓴다. 끝에 A로 끝나는 것이 성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왜 이름에서 성적인 느낌을 줘야 하냐고? 그녀의 직업은 창녀다.  

아버지와 싸우고 온 파리에서는 연고도 학벌도 기술도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창녀밖에 없었다. (사랑받으면서 산 클라라가 왜 창녀가 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개연성은 떨어진다.) 그래서 밤의 클라라로 20년을 살아 낸다. 밤의 클라라는 낮의 클라라에게 밥을 먹이고 책을 사 읽히고 생활을 하게 한다. 낮의 클라라는 수수하고 자기 자신 외의 사람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는다. 그저 뒤라스를 읽고 시를 읽는 여자일 뿐이다. 

어느 날, 20년의 밤의 클라라의 인생에 낮과 밤을 뒤흔드는 사건이 생긴다. 잘생겼지만 왠지 우수의 젖은 운동자를 갖고 있는 다니엘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밤의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읽어 달라고 요청한다. 밤의 클라라는 화가 났다. 아니, 불안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밤의 클라라에게 낮의 클라라가 하고 있는 일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밤의 클라라는 '감히' 낮의 클라라만이 할 수 있는 읽는 행위를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낮의 클라라와 밤의 클라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고 그 범위를 침범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낮과 밤이 뒤섞이는 것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일이다. 

책을 읽는 창녀, 라는 것은 무척 상상이 안 된다.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는 사진만큼 낯설고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치만 꼭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클라라는 특별했기 때문인지, 예전은 제1의 성이었다가 지금은 제2의 성이 된, 한 때는 루이지였다가 지금은 루이자가 된 바 '루이자네'의 사장 루이자는 특별히 클라라만을 챙긴다. 험한 꼴을 당하지 않게 클라라에게만 자신의 가게에서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낮의 클라라는 어느 화랑에서 왠지 자신인 것 같은 벗은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다니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중에 클라라는 다니엘 또한,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첫사랑의 유령에게 해방되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리고 클라라는 아버지를 보러 간다.  

 

나에게도 낮과 밤은 존재한다. 다만 클라라처럼 확실하게 분리되지는 않았을 뿐. 주인공 클라라에게는 두 개의 자신이 있지만 낮의 클라라가 없으면 밤의 클라라가 없고, 밤의 클라라가 없으면 낮의 클라라도 없게 된다. 낮과 밤의 클라라가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자기, 또 너무나 사랑하는 자기... 이 두 감정이 너무나 확실히 분리되어 있어 혼재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클라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나 안타깝고 씁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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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2014-01-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밤의 클라라"로 검색해서 여러 포스팅을 보고 있는데, 님이 제일 잘 쓰신 것 같네요. 클라라가 창녀가 되는 것은,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기질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 사랑은 받았지만, 아버지가 자신한테 "집착"한다고 느끼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그 직업을 택한게 아닌가 싶네요. 보통 일반 회사 다니면 사람들 눈치보고 하느라 힘들잖아요. 저는 이 책의 "책읽는 창녀, 지적인 창녀"라는 설정이 신선했어요. 상상은 안되지만, 클라라 그녀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특별하다... 이런 믿음까지 생기게 만드는.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 책이 너무 좋네요.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하여튼 잘 보고 갑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4-04-09 13:4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참 신선했어요.
역시 아버지와의 풀지 못한 숙제였을까요? 여전히 이해는 잘 안가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한테 인상적이었던 것은 밤의 클라라에게 편지를 읽어달라고 했을 때 화를 내는 장면이었어요. 가끔 별 거 아닌 일에 성내는 자신을 생각해보면 자기도 모르는 콤플렉스를 상대방이 무심코 건드렸을 때였거든요.

익명이라도 성의있게 써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환상문학전집 1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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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가 유미주의자라고 했을 때, 당시 동화만 읽었던 나는 도무지 [행복한 왕자]가 어떻게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지 잘 납득하지 못했다. 물론 그 이야기 자체는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보석도 아름답겠고, 행복한 왕자도 아름답고, 그 마음도 아름답고...(근데 동상이 금은보화에 뭔 미련이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도와주었던 제비는 당근 아름답지만... 뭐 사실 이 정도의 아름다운 얘기는 다른 사람도 쓰지 않았는가.  

아.. 제비가 만약 왕자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떠나지 못하고 그 청을 들어주었던 거라면 유미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치만 제비는 왕자의 눈물에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다 해줬던 것 같은데..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작가로 유명해서 왜 그의 앞에 항상 유미주의니 탐미주의니 하는 수식어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봐야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말 그대로 무진장 잘생긴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를 그린 초상화로 인해 생긴 신비한 일을 바탕으로 그의 일생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美라는 것은 사실상 직접적으로는 생존에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못생겨서 죽고 싶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더 갈구하게 된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집착은 잘 없어지지도 않고 꽤 무섭다. 

도리언 그레이는 정말 잘생긴 미소년이었다. 화가 바질 핼워드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영감을 받았고,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바질은 친구 핸리에게 어느 날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도리언 그레이를 그린 그림은 왠지 모르게 자신과 너무 닮았고 또 자신을 너무 담았다고. 

잘생긴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얼굴과 볼품없는 바질의 얼굴을 비교하면 당연히 핸리 경은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청춘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나 도덕과 노년을 경멸하는 꽤 현대적인(이것이야 말로 현대인의 속성이 아닐까) 귀족이었던 그는,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고 몇 시간 안되어 그의 인생을 바꿔 버리고 만다. 영향을 준 것이다. 

"영향이란 건 다 나쁜 영향일세. 좋은 영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다. 모든 영향은 다 부도덕한 거니까. 과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부도덕하다는 거지." "왜지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영혼을 내준다는 것이기 때문일세.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기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열정으로 불타오르지도 않지. 그의 미덕은 그에게 진정한 미덕이 될 수 없어. 그의 죄악은, 만일 죄악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일세, 그 죄악은 빌려 온 것일 뿐이야........"  p.41

지성과 도덕을 사랑했던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청춘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간절히 빈다. 오 저 초상이 나이고 내가 저 초상일 수 있다면! 나는 늙고 힘들어져도 저 초상은 언제나 그 시점에 멈춰 있겠지. 그럼 나는 언제까지 저 초상을 질투하면서 살아야해! 

당연히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그의 육체는 언제까지고 그 순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청춘과 육체의 즐거움이 따르는대로, 남들을 조롱하며 살아간다. 

그는 이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잔혹하다시피 한 즐거움을 느꼈다. 아마도 대부분의 즐거움이, 그리고 모든 쾌락이 잔혹을 그 속성으로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p.217

그러나 그의 초상은 변해있다. 여전히 잘 생겼지만 어쩐지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고, 그것은 더 심해져간다. 그는 그의 첫사랑을 자살로 몰아넣었고, 잠시 죄책감에 빠지지만 또 금방 극복해낸다. 그가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니까. 또 그는 은인인 바질을 계속 피하고 대놓고 경멸하며, 나중에는 결국 그를 죽이게 된다. 그마저도 약점을 잡은 사람을 찾아 협박해서 은패에 돕게 만들기도 한다. 

나중에 그의 초상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흉측하게 변해간다. 그는 그것을 매일 보며 괴로워한다. 그것이 그의 양심인 것이다. 그는 한순간도 그가 아니었던,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아가다 결국 자기혐오에 빠지고, 급기야는 양심을 찔러 죽이기로 결심한다. 양심을 찌르는 순간 들렸던 단발마와 같은 비명소리는 하인들은 불러 모았는데, 그들은 아름다운 초상화 앞에 늙어 쪼글해진 추한 시체를 보았다.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서였다.  

 

미를 추구하는 작가답게 아름답고, 또 반대로 추한 이미지만이 남았다. 자살마저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한 거라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를 싫어하고 심지어 복수심에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엔 그는 살아남는 것. 결국 자신의 처벌도 자신의 손으로 행하게 해주는 것 또한 아름다움은 결코 범접할 수 없다는 얘기를 작가는 하고 싶은 것일까. 

또한 영혼없이 살아가는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 같다. 도리언 그레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형적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한순간도 그였던 적이 없었다. 자신의 양심 또한 자신이 망가지는 이미지로써만 확인해야 했던, 그는 어떻게 보면 매우 불쌍한 사람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자신은 아름다운 동화를 썼지만, 당시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위기에 반대했고 기괴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고, 기소되어 나중에는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다는 파란만장하고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영화가 있다니 봐야겠다.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한 사람들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저 씁쓸..할 따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은 최고의 지성을 가질 수가 없다, 고 했는데, 그는 외국인이라 좀 느끼하긴 하지만 꽤 잘생긴 외모를 가졌음에도 지성을 가졌다. 남자의 경우는 다르다는건가? 뭐야 이거.   

 

 덧붙임. 생긴대로 사느냐 살아가는 대로 생겨지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다.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후자라고 믿고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은 참으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많이 공감했던 한 구절. 

문명사회는 도덕보다 더 중요한 게 매너라고 본능적으로 느끼며 가장 고상한 윤리와 도덕을 갖추는 것보다 빼어난 요리사를 데리고 있는 편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형편없는 만찬을 대접했다가, 또는 형편없는 포도주를 내놓았다가, 그래도 그 사람이 사생활에 오점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건 어쨌거나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중략)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 해도 그것이 반쯤 식은 앙트레가 끼친 해악을 보상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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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쇼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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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돈이 좀 생기고..(그래봤자 거의 엄마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나는 맨날 무언가를 사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쇼핑 장소는 올리브 영이랑 왓슨스인데 그냥 구경만 해야지 하고 들어가면 꼭 손에는 물티슈라도 쥐고 나오게 된다.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향기와 흡사지만 또 다른 그곳만의 특유한 향기와  밝으면서도 따뜻한 조명, 적당히 흥겨운 음악은 립글로즈를 발라보고 향수 여러개의 향기를 맡다가 뿌려보게 하고, 진열대에 있는 것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날 계산대로 이끈다. 감사합니다 하는 친절한 언니들의 힘찬 목소리를 뒤통수로 들으며 쇼핑백을 확인했다가 한숨을 크게 푹 쉬지만, 바로 자기 자신을 안심시킨다. 그래 이건 꼭 필요했던거야!(근데 진짜로 물티슈가 필요하긴 필요한 거라고.. 그거 없음 어째살아.. )

이것은 어떤 절차와도 같아서 한번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맨손으로 나오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에선 없는 수입화장품은 어떻고! 또한 날마다 있는 할인행사와 1+1의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어렵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이긴 하지만, 또 그것은 아닌.. 이런 경우는 나 뿐만 아니라 현대, 그러니까 소비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지하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옆집 순이랑 영희도 맨날 그런 번뇌를 하고 살아간다고요.

흔히 지름신이 왔다고 하여 그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데, 그게 마음이 훨 편하기 때문이다. 0.1초만에 저지르는 그런 비합리적인 소비를 나의 이성으로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아주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니까 신들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다는 거다. 사실이 그렇다. 뭐 하나가 사고 싶으면 그 순간엔 이성이고 뭐고 없는 거니까.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나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옆 집의 많은 순이와 영희들은?  

이런 물음에 불편해야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대중 매체 아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요즘은 그닥 불편해하지도 않을 거다. 그냥 돈만 벌면 장땡이다! 라는 장사꾼 마인드는 이미 친숙해지다 못해 숭배의 수준에 이르렀으니.) 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광고 업체들도. 광고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어 이것을 피하려면 텔레비젼과 인터넷이 안 되는 산골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거나 그 꼬임에서 괴로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영화 [트루먼 쇼]는 트루먼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방송국에 입양되어 전부 꾸며진 관계에 둘러 쌓여 세계 방방곡곡에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되는 트루먼의 생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실은 매체와 소비 사회에 둘러 쌓인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방송인 <트루먼 쇼>는 주인공에게는 설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은,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설정이다. 심지어 세계, 자연까지도. 또 그가 물을 무서워하게 된 트라우마도 다 설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별 중에 하나인 큰 조명이 떨어진 이후로 트루먼에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조명에는 시리우스 좌(별자리엔 관심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라고 적혀 있었고, 한 번 허술해진 시스템은 곳곳에서 헛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엑스트라 같은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복장과 표정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또 떠나고 싶은 그를 무진장 티나는 방법으로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트루먼은 대학시절 만났던 그녀를 떠올린다. 아니 사실 처음본 순간부터 계속 마음에 두었지만 모든 사람의 반대로 인해(그들은 엄청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지만. 아무튼 그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매일 아침 이웃에게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에 프로듀서이자 신(god)에게 굿모닝,굿에프터눈, 굿나잇 이라고 말하고는 환하게 웃는 깜찍함이란!

매일 만나는 쌍둥이 할아버지들은 화면에 나오게 하기 위해 전광판에 그를 밀어붙이고, 모든 소품이자 생활 용품은 그 자체가 광고가 된다. 가짜 간호사이자 그의 아내는 싸움 중에도 코코아 선전을 할 정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카달로그에 실린 제품들을 찾아 헤맨다. 지금의 우리들이랑 똑같이. 인터넷에 손예진이 입은 원피스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라고 묻는 우리들이랑 똑같이. 

그렇지만 나는 꼭 여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다. 이미 문명과 상품들이 주는 행복과 편리를 맛보고야 말았으니. 지금까지 더 좋은 제품이 나오면 영혼까지 팔 작정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사회를 즐기고 있다. 그 금단의 열매들을 따기 위해서 이제 뱀의 꼬임도 별로 필요없게 되었다. 그저 그것이 새로 나왔다고만 일러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아녜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감사하겠습니다..ㅎㅎ)

 

뜬근없는 생각. <신데렐라 그 이후...>, <집을 나온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책들이 있는 것처럼 신적인 존재인 프로듀서의 품을 빠져 나온 트루먼은 어떻게 되었을까. 뭐 교육은 잘 받을 터이니 평범하게 다시 취직을 했을까. 아님 유명세를 이용해 또 다른 방송에 출연하거나 사업을 했을까... 아무튼 집을 나온 노라는 창녀가 되었을 것이라는 루쉰의 말처럼 비참한 결말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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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0-09-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금창고입니다.
뽈쥐님 독서이력의 화려함에 놀랐습니다.
흠, 제가 읽은 아니 본 영화가 있어서 댓글을 달게 되어 기쁘다고 할까요.
겨우 아이들 책을 읽는 수준인 제 독서가 너무 게을러보이기도하구요..
좋은책 목록과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다 읽진 못했지만, ㅠㅠ)
트루먼쇼- 저도 의미심장하게 본 영화였지요.
왠지 뒤꼭지가 근질근질해지는, 왠지 날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을것 같다는, 난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했고요. ㅎㅎㅎ
전 요즘 예쁜 식물들을 사게 하는 크리스토프의 조종에 딱 걸려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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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님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0-09-26 16:45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방문해주시고 글도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특히 마지막 한 줄이 특히 감사해요.ㅎㅎ

크리스토프가 누군가 해서 또 네입어를 이용했더니 크리스토프 라무르였군요!(사실 처음 들었사와요.ㅠㅠ) 한 때, 철학에세이를 읽는다고 했다가 상식 부족과 인내심 부족으로 항상 책을 반도 못 넘기고 탁 덮고 말아요.흑흑
또 한번 독서 편식을 반성하며..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생필품보다 식물을 사는 게 더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구요.^^



 
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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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이 두껍다. 두껍지만 술술 잘 읽혀요~ 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독성이 그리 좋은 책은 아니다. 매우 좋지 않다. 딱히 번역의 문제일 것 같지도 않다.'예술서 편집자 이기도 한 그는......' 작가는 예술서 편집자였던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그는 인문학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일 것이고 글은 그만큼 지루할 것이다.(실제로 지루하다.) 

분량이 많은 만큼 책에 밑줄도 많이 그었는데 주로 감각적인 표현이라 소개하기도 쩜... 그렇다. 반복되는 부분에 마구 밑줄을 그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왠지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한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사진을 백만개 찍고 본다. 그래야 하나라도 좋은 게 나오니까.") 작가는 많은 분량의 글을 썼다. 그래서 밑줄 칠 부분이 많았다. 주로 가을에 대한 이야기와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구두를 신을 수 있는 옴폭 들어간 아름다운 하얀 발, 헤지펀드 같은 자본주의의 산물인 금융상품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등장시켰고, 이 두꺼운 책에서 반 이상이 그가 화자로 설정되었다. 여기에는 네 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문학적이나 나약한 기질을 가진 로랑 달, 아버지가 포크로 가족 앞에서 자살을 하고 나서 평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테러리스트가 되길 꿈꾸는 파트리크 네프텔, 아내의 누드를 인터넷에 뿌리고 거기서 형성된 관계로 스와핑을 꿈꾸는 티에리 트로켈,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를 해대는 작가 에릭 라인하르트.(책이 워낙 두꺼워서 계속 읽으니 주인공 이름을 외워 버렸다!)  

문제는 이들의 얘기가 균등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 작가인 에릭 라인하르트 빼고는 모두 작가가 창조한 것들로, 창조가 매우 힘들었던 거겠지. 게다가 계속 읽다보면 작가가 하던 얘기를 그들이 이어 나가기도 한다. (아,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전작들과 그것을 비웃었던 평론가들을 마구 씹어대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소설은 이거 한 권뿐이라 프랑스어를 모르면 읽을 기회도 없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왠만하면 그의 작품을 안 읽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니까 평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하든지 어쩌든지 하시고, 제발 한 작품에는 그것에만 치중합시다요. 하고 싶은 말 다 '배설'하지 마시고! (내가 이렇게 거칠어진 이유는 616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끝내고 작가에게 감정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봄을 아주 좋아해서, 작가의 가을과 그에 비해 못된(?) 봄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계절에 대한 표현들은 좋았다. 계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특히 페르세포네의 얘기를 들어 설명한 점은 정말 좋았다. 뭔가 새로운 시각이랄까.

봄은 자만심이 강하고 변덕스러운 자아도취의 계절이다. 이 계절은 자신이 예쁘다고 믿는 아가씨들, 또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 아가씨들이 군립하도록 힘을 발휘한다. p.349  

봄과 여름보다 더 흥미진진한 가을과 겨울은 향수 어린 그림움에 상응하고, 안으로 억눌린 기다림과 어머니에 대한 멀고 미래적인 부드러움과 이어지며, 특히 대지의 창자 속에 달리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페르세포네가 여왕이고 여주인인 은밀한 세계의 동굴 속에 그녀를 감춘 것에 상응한다. p. 455 

소설의 주제는 뒤에 친절하게 써 있듯이 "꿈꾸지 마라, 아무것도" 인 것 같다. (이제 출판사도 친절해졌다.) 신데렐라는 없으니까. 특히, 아버지로 인해 이미 사회생활의 무서움을 경험한 아들들은 더더욱. 네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로(주로 무능으로)부터 꿈을 거세당했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애초부터 없었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그들은 무언가를 욕망한다. 

나는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어 무능하고, 모욕당하며, 지배당하고 예속되는 것이 두려웠다. 내 부모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은 내 상상의 세계에 끊임없이 투영되었고, 그를 통해 외부 세계는 너무나 일찍 나에게 잔인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쉽게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p.390

고독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늘 타인이 필요하다. 늘 삶의 중앙에서 이타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낀다. p.354 

그래서 그는 이런 여자를 꿈꾼다. 에라이. 

내 관심사는 여왕, 살인녀, 중상모략을 일삼는 메디아의 인물들, 능력있는 여자들, 지구의 지적인 여인들이라고요. 난 페미니스트거든요! 근육질의 엉덩이를 가진 매춘부들은 지긋지긋해요! P.235

  

그러니까 아무것도 꿈꾸지 마시란다. 참 잔인하다 꿈도 못 꾸게 하다니..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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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
캐서린 호우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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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요즘에도 무고한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현상을 두고 이런 말을 쓴다. 어릴 때는 막연히 그냥 마녀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좀 크고 나서 알게되니 이런 사건이 역사상으로 실제했다는 사실에 으스스했다. 

마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법을 부리는 여자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나 아름다워 혼을 쏙 빼놓게 만드는 대단한 팜므파탈형(?) 미인이나 아주 못되고 지독한 여자한테 쓰인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왜 '마남'은 없는거지? 쩝..)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나는 마녀사냥이 중세 유럽에만 있었던 일인 줄 알았는데 17세기 미국에서도 있었구나. 식민지 시대 초창기, 아직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에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졌던 일이라니... 참 초식동물스러우면서(약한 놈을 희생하여 다수가 살아남는 그들! 어찌보면 더 잔인한 사회다!) 야만적인 시대였구나. 인간이 크게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을 걸 감사한다. 

주인공 코니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이다. 어느 날, 히피같은 생활을 하는 엄마의 전화로 몇 십년 동안 방치된 할머니네 집을 가게 되고, 거기서 사건이 시작된다.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집은, 심지어 전기 조차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런 으스스한 집에서 코니는 오래된 성경책과 그 안에서 열쇠, 또 '딜리버런스 데인'이라고 씌인 종이를 발견하게 된다. 

계속 악몽을 꾸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던 중, 그것이 사람 이름이었음을 알게 되고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답게 조사하기 시작한다.  

조사를 계속 하다보니 그 이름의 주인공은 마녀로 몰려 힘든 삶을 살았던 여인임을 알 게 된다. 그녀는 약을 잘 지어서 동네에서 많이 불려져 일을 했는데, 그러던 중 그녀가 지은 약을 먹은 딸을 둔 아버지가 그녀를 마녀로 고발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덩달아 힘든 삶을 살았던 그녀의 딸은 그 약제조법이 씌여진 책을 팔아버리고... 그래서 코니는 그 자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책을 찾으면서 이어지는 스토리가 꽤 재밌다.)

그 여인들의 삶을 추적하다보니, 이상하게도 그 여인의 남편도, 그들 딸의 남편도, 그리고 코니의 엄마 그레이스의 남편이자 코니의 아버지까지 사고로 일찍 죽고 만다. 그리고 코니가 조사를 하면서 만났던 샘까지도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킨다. 아 이들의 숙명이란! 

대부분은, 아니 모든 역사상의 마녀들은 그저 무고한 희생자들이었는데.. 만약 진짜 마녀가 있었다면? (아니 마법을 나쁘게만 쓰지 않았다면, 그녀도 무고했다고 볼 수 있겠지..?) 소설은 이런 재미난 상상에서 시작한다.  

예전에는 이런 말도 안되는 가정에는 거의 혐오에 가까운 거부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현실이 현실이다보니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말도 안되는 전제도 재밌어졌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니깐.  

책을 딱 덮는 순간은, 꽤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난 듯 가뿐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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