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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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돈이 좀 생기고..(그래봤자 거의 엄마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나는 맨날 무언가를 사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쇼핑 장소는 올리브 영이랑 왓슨스인데 그냥 구경만 해야지 하고 들어가면 꼭 손에는 물티슈라도 쥐고 나오게 된다.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향기와 흡사지만 또 다른 그곳만의 특유한 향기와  밝으면서도 따뜻한 조명, 적당히 흥겨운 음악은 립글로즈를 발라보고 향수 여러개의 향기를 맡다가 뿌려보게 하고, 진열대에 있는 것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날 계산대로 이끈다. 감사합니다 하는 친절한 언니들의 힘찬 목소리를 뒤통수로 들으며 쇼핑백을 확인했다가 한숨을 크게 푹 쉬지만, 바로 자기 자신을 안심시킨다. 그래 이건 꼭 필요했던거야!(근데 진짜로 물티슈가 필요하긴 필요한 거라고.. 그거 없음 어째살아.. )

이것은 어떤 절차와도 같아서 한번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맨손으로 나오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에선 없는 수입화장품은 어떻고! 또한 날마다 있는 할인행사와 1+1의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어렵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이긴 하지만, 또 그것은 아닌.. 이런 경우는 나 뿐만 아니라 현대, 그러니까 소비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지하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옆집 순이랑 영희도 맨날 그런 번뇌를 하고 살아간다고요.

흔히 지름신이 왔다고 하여 그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데, 그게 마음이 훨 편하기 때문이다. 0.1초만에 저지르는 그런 비합리적인 소비를 나의 이성으로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아주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니까 신들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다는 거다. 사실이 그렇다. 뭐 하나가 사고 싶으면 그 순간엔 이성이고 뭐고 없는 거니까.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나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옆 집의 많은 순이와 영희들은?  

이런 물음에 불편해야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대중 매체 아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요즘은 그닥 불편해하지도 않을 거다. 그냥 돈만 벌면 장땡이다! 라는 장사꾼 마인드는 이미 친숙해지다 못해 숭배의 수준에 이르렀으니.) 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광고 업체들도. 광고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어 이것을 피하려면 텔레비젼과 인터넷이 안 되는 산골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거나 그 꼬임에서 괴로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영화 [트루먼 쇼]는 트루먼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방송국에 입양되어 전부 꾸며진 관계에 둘러 쌓여 세계 방방곡곡에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되는 트루먼의 생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실은 매체와 소비 사회에 둘러 쌓인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방송인 <트루먼 쇼>는 주인공에게는 설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은,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설정이다. 심지어 세계, 자연까지도. 또 그가 물을 무서워하게 된 트라우마도 다 설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별 중에 하나인 큰 조명이 떨어진 이후로 트루먼에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조명에는 시리우스 좌(별자리엔 관심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라고 적혀 있었고, 한 번 허술해진 시스템은 곳곳에서 헛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엑스트라 같은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복장과 표정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또 떠나고 싶은 그를 무진장 티나는 방법으로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트루먼은 대학시절 만났던 그녀를 떠올린다. 아니 사실 처음본 순간부터 계속 마음에 두었지만 모든 사람의 반대로 인해(그들은 엄청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지만. 아무튼 그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매일 아침 이웃에게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에 프로듀서이자 신(god)에게 굿모닝,굿에프터눈, 굿나잇 이라고 말하고는 환하게 웃는 깜찍함이란!

매일 만나는 쌍둥이 할아버지들은 화면에 나오게 하기 위해 전광판에 그를 밀어붙이고, 모든 소품이자 생활 용품은 그 자체가 광고가 된다. 가짜 간호사이자 그의 아내는 싸움 중에도 코코아 선전을 할 정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카달로그에 실린 제품들을 찾아 헤맨다. 지금의 우리들이랑 똑같이. 인터넷에 손예진이 입은 원피스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라고 묻는 우리들이랑 똑같이. 

그렇지만 나는 꼭 여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다. 이미 문명과 상품들이 주는 행복과 편리를 맛보고야 말았으니. 지금까지 더 좋은 제품이 나오면 영혼까지 팔 작정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사회를 즐기고 있다. 그 금단의 열매들을 따기 위해서 이제 뱀의 꼬임도 별로 필요없게 되었다. 그저 그것이 새로 나왔다고만 일러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아녜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감사하겠습니다..ㅎㅎ)

 

뜬근없는 생각. <신데렐라 그 이후...>, <집을 나온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책들이 있는 것처럼 신적인 존재인 프로듀서의 품을 빠져 나온 트루먼은 어떻게 되었을까. 뭐 교육은 잘 받을 터이니 평범하게 다시 취직을 했을까. 아님 유명세를 이용해 또 다른 방송에 출연하거나 사업을 했을까... 아무튼 집을 나온 노라는 창녀가 되었을 것이라는 루쉰의 말처럼 비참한 결말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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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0-09-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금창고입니다.
뽈쥐님 독서이력의 화려함에 놀랐습니다.
흠, 제가 읽은 아니 본 영화가 있어서 댓글을 달게 되어 기쁘다고 할까요.
겨우 아이들 책을 읽는 수준인 제 독서가 너무 게을러보이기도하구요..
좋은책 목록과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다 읽진 못했지만, ㅠㅠ)
트루먼쇼- 저도 의미심장하게 본 영화였지요.
왠지 뒤꼭지가 근질근질해지는, 왠지 날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을것 같다는, 난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했고요. ㅎㅎㅎ
전 요즘 예쁜 식물들을 사게 하는 크리스토프의 조종에 딱 걸려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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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님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0-09-26 16:45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방문해주시고 글도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특히 마지막 한 줄이 특히 감사해요.ㅎㅎ

크리스토프가 누군가 해서 또 네입어를 이용했더니 크리스토프 라무르였군요!(사실 처음 들었사와요.ㅠㅠ) 한 때, 철학에세이를 읽는다고 했다가 상식 부족과 인내심 부족으로 항상 책을 반도 못 넘기고 탁 덮고 말아요.흑흑
또 한번 독서 편식을 반성하며..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생필품보다 식물을 사는 게 더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