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환상문학전집 1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스카 와일드가 유미주의자라고 했을 때, 당시 동화만 읽었던 나는 도무지 [행복한 왕자]가 어떻게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지 잘 납득하지 못했다. 물론 그 이야기 자체는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보석도 아름답겠고, 행복한 왕자도 아름답고, 그 마음도 아름답고...(근데 동상이 금은보화에 뭔 미련이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도와주었던 제비는 당근 아름답지만... 뭐 사실 이 정도의 아름다운 얘기는 다른 사람도 쓰지 않았는가.  

아.. 제비가 만약 왕자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떠나지 못하고 그 청을 들어주었던 거라면 유미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치만 제비는 왕자의 눈물에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다 해줬던 것 같은데..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작가로 유명해서 왜 그의 앞에 항상 유미주의니 탐미주의니 하는 수식어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봐야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말 그대로 무진장 잘생긴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를 그린 초상화로 인해 생긴 신비한 일을 바탕으로 그의 일생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美라는 것은 사실상 직접적으로는 생존에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못생겨서 죽고 싶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더 갈구하게 된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집착은 잘 없어지지도 않고 꽤 무섭다. 

도리언 그레이는 정말 잘생긴 미소년이었다. 화가 바질 핼워드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영감을 받았고,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바질은 친구 핸리에게 어느 날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도리언 그레이를 그린 그림은 왠지 모르게 자신과 너무 닮았고 또 자신을 너무 담았다고. 

잘생긴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얼굴과 볼품없는 바질의 얼굴을 비교하면 당연히 핸리 경은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청춘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나 도덕과 노년을 경멸하는 꽤 현대적인(이것이야 말로 현대인의 속성이 아닐까) 귀족이었던 그는,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고 몇 시간 안되어 그의 인생을 바꿔 버리고 만다. 영향을 준 것이다. 

"영향이란 건 다 나쁜 영향일세. 좋은 영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다. 모든 영향은 다 부도덕한 거니까. 과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부도덕하다는 거지." "왜지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영혼을 내준다는 것이기 때문일세.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기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열정으로 불타오르지도 않지. 그의 미덕은 그에게 진정한 미덕이 될 수 없어. 그의 죄악은, 만일 죄악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일세, 그 죄악은 빌려 온 것일 뿐이야........"  p.41

지성과 도덕을 사랑했던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청춘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간절히 빈다. 오 저 초상이 나이고 내가 저 초상일 수 있다면! 나는 늙고 힘들어져도 저 초상은 언제나 그 시점에 멈춰 있겠지. 그럼 나는 언제까지 저 초상을 질투하면서 살아야해! 

당연히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그의 육체는 언제까지고 그 순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청춘과 육체의 즐거움이 따르는대로, 남들을 조롱하며 살아간다. 

그는 이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잔혹하다시피 한 즐거움을 느꼈다. 아마도 대부분의 즐거움이, 그리고 모든 쾌락이 잔혹을 그 속성으로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p.217

그러나 그의 초상은 변해있다. 여전히 잘 생겼지만 어쩐지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고, 그것은 더 심해져간다. 그는 그의 첫사랑을 자살로 몰아넣었고, 잠시 죄책감에 빠지지만 또 금방 극복해낸다. 그가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니까. 또 그는 은인인 바질을 계속 피하고 대놓고 경멸하며, 나중에는 결국 그를 죽이게 된다. 그마저도 약점을 잡은 사람을 찾아 협박해서 은패에 돕게 만들기도 한다. 

나중에 그의 초상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흉측하게 변해간다. 그는 그것을 매일 보며 괴로워한다. 그것이 그의 양심인 것이다. 그는 한순간도 그가 아니었던,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아가다 결국 자기혐오에 빠지고, 급기야는 양심을 찔러 죽이기로 결심한다. 양심을 찌르는 순간 들렸던 단발마와 같은 비명소리는 하인들은 불러 모았는데, 그들은 아름다운 초상화 앞에 늙어 쪼글해진 추한 시체를 보았다.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서였다.  

 

미를 추구하는 작가답게 아름답고, 또 반대로 추한 이미지만이 남았다. 자살마저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한 거라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를 싫어하고 심지어 복수심에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엔 그는 살아남는 것. 결국 자신의 처벌도 자신의 손으로 행하게 해주는 것 또한 아름다움은 결코 범접할 수 없다는 얘기를 작가는 하고 싶은 것일까. 

또한 영혼없이 살아가는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 같다. 도리언 그레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형적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한순간도 그였던 적이 없었다. 자신의 양심 또한 자신이 망가지는 이미지로써만 확인해야 했던, 그는 어떻게 보면 매우 불쌍한 사람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자신은 아름다운 동화를 썼지만, 당시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위기에 반대했고 기괴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고, 기소되어 나중에는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다는 파란만장하고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영화가 있다니 봐야겠다.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한 사람들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저 씁쓸..할 따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은 최고의 지성을 가질 수가 없다, 고 했는데, 그는 외국인이라 좀 느끼하긴 하지만 꽤 잘생긴 외모를 가졌음에도 지성을 가졌다. 남자의 경우는 다르다는건가? 뭐야 이거.   

 

 덧붙임. 생긴대로 사느냐 살아가는 대로 생겨지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다.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후자라고 믿고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은 참으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많이 공감했던 한 구절. 

문명사회는 도덕보다 더 중요한 게 매너라고 본능적으로 느끼며 가장 고상한 윤리와 도덕을 갖추는 것보다 빼어난 요리사를 데리고 있는 편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형편없는 만찬을 대접했다가, 또는 형편없는 포도주를 내놓았다가, 그래도 그 사람이 사생활에 오점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건 어쨌거나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중략)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 해도 그것이 반쯤 식은 앙트레가 끼친 해악을 보상할 수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