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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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이 두껍다. 두껍지만 술술 잘 읽혀요~ 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독성이 그리 좋은 책은 아니다. 매우 좋지 않다. 딱히 번역의 문제일 것 같지도 않다.'예술서 편집자 이기도 한 그는......' 작가는 예술서 편집자였던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그는 인문학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일 것이고 글은 그만큼 지루할 것이다.(실제로 지루하다.) 

분량이 많은 만큼 책에 밑줄도 많이 그었는데 주로 감각적인 표현이라 소개하기도 쩜... 그렇다. 반복되는 부분에 마구 밑줄을 그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왠지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한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사진을 백만개 찍고 본다. 그래야 하나라도 좋은 게 나오니까.") 작가는 많은 분량의 글을 썼다. 그래서 밑줄 칠 부분이 많았다. 주로 가을에 대한 이야기와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구두를 신을 수 있는 옴폭 들어간 아름다운 하얀 발, 헤지펀드 같은 자본주의의 산물인 금융상품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등장시켰고, 이 두꺼운 책에서 반 이상이 그가 화자로 설정되었다. 여기에는 네 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문학적이나 나약한 기질을 가진 로랑 달, 아버지가 포크로 가족 앞에서 자살을 하고 나서 평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테러리스트가 되길 꿈꾸는 파트리크 네프텔, 아내의 누드를 인터넷에 뿌리고 거기서 형성된 관계로 스와핑을 꿈꾸는 티에리 트로켈,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를 해대는 작가 에릭 라인하르트.(책이 워낙 두꺼워서 계속 읽으니 주인공 이름을 외워 버렸다!)  

문제는 이들의 얘기가 균등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 작가인 에릭 라인하르트 빼고는 모두 작가가 창조한 것들로, 창조가 매우 힘들었던 거겠지. 게다가 계속 읽다보면 작가가 하던 얘기를 그들이 이어 나가기도 한다. (아,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전작들과 그것을 비웃었던 평론가들을 마구 씹어대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소설은 이거 한 권뿐이라 프랑스어를 모르면 읽을 기회도 없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왠만하면 그의 작품을 안 읽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니까 평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하든지 어쩌든지 하시고, 제발 한 작품에는 그것에만 치중합시다요. 하고 싶은 말 다 '배설'하지 마시고! (내가 이렇게 거칠어진 이유는 616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끝내고 작가에게 감정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봄을 아주 좋아해서, 작가의 가을과 그에 비해 못된(?) 봄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계절에 대한 표현들은 좋았다. 계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특히 페르세포네의 얘기를 들어 설명한 점은 정말 좋았다. 뭔가 새로운 시각이랄까.

봄은 자만심이 강하고 변덕스러운 자아도취의 계절이다. 이 계절은 자신이 예쁘다고 믿는 아가씨들, 또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 아가씨들이 군립하도록 힘을 발휘한다. p.349  

봄과 여름보다 더 흥미진진한 가을과 겨울은 향수 어린 그림움에 상응하고, 안으로 억눌린 기다림과 어머니에 대한 멀고 미래적인 부드러움과 이어지며, 특히 대지의 창자 속에 달리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페르세포네가 여왕이고 여주인인 은밀한 세계의 동굴 속에 그녀를 감춘 것에 상응한다. p. 455 

소설의 주제는 뒤에 친절하게 써 있듯이 "꿈꾸지 마라, 아무것도" 인 것 같다. (이제 출판사도 친절해졌다.) 신데렐라는 없으니까. 특히, 아버지로 인해 이미 사회생활의 무서움을 경험한 아들들은 더더욱. 네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로(주로 무능으로)부터 꿈을 거세당했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애초부터 없었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그들은 무언가를 욕망한다. 

나는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어 무능하고, 모욕당하며, 지배당하고 예속되는 것이 두려웠다. 내 부모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은 내 상상의 세계에 끊임없이 투영되었고, 그를 통해 외부 세계는 너무나 일찍 나에게 잔인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쉽게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p.390

고독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늘 타인이 필요하다. 늘 삶의 중앙에서 이타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낀다. p.354 

그래서 그는 이런 여자를 꿈꾼다. 에라이. 

내 관심사는 여왕, 살인녀, 중상모략을 일삼는 메디아의 인물들, 능력있는 여자들, 지구의 지적인 여인들이라고요. 난 페미니스트거든요! 근육질의 엉덩이를 가진 매춘부들은 지긋지긋해요! P.235

  

그러니까 아무것도 꿈꾸지 마시란다. 참 잔인하다 꿈도 못 꾸게 하다니..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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