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잔인한 4월이 겨우 끝났지만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연예인들의 유래없는 통큰 기부와 전국에서 모인 성금은 대충 떠올려봐도 엄청난 액수가 모였다. 세월호 침몰 이후 해경과 정부가 보인 태도에 불신감만 쌓인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기부금 관리와 기부금 단체에 대한 기사. (얼마나 불신사회에 살고 있는지.)그리고 참사 이후 거의 모든 사람이 겪은 우울감과 트라우마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성적인 판단을 잃은 유가족에게 차갑게 독한 말을 했던 사람이라면 '위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여기 살아있는 사람은 앞으로 살면서 안 좋은 일도 겪을 것이므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 정신과 전문의가 말해준다. 유가족/ 생존자/ 간접적으로 겪은 우리들. 각자 아픔의 정도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하는 것도 위로하는 법도 달라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슬픔이든 뭐든 너무 억누르려고 하지는 말고 솔직한 자기 감정을 보는 것도 중요하단다.


나도 생각보다 오래 우울감을 느꼈기에, 어쨌든 살아남은 우리는 서로를 위해가며 살아야 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2. 사표 쓰기 전에 한번만 읽어보라는 기사. 읽었다. 왜냐... 나 결국 다음달을 마지막으로 첫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퇴직금 받겠다고 1년을 울며 겨자먹기로 채우는 중이라 직장에서 내 표정은 인형탈 씌워놓은 것처럼 생기가 없다. 그리하여 1년 이내로 직장을 그만두는 30%에 기여하게 되었다.


구질구질한 얘기는 안 쓰련다. 미련이 없으니까.


"너는 잘못된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거야" 라는 친구의 충고를 귀등으로 무시하는 수많은 여성동지들처럼 나도 기사에서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2달 후면 안정적인 쥐꼬리 월급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퇴사까지 D-day를 새겨가면서 무사안일주의로 회사 생활을 버티는 나.


이렇게 열심히 기사를 써 줬는데도 나는 그냥 귀를 막는다. "안들려.. 안들려..."


3. 아시아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씨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실제로 한 번 만난 적 있다.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버섯 덮밥 만드는 걸 배워서 요즘도 출출할 때 자주 해먹고 있다. 평범한 쉐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활발한 모델 활동과 속옷 브랜드 론칭도 하는 것 같아서 같은 젊은 나이인 입장에서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겠다는 에너지 같은 것을 얻었었다. 내가 즐겨보는 잡지에서 보니까 반가웠다.


블로그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말은, 우리나라 날씬하고 마른 여자들이 예뻐 보이는 건 그네들에게 맞는 옷이 많아서 라는 것. 그래서 나는 죽어라 살을 빼는 '길티 플래져'다. 밤에 너무 배고플 때 겨우 생오이나 방울토마토를 먹거나 아니면 야식을 먹고 스스로를 질타하며 자책하는 사람들은 모두 길티플래져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넘쳐 나는데 44,55 사이즈를 유지해야하다니! 맛있는 음식을 사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확실히 구직활동 하면서 느낀건데... 살이 찐 사람에게는 일자리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꽤 많다.


살찐 사람들이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실상 우리 사회는 '뚱뚱'한 사람들한테 몹시 호되다. 44사이즈가 욕할 권리까지 주는 건 아닌데! (문제는 자기 관리도 안 하는 사람들도 통통한 젊은 여자들에게는 그렇게 혹독할 수가 없다. 너 자신을 아시라고요.)


마르다고 다 예쁘지 않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름다움에 관한 좀 더 다양한 기준이 필요하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고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4. [#naomerecoserestuprada]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인지 잘 모르겠지만..(북한 사람도 아니고ㅠㅠ) 구글에 이렇게만 쳐보길 부탁한다. 대부분 포르투갈어를 모를 것 같아 의심이 가겠지만 남미 언니들의 섹시한 몸매를 보고 나한테 감사하게 될 것 같다. 


근데 이 섹시한 언니들 표정은 어딘지 '띠껍지' 않은가. 가운데 손가락까지 펴져있는 사진도 좀 있다. 저 알수없는 알파벳의 향연은 "나는 폭생당할 이유가 없다"라는 뜻이란다. 아마 사진의 대부분은 브라질 여성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갑자기 메세지를 전하는 데에는 한 여성의 행동이 있었다. 페미니스트이자 기자인 나나 케이로스라는 여성이 브라질 국책연구소, 응용경제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분개했고 사진과 같이 "나는 폭행당할 이유가 없다"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옷을 벗은 채로 사진을 찍어 올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문제의 설문조사의, 결과는 브라질 국민의 66%가 '신체를 드러내는 옷을 입은 여성들은 공격을 받을 만하다'고 답한데다, 설상가상으로 그 중에 58%가 '여성들이 처신을 잘하면 폭력을 줄어들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항상 통계의 대표성에는 의심이 있지만 브라질의 국책연구소와 응용경제연구소가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설문조사의 질문과 결과가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생각하기에도 브라질은 아주 더운 동네에 열정과 정열의 나라가 아닌가. 카톨릭 인구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슬람 여성처럼 꽁꽁 싸매고 다니라는 건지. 설문조사가 잘못됐다고 믿고 싶지만 얼굴까지 공개하고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일부 무식한 넘들한테 협박까지 당하고 있다.


그치만 이게 꼭 브라질만의 일인가. 성폭행 당한 여자한테도 "너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면서 남자한테 꼬리를 치니까 그랬지!" 라고 뒤집어 씌우는 게 지금 여기라고 안 일어날까.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무식쟁이들의 생각은 더 확고하고 위험해진다.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든 폭행당할 이유가 없다!


5. 골드앤트. 이놈의 골드 골드! 하지만 왜 조카앞에서는 '호구'가 되냐는 질문에 딱히 이유를 댈 수가 없다. 나는 진정 실버 앤트도 되지 못하지만 내 조카에게는 생각만 나면 찔끔찔끔 찌찌부리한 선물을 사주고 있다. 


아가 선물의 세계는 '가성비' 따윈 따질 수 없다. 조카가 주눅들까봐서, 조카의 애교에는 한없이 약해져서, 어딘가에 남아있는 모성애 때문에.. 등등으로 등급이 골드인 이모들은 카드를 박박 긁는다는 게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아이 교육이다 뭐다 해서도 등골이 바짝 휘는데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 입히고 해야 애가 어디서든 대접받고 산다는 이유로 '8포켓 1마우스', '10포켓 1마우스' 같이 어린애 하나에 많은 어른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하니 진정 팍팍한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만해도 조카가 입만 뻥끗해도 입 주변에 밥풀을 묻히고 먹어도 검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허공을 찔러도 귀여워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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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가 찌라시. 많이 나돌고 나도 거의 다 봤다. 재밌긴 재밌다. 얘는 이럴 줄 알았어, 헉 이럴수가 너가 어떻게, 푸하하하, 어우 얘는 꼬리 백개 달린 여우로구만! 등의 반응으로 일희일비하면서 어느새 친지들에게 공유를 하는 나를 발견한다. (말하고 보니 참 찌질타.)


언니는 나한테 '찌라일보'라는 별명도 붙여준 상황.


연예기사마다 굳이 찾아다니며 리플을 다는 사람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라.



1. 기네스 펠트로. 국내에선 이미지가 꽤 좋은 편이지만 미국에서는 자주 밉상 혹은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언급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호감 연예인과 행동이 비슷하여 이유는 알 것 같다.(사실 얘네들이 더 심한 듯... 울나라는 연예인 하기에 은근 힘든 나라인 것도 같다.)


채식주의자, 완벽한 어머니, 금수저 물고 태어난 여성으로의 삶, 잊을 때마다 타국(영국) 찬양, 남성편력증(사실.. 이건 부럽다.. 사귄 남자들도..ㅠㅠ)...... 등등 완전 부러운 삶이다. 다만, 가만히 있어도 부러운데 그걸 상쇄시켜줄 겸손함이 조금 부족한 거 같은 느낌이다.


뭐, 저 정도 타고난 조건이면 나같아도 오만해질 것 같다. 난 가끔 지금도 오만방자한데!


기네스 펠트로가 이혼한다고 한다. 기사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부부가 안 어울렸다고 말한다. 당시에 그런 얘기가 많았나보다. 아무튼 둘은 생각보다 오래 살았고 둘다 셀러브리티인 이유로 이혼 분석기사까지 나왔다. 


기사요약 : 처음부터 성향이 맞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하여 결혼 생활 내내 삐그덕 거렸고 그들은 행복한 척을 해왔다. 


기사의 어조 : 기네스 펠트로의 잘못이 크다. 왜냐, 자유로운 영혼인 크리스 마틴을 통제하려 했으니까. (오노요코와 비교를 하며) 채식주의에다 닭 가슴살 먹으며 몸을 만드는 롹커는 보고 싶지 않다. 심지어 탐 크루즈와 비교를 당하며 그녀의 '행복한 척'을 꼬집기도 한다.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들이라 신경도 안 썼지만 저 정도 어조가 되면 기네스 펠트로가 에지간히 미운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한 기사라서 그런지 타당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쯤되면 많이 억울할 것도 같다. 모든 행동에 세세하게 분석되는 것도 셀러브리티의 숙명이지만 말이다.


행복해 보이고 싶어서 애쓰는데 그래 너 행복해서 좋겠다~ 라고 퉁치고 넘어갈 여유는.. 없겠지. 대중이란 본디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이라 했듯이 내가 이런 거에 좀 씁쓸해한다고 눈이나 깜짝할까도 싶다.


다만 기사에서 주의해서 봐야할 충고는, 기네스는 괜찮다, 하지만 행복을 위장하려하는 개인들의 삶은 불행하다, 자기의 삶에서 자기가 사라져 버리고 마니까, 라는 말은 주의깊게 들어야 할 거 같다.


2. [월간 교황]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가끔 점성술을 믿기는 하니까 샤머니즘 신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에서 [월간 교황]이라는 잡지가 나왔다고 한다. 가격은 0.5 유로로 한화 700원 정도. 싸다. 아르헨티나 출생으로 화제를 모은(얼마나 보수적인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도 좋아한다. 포근한 인상에 인간적인 행보. 한마디 한마디에 온기가 느껴지는 교황은 잘 없었던 거 같다. 트위터에서도 범세계적으로 기도를 호소하는 교황은 무신론자에게도 타종교 신자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훈훈하다.(작년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친구한테 '한국에 전쟁나고 있어?' 라는 메세지를 받기까지 했다.)


카톨릭교가 국교인 나라라도 젊은이들은 그다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 같다.(우리나라가 특수한 거라지?) 하긴 1000년 동안의 중세시대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구경다녔던 성당에는 바글바글한 관광객과 함께 원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노인이었다.


그렇지만 젊은 그들도 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참 좋아하나보다. 그래서 [월간 교황]을 사본단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단다. '핫'한 교황의 인기를 읽고 잡지를 내는 센스(!)도 돋보인다. 아무리 신성모독이라도 나도 한 번 사보고 싶다. 워낙 훈훈한 사진이 많아서 세상을 조금 아름답게 볼 수 도 있으니까.


3. 불법 낙태 수술과 출산과정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한 해에 몇 명인지 아는지?


답은 무려 30만명 이란다. 세상에나.  


http://names-not-numbers.org/en_int/


위의 싸이트. Names not numbers 캠페인 사이트에 들어가서(주의, 로딩이 느림) 'Claim the Card'를 클릭하면 어떤 여자의 이름이 뜬다. 베르타, 니시아, 라파엘라... 등의 이국여성의 이름이 뜨는데 어느 나라 여성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흰 바탕에 파란색 물감으로 붓질해서 쓴 이국 여인의 이름 밑에 'Sign the Card' 버튼을 누르면 꼭대기에 쓰여져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 카드가 전달된다. 대신, 이 버튼을 꼭 1분 안에 눌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카드는 버려지는 것이다. 이 기계의 이름은 '죽음의 기계'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보낸 카드의 의미는 현대적인 피임법에 대한 보편적 조치, 낙태 합법화, 중절 수술이 안전하지 않을 경우 적당한 건강 관리를 촉구하는 청원에 동의를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한 것이 된다.


30초 정도 투자로 큰 의미가 있는 일에 참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대인지.




* 사족 : 이번 부록은 버버리의 향수 5 미리 쌤플이다. 홍보용으로 보급도 되는 거라서 사실 이거 줄 때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정품 주는 것은 그냥 화장품 회사의 협찬인지.. 좋은 잡지라 폐간될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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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
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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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쩌면 영원히 리뷰를 쓰지 못할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문득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사비나는 '배신'을 사랑한다. 그녀의 삶은 배신의 역사다. 사비나는 처음에 아버지를, 사회를, 데모를.. 그리고 프란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마저도 배신해버린다.


사비나에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배신할 것이 없어지면? 모든 것을 배신한 다음에 배신할 것을 잃은 그녀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나중에 오랜 친구이자 연인(영어로는 friend with benefit 정도일까) 토마스와, 토마스의 연인 테레사가 죽은 이후에 토마스의 아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사비나는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전부터 사비나는 줄곧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찌릿찌릿했던 이유는 사비나의 심정에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소서에 한 번도 '열정'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모범 자소서 예에 '열정'을 불사른 사람들의 자소설(!)을 보면서 피식 웃었던 것은 뭔가 요란하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평가한 것은 용서받고 싶다.)


역자가 전혜린인 책을 골랐다. 평범한 것을 두려워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번역을 끝내주게 했겠지 싶어서. 다만 왜 그녀의 죽음이 이리도 미화되는 건지는 이해가 잘 안된다. 그만큼 젊은 나이에 업적을 쌓고 죽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는 돌아다니는 들개 같은 여자다. 익숙함, 평화, 풍요로움과 같은 단어를 거부하고 순간 순간의 살아있음을 느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자다. 세상의 잣대같은 것 보다는 자기가 경험하고 느낀 것에만 중점을 두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매순간이 의미 있고 무겁다. 영원한 회귀도 아닐텐데! (제발!) 


미간에 주름을 잡아가며 심각하게 책을 읽었지만 니나에 대한 박사의 절절한 편지와 니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니나 편향적(?)인 언니의 소견을 읽고 있노라면, 조금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더라도 남들에게 칭송받는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는 느끼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절절하다. 나중에 그런 편지를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독일 전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던 작품라더니 책을 읽고 있자면 가슴이 쿵쾅쿵쾅 거린다. 정치적이라고 할지 선동적(?)이라고 할지. 생의 한 가운데에서 너의 온전한 삶을 살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반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금방 지쳐버린다.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매 순간을 새롭게 받아들인다면 피곤한 일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중독 되어 있는 나에게 지금 적격인 도서는 아니었다. 읽는 동안 피곤하다는 생각과 뭐가 이리 심각해? 같은 의구심이 가득했으니.


나중에라도 매순간마다 깨어있어서 의미를 마구마구 부여하는, 그런 무거움의 삶을 살게 될 수 있을까. 나중에 사비나를 한심하다거나 불쌍하다고 동정하게 되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민음사
생의 한가운데 - 10점
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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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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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토익이 싫다. 실은 모든 종류의 시험이 싫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말이다. 토익 만점이 그저 책에서처럼 '나 눈 둘 달렸오'를 의미하는 거라면 나는 취업시장에선 불구자인 셈이다. 


주인공은 눈을 찾으러 호주로 간다. 목표의식은 뚜렷하다. 토익만점 받기. 주인공은 문제집만 풀며 영어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마약운반상+ 인질이 되어 버린다. 무서워야 마땅하지만 외국국적의 마약 거래상 인질은 숙박 제공에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생각해서 그는 인질로 남아있기로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나나 농장인 스티브의 집은 양질의 바나나와 대마를 키운다. 바나나 농장 일을 도우며 주인공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면서까지 자기주도형 학습을 해나간다. 그만큼 그에게는 토익 만점이 중요하다.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주인공은 몹시 부정하지만 실은 한국에 행복하지 않은 현실은 있었다. 이주일을 닮은 신을 섬기는 아버지, 주기적으로 집으로 쳐들어와서 이주일 교주의 얼굴에 빨간 엑스를 치고 온 집안을 헤집고 가는 주변 교회의 신도들. 그는 애써 부인하지만 솟을 구멍이 없어 보이는 집 안에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면 남들이 웃지 않는 평범한 가정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번듯한 직장은 빵빵한 스펙을 요구한다. 그 중에 토익만점은 그야말로 '나 눈 둘 달렸오' 라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지만 눈 두개 제대로 달린 것은 실은 불알 두 쪽(☞☜) 달린 거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 않나.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를 뽑으면 언제나 상위 랭크되는 호주에 가서 조금도 즐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토익만을 생각하게 된 게 그 이유다. 나는 스티브의 농장에서 바나나 따는 일을 하며 비교적 유유자적한 삶을 살며 생활 영어를 많이 늘려 놓고 스티브와 스티브 부인인 사이비 신도 요코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따뜻한 생활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조하다.


그러다가 이웃 농장의 전직 토익 성우 부부를 알게 되고 입국일이 가까워지자 초조해진 나는 그곳에 식모 살이를 하게 된다. 그들의 삶은 정말 토익에서의 삶과 같다. 형식적이고 정과 온기가 없지만 왠지 세련돼 보이는 미국적인 삶(?)에 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노역을 해주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한 발의 총성으로... (생략)


나는 우여곡절 끝에 토익 만점을 얻는다. 문제는 이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그는 눈 두짝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번듯한 사람이 될 것인가.



현실의 비극이란 어쩜 이리도 찌질한지. 


백인 여자와 경험해보고픈 꿈을 안고 자판기에서 뽑은 콘돔은 영어 학습에 대한 희생으로 사용되고, 수면부족으로 놓친 칼은 자고 있던 주인집의 푸들의 몸에 박히며 쇠약해진 아버지의 오줌 소리는 찔찔거린다.


이런 찌찔한 비극을 공감하는 나는.. 아직 토익 만점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어제 토익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간다는 기사를 봤다. 토익 대신 토익 스피킹으로 대체됐다는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기자는 모르는지.. 댓글도 당연 회의적이었다. 명화보다는 영어 회화에 좋다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나도 영어를 배우느라 학원에 틀어박히는 가련한 청춘들을 비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토익 때문에 호주로 날아간 주인공이라도 부러웠던 건 내가 지금 지겨운 회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번듯한(?) 직장이 이런 거라면 나 다시 돌아갈래~~ㅠㅠ



* 많은 분들이 칭찬하셨던 작가의 말은 참 훌륭했다. 남들 불행에 위안 받는 거 앙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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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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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전문작가의 에세이를 사는 건 왠지 망설여지는 일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부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온 힘을 다해 쓴 작품에 돈을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샀다. 왜냐하면.. 반값 행사를 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새벽에 하던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영하가 나왔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에. 


성시경이 12-2시 사이에 라디오를 끝내면 그 다음 한 시간, 아주 고혹적인 목소리의 방송인(아나운선가?)이 영화음악 코너를 진행했었다. 성시경과 이 분의 목소리를 참 조근조근해서 심야시간과 참 잘 어울렸다. 집중력을 모으는 이 둘의 목소리 때문에.. 역설적으로 잠에 못 들었다.


부산 국제영화제 때였나? 김영하가 게스트로 나와서 신나게 방송을 했는데 정말 너무 웃겨서 잊을 수가 없다. 차분한 저음 목소리인 DJ(여성)와 달리 오히려 더 높은 톤으로 흥분해서 말하는 김영하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영화 프로에 나와서 '나는 스아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신나게 말했다. 정말 자다가 으하하하- 웃었다.


DJ는 영화를 무척 아끼는 사람인지라 당황+ 황당+ 슬슬 부아가 치밈 의 코스를 밟으며 애써 방송을 했지만 김영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도 했다. 프로그램에 유감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소심해서 하고 싶은 말의 1/10도 겨우 겨우 하는 나같은 사람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얄밉고도 질투가 났다.


이 영화에세이집도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 있듯 거침이 없다. 

 

자기 이야기로 썰을 풀어서 그런지 공감도 더 많이 갔다. 영화 평론은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았고 대게는 재미가 없긴 없지 않나. 나같은 독자에게는 딱이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같은 영화를 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재밌지 않나 생각하는.


특히 영화 [디 아더스]에 대한 꼭지. 공포영화는 실생활에 대입해서 무서울 때 진짜 무서운 것이다. 자기 집과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와 그 집을 공유하려는 알 수 없는 세력과의 싸움. 자기만의 공간을 침해 당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공포스럽다. 공포영화를 이렇게 해석하면 진정 공포스럽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작가의 어머니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으나 경제적 사정과 사람 좋은 아버지 때문에 자동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었던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우리 집이 전세를 전전(?)하던 시절에 남의 집에 세들어 산다는 서러움이 원동력이 되어 울엄니를 더 힘차게 일하게 했던 거 처럼. (내집마련한 지금도 엄마는 살림에 손대는 것, 심지어 돈을 보태주겠다는 말만 꺼내도 극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처럼 반응한다.) 



[영화 좋아하시죠?]라는 꼭지에도 그는 열심히 김영하는 자신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피력하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는 직장인의 애환이 느껴져 얄미워하는 걸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그러는 나도 회사에서 틈을 타 리뷰를 작성하는.. 월급 루팡질을 하고 있다.)




+ 재미있는 두 남자 이우일과 김영하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가끔 글자 읽기 싫을 때 이우일이 깨알같이 그려놓은 4컷 만화만 봐도 웃긴다. 과격하고 원초적인 재미가 있다. 생각보다 이우일이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었구나..(그걸로 돈 버는 사람한테 그런 생각을 했었다니!) 싶게 멋있는 그림도 많다. 일러스트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


+[화양연화]가 도대체 뭐간디 30살이나 되서야 맛을 안다는 것인지. 실은 나도 이해 못했다. 그냥 심각해져서 보다가 앙코르와트 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근데.. 30대가 됐을 때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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