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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김영하, 이우일.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전문작가의 에세이를 사는 건 왠지 망설여지는 일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부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온 힘을 다해 쓴 작품에 돈을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샀다. 왜냐하면.. 반값 행사를 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새벽에 하던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영하가 나왔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에.
성시경이 12-2시 사이에 라디오를 끝내면 그 다음 한 시간, 아주 고혹적인 목소리의 방송인(아나운선가?)이 영화음악 코너를 진행했었다. 성시경과 이 분의 목소리를 참 조근조근해서 심야시간과 참 잘 어울렸다. 집중력을 모으는 이 둘의 목소리 때문에.. 역설적으로 잠에 못 들었다.
부산 국제영화제 때였나? 김영하가 게스트로 나와서 신나게 방송을 했는데 정말 너무 웃겨서 잊을 수가 없다. 차분한 저음 목소리인 DJ(여성)와 달리 오히려 더 높은 톤으로 흥분해서 말하는 김영하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영화 프로에 나와서 '나는 스아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신나게 말했다. 정말 자다가 으하하하- 웃었다.
DJ는 영화를 무척 아끼는 사람인지라 당황+ 황당+ 슬슬 부아가 치밈 의 코스를 밟으며 애써 방송을 했지만 김영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도 했다. 프로그램에 유감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소심해서 하고 싶은 말의 1/10도 겨우 겨우 하는 나같은 사람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얄밉고도 질투가 났다.
이 영화에세이집도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 있듯 거침이 없다.
자기 이야기로 썰을 풀어서 그런지 공감도 더 많이 갔다. 영화 평론은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았고 대게는 재미가 없긴 없지 않나. 나같은 독자에게는 딱이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같은 영화를 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재밌지 않나 생각하는.
특히 영화 [디 아더스]에 대한 꼭지. 공포영화는 실생활에 대입해서 무서울 때 진짜 무서운 것이다. 자기 집과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와 그 집을 공유하려는 알 수 없는 세력과의 싸움. 자기만의 공간을 침해 당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공포스럽다. 공포영화를 이렇게 해석하면 진정 공포스럽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작가의 어머니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으나 경제적 사정과 사람 좋은 아버지 때문에 자동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었던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우리 집이 전세를 전전(?)하던 시절에 남의 집에 세들어 산다는 서러움이 원동력이 되어 울엄니를 더 힘차게 일하게 했던 거 처럼. (내집마련한 지금도 엄마는 살림에 손대는 것, 심지어 돈을 보태주겠다는 말만 꺼내도 극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처럼 반응한다.)
[영화 좋아하시죠?]라는 꼭지에도 그는 열심히 김영하는 자신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피력하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는 직장인의 애환이 느껴져 얄미워하는 걸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그러는 나도 회사에서 틈을 타 리뷰를 작성하는.. 월급 루팡질을 하고 있다.)
+ 재미있는 두 남자 이우일과 김영하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가끔 글자 읽기 싫을 때 이우일이 깨알같이 그려놓은 4컷 만화만 봐도 웃긴다. 과격하고 원초적인 재미가 있다. 생각보다 이우일이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었구나..(그걸로 돈 버는 사람한테 그런 생각을 했었다니!) 싶게 멋있는 그림도 많다. 일러스트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
+[화양연화]가 도대체 뭐간디 30살이나 되서야 맛을 안다는 것인지. 실은 나도 이해 못했다. 그냥 심각해져서 보다가 앙코르와트 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근데.. 30대가 됐을 때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