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토익이 싫다. 실은 모든 종류의 시험이 싫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말이다. 토익 만점이 그저 책에서처럼 '나 눈 둘 달렸오'를 의미하는 거라면 나는 취업시장에선 불구자인 셈이다. 


주인공은 눈을 찾으러 호주로 간다. 목표의식은 뚜렷하다. 토익만점 받기. 주인공은 문제집만 풀며 영어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마약운반상+ 인질이 되어 버린다. 무서워야 마땅하지만 외국국적의 마약 거래상 인질은 숙박 제공에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생각해서 그는 인질로 남아있기로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나나 농장인 스티브의 집은 양질의 바나나와 대마를 키운다. 바나나 농장 일을 도우며 주인공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면서까지 자기주도형 학습을 해나간다. 그만큼 그에게는 토익 만점이 중요하다.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주인공은 몹시 부정하지만 실은 한국에 행복하지 않은 현실은 있었다. 이주일을 닮은 신을 섬기는 아버지, 주기적으로 집으로 쳐들어와서 이주일 교주의 얼굴에 빨간 엑스를 치고 온 집안을 헤집고 가는 주변 교회의 신도들. 그는 애써 부인하지만 솟을 구멍이 없어 보이는 집 안에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면 남들이 웃지 않는 평범한 가정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번듯한 직장은 빵빵한 스펙을 요구한다. 그 중에 토익만점은 그야말로 '나 눈 둘 달렸오' 라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지만 눈 두개 제대로 달린 것은 실은 불알 두 쪽(☞☜) 달린 거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 않나.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를 뽑으면 언제나 상위 랭크되는 호주에 가서 조금도 즐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토익만을 생각하게 된 게 그 이유다. 나는 스티브의 농장에서 바나나 따는 일을 하며 비교적 유유자적한 삶을 살며 생활 영어를 많이 늘려 놓고 스티브와 스티브 부인인 사이비 신도 요코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따뜻한 생활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조하다.


그러다가 이웃 농장의 전직 토익 성우 부부를 알게 되고 입국일이 가까워지자 초조해진 나는 그곳에 식모 살이를 하게 된다. 그들의 삶은 정말 토익에서의 삶과 같다. 형식적이고 정과 온기가 없지만 왠지 세련돼 보이는 미국적인 삶(?)에 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노역을 해주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한 발의 총성으로... (생략)


나는 우여곡절 끝에 토익 만점을 얻는다. 문제는 이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그는 눈 두짝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번듯한 사람이 될 것인가.



현실의 비극이란 어쩜 이리도 찌질한지. 


백인 여자와 경험해보고픈 꿈을 안고 자판기에서 뽑은 콘돔은 영어 학습에 대한 희생으로 사용되고, 수면부족으로 놓친 칼은 자고 있던 주인집의 푸들의 몸에 박히며 쇠약해진 아버지의 오줌 소리는 찔찔거린다.


이런 찌찔한 비극을 공감하는 나는.. 아직 토익 만점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어제 토익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간다는 기사를 봤다. 토익 대신 토익 스피킹으로 대체됐다는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기자는 모르는지.. 댓글도 당연 회의적이었다. 명화보다는 영어 회화에 좋다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나도 영어를 배우느라 학원에 틀어박히는 가련한 청춘들을 비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토익 때문에 호주로 날아간 주인공이라도 부러웠던 건 내가 지금 지겨운 회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번듯한(?) 직장이 이런 거라면 나 다시 돌아갈래~~ㅠㅠ



* 많은 분들이 칭찬하셨던 작가의 말은 참 훌륭했다. 남들 불행에 위안 받는 거 앙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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