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를 내밀다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 국수



젓가락을 구멍 속에 넣고 눈을 감은 채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집는 양만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친구들이 마련한 생일 행사였다

나는 눈을 감고
손에 힘을 주었다
하나, 둘, 셋, 친구들의 외침에 따라 젓가락을 모았다

어쩌나...... 젓가락이 헐거웠다

됐네, 친구들의 만류에
흔들리는 그림자 같은 마음으로 눈을 떠보니
젓가락이 커다란 그릇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눈감고 젓가락에 힘을 주는 순간
친구들이 그릇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나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친구들은 박수를 쳐댔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그득한 국수 한 그릇에 마음이 놓였다




□ 눈썹이라니까요
-아라비안나이트


1

아픈 마음에 쓸 약초를 구하러
어느 산골에 이르렀는데
한 사내가 마을 어귀에 헌병처럼 서서
사람들을 잠깐씩 제지했다가 들여보내고 있었다
살짝 다가가서 보니
소꿉장난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어디가 잘생겼나요
코지요

어디가 잘생겼나요
입술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의 잘생긴 곳을 말하면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코도 낮고 입술도 두껍고 눈도 작고 피부도 거친데
서로 인정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2

어디가 잘생겼나요
눈썹이지요

사내는 내 눈썹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3

어느덧 날이 저물어
막아섰던 사내는 일과를 끝냈다는 듯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나는 다가가 외쳤다, 눈썹이라니까요!



- 맹문재 시집 / 사과를내밀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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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교육청 홈페이지 > 외부기관행사 > [행사안내]제1회 부산의 아름다운 갈맷길700리 종주 사진 전시회 알림
http://me2.do/5HCvZ7ix


제주에 올레길이 있듯이 부산에는 갈맷길 700리가 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기간 내 8월10일~16일, 9시에서 18시까지 부산시청전시실에서
`부산갈맷길 700리 사진전`이 열립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어
방학 중 학생들에도 의미 있는
체험전이 될 거라 믿습니다.

저는 이번 사진전과 함께 엮은 스토리북을만드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반하여 무조건 응낙하고 마음으로 동행합니다. 제1호 갈맷길 스토리북은2기 종주자들 중 28명 700리 완주자들과 그외 종주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엮으며 우리에게 길이란 무엇일까, 길 위에서 묻습니다. 이번이 첫번째라 어떤 결과와 시너지효과가 나올지, 어떤 예상 밖의 일들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그저 좋아서들 하는 일이니 즐겁게 동참합니다. 첫걸음이 있어야 두번째, 세번째가 있겠지요. 처음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눈물과 웃음, 감동과 추억, 새로운 꿈과 도전이 있는 갈맷길 700리 전시회에 자라나는 초.중.고 학생들과 함께 한 번 보러가시길 권유합니다. 대학생 청년갈매기, 청소년갈매기들에게도 삶의 길에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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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2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도시에서 부산으로 휴가오시는 분들께도 권유합니다. 날짜가 맞으시다면‥
 

  

  

 

 

 

 

 

 

 

 

 

부슬비를 뚫고 달려 순수한 사람들 몇을 만나 미팅하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왔다.

내일 저녁,  수필낭송회에서 첫 번째 순서로 낭송하는데 배경음악으로 이 음반을 골라둔다.

내가 좋아하는 최민자님의 수필 '달빛과 나비'를 3분 정도 낭송 용으로 정리했다.

마음 같아선 덩실덩실 가야금 소리자락에 맞춰 어깻짓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저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 가락에 내 목소리가 조화롭게 녹아들길 바란다.

내일은 비가 안 오면 좋겠는데 어떨지... 비 오면 머리카락이 힘 없이 가라앉고 부스스해진다구 ㅠ

 

 

 

달빛과 나비

 

 

글 / 최민자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 청아한 그의 가야금 연주는 댓잎에 듣는 빗방울이었다가, 빠르게 일어나는 구름이었다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였다가, 이윽고 고요한 달빛이 되어 천지간에 흐뭇이 내려앉는다. 잦아지는가 싶다가 사뿐 살아나는 산조의 선율은 천상의 궁궐에 사는 요정이 서둘러 은하수를 건너가는 작고 날랜 걸음새도 같고, 그 요정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열사흘 달빛 같기도 하다.

 

선생의 가야금 소리에서 나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만나고, 결 고운 비단치마가 풀숲을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른 봄, 꽃들이 벙글어 터지는 소리와 늦가을 들녘의 바람소리를 만난다.

 

신새벽 호숫가, 이제 막 번데기에서 깨어난 나비가 달빛에 젖은 날개를 턴다. 조금씩 조금씩 푸드덕거리며 서툰 날갯짓을 시작한다. 달빛 사이로 나비가 날아오른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노랑 바탕에 까만 무늬가 찍힌 호랑나비, 보랏빛 작은 날개를 가진 부전나비, 모시나비, 제비나비, 배추흰나비, 꼬리명주나비...... 하늘은 오색 날개로 눈부시고, 날갯짓 소리로 세상이 현란하다. 연주가와 악기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는 신비스런 법열의 춤사위. 도도한 악흥이 빛의 꽃가루가 되어 칠흑의 세상 위에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나비들이 하나둘 내려앉는다. 술렁이는 축제도 막을 내리고 호수에는 달빛만 교교하다. 제의를 치르듯 숙연하게 줄을 뜯던 선생의 손길도 멈추어 있다.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고즈넉한 정적이 깃든다. 밝은 달무리를 삼킨 것처럼 비로소 가슴이 환하게 트여온다.

 

    

 

- 최민자 수필 <달빛과 나비>에서 낭송용으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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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7-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맛~~`침향무`는 저희 가족들도 즐겨 듣던 황병기님의 연주.^^
덕분에 큰 아들이 가야금을 배웠지요~


침향무,를 배경음악으로 낭송하시는 `달빛과 나비`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조화롭고 아름다운 프레이야님의 낭송, 서재에서도 들려주세욤~~*^^*

프레이야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15-07-21 08:39   좋아요 0 | URL
역시 가족이 모두 멋진 정취를 즐기시군요. 아드님이 가야금을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니 대단해요. 서양악기만 많이들 시키는데‥ 탁월한 선택입니다. 울작은딸은 장구를 잘 두드려요. 사물놀이에 푹 빠져서 3년을 보냈거든요. 고교생이 되고는 뜸하지만 그때의 열정을 종종 떠올리며 스스로 뿌듯해한답니다. 과음했는지 목소리가 좀 잠겼어요. ㅎㅎ 몇 번 연습해봐야겠네요^^
 

 

 

 

 

 

 

 

 

 

 

 

 

 

 

 

어느 독서 모임에서 업어온 책을 오늘아침 우연히 들춰본다. 우연이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는 필요에서 손이 갔겠다. 30대 후반의 이 책 주인한테 책을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톨스토이의 생애 마지막 저서라고 소개 받은 이 책에는 대문호가 오랜 세월 쓰고 읽고 경험하고 명상하며 얻은 깨달음이 시적인 형식으로 씌어 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명언들로 오염되어 들끓는 마음을 잦아지게 해준다.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이용한다. 물론 그런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위선을 부리기도 하지만 은근히 드러내면서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간교함이 보이는 것이다. 어제 딸아이랑 야밤 토크 중 '답정너'가 튀어 나왔다. 내가 그 신조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신기해 했다. 우리 '답정너'는 되지 말자.  지나친 자기 사랑은 오만의 출발점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지나친 자기사랑에 주변사람들은 질리고 피곤해진다.

 

오늘 나에게 주는 말은, 사람이든 상황이든 자신이든 매사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려 감정을 제어한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오만의 출발점

 

 

 

안 맞는 바퀴는

굴러갈 때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예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사랑은 오만의 출발점이다.

오만은 자기만 사랑하는 행동의 정점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장점을 동원해 다른 사람을 도우라.

몸이 튼튼하다면 약한 이를 돕고

지혜롭다면 그렇지 못한 이를 도와라.

아는 것이 많다면 배우지 못한 이를,

부자라면 가난한 이를 도우라.

 

하지만 오만한 사람은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면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홀로 간직하려 든다.

 

-   93쪽

 

 

 

 

아래는 책소개에서 업어온 글귀

레프 톨스토이의 한 마디
이 책은 인류에 대한 나 자신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함께 읽는 독자들이 내가 책을 쓰면서, 또한 매일 반복해서 읽으면서 경험했던 감동과 흥분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한다. - 톨스토이 (지은이)
이상원의 한 마디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지, 올바로 사는 길은 무엇인지,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갈등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고민스러울 때 이 책을 펼쳐 보라. 바로 그런 고민에 치열하게 매달렸던 톨스토이가 남긴 글귀들은 어느새 고요한 산사에 앉은 듯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일어섰을 때에는 다시 세상과 마주 볼 용기를 안겨 줄 것이다. - 이상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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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8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든 상황이든 자신이든 매사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려 감정을 제어한다면 좀더 낫지 않을까.. 한번 더 읽어봅니다. 객관적인 눈 갖는 것이 참으로 힘듭니다. 저도 모르게 팔이 굽어버려요~

프레이야 2015-07-18 09:39   좋아요 1 | URL
종종 감정에 속아 허우적대다 앗차 하는 순간이 있어요. 자기가 제일이라고 믿고 자신을 속이며 사는 착각병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마음도 되돌아봅니다. 기분좋게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세실 2015-07-1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정너ㅎ
많이 내려놓았는데 가끔은 뜨끔합니다.
저 아닌거죠?
객관적인 눈! 명심하겠습니다^^

프레이야 2015-07-18 11:40   좋아요 0 | URL
모야모야. ㅎㅎ 우리오공주는 아니죠. 특히 세실님은 현명하고 센스있고 정감있고. 뭐든 지나칠 때 문제인 거죠. 나 어제 령이한테 농담하다 답정너라고 은근 한코 먹었잖우. 아야ㅋ 주변에 답정너, 남자도 있어요. 여자만이 아냐요. 훕~

라로 2015-07-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정너??뭐에요????ㅎㅎㅎㅎ 발음이 너무 어려워~~~~~ㅋㅎㅎㅎ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 중에 정신 병자가 많다고 하네요. 그러니 측은하게 생각해야 할지도요. 근데 저도 혹시???

프레이야 2015-07-18 15:17   좋아요 0 | URL
ㅎㅎ 혐의가 누구든 있죠. 지나치면 문제지만. 끊임없이 인정과 칭찬, 환호를 받으려드는‥ 남자사람도 이런 경우 있어요. 자기애, 필요하지만 지나친 수준이면 상당히 피곤하더라구요 계속 상대해주기가‥ 안 됐지만 유아기에 머물러있는 심리랄까‥ 답정너는 빤한 대답을 제시해두고 듣고픈 심리에서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요거라고 합니다.

cyrus 2015-07-1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타임라인에 사진만 잔뜩 올리고, 사진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은 사람이 있었어요. 페친의 수와 `좋아요` 수도 많이 받았어요. 댓글을 다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답글을 달지 않더라고요. 번거로운 일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달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분의 페북을 보는 것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서 그냥 페친 관계를 끊었습니다.

프레이야 2015-07-18 16:55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들은 대개 댓글과 좋아요에 집착하는 경우 많고 구걸 비슷하게 하는데 정작 본인은 남의 좋은포스팅에 애써 반응을 피하는 사람들. 시샘이 많고 자기사랑에 빠져있는 부류지요. sns로 인해 새는 시간이 늘어난 건 맞아요. 어쨌거나 지혜롭게 써야할텐데요
 

 

 

 

 

 

 

 

 

 

 

 

 

 

 

 

인상 깊게 보았던 <비우티풀>의 감독, 이냐리투는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한다고 한다.  

 

무슨무슨 맨,이라는 제목에 대한 선입견으로 제목을 흘려듣고 있다가 올해 초였던가.

비비아롬님의 권유(내가 좋아할 영화라고 덧붙이며^^)로 <버드맨>을 만났다.

마이클 키튼과 에드워드 노튼의 훌륭한 연기, 관객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끌고가는 특출한 카메라워크, 경쾌하고 드라마틱하게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타악기와 현악기의 적절한 소리 배치와 무대 뒤의 좁다란 복도와 복잡한 뉴욕거리,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의 현란한 앞쪽과 뒤숭숭한 뒤쪽 공간 구성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모든 장면들. 전체적인 속도감 못지 않게 놀라운 감각의 영화에 몸도 마음도 즐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왕년의 블록버스터 수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 속 버드맨, 리건은 고교시절 연극 활동 시, 자신의 연기를 본 레이먼드 카버가 냅킨에 써서 건네준 격려의 문구에 격하게 감동하였다. - Thank you for the honest performance. 그 냅킨을 여지껏 갖고 있는 60대 퇴물배우.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 흔한 SNS에 조차) 존재감 없는 리건은 끊임없이 덤벼드는 또 하나의 자기 자신에 시달린다. 환청인 듯 그림자인 듯 늘 말을 걸어오는 그 목소리는 리건의 무의식에 자리하는 헛것으로 자신을 몰아대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상기시킨다. 그 이름은 버드맨.

 

영화는 과거의 영화로웠(다고 생각되는)던 자신을 차버리고 거듭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정밀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결미의 장면은 우리 영화 '해피엔드'를 연상하게 하는데, 열린 결말로 볼 수 있겠다. 관객은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자신과 화해하고 버드맨 따위는 쫓아내버리고 재기에 성공한 조짐이 보이는 리건이 모종의 수치심을 느끼고 연극 속 에드처럼 자살한 것으로, 그러나 딸 샘의 눈에는 버드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으로 비쳐졌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소망(욕망의 다른 이름)과 자신의 소망에는 틈이 있는 법. 이러거나 저러거나 해피엔드가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사랑에 대해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선 창피해해야 마땅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217p)

 

영화 중, 리건이 제작 및 주연을 맡은 연극이 등장한다. 퇴물 영화배우 리건이 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할지도 모를 중요한 연극이다.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제목 그대로다. 대사와 내용은 약간 변형되었지만, 기본 구도와 초반 대사는 소설 속 그대로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침체기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리며 재기를 노리지만 여전히 갈등하며 자신과 싸우는 리건에게 촉매가 되는 역할이다. 영화 속 그는 리건과는 달리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배우로 나온다. 실제 연극무대에서도 활동하는 노튼의 연기도 조연이지만 빛난다. 무대에선 진실되게 사실적으로, 실제에선 사기꾼에 허풍선이 역할, 애매하게도 그게 삶의 진실이라고 믿고 배짱 좋게 말하는 노튼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다.

 

리건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연극무대에 올리려고 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한 이냐리투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를 이끌어가는 매체로 끌어들인 목적이 무엇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결국 사랑을 떠벌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창피한 줄 알라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는 다른 많은 것들을 조롱하고 있다. 특히 바에서 늙은 여비평가와 리건이 나누는 대사는 적나라하면서 정곡을 찔러 통쾌한 맛이다. 그러고 나서 바를 나온 리건이 도시를 배회하다가 듣게 되는 어떤 남자의 독백은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는 연극의 대사 같기도 한데, 배경음으로 깔리는 저음의 현이 처절한 심정의 리건을 대변한다.

" I don't exist. I don't exist."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사랑함에 있어서조차도 우리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리건은 (무지에서든 자발적으로든) 다친 코도 재건했고 신문에는 '무지에서 왔지만 예상하지 못한 초사실주의'의 선봉으로 대서특필 되었다. 더구나 전처와 딸과도 예전의 사랑을 찾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아니 그래서, 거듭날 수 있는 이 순간에 진실을 통렬히 깨달은 게 아닐까. -  I don't exist. I'm not anything. I'm not anyone.

 

 

 

- 영화 'BIRDMAN' 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 사랑에서 우리는 초보자일 뿐인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사랑하기도 하지...... "(214p)

"...... 그런데 끔찍한 건, 정말 끔찍한 건, 한편으로는 좋기도 한 건데,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 만먁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 바로 내일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상대, 그러니까 다른 한쪽은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곧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그러면 이 모든 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랑이 그냥 추억이 되겠지. 어쩌면 추억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내 말이 틀렸나? ......"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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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버드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영화 버디가 먼저 생각나요~

프레이야 2015-07-13 20:37   좋아요 0 | URL
버디,라는 영화가 있었나요. 저는 첨이라서요~^^ 버디영화는 많지요.

지금행복하자 2015-07-13 21:26   좋아요 0 | URL
1984년 영화에요. 오래된 영화죠~ 니콜라스 케이지. 매튜모딘 주연이고 베트남전쟁이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매튜모딘이 정신병원 침대위에서 날려고 하는 포스터가 생생해요~
아직 버드맨은 못 보았구요~^^

프레이야 2015-07-13 21:28   좋아요 0 | URL
아!! 찾아서 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고양이라디오 2015-07-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말 재미있고 좋은 영화였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15-07-13 20:38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다시 봐도 재미있어요. 둘이 엉켜서 싸우는장면도 그렇고 리건이 팬티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상황도ㅎ

2015-07-1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5-07-13 21:15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참 고마워요. 리건이 진짜 하늘을 나는 버드가 되면 좋을까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린 창피해해야 된다는 카버의 글귀, 찔리지않고 배길 수 있을까요^^ 참 하찮은 게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면 좀 나으려나요

고양이라디오 2015-07-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ㅜ 정말 좋은 영화였고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언제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네요. 이 영화때문에 카버의 책도 읽어보게 되었고요^^

프레이야 2015-07-14 02:00   좋아요 0 | URL
네ㅎㅎ저도 영화 보고 그 단편을 찾아 읽었어요^^ 너무 유명한 제목이니 ‥

라로 2015-07-15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글에 제 닉네임을 언급해주셔서 영광입니다요~~~~~^^*
더구나 잊지 않고 봐줘서 더 고마운~~~~!! 그 맘 알아요?????ㅎㅎㅎㅎ

프레이야 2015-07-15 21:02   좋아요 0 | URL
아롬님 아니었더라면 패스했을 수도 있었던^^ 낄낄대며 봤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