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실 아줌마의 가구 찾기 돌개바람 9
박미라 지음, 김중석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이찬실 - 아줌마 - 가구 - 찾기

네 개의 단어가 낱자로 눈에 든다. 어린이가 읽는 동화지만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이들은 별로 관심 두지 않는 '가구'는 목적어격이다. ‘찾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이다. 숨은그림찾기, 보물찾기, 또 뭐가 있더라..

 이찬실,이라고 하니까 찬찬하고 진실한 사람일 거란 느낌이 든다. 수수하다못해 조금은 촌스러울 것 같은 이름이다. 뜬금없이 초등학교 때 ‘진실’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생각난다. 하기야 탤런트 이름에도 동명이 있다. 노란색의 밝은 책표지에는 아줌마가 청소기를 손에 들고 다른 손엔 걸레를 쥐고 서 있다. 북술북술한 퍼머머리에 조금 뚱뚱해 뵈는 몸, 앞치마를 걸치고 팔을 걷어부치고 서 있는 모습이 사람들이 썩 호감을 느끼지 못할 인상이다. 어디서 많이 본 생김새 같다 싶어 그린이 이름을 확인하니, <나는 백치다>의 삽화를 그린 김중석님이다. 이 책에서는 수채물감을 연하게 풀어 붓을 쓰윽쓰윽 그은 듯 자연스럽고 편한 삽화가 술술 읽히는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이찬실 아줌마가 가장 아끼던 가구는 장롱이었다. 나는 오래 전 결혼을 하면서 처음 장만했던 장롱이 생각났다. 아줌마의 장롱은 십장생이 양각으로 새겨진 오래된 장롱인데 나의 그것은 십장생은 아니지만 양각의 무늬를 따라 사이사이 먼지를 닦아 줘야했던, 그저그런 디자인의 둔탁한 갈색 덩치였다. 만 11년을 함께 한 그 장롱을 4년 전 이사를 하며 폐기했다. 어렵사리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그런 것들이 마치 가족인 양 쉽게 버리기가 내키지 않았다.  전혀 생각이 없을 무생물에도 애정을 품게 되는 게 사람인가 보다.

 살아오면서 누구도 알지 못할 뼈아픈 이야기와 알콩달콩한 사소한 이야기,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가구다. 정든 가구는 쉽게 버리지 못할, 식구 같은 것이다. 가구는 그 집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집주인의 취향과 살아가는 결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구는 눈 뜨면 늘 봐야하고 고정된 채 붙박여있는 물건이지만 손때가 묻고 먼지가 앉은 그것들이 하나하나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여 추억을 공유하는 어떤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찬실 아줌마는 가구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구구절절하다. 그걸 다시 찾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맺기에 성공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덤으로 얻었다. 그녀의낡고 빛바랜 기억이 선명해짐을 느끼게 되는 건 더께 같이 앉은 먼지를 털어내듯 오래된 가구를 모조리 내다 버린 후부터다. 하지만 가구를 버리고 아줌마가 기대했던, 전혀 다른 삶을 얻지 못한다. 더 좋은 집에서 새로운 가구와 조화로운 이탈리아 풍의 테이블램프보다 이전에 자신의 머리맡을 지켜주던 퇴색된 꽃무늬 갓을 쓰고 있는 작은 램프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마치 '거위털 이불이 몸에 착 감기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이상한 느낌을 갖는다. 그건 뭐랄까. 자기 것이 아닌,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소외감, 고립감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 아주 어릴 적의 아련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그녀의 기억 속에 살아난다. 그것들을 내다버리려 했다니. 그것들은 아줌마를 살게하고 만들어준 소소한 이야기들인데. “이게 다 그놈의 가구 때문이야.”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그녀의 마음과 삶을 단정한다. 내성적이라 다른사람에게 먼저 말도 잘 못 걸고 바깥출입도 잘 안 하는 생활은 남들에게 '거만함'으로 보이고, 가구를 죄다 내다 버리고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 행동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된다. “좋은 집으로 이사 간 사람이 여긴 왜 왔어?"  야채가게 아줌마의 이 말이 뾰족하다. 수수한 이찬실아줌마는 이런 말에도 날을 세우지 않는다.

 그래도 결말은 안심이 되는 쪽으로 흐른다. 이찬실 아줌마가 세상의 사람들과 하나씩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가구를 찾아다니며 세상의 바람을 코로 마시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기에 얻은 것이다. 동네 아이들, 야채가게 아줌마, 유모차 할아버지 그리고 화가선생님. 그녀는 이제 눈 뜨면 하릴없어 무료한 아줌마가 아니라 바지런히 할 일들을 목록으로 적어가며 하루를 바쁘게 사는 아줌마가 되었다.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창밖에서 수채물감으로 번져오는 바람의 색깔처럼 예전과 달리 느껴진다.

 그래서 가구는 다 어떻게 되었냐고? 그녀에게 가구는 이제 그냥 ‘가구’일 뿐이다. 가구야 뭐, 유모차 할아버지 집에 가면 미운정고운정 든 친구를 만나듯 그걸 쓰다듬을 수 있다. 이제는 다른 것에 더 몰두할 것이다. 그녀는 잘 하는 게 많다. 집안 청소하기, 할아버지와 이야기 나누기, 가구 반들반들하게 닦기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진짜 특기가 있다. ^^ 그녀는 자신이 잘 하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자신만의 ‘가구’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동시에 그것들과 오래 함께 할 것이다. 물론 그녀의 곁에는 평생을 동행할 좋은 사람도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다. 하지만 저학년동화로 나온 것인데 저학년 아이들은 그다지 흥미로워 할 주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발상은 아주 좋은데 아이들 또래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은 점도 아이들의 호기심에서 살짝 비켜날 우려가 있다.  2~4학년 권장.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에 2007-10-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40대 권장일꺼 같은 느낌. 저도 단정짓기하지말고 가구찾기 해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10-13 22:52   좋아요 0 | URL
그죠? 누에님, 주제가 아이들이 끌릴 만할 것 같지 않은 게 좀 걸려요.
전 재미있었지만요. 누에님이 내다버린 오래된 가구는 뭐가 있을까요?^^

마노아 2007-12-1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공지보고서 왔어요. 리뷰대회 입상이에요. 축하합니당~

멜기세덱 2007-12-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07-12-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덩, 무슨 입상이람요.. 싶어서 찾아보니 뭐가 있긴 있네요.
알려주셔서 고맙고 축하해주셔서 더 고마워요.
리뷰대회 공지 못 보고 쓴 건데 완전 '왠 떡'이에요.
마노아님은 몇관왕이시더군요. 많이 축하합니다~~
세덱님은 뭐 두말 할 것 없이 일등 자리에 굳건히~~ ^^

순오기 2007-12-1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혜경님 축하합니다.
리뷰대회 공지도 못보고 쓰셨군요. 역시 내공이 상당하십니다!!
전, 써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끙끙거리다가, 마감시간 20분전에 올렸거든요.

프레이야 2007-12-14 19: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손오기님이야 워낙 더 내공으로 똘똘 뭉치셨잖아요^^
나중에 공지 보고 리뷰도서리스트를 훑어보니 이 책이 들어가 있더군요.
완전 그저 건진 것 같은 이 느낌, 룰루랄라~
 

가끔 동시를 읽으면 생글생글한 말들이 입속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동시를 읽으며 깔깔깔 낄낄낄 즐거워하고, 때로는 갸우뚱하기도 해요.

어른들은 동시를 읽으면 간결하게 사는 것이 마냥 그리워져요.

그동안 읽었던 동시집을 모아봅니다. 초등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


2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좋은작가 좋은동시
한국동시문학회 지음, 최영란 그림 / 예림당 / 2003년 2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07년 10월 16일에 저장
절판

눈을 떠 잠꾸러기야
김아현 지음 / 삼성당 / 2006년 5월
6,500원 → 5,850원(10%할인) / 마일리지 320원(5% 적립)
2007년 10월 12일에 저장
품절

어린이시
먼지야, 자니?
이상교 지음 / 산하 / 2006년 5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7년 10월 12일에 저장
구판절판
권하고 싶어요.
오리
황순원 지음, 최승호 엮음, 사석원 그림 / 비룡소 / 2002년 11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7년 10월 11일에 저장
절판



2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7-10-1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권 있네요~~~~ 푸른책들과 콩,너는 죽었다, 시가 말을 걸어요.
다른 것들은 기회가 되면 봐야겠어요~~~~ 감사 ^*^
'생글생글한 말들이 입속에서 굴러 다니는 것 같다' 멋지군요!

프레이야 2007-10-11 22:04   좋아요 0 | URL
님, 마음이 볶닥댈 땐 동시를 읽으면 좀 맑아지는 것 같아요.
전, 최윤정이 엮은 '가만히 들여다보면'을 권하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푸른책들 동시집이 많네요.

하늘바람 2007-10-1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동시집만 모아놓으셨네요

프레이야 2007-10-12 14:24   좋아요 0 | URL
근데 품절이 많네요. 신간 동시집 중에도 좋은 게 많을거에요.
입안이 까끌할 땐 동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좋아서요^^
태은이한테도 차츰 낭송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언어놀이^^
 

 

자명한 산책



황인숙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


-----



♧ 황인숙

  1958 서울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자명한 산책』 등

♤ 가을이 되면 으레 떨어질 줄 아는 잎새와 잎새들.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일. 
    자명한 것들을 걷어차는 일!!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7-10-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는 자명함을 퍽!퍽! 걷어차며 걷는다" 나도 이러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7-10-10 10:5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도 퍽퍽 걷어차고 싶어요.^^
조금 있으면 많이도 떨어질 낙엽들, 우리는 너무 당연하고 자명한 것들
앞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걷어차서 뒤집어 봐야죠.

2007-10-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10-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자명한 일들을 걷어차는 일이라...."
가을을 빗댄 이 시가 건네는 의미가 뭘까? 갑자기 단순한 홍수맘 멍해져 옵니다.

프레이야 2007-10-10 16:41   좋아요 0 | URL
그냥 걷어차 보는 것도 좋지요. 속 시원하니!!
홍수맘님, 그거 보냈어요.^^

소나무집 2007-10-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랜만에 하늘빛이 가을이네요.
파란 하늘, 가을 느낌 자명합니다.
자명해도 그렇지 못해도 다 지나가지요.

프레이야 2007-10-10 16:42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왜 이리 싱숭생숭하게 만드는지요.
네, 다 지나가지만 또 찾아오기를 반복하는 것들..

망상 2007-10-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들었습니다. 3년 쯤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어두운 장롱에 포스트잇이 달려 있네요.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ㅎ

프레이야 2007-10-11 23:25   좋아요 0 | URL
망상님, 유진과 유진, 리뷰를 읽은 후로 오랜만이죠.
오랜만에 꺼내든 시집, 참 반갑고도 애잔하셨겠어요.^^
 

 

수천의 새들이 날갯짓을 하면서




최하림


끝을 모르는 시간 속으로 새들이 띄엄띄엄 특별할 것도 없는
날갯짓을 하면서 산 밑으로 돌아나간다 강물이 흘러 내려가고
나무숲이 천천히 가지를 흔든다 이윽고 나무숲 새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번쩍이면서 수천의 그림자를 지운다
새들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하늘 속으로 들어가 멈추어 있다가
시간의 거울 속으로 빠져나가면서
거울과는 반대 방향으로 날갯짓을 한다
하늘에는 수천 새들의 날갯소리로 시끄럽고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요요마는 거울 속에서
거울의 부축을 받으면서 연주한다 황혼이 거울 속으로
돌아든다 새들이 또다시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날아가면서 꾸르륵꾸르륵 운다

 


-------

 

♠ 시인 최하림

1999년 전남 목포 태생
1964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 『풍경 뒤의 풍경』 등


 

▶ 시간과 자아, 침묵과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 뒤의 풍경을 그린다.
    아니, 그 사이를 넘나든다. 나도 당신도 하나의 ‘풍경’이고, 그 뒤의 풍경을
    우리는 넘나든다. '나'는 '당신'의 풍경으로도 넘다들고 싶다.  
     고독한 풍경들의 바람(wish). 풍경들 사이로 수천의 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0-1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파의 왕따 일기 파랑새 사과문고 30
문선이 지음, 박철민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래글은 작은딸(3학년)이 국내창작동화 <양파의 왕따일기>를 읽고 쓴 독서감상문이다. 4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했던 책인데 딸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하여 쓰인 이 책을 재미있어 하며 여러번 읽더니, 어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글을 써서 내게 보여주었다. 물론 내 칭찬을 바라며 한 편에 백원을 기대하였다. 나는 아이의 글에 비난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당연 칭찬 한 마디 날리고 백 원 대신 열 배를 주었다. 아이가 워드로 친 글을 그대로 옮긴다.

  

   
   정화는 미희가 못하는 게 없고 여자 아이들의 유행을 만들어 가는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미희를 좋아했다. 하지만 미희는 자기가 항상 가장 잘난 자리에만 있으려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아이였다. 미희는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난 아이나 자기에게 조금만 모질게 군 아이는 무조건 왕따를 시키는 나쁜 아이다.
 정화와 친한 경미가 양파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을 때, 미희는 경미와 노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정화를 양파에 넣어준다.
 정화는 양파 정선이가 미희에게 왕따를 당하고 전학을 간 후부터 미희가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짜 ‘임정화’가 된 것이다.
 물론 서로 모여서 노는 것은 좋지만 양파처럼 같은 반 아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이름조차 모르는 것은 너무 심하다. 친구들끼리는 집단적으로 한명만 왕따를 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미희처럼 왕따 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요즘 흔히 교실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다. 여태까지 따돌림 문제를 소재로 한 동화가 많았지만 결국 해결책은 별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 책은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 보게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그런 일이 잦아서인지, 여기선 여자아이들 간에 있었던 따돌림 사건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가수 이름 중에 예명이지만 '양파'가 있던데, 여기서 양파는 양미희를 따르는 아이들의 모임을 부르는 이름이다. 미희 자신이 만들었고 아이들은 너도나도 양파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양파에 들지 않으면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희는 왠만한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데, 미희가 그럴 수 있는 무기라면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열한 살 여자아이의 고백형식이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정화는 4학년이 되고 한 달이 지난 후 서서히 교실의 분위기를 읽었다. 힘이 어디에 쏠려있는지는 아이나 어른이나 본능적으로 알아낸다. 나처럼 그런 쪽에 좀 둔감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게 쏠려서 모난 정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정화는 미희와 친해지고 싶어지만 그 아이 주위엔 늘 친구들이 들끓고 정화는 쉽게 양파에 들어가지 못한다. 미희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는데 먼저 그 아이의 눈에 들만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정화는 반반하게 내세울 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아빠도 없고 아빠가 부자도 아니고, 눈에 띄게 잘하는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희가 자신을 불러 양파의 일원으로 점찍어 주니 정화는 감지덕지한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이제 갈등을 낳게 된다.

미희가 왕따를 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그 일을 즐기는 이유는 어찌보면 단순하다. 결핍된 가정생활환경에서 왔으니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은 조부의 자리가 대신해 주지 못하는 평범한 자리이지만 그 평범함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늘 결핍감에 시달린다. 실제로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재미로, 다른 아이들도 하니까, 안 하면 자기가 왕따 당할까봐, 라고 대답한 아이들이 많다. 미희는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방어하기 위해 먼저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보호해주는 무리를 만든다. 미희의 행동이 옳은 건 아니지만 나중에 익명의 화살을 받는 미희는 또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미희의 어긋난 행동이 용납되는 건 아니지만, 어린 마음에 생긴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조력자를 두지 않은 것은 철저히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

정화는 자신의 어정쩡한 입장과 자신감 없는 태도에 스스로 못마땅해한다. 양파의 행동에 대해서도 점점 회의감이 들고 친한 친구까지 따돌림과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말 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 한다. 이 책을 보면,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잔인하기도 하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이다. 정화가 양파의 일원이 되고 나서 서서히 깨달아가는 것들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는 건, 친한 친구의 고통을 보고 가슴이 쿡쿡 찔리는 아픔을 느낀 후부터다. 이런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쓰기'가 결정적 역할로 나온 장치는 좀 도식적이긴 하다. 하지만 글쓰기 대회에서 자신이 느낀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은 글로 정화는 스스로 치유되고 진짜 '임정화'가 된다. 그 중심내용은 '어제의 왕따가 내일의 왕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화는 친한 친구 정선이를 눈물로 떠나보내고, 새로 전학 온 친구를 바라보는 미희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모종의 결심을 한다. 더이상 용기없던 아이가 아니다. 정화 외에도 대다수의 학급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전조는 나오지만 정화가 기대하거나 예상되는 학급분위기 전체에 대한 대목이 있었으면 한다. 침묵하던 대다수의 친구가 끝에서 쏙 빠져버리는 것 같아 독자는 서운하기 때문이다. 미희에 대한 익명의 고발장은 또 한 사람의 피해자를 만든다는 점에서 무섭다. 왕따에 함께 가담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 목소리로 미희를 고발하고 나서는 건 '비겁하다'.

왕따 사건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정화의 생각일 뿐 증거는 없지만) 한 발 물러나 관람만 하고 피해자가 못 견뎌 전학을 가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선생님의 적극적 역할은 빠져있다. 물론 피해자 정선이가 전학을 가게 된 진짜 이유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독자는 정화의 마음고생을 간접경험하며 유추할 뿐이다. 여기서도 조력자의 역할을 배제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만든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멘트를 뚫고 꿋꿋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를 보며 대단한 생의 철학을 설파하는 선생님, 그 말씀에 감동하여 골몰해지는 4학년 아이에게는, 작가의 감정이 과잉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우리 동화의 이런 부분은 무척 아쉬운 것인데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가서 풀 한 포기를 보게 하고 이것으로도 오늘 현장학습의 목적은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양파의 행동을 내내 못마땅해 하는 아이, 수빈이는 남학생이다. 수빈이는 정선이를 질투하는 미희를 공개적으로 질타한다. 미희의 질투심이 결정적으로 유발된 동기를 꼭 남자아이와 결부해야 했을까. 물론 이 또래 여자아이들이 갖는 이성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분명 있지만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수빈이와 정선이 미희, 이런 삼각관계가 이야기 구성에 필연적인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 여자아이들은 모조리 왕따와 관련하여 가해자 혹은 피해자, 방관자에 속한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가해자나 피해자는 아니고, 방관자에 속하거나 수빈이를 비롯해 몇몇은 정의의 사도에 속한다.

큰딸이 5학년일 때, 교실에서 왕따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한 여자 아이를 여러명의 여자아이들이 따돌린 사건인데, 그 일로 피해자의 엄마가 교장에게 고발했고 담임은 따돌림을 시킨 아이들의 엄마들을 불러들였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선생님께 진상을 듣고 그날 엄마들은 집에 돌아가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일에 선생님과 손을 잡았다. 그때 그 선생님의 지혜롭고 결단력있는 해결로 그 뒤 그 교실에 왕따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 들었지만, 그때 그 피해자는 전 학년때부터 왕따를 당해왔고 그 아이의 언행에 문제가 많은 경우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그 아이를 싫어하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단 왕따를 시키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 아이에게도 말해주었다.  지금도 유독 싫어하는 아이에 대해 나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내 반응은 늘 아이가 원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양파의 왕따일기> 중의 미희는 이제 그 많던 열광자들을 잃고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입장에 놓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무서운 것이고 그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책에서는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자신에게 돌아올 부메랑을 모르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화는 책의 결미에서 왕따 박멸의 강한 의지를 보이는데 자신이 무슨 보안관이나 된 것처럼 정의감에 불탄다. 예상가능한 결말이다. 하지만 왕따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아이도 있다. 굳이 무리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도 강박일지 모른다. 나는, 왕따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 서술하는 동화도 나왔으면, 바란다.

왕따를 소재로 한 동화가 대개 그랬듯이, 내가 보기엔 여러가지 못마땅한 구석들이 있는 동화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책은 공감되는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아이들의 교실 풍경과 밀접한 사건과 정화의 1인칭 서술방법도 한 몫 한다. 또한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이 가장 기쁜 아이들에게 우정이나 친구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점, 그것을 계기로 아버지와의 마음의 화해까지 두마리의 토끼를 잡게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친구 이야기로만 풀어내지 않고, 그 안에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정화의 미묘한 갈등을 잘 녹여 놓았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자신의 생명력과 존재감을 지키는 강인함이다. 친구건 가족이건, 갖가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세상에 나와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강인함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 강인함은 홀로 힘으로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흙이든 햇살이든 바람이든 풀 한포기의 목숨을 북돋아주는 작은 힘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우정'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작은딸의 바람처럼 양파의 '왕따일기' 따위는 더이상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어긋난 방법이 무언지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자신만이 주인이다 생각하는 것도 모두 어긋난 방법에 해당된다.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 잘 놀다가도 금세 무슨 일로 토라져 싸우고 들어오는 아이, 그리곤 하루종일 속상해하다가 내일 모레 쯤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하고 잘 노는 아이를 보며, 참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안 볼 것처럼 그러더니 왜 화해했냐고 물어보고 가만히 들어보면, 아이의 말은 대개 밝고, 명쾌하고, 뒤끝이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7-10-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학년이 벌써 저렇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글을 쓸수 있다니 역시 혜경님의 딸답습니다. 뿌듯하시겠어요. 따님의 글에 추천 날립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7-10-09 09:21   좋아요 0 | URL
글쓰기를 시켜보면 중심논의에서 살짝 벗어나 독특한 생각을 내는 아이가
있어요. 그런 아이들 참 귀엽지요. 우리딸은 너무 정도를 가는 것 같아
오히려.. 그래도 정연한 글을 쓰는 편이긴 해요.(으쓱ㅎㅎ)
추천 감사혀요^^

바람결 2007-10-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만이'라는 독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혹은 자신'없이'라는 비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진정한 관계란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재삼 깨닫게 됩니다.

여전히, 혜경님의 좋은 글들은 한켠 제 영혼에 단비와도 같습니다.^^

프레이야 2007-10-09 09:2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전 님의 글이 단비와도 같은걸요.^^
결이 다르고도 같은.. 그래야 조화로운 세상이겠지요.
좋은 아침입니다.

소나무집 2007-10-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학년인 우리 딸아이도 왕따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반 아이들이 한 친구를 지저분하다고 왕따시켰는데 1학기 마치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방관자였지만 그 애가 전학 가서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 애가 불쌍하다고 할 줄 알았거든요.

프레이야 2007-10-09 18:3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의 솔직한 반응은 그렇더군요. 그러니 우리가 다듬어줘야겠지요^^
애들이 주로 왕따 시키는 아이는 아이말을 빌자면, 지저분하고 공부 못하고 둔하고 욕을 잘 쓰고 다른아이들을 귀찮게 하는 아이더라구요. 그걸 뒤집어보면, 털털하고 공부보다 다른 걸 잘하고 여유있고 아직은 성정이 투박하고 정이 그리운 아이란 말이구요. 실제로 주위에 보면 그런 경우들이 많아요. 전에 수업했던 남자아이중에 왕따 당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애가 참 여리고 눈물 많고 똑똑하고 의외로 바른생활맨이더군요.
가정환경(집의 분위기)에서 받는 불만과 강박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 엄마와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후 틱장애 치료도 받고 아빠와 둘이서 여행도 다녀오고 해서 차츰 치유하고 있더군요.^^
아이와 행복하기, 쉽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