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한 산책



황인숙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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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숙

  1958 서울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자명한 산책』 등

♤ 가을이 되면 으레 떨어질 줄 아는 잎새와 잎새들.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일. 
    자명한 것들을 걷어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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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0-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는 자명함을 퍽!퍽! 걷어차며 걷는다" 나도 이러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7-10-10 10:5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도 퍽퍽 걷어차고 싶어요.^^
조금 있으면 많이도 떨어질 낙엽들, 우리는 너무 당연하고 자명한 것들
앞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걷어차서 뒤집어 봐야죠.

2007-10-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10-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자명한 일들을 걷어차는 일이라...."
가을을 빗댄 이 시가 건네는 의미가 뭘까? 갑자기 단순한 홍수맘 멍해져 옵니다.

프레이야 2007-10-10 16:41   좋아요 0 | URL
그냥 걷어차 보는 것도 좋지요. 속 시원하니!!
홍수맘님, 그거 보냈어요.^^

소나무집 2007-10-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랜만에 하늘빛이 가을이네요.
파란 하늘, 가을 느낌 자명합니다.
자명해도 그렇지 못해도 다 지나가지요.

프레이야 2007-10-10 16:42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왜 이리 싱숭생숭하게 만드는지요.
네, 다 지나가지만 또 찾아오기를 반복하는 것들..

망상 2007-10-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들었습니다. 3년 쯤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어두운 장롱에 포스트잇이 달려 있네요.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ㅎ

프레이야 2007-10-11 23:25   좋아요 0 | URL
망상님, 유진과 유진, 리뷰를 읽은 후로 오랜만이죠.
오랜만에 꺼내든 시집, 참 반갑고도 애잔하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