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잠꾸러기야 아름북스 9
김아현 지음 / 삼성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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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작은딸이 액자값을 가져가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다.
뭐? - 반에서 두 명씩 동시쓰기 뽑았는데 걸렸어. 이만오천원이래. - 뜨악 -
학교에서 불시에 동시쓰기대회를 했나보다. 쓴 걸 읊어보라고 했더니 아주 가관이다. 생활이나 체험은 하나도 없고 어디서 봤는지 멋부리려는 머릿속 단어들이 더듬더듬 아이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휴, 그렇게 가르쳤건만 얘가 왜 이 모양이지. 실망을 감추고 ‘잘 했네’ 라고 눈을 못 맞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제목은 ‘가을’이란다. 지금 그 시는 시화 액자로 만들어져 복도에 전시되어 있나본데 나는 아직 가서 보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부터 자주 나왔던 쓴소리이긴 하지만 교과서 속 동시도 그렇고 우리가 읽히는 동시들도 예쁜 말, 흉내말 꾸며쓰기 식으로 시를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구름은 요술쟁이’ 이런 식의 뜬구름식 비유만 무성한 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건 어린이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테다.

<눈을 떠 잠꾸러기야>는 초등 4학년 여자 아이의 시를 모은 어린이시집이다. 동시는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쓴 시라는 점에서 어린이시와 구별된다. 이 시집은 어린이 자신이 오래 전부터 써온 시들을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묶었다.

 이번에 4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낭송도 하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일괄적으로, 어른들이 쓴 동시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쉽고 재미있고 친하게 느껴져서 좋다는 쪽이다. 그동안 읽어온 동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어른이 쓴 것이니 당연히 아이들의 공감대와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쓰는 비유가 아이들에게 와닿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여자아이가 아주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 그런데 좀 깊이가 없고 어떤 시는 무슨말인지 도무지 느껴지지 않던데요. 주전자 주둥이가 왜 늘어났다는 건지. 좀 유치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억지스러운 비유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아현 어린이가 쓴 시들을 보면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싶은 정도로 톡톡 튀는 발상이 인상적이다. 장점이라면,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성품이 느껴져 건강함을 보여준다. 뽀뽀, 사랑이나 결혼, 인생에 대한 생각까지 발랄하게 풀어 쓴 시는 이맘때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과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느껴져 귀염성스럽고, 또한 의외의 성숙함에 놀라운 시도 있다.  예를 들어,

인생 (p90)

 

하늘도 사람이 걸어선 못 올라가지.
인생도 완전한 끝가지는 못 가는 거야.
처음부터 불가능한 단계로는 못 올라가는 거야.
올라갈 수 있다 해도 그게 끝은 아닌 거야. 


김아현 어린이가 이문열의 ‘하늘길’을 읽었을 리 없는데 아이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른스럽다.

 날마다 반복되는 요즘 도시 아이들의 일상을 글감으로 한 시도 따분하다 귀찮다가 아니라 ‘즐거운 하루’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사물이나 자연의 일부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것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쓴 시들,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사랑스럽다. 땅, 보름달, 무당벌레, 가을 한라산, 바닷가에서, 붉은장미의꿈...  등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데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그속에 아이만의 상큼한 눈이 느껴진다. 그리고 생활 속 자잘한 물건들에서 신체의 일부 ‘발톱’에 이르기까지 아현이의 글감은 무궁무진하다. 깎아서 잘린 초승달 모양의 발톱을 글감으로 쓴 아래 시는 이렇다.

 발톱 (p149)


 발톱 하나가 / 떽떼구루루 굴러서 / 개미의 목마가 된다. //

 벼룩의 줄넘기도 된다. //
 풍뎅이의 머리띠가 된다. //
 어떻게? / 쓸모가 많은 내 발톱

 어찌 보면 너무 꾸며 쓴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시의 리듬감도 잘 살렸고 비유어도 신선하다. 상상력의 한계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시는 정말 체험이 자연스레 묻어나지 않아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 체험이란 게 무엇일까 싶다. 이 시는 농촌이나 산골의 어린이가 쓴 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며 읽으면, 그런 상상력의 샘마저 말라가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동시집이 아닌 이 어린이시집이 괜찮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각 시마다 직접 그려놓은 그림도 재미있다. 이오덕 선생님이 보면 혹평을 할 것 같은 시집이지만 요즘 아이들, 자연의 체험이나 자신의 온전한 생활이 없고 엄마가 짠 일정에 따라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런 정도의 발칙한 상상과 건강한 성정을 오히려 칭찬하고 싶다.

 

 우리집 작은딸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나는 모르는 드라마를 꿰차고 있으니 큰딸이 '아줌마'라고 놀리기도 한다. 김아현 어린이의 시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시는 아래의 시 '날 지켜 줘' 였다. 이 아이,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다. 그것도 생활이니 생활이 묻어나지 않았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일 같다. '도토리' 같은 시는 즐거운 경험이 잘 묻어나 있기도 하다.

 

날 지켜 줘 (p20)

 

나는 널 사랑해/그러면 날 지켜 줘./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어./그럼 날 지켜 줘./

나를 사랑하면 날 지켜 줘./날 지켜 줄 수 있니?/결혼하려면 날 지켜 줘.

 

 이 시 아래 그림은 하트 모양 안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입술을 뾰족 내밀고 뽀뽀하려는 모양인데, 입술 사이에 노랑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고 있다. 깜찍한 것 같으니라구. 아마 우리집 작은딸이 뭔가 종이에 그리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면 부리나케 감추곤 하는 그림이 이런 종류의 로맨틱 판타지를 담은 게 아닐까 싶은데, 확인은 아직 못 했다.^^ 최근에 본 영화 '사랑'이 생각나 어찌나 우습던지. 제대로 통속적이니 그게 삶을 잘 반영한 것이지 않나. 이 아이, 사랑을 제대로 비꼬울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건 또 시를 읽는 내 자유겠거니.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시 쓰기를 했는데 이 책에 담긴 시 못지않게 잘 썼다. 아이들은 누구나 시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이나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면 참 반갑다. 타인의 눈과 자신의 눈이 섞이고 잘 빚어져서 또 다른 세계가 빚어질 것이니 지금은 다 과정이고 그래서 미덥다.

 

 

 큰딸이 다섯살때부터 쓴 시를 한동안 모아두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이렇게 모아서 한권의 책으로 묶어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게으른 엄마의 뒤늦은 후회. 그래서인지 어릴 땐 곧잘 시를 끄적거려놓던 큰딸은 지금은 시라면 킥킥거리고 간지러워한다. 시가 그렇게 우습더냐? 시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해볼 일이다. <눈을 떠 잠꾸러기야>는 '나무를 까르르 꽃은 깔깔깔 웃게 만드는 동시'라고 부제가 달려있다. 큰딸이 간지러워하는 종류의 웃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보는 눈에 따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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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0-0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중요해요. 꾸며쓴 시를 잘썼다해주면 다른 아이들도 어느틈에 다 그렇게 하거든요.

프레이야 2007-10-05 11:05   좋아요 0 | URL
그러니 말이죠^^ 하늘바람님 태은이에게 편지 쓰고 왔는데요^^
보셨어요? 에궁 예쁜 태은이~

글샘 2007-10-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생활글을 써 보게 하려면요, 주제를 좀 구체적으로 줘야 하더라구요.
하늘... 이렇게 주지 말고, 하늘 하면 떠오르는 사람...처럼...
아이들 동시 읽어 보면, 참 구름은 요술쟁이 풍이 많죠^^

프레이야 2007-10-05 12:04   좋아요 0 | URL
네, 글샘님도 현장에서 많이 겪으실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생활시 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더군요.
구체적 주제를 주는 것, 구체적 소재를 주는 것, 다 중요하더라구요.
글쎄 우리집 작은딸이 쓴 시의 제목도 '가을'이더라구요.
가을, 참 어지간히 광범위해서리.. 뜬구름 잡는 시가 나올 수밖에요.
우선 글감을 갖고 생각그물을 그려보고 거기서
구체적인 하위글감들을 다시 골라 쓰게 하니까 괜찮더군요, 전.
참, 소예 아직 못 가고 있어요.ㅋㅋ
 
키 크는 시계 돌개바람 11
발레리 제나티 지음, 김주열 옮김, 프레데릭 리샤르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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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아이들, 저학년에서 중학년까지 읽을 수 있는 ‘돌개바람’ 시리즈 신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 작가 발레리 제나티는 이력이 독특하다. 열세 살에 이스라엘로 가서 열여덟에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여자라도 군복무를 시작했고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가정부, 가게점원, 기자, 히브리어 교사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 책은 작가의 이력만큼이나 톡톡 튀는 화법이 유쾌하고, 자유분방하다.

 세상에나, 키 크는 시계라니! 판타지인가, 아니면 요즘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아이 키를 크게 하고 싶어 찾아다니는 특수클리닉인가? 우선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언뜻 추측했듯이 여기서 ‘키’는 마음의 키를 말하는 것. 자전적 소재라고 여겨지는, 여덟 살 여자아이의 성장을 짧은 에피소드로 빚어낸 이야기다. 이야기는 명쾌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은 호감을 준다. 흔쾌한 에필로그도 인상적이며 아이 곁에 이런 부모가 있다는 건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이야기 속에서 녹여둔 성장의 의미와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소소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도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놓지 않으며 동시에 위트를 잃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 가지의 삼각구도가 보인다. 줄리와 엄마와 외할아버지, 줄리와 친구 클루에와 베이비시터 카트린, 그리고 줄리와 엄마와 아빠의 트라이앵글이다. 삼각형은 가장 안정감을 주는 도형이다. 사람사이의 삼각구도는 긴장을 주기도 하지만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하는 한 명으로 인해 나머지 둘이 연합하며 결국 셋이 함께 굴러가는 구도를 만든다.

 첫 번째 구도에서,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묘한 적대감이 엿보인다. 아마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두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서운한 면이 남아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표면적으로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할머니가 어릴 적 찼다는 골동품 같은 시계를 아직은 어린 줄리에게 주며 “오늘 주는 이 선물은 평생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게다”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엄마는 “아버지, 과장 좀 그만 하세요. 다른 사람 말을 따오려면 끝까지 제대로 따오든가요.” 라는 식으로 퉁을 준다. 다행인가, 솔직대범한 엄마를 덜 닮은 줄리는 조금도 마음 당기지 않는 누런 시계가 못마땅하지만 고맙다고 인사한다. 엄마의 허락을 받고 또 한 차례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는 할아버지의 말을 막고 나서는 엄마,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번째 구도는 줄리와 클루에와 어정쩡한 어른 카트린이다. 수요일(프랑스 초등학교는 수요일에 쉰다)이면 줄리와 클루에는 돌봐줄 어른, 카트린과 함께 야외로 나간다. 여기서 모종의 일이 벌어지는데 줄리와 클루에를 돌봐줄 목적으로 따라간 카트린은 남자친구와 뽀뽀를 하느라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엄마에겐 아무 일 없다는 보고를 한다. 카트린으로 대표되었지만, 아이들이 꿰뚫어보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는 의외로 허술한 면이 많다. 무책임한 말을 남발하기도 한다. 실제로 꼭 그렇다는 보장도 없는 헛소리들을 늘어놓고 잔소리에 질리게 한다. 그러면서 정작 아이들의 고민이나 부족한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일만 표면상 해치우면 그만인 것처럼 보인다.

 피크닉의 즐거움은 잠시, 선물로 받은 시계, 이걸 차고 다니면 쑥쑥 크는 걸 알게 될 거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시계가 손목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리다니. 이제부터 줄리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클루에는 고민하는 줄리와 달리 어른스럽고 당차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의 필름을 되감아 탐정처럼 쑤시고 다니며 이들은 의외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벗은 좋다. 줄리는 자기 앞에 예상치 못하게 버티고 선 장애물을 하나씩 건너야 하는데 그 과정이 소소하면서도 구체적인 상황으로 제시된다. 여덟 살 여자아이 줄리의, 독립 아닌 독립이 감행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세 번째 구도는 줄리와 엄마, 아빠가 꼭지점을 이룬다. 줄리는 스위스 시계를 선호하는 아빠를 인종차별자로 생각하고 목욕탕에 자신을 넣어놓고 전화수다를 떠는 엄마의 속셈을 간파하기도 한다. 여기서 웃음이 나는 건 아이의 시선이 충분히 자기중심적이면서도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건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니.

 어려움에 맞닥뜨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실행하게 된 자잘한 일들이 줄리에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한 걸음을 떼어 딛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고 숟가락으로 한 술의 밥을 떠서 자기 입으로 제대로 가져가느라 손과 눈이 협응해야 하듯이, 어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줄리에게는 하나하나 넘어야할 힘겨운 장애물이다. 우리 어른들은 기다려주지 못하고 재촉하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하나의 시도와 발전을 향해 폴짝 뛰어넘어야할 두려움이나 용기, 지적이거나 감성적인 능력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기가 쉽다. 줄리의 아빠는 딸이 잃어버린 스위스제 시계에 대해 섭섭하다 표현했지만, 역시 이 엄마는 자상한 아빠보다 조금 더 멋지고 올바르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 놀라워!” (p61)

 때로는 엄마의 이런 진정어린 감탄사가 아이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지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오르막을 타며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어느 일을 계기로 쑥 커버린 아이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또다시 아이는 마음대로 굴고, 퇴행이나 정체기를 보일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날, 어느 일로 쑥 자란다. 우리는 퇴행하는 것 같은 아이를 보면 화를 내고 정체해 있는 것 같은 아이를 보면 안달을 하기 십상이다. 줄리는 거짓말은 분명 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지금 당장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잘 자라고 있는 아이다. 그리 보면 할아버지가 준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이 아이를 키운 건 일면 맞는 말이다. 아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문제를 직면하게 하고 스스로 사고하게 하고 해결방법을 찾게 했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걸 차고 있어서가 아니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룬 성과라는 점에선 또 틀리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실도 가끔은 조금 기다렸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p52)

 시계에 대한 줄리의 취향을 보면 배실배실 웃음이 난다. 우리가 존중해야할 타인의 취향에는 아이들의 취향도 분명 포함된다는 사실!  사랑스러운 아이 줄리를 만나며, 아직도 동물인형들을 머리맡에 주욱 앉혀두고 말 걸고 안아주는 우리집 작은딸이 생각나 더 행복해졌다.

꼬옥 안아줘야겠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줄리를 만나면 친구 삼고 싶을 것이다.

 

 

『키 크는 시계』는 글도 삽화도 깎아놓은 듯이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다. 아이의 마음에 구질구질한 잔소리 한 점 남기지 않고 산뜻하게 끝나는 결말이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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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0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혜경님의 리뷰가 따사롭습니다.. 2학년짜리에겐 너무 복잡한 얘길까요?

프레이야 2007-10-02 21:05   좋아요 0 | URL
아뇨, 만치님 2학년이면 딱 읽기에 좋을 거에요. 권하고 싶어요^^
(혹시 제 취향이기만 한 건지 갸우뚱 걱정되지만^^)
우리집 작은딸은 3학년인데 이것보단 글자수 많고 두꺼운 걸 읽으니까,
슬쩍 권하며 책상위에 올려 두었더니 아직 거들떠 보지 않네요.
짜식~ 책을 두께로 판단하다니 ㅎㅎ
 
앉아서 지구의 크기를 재다 -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구석구석 세계 지리 이야기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세상이야기 8
장수하늘소 지음, 이현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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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은 처음 지구의 둘레를 잰 에라토스테네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따온 제목이다. 다섯 번째 장에 그 과정과 오늘날의 것과 오차가 생긴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소제목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구석구석 세계 지리 이야기’는 아이세움 시리즈로 나온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의 연장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6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권할 만하다.

 서문에서도 밝혀두었듯이, 지리 이야기라고 하면 지리학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은 천문학, 인류학, 지질학, 역사학, 기상학, 동식물학, 풍수지리 그리고 지리상의 발견 등을 포함해 인간의 생활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는 모든 것들을 기원전의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소 두서가 없어 보이지만 모두 30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먼저 쉽게 읽히는 옛이야기 하나를 두고 상세한 정보와 알아야할 용어 같은 것들은 다시 두 꼭지로 덧붙여 정리하여 보여준다. 각 장의 끝에는 다시 한 꼭지를 두어 알쏭달쏭한 점이나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풀어준다. 각 장의 제목이나 순서에는 유기성이 부족하고 각 장마다 반복되는 구절이 가끔 나오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알차고 흥미롭다. 어려운 용어는 배제하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고, 무엇보다 다른 지리이야기 관련책이나 지리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자극을 준다. 6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사회와 과학 과목에 좀 약한 아이들은 읽기 어려웠는지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곁들여 설명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더 흥미로워하였다.

 지리학이라고 하면 지도나 지형, 탐험이나 탐사 하물며 풍수지리 같은 영역에 한정하여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소분야이거나 지리학의 방법적 차원에 불과하다. 지구는 비밀의 공 같다. 46억 살의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구의 비밀은 상당한 부분 밝혀졌고 지금도 연구되고 있지만 앞으로 밝혀질 비밀이 더 많이 숨어있을 것이란 가정이지리학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이고 미래에 혹시 지리학을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책을 읽다보면 땅의 이치를 말하는 지리(地理)는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지리(地利)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00년 경 포루투갈의 엔리케 왕자 이후로 200년간 열린 ‘지리상의 발견 시대’와 관련하여서는 생각해 볼 거리를 짚고 짧은 토론시간을 갖고 넘어가면 좋겠다. 서구 강대국들의 '탐험과 발견'이 원주민들에게는 '침략과 말살'의 잔혹한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명나라의 정화가 이끈 대탐험의 이야기도 아이들은 꽤 흥미로워했다.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중국의 종속국을 만들고 무역을 하던 정화의 탐험이 중단을 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은데,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땅으로 알고 발견한 시점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근처에서 발생한 쓰나미도 설명한다. 쓰나미의 원인을 알면 쓰나미는 대비할 수 있었던 인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지각판의 충돌로 생긴 단층 위로 바닷물이 출렁이며 바다 밑에서 해일이 일었고 그것이 해변에 도착하면 속도는 느려지지만 파고는 수십 미터로 엄청나게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는 쓰나미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지진파를 감지하고 쓰나미 경보제를 이용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칠레 같은 나라는 쓰나미 경보 센터를 두었다고 한다. 쓰나미는 ‘해안’을 뜻하는 ‘쓰’와 ‘파도’를 뜻하는 ‘나미’가 합쳐진 말로, 일본에서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일본어로 생긴 말이다. 그리고 지구환경과 관련하여 엘니뇨와 라니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두었다. 이렇게 지리를 알면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자연환경도 이롭게 다스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지리학이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보니 책의 내용도 광범위하긴 한데, 따로따로 꼭지마다 읽어도 무리없다. 몰랐던 재미있는 내용 한 가지가 있다. ‘태풍의 이름은 누가 지을까?’ 라는 꼭지다. 태풍의 이름은 여러 과정을 거쳐 2000년부터는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 나라에서 제출한 10개씩의 이름을 모아서 번갈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북한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인데 각각 제출한 이름이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게, 재미있다.

 우리나라 -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나비
 북한 -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옴파로스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옴파로스 증후군은 내가 있는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고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사람이고 이런 사고가 권장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 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지리(地利)의 우선 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과 편견, 침략과 강탈, 거짓과 왜곡은 이런 증후군에서 나온 게 아닐까.

 

 

 

* 오자로 보이는 것 : 바다 밑에서 발행한 해일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는데,...(p165)
                                                ----> 발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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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파로스 증후군이라구요?
음...또 배우고 갑니다, 혜경님.
꾸뻑.

프레이야 2007-10-01 10:08   좋아요 0 | URL
옴파로스는 예전에 중저가 브랜드 옷 이름으로 들었는데, 그게 배꼽, 중심 그런뜻의 라틴어더군요. 옴파로스 증후군은 이 책에 한 페이지로 설명되어 나오는 용어에요. 저도 그런 증후군이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꼭 중심이 되어야할까요? 주변인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바람결님.
 
구비구비 사투리 옛이야기 - 사투리로 들려주는 팔도 옛이야기
노제운 글, 이승현 그림 / 해와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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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옛이야기의 마력은 뭐니뭐니해도 구수한 입담에 있다. 내가 처음 마음에 들었던 옛이야기는 서정오님이 쓴 옛이야기 시리즈 열 권인데 모두 간결하고 걸죽한 입말로 쓰여있어 읽는 재미가 더했던 기억이 난다. 옛이야기는 구전되어 온 이야기이니만큼 들려주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배가하면 이야기 전달 방식에 호감이 더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고 많은 옛이야기책들 중에서도 흥미를 더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자는 각 지방의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투리는 각 지방의 특색과 사람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 듣고 있자면 그들의 정서가 푸근하게 느껴진다. 표준말이라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져있지만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가 표준말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투리, 하면 우스운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 4학년 방학 때, 큰이모가 살고계셨던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며칠동안 그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서울촌놈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내게 물어왔고 나는 답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거기선 뭐라 그래? - 응, 괭이... 이런 식이다. 난 서울태생이다. 다섯 살 때 부산으로 이사오지 않았더라면 서울말을 쓰고 살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올씨다. 아이들은 어울려 놀다보면 그곳의 말을 금세 배운다. 서울 아이가 부산 아이와 놀면서 금세 이곳 사투리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부산에 이사 온 후 엄마가 놀랐던 일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뛰어들어오며 어린 내가 완전히 부산말을 쓰더라는 거다. 아침까지만 해도 깜찍하게 서울말을 쓰던 애가 그랬으니 얼마나 우스웠겠나. 사투리에는 그만큼 낯설면서도 동화하기 쉬운 정감과 유대감이 있나 보다.

 이 책에는 제주도를 비롯해 아홉 개 도의 대표적인 옛이야기를 꼽아, 모두 9개의 옛이야기를 추려 실었다. 모두 ‘한국구비문학대계’와 북한 지역의 설화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는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전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에서 뽑았고 각 도별 이야기 뒤에는 참고한 지역의 출처를 밝혀두었다. 아이들이 이것까지 읽지는 않겠지만, 전해오는 옛이야기들을 두루 꼼꼼히 뒤져서 선별한 공이 느껴졌다.

 저자는 각 지역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도움으로(예를 들어 충청도는 강정규 선생) 사투리를 구사하여 썼지만, 모두를 사투리로 옮기는 건 무리이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사투리를 골라 썼다. 그리고 특징적인 사투리의 표준어를 괄호 속에 바로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이야기마다 해학과 기지가 넘치고 힘없는 백성의 통쾌한 승리감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우리 옛이야기의 장점이 사투리로 인해 반감되는 일은 없다. 눈으로 읽지 말고 소리내어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다.

 

 

 3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아이들 모두 무척 흥미로워했고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단지 북한 사투리와 제주도 사투리 같은 경우는 아주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낯설어했지만 사투리를 알 필요가 있겠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사투리 옛이야기 경연대회도 열어 보았는데 각자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골라 사투리로 읽어보았다. 경상도 이야기는 비교적 쉽게 읽었고  제주도를 고른 아이는 좀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있어 했다. 강원도 이야기를 읽은 아이는 마치 자기가 강원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모두 사투리 옛이야기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이 책은 삽화도 내용 못지않게 장난기 가득하다. 한지 느낌이 나는 누런 색을 입힌 종이에 거칠고 굵은 검정 윤곽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슥삭슥삭 그린 것 같은 붓의 느낌이 생동감을 준다. 하나같이 인물의 생김새를 단순하면서도 과장되게 그려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경상도 것인데 제목은 ‘똥 싼 바지 잃고 눈물 흘린 사돈’이다. 시집간 딸의 눈물겨운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도 그렇거니와 주접을 떠는 난장판 사돈의 행색이 우스꽝스러워 배꼽을 잡았다. 아래 대사와 함께 그려진 삽화가 제일 생동감 난다.

“이노무 똥개 셰끼, 내 바지 도(줘)! 내 바지 도!” (p60)

 이 책에 조금 더 바란다면, 아직 우리나라 지도에 익숙하지 않고 행정구역에도 낯선 아이들을 위해 우리나라 지도를 넣고 각 도별로 색으로 표시하던지 하여 각 도의 이야기와 연결해 주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지형적인 특징과 함께 사투리의 특색에 대해서도 공감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한 가지, 생각하게 된 점은 옛이야기의 무차별 패러디에 대해서다. 우리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도 패러디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옛이야기가 갖는 원래의 미덕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저자의 머리말이다. - “옛이야기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슬픔과 분노, 기쁨과 희망을 비추는 마법의 수정구슬입니다. 그 곳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미래의 내 모습이 펼쳐져 있지요. 또한 그곳에는 나약한 어린이를 멋진 어른으로 키워 주는 신비한 보물이 숨겨져 있답니다. 그런데 만약, 옛이야기의 내용을 함부로 고치거나 지워 버린다면, 마법의 수정 구슬은 금이 가고 깨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출 수 없게 되지요. 이 모든 것은 옛이야기 본래의 모습으로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 해석이 가미된 패러디가 주는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옛이야기 고유의 미덕을 그대로 안는 순수한 즐거움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닳고닳아 반질반질해진 수정구슬이 아니라 먼지가 묻어있는 채로, 손때도 묻어있는 채로, 별로 반짝이지 않아도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그런 수정구슬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본래의 모습을 갖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가 사투리로 인해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책의 뒤에는 9개 이야기를 수록한 CD 두 장이 첨부되어 있다. 성우가 들려주는 사투리 옛이야기인데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대로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각 지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원색적인 목소리면 더 좋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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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사투리버전의 우리 옛이야기 관심집중, 강추!

프레이야 2007-09-29 00:01   좋아요 0 | URL
소리내어 사투리 구사하며 읽으면 무지 재미나요~~
전라도 사투리로 부엌이 '부샄'으로 나오던데 맞나요?

바람결 2007-09-3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교회에서 '농부 하나님'이란 찬양을 부르다가,
이 흥겨운 노래를 사투리로 부르면 참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수정구슬'같은 옛이야기들, 사투리들, 낡고 먼지낀 아름다움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는, 멋진 어른으로 키워준다던 그 옛이야기에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흠뻑 취해보고 싶군요.ㅎㅎ

프레이야 2007-09-30 20:1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농부하나님요? 가사가 궁금해지네요.
경상도버전으로 부르면 투박하려나요? 정감 있으려나요? ^^
낡고 퇴색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세월의 흐름을 탄다는
것일까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네요, 저도.
주일 평안히 보내셨지요?

바람결 2007-09-30 23: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월의 흐름을 타는 것 같아요.;;
정말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어요.

그나저나 무탈하고 평안한 주말을 보내셨다니 참 좋네요.
게다가 말그대로 '앙큼한' 따님의 마음이
막 전해지는 것 같아 더 좋네요.
달란트 잔치에서 주방장갑을 사오다니,
정말 여간내기가 아닌가 보군요.ㅎㅎ

따님도 예쁘고, 혜경님도 참 행복하시겠어요~^^

그리고 농부하나님이라는 노래는 조만간 올려놓아볼께요.
참 좋은 노래에요.^^

프레이야 2007-10-01 00:00   좋아요 0 | URL
네, 농부하나님 가사 기대하고 있을게요.^^
열살인데 그 앙큼함 때문에 제가 아주 몸살이 납니다.ㅎㅎ

한숲 2007-10-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방언과 표준말 수업들어 갔는데 딱이 겠네요. 하나 사서 아이들과 읽어야 겠어요. 감사

프레이야 2007-10-15 17:07   좋아요 0 | URL
초등 2,3학년 정도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에요^^
 
한 눈 팔기 대장, 지우 돌개바람 12
백승연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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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는 상상력의 발동은 인간 중심의 가치체계와 일상으로 굳어진 상식의 관념들에 균열을 내면서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우리를 손짓한다. -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p24>, 원종찬/창작과비평사 중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향하는, 판타지는 특히 아동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자 형식이다. 판타지는 열림의 형식을 취하고 회생의 내용을 담는다. 더구나 판타지의 묘미는 철학적 메시지에 있는데,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판타지가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소산이라 하더라도, 그 핵심은 역시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철학에 달려 있다’고 재삼 확인하고 있다. 판타지가 현실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작동하려면 그 안에 건강한 철학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황당무계하기만 한 이야기가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강한 철학이라 해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웃도는 기존의 교훈주의 동화들에 식상해진 지는 오래다. 아이들이 갖는 현실에서의 압박감은 나날이 경쟁적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져간다.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 '놀기'는 사치품목 같이 여겨질 정도다. 이 책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함께 놀아주라고 말한다. 물리적인 자연의 시간을 벗어나 마음의 시간이 작동하는 판타지의 세계는 꿈이고 소망이다. 그 세계에서 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마음껏 즐기고 모험을 하며, 위기를 넘기고 구원을 얻는다. 그러고 나서 돌아온 현실의 세계는 어느새 아이의 마음속에서 달라져있다. 세상은 같으나, 결코 이전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장점이 많은, 판타지 희곡이다.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저학년 도서로 참신한 기획이 돋보인다. (일상에 널려있는)환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유쾌하게 읽으면서 진지한 생각을 얻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동화의 서술방식을 과감히 뛰어넘은 극본 형식이 우선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은 연극을 하나의 놀이마당으로서 좋아한다. 무대가 여의치 않으면 작은 가면이라도 만들어 쓰고 일인다역을 하는 역할극에도 흥분하는데, 제대로 된 극본을 들고 무대를 꾸미고 각자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 책은 아이들의 그런 심리를 잘 알아서 나온 책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독서활동이 될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한 판 질펀하게 논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읽기에 그치지 않고 여럿이 함께 역할극 또는 연극이라도 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은 점 이외에도 소재면에서도 과거와 현대의 것이 조화롭다. 특히 우리 것을 소재로 우리 정서를 담았다는 점이 또한 매력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수룩하지만 뻔뻔한 도깨비가 등장하고 아이들의 정신적 스승 격으로 92세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달맞이꽃에서 달토끼로 이어지는 '달'의 은근한 정서도 그렇지만, '달'은 판타지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달의 역할을 떠올려보면. 이 책에서는 달까지 정말 모험여행을 가게 된다는 점이 다른데, 그곳까지 가는 교통수단으로 아주 현대적인 것이 등장한다. 희곡이니만큼 대사의 맛이라면, 우리의 전래동요 같은 노랫말을 대사에 담고 그 가사도 반복적인 짧은 글귀를 리듬감 있게 배치하여 부르는 맛이 흥겹다. 역할극을 할 때면 아이가 마음대로 곡을 붙여 불러보도록 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도 간결한 언어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운율감이 있다. 노랫말도 대사도 정겹고 소박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모두 7막으로 나아가는데 장은 따로 없고 대신 무대장치를 할 수 있는 해설이 비교적 자세한 편이다.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게 배치한 장치가 깜찍한데 책에선 삽화로 보여 주어 연극무대를 꾸민다면 참고가 될 것이다. 지문은 의도적으로 생략했는지 어느 대사에도 없는데, 오히려 역할을 맡은 아이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독창적으로 대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보인다. 마치 뮤지컬의 양식처럼 중간중간에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연극 전체를 신나게 끌어줄 것이다. 책 전체를 어른과 아이가 번갈아 가며 역할극을 하듯 소리 내어 읽으면 독자가 연극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어 색다른 읽기경험이 될 것이다.

 지우는 한 눈 팔기 대장이다. ‘정신없고 말 많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진짜 지우다. ‘똑똑하고 착하고 얌전한’ 지우는 어른들의 환상일 뿐. ‘한 눈 팔기’는 거침없는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동심을 믿을까, 변덕을 믿을까. 우리 아동문학이 동심주의의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아이들은 끝없이 한 눈 팔고, 돌아서면 방금 들은 말은 잊어버리고, 이랬다저랬다 변덕도 죽 끓듯 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잔인한 일면도 있다. 열 살이면 다 컸지, 라고 생각한 나도 근래 연이어 아이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내 잣대로 기대치를 만들고 아이를 너무 믿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뭔가. 하지만 그런 성향은 따지고 보면 어른들도 매한 가지로 갖고 있으면서 잘 눌러서 포장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어떨 땐 인형 엄마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어엿한 형이나 누나가 되기도 한다.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들은 변신의 귀재다. 어제와 오늘, 가만히 보면 아이는 또 달라져있다. 지우는 어느 날 빗자루 도깨비가 된다. 빗자루 도깨비는 지우가 되고. 지우는 남몰래 자기가 도깨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거나, 빗자루를 보며 도깨비를 상상했던 건지도 모른다. 지우의 모험은 예상을 불허하며 이리 튀고 저리 날고 하는데, 그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이 갖는 아련한 이야기의 추억 한 자락, 물질의 가치에 묻혀 잊혀져가는 것들에 그리움을 보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적어놓진 않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공감될 정도로 군소리 없이 적혀있다.

- 달토끼 : 아, 정말 너희 그 절굿공이 도깨비를 아는구나. 옛날엔 내가 절구질 할 때마다 잘도 나타나더니 로켓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부터는 통 만날 수가 없어. 사람들이  도깨비 생각을 잘 안 해 주나 봐. 사람들 기억이 있어야 여기도 자주 오고 그럴  텐데. 하긴 후유-사람들이 생각 안 해 주긴 나도 마찬가지지만. (p108)

지우는 갖가지 모험을 겪고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을 얻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우는 또다시 한 눈을 팔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잘 생각하기만 하면 어려움이 풀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네가 나인 줄 알고, 내가 너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달토끼와 할아버지가 지우에게 말한 아래 대사도 새겨볼 만하다.

- 달토끼 : 그런 사람 많지. 뭐가 뭔지 잘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누군지 몰라 헤매는  사람, 로켓이 뭘까 잘 따져 보지 않고 고생만 하는 사람. (p110)

할아버지 : 그렇단다. 내가 말이다. 한 백 년쯤 살아 보니 그런 일이 있더라.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남인 줄 알고 사는 일, 남이 남인 줄 모르고 난 줄 알고 사는 일, 도깨비에 홀린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p123)

 지우는 학교 가는 길에 한 눈을 팔았지만 이제는 돌아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어제까지 가던 학교가 아니다. 여전히 받아쓰기를 하고 셈공부를 하고 이상한 노래를 배우겠지만 더이상 어제까지 배우던 시시한 것들이 아닐 테다. 더구나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꽃 한송이, 가로등, 빗자루 몽댕이 하나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문득, 등교할 때마다 지각을 자주 한다는 친구 딸이 생각난다. 하루는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벌레도 보고 그러며 오느라 늦었다고 선생님께 말했더란다. 친구는 그런 딸에게 '그래도 꽃을 꺾지는 마라'고 말해주었다는데...  한 눈 팔기 대장을 남자아이만으로 내세운 것이 좀 걸린다. 한 눈 팔기 대장에 버금가는 여자친구와 동반하여 똑같이 모험을 즐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아래 내용을 보면,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마당극’으로 연출하면 더욱 좋겠다.

빗자루 도깨비, 관객석에 내려가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빗자루 도깨비 : 얘, 너도 도깨비 맞지? 괜찮아. 나만 알고 있을게. 도깨비 맞지? 아니라고? 이상한데......

빗자루 도깨비가 자리를 옮겨 가며 다른 관객들에게도 계속 묻는다. (p37)

 

이렇게 독자를 이야기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읽기 경험과 역할바꿈의 신명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도이고, 거기에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무겁지 않게 안겨주어 마음에 드는 책이다. 초등 1-3학년이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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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2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읽으려고 챙겨 놨는데! 원종찬 선생님 글 인용하신 것까지만 읽고 얼렁 스크롤 내렸어요. 혜경님은 위험인물이야!!

프레이야 2007-09-28 16:45   좋아요 0 | URL
ㅋㅋ 위험인물이라우~ 님 혹시 어린이책 관련일 하시는 거에요?

하늘바람 2007-09-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가봐요 궁금하네요

가시장미 2007-09-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있으면 사주고 싶은 책이네요. 저도 읽고싶은데.. 으흐 서점가서 읽어야겠어효! :)

프레이야 2007-09-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네, 아주 재미있어요.^^

가시장미님, 서점 가서 슬쩍 서서 보셔도 될 거에요. 좋더군요^^

뽀송이 2007-09-2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바람의 아이들' 책이군요.^^
언제나 개성있는 책을 내는 '바람의 아이들' 신간이니 관심이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9 00:00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추석 연휴 후유증은 끝났어요? ^^
이 책 무지 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