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야, 자니? 산하작은아이들 39
이상교 지음 / 산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교 시인은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참 맑은 동시집을 냈다. 그 나이 즈음에 어린이의 눈에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특히 이 동시집은 이상교 시인 스스로 시에 걸맞는 그림을 그려 넣어 정감이 간다. 마치 아이들이 손수 그린 듯한 그림에 놀랍고, 전문 미술가가 아니지만 섬세하게 그린 선과 색이 곱다. 수채물감이나 색연필을 사용한 그림들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 이런 글과 그림이 나오는지.

 산하작은아이들 시리즈는 책날개가 없고 책이 주는 분위기가 소박한데 이 동시집은 특히 다른 책보다 폭이 좁고 길이는 조금 길어 손에 쥐기에 맞춤이다. 표지의 그림은 동시 ‘비오는 날’의 그림을 땄지만 동시집의 제목은 다른 시, ‘먼지야, 자니?’에서 따왔다.

 시인은 세 부분으로 동시를 묶어 실었다. 그리고 각 장의 제목을 달고, 서문을 산문으로 써서 도란도란 말을 건다. 그 시들을 쓰게 된 마음의 동기와 작은 변화들이 나직하게 들린다. 세상에 품은 아직도 많은 궁금증, 싫어했던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동기를 들려주며 지금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어제까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전한다. 여기 실린 동시들은 대체로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간결한 언어와 형식을 갖춘다. 어린이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으로 무언가 주입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마치 시인이 어릴 적 느끼고 겪었던 감정과 경험을 떠올려 썼거나 현재 우리 아이들의 삶에서 현주소를 발견하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아이들의 생활과 마음에 애정 담은 눈을 갖다 대면서 웃음이 묻어나게 평범한 언어를 구사한다.

 눈물

 학교에서 돌아온 길로 / 내내 놀았다./ 학원도 쉰다길래 / 걱정 없이 놀았다.
 놀 것 다 놀고/ 텔레비전 실컷 보고/ 밤 열두 시가 가까워/ 숙제를 하려는데/ 하품이 난다.
 하품이 나더니 / 콧물이 난다. / 콧물이 나더니 / 눈물이 난다.
 숙제 하기 싫어 / 우는 것도 아닌데 / 주르르 눈물이 난다.   (p104)

 그리고 그가 자연의 목숨을 품는 눈 또한 차분하면서도 온기 가득하다. 그는 ‘봄눈이 숨진 자리마다’ 돋아서 자라날 풀을 기다리며 ‘눈송이만 한 풀꽃’이 매달릴 걸 예감한다. 외로이 자라고 있는 강아지풀을 시인은 어리고 여린 목숨으로 보듬어 안아 주고 싶어 한다. 그 옆에 초록색으로 그려놓은 강아지풀 두 개가 참 깨끗하다. 어릴 적 강아지풀을 뜯어 손등을 타고 팔로 올라가며 간질이던 기억이 있다. 하찮은 강아지풀을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눈은 강아지풀 마냥 보드럽다.

강아지풀

 무릎에 올려 / 안아 주고 싶다, / 강아지풀.
 아무도 / 안아 준 적 없다, / 강아지풀.  (p58)

 이 동시집은 고학년에 알맞다. 6학년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고 시를 써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시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린이답지 않을 수도 있다. 동심은 기대와는 달리 감수성이 예민하지도 여리지도 않아 나는 가끔 놀라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 중 시쓰기를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듯 쓰자고 하면 솔직한 표현으로 풀어내곤 한다. 마음에 꽉 차 있는 불만과 뭔지 모를 울분을 터뜨리지 못하고 조증과 울증을 왔다갔다하는 어느 6학년 여자아이는 시로 스스럼없이 뱉어내고 나서 편안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

 타율적인 아이들, 의무만을 강요당하며 메마른 감성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동시집은 권할 만하다. 맑고 간결한 시어와 적절한 비유어, 공감되는 생활이 느껴지는 내용과 깨끗한 그림을 만나면 아이들 마음 속 잠자고 있던 감성들이 살아날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기도 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이들의 바람이 소근소근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여기 실린 동시들은 소리 내어 낭송하면 리듬감이 살면서 마음 속 작은 공 하나가 내내 통통거리는 것 같다. 그 자리는 마음 속 여백의 자리다. 가을은 여백 한 칸 두면 더 좋은 계절이다.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읽을 만하다. 별 넷을 단 이유는 아이들의 정서에서 좀 떨어져 있다 싶은 머릿속 상상의 시들이 몇몇 걸려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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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0-07 21:32   좋아요 0 | URL
동시를 가끔 읽으면 마음이 참 깨끗해져요^^
빗소리가 좋아요.

순오기 2007-10-0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우수문학도서여서 저도 읽어보고 아이들에게 여러편 읽어주었어요.
상큼하게 예쁜 동시집으로 기억해요~~

프레이야 2007-10-07 23:18   좋아요 0 | URL
그래요? 이 책이 작년 우수문학도서였군요. 참 맑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도무지 예순이 다 되어가는 분의 동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