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었다.

 

작고

볼품없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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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2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그분 가신 지 3주기지요.
언니가 주신 첫 문장,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_()_

하늘바람 2012-05-2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아직도 전 이분께 제대로된 작별인사를 못 드립니다
마음이 아파서요
이제 남은 사람들이 고인을 더이상 힘들게 안했음 해요
 

5월 11일 녹음시작, 오늘까지 총 9시간 걸려 완성한 황경신의 생각노트 <생각이 나서>의 마지막 글귀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릴케의 말을 믿는다.

'끝이 나면 쓸 수 있다'보다 '씀으로써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로 나는 그 말을 이해한다.

슬픔 자체는 끝이 없지만 '어떤' 슬픔에는 끝이 있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어떤' 사랑은 끝이 난다.

그리하여 나는 쓴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말을 나는 잘 모르겠다.

릴케는 어떤 의미로 저런 멋진 말을 한 걸까. 백혈병으로 51세의 나이에 사망한 릴케는

14세 연상이 루 살로메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루는 그 전에 이미 니체에게도 청혼 받은

적이 있는 여인. 따뜻한 모성을 느끼지 못하고 유년을 보낸 섬약한 릴케에게 살로메는 여인

이상의 동반자가 아니었다싶다.

 

그의 묘비에 적힐 시를 스스로 남기는데, 제목은 '비명'.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내 인생의 키워드가 뭘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글쓰기'라고 내심 대답했다. 또 누군가는 자신도 3살 때부터 글을 썼다며 우스개를 했다.

그렇구나. 난 만 24개월부터 글(글자^^)을 쓰고 읽고 했다고 엄마는 자랑이다. ㅎㅎ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래도록 일기를 써왔고 크고 작은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재능이 열망을 좇아가지 못하면 번뇌가 오는 법. 다행인지 나는 욕심이 없나 보다.

어느 순간 열망을 조율하는 시점이 오고 (조금은 비겁하게) 내려놓고 물러서 있다. 

글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분수처럼 치솟아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어야 울림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읽는 이가 알기 전에 양심이 먼저 안다. 진정성,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나는

그럴수록 글을 쓰는 일이 두려워 조심스러워진다.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할 수 없으면 한 발도 뗄 수 없는 거다.

진정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 생각하며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 그 너머의 너머일 거라고 조용히 말해 본다.

 

 

 

 

2012. 5. 21 녹음시작, 43쪽까지.  드디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세번째 장편 <올리브 키터리지>는 2009년 퓰리쳐상 수상작이다. 

오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글을 써온 스트라우트는

이런 유의미한 조언을 한다.

 

"작가가 되겠다면 포기하지 말며,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되, 그럴 수 없다면 계속 글을

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습작을 게을리하지 말라"

 

그녀는 존 치버와 존 업다이크를 좋아하며 육필원고를 고집한다고.

작가 신경숙도 필사하며 공부한다고 하던데, 나는 필사 대신 녹음하면서

한 번 더 읽는 것으로 쉽게 대신하려고.^^ 편집하면서도 한 번 더 읽을 거니까 세 번이 되네.

 

 

 

 

스트라우트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강하고 생의 위트와 연민이 공존한다.

농후한 생의 이력과 소화력이 엿보이는 문장들, 군더더기 없는 전개, 강인하면서도  시적 서정성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한 이 소설은 13가지 단편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데, 서사가 독특한 구성 안에서 흐른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강인하고 괴팍하고 불같은 성미를 지녔지만 따뜻함을 숨길 수 없는 이 여인과 남편 헨리, 외아들 크리스토퍼.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오랜 세월을 거친 이야기가 거대한 직조물처럼 서로 엮여 수채화를 그려낸다.

드러내어야만 치유 받을 수도 있는 생의 미려한 상처들에 온기어린 시선과 응원을 보내는 이 소설을 작가는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내가 아는 최고의 이야기꾼인 어머니에게' 헌사한다.

 

오늘은 첫번째 이야기 '약국'의 43쪽까지 녹음했다.

첫 문장은 이렇다. - 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봄이 왔다. 낮이 길어지고 남은 눈이 녹아 도로가 질척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 쌀쌀한 공기에 노란 구름을 보태고, 진달래가 세상에 진홍빛 고개를 내밀었다.

헨리는 모든 것을 데니즈의 눈을 통해 그려보았고,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이 폭력이리라 생각했다.(43쪽)

 

 

이 글귀를 보며, 나는 입하가 벌써 2주 전이었었던 걸 떠올렸다.

요새는 봄, 가을이 없이 여름이 오고 겨울로 넘어가는 것 같다고 엄살인데, 전적으로 동감되지는 않는다.

봄과 가을은 나름의 빛과 향으로 우리에게 머물다 갔고 우리는 호들갑스레 봄을 노래하고 가을을 누렸으면서, 망각한다.

좋았던 것은 잊어버리고 그건 그저 없었던 듯 아무 것도 아니었던 듯, 여름이 너무 빨리 온다고 법석이다.

입하! 그리고 성하!  나는 입춘보다 이 말을 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봄을 잊고 싶진 않다.

봄은 늘, 여름 속에도 가을 속에도 그리고 겨울 속에는 더 속속들이 녹아있는 것.

생은 내내 봄날을 어깨곁고 가는 걸. 아, 올리브 키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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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특이한 인물이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아름다운 책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가끔씩 꺼내어 아무 문장이고 펼쳐 읽곤 한답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존 치버와 존 업다이크를 좋아하는군요. 의외에요. 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좋아하지만, 존 치버와 존 업다이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약국'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제게는 이미 조용함과 고요함을 줘요. 데니즈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구요.

프레이야 2012-05-22 09:4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죠그죠^^ 너무 좋아요 이런 책. 아무 문장이나 펼쳐 읽어도 정말 좋아요.
존 치버와 존 업다이크 필사는 책날개에 적혀있던걸요. 다른 이의 작품을 보지 않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구요.
약국.. 어제 전 헨리가 예고대로 불행을 안은 데니즈에게 본격적으로 흔들리는 내면묘사 부분과
그녀를 위해 드디어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다 건네는 데에서 멈췄어요.
"발이 얼마나 하얀지 휘핑크림 그릇 속을 지나온 것 같은 작고 검은 아기 고양이"라니요.
군더더기 없는 전개, 묘사력도 심리묘사도 훌륭. 번역의 힘도 기여한 걸까요.

하늘바람 2012-05-2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음하시는 프레이야 언니 모습
참 곱고 멋지게 상상이 되어요
녹음하게될 작품을 느끼고 즐겁게 동참하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면 포기하지 말며,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되, 그럴 수 없다면 계속 글을

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습작을 게을리하지 말라"


이 말은 제게 참 와닿네요

프레이야 2012-05-22 18:24   좋아요 0 | URL
가장 행복한 순간이랍니다.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요^^
하늘바람님의 소원대로 이루시길 바래요^^
태은이랑 태어날 태은이 동생 키우며 얻는 소재로도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겠네요.

댈러웨이 2012-05-2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많네요. 깔끔하게 써 주셔서 감사한 페이퍼입니다.

1.저는 (쓰는 와중에 정리가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일단은 정리가 되야 뭘 끄적거릴 수 있기에 '끝이 나면 쓸 수 있다'로 받아들이고 이 문구 제가 좀 가져가겠습니다. ^^
2.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뭔가가 저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제 속의 산투르니는 도통 울어주질 않는다는.
3.<올리브 키터리지>는 하도 데면데면하게 읽은 책이라, 리뷰들을 보면서 더 좋아하게 된 책이라고 해야할까요...( ") 아,,, 저 바보일까요? 저기 다락방님이 째려보시겠다...

녹음 작업을 하시는 프레이야님의 목소리가 궁금하군요. ^^

프레이야 2012-05-22 18:30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끝이 나면 쓸 수 있다, 이 말도 결국 통하는 말이네요.^^
올리브가 헨리에게 마구 신경질 부리는 장면 읽으며 빙의된 듯 그랬어요.ㅎㅎ
소설은 인물의 대사를 조금은 실감나게 읽어야되니 저로선 쉽지 않아요. 그래도 재미납니다.
어떤 대사에는 거침없는 욕설도 나오는데 이건 뭐 대리만족도 되구요.

2012-05-27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8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앨리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대뜸 '몽상가'란 말이 나왔다. (우리는 사랑일까,의 첫 문장)

 

 

 

 

 

 

 

 

 

 

 

 

알랭 드 보통 /  은행나무

 

 

 

 

자신은 인정할 수 없을지 몰라도 타인의 시선으로 보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더 맞는 경우가 많다.

앨리스는 자기초월의 갈망(신학적으로는 사랑이라는 관념과 같은 것)과

현실에서의 상실감으로 우수 깃든  연초록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라고 묘사된다.

앨리스는 '관계'라는, 의사 불소통의 우스운 연속을 익히 잘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아온 여자다.

한마디로, 앨리스는 사랑을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어하는 부류다.

 

알랭 드 보통은 몽상가를 '낭만적 혁명가'로 통하게 하는데,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모든 걸 보존하려는 욕구의 반대 쪽,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앨리스를 보여준다.

'거울에 비친 사랑'을 말하는 대목은 앨리스를 더 잘 말해주는데, 우리가 대개 사랑에 빠졌다는 감정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가끔 돌아다보일 때 유효하다.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신중하게 말해서)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74p)

 

 

사랑과 관계와 삶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지닌다는 건 그만큼 더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는 반증이다.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삶과 관계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희망을 옅게 열어보이는 소설!

나도 가끔 몽상가라는 말을 친구에게 듣지만 누구나 자기 안에 '몽상가' 하나쯤 두고 살지 않나싶다.

몽상가는 안주하는 법이 없다. 현실과 타협하는 데도 서툴다. 꿈을 꾸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고 열정을 사랑한다.

 

시를 푸른노트에 필사한 혁명가 체 게바라도 생각나는 아침,  영화 '쿠바의연인' 도 생각나는 아침이다.

쿠바, 가보고 싶다.

 

 

 

연애는 혁명이다!  다큐, 정호현의 <쿠바의 연인> 나의 리뷰  http://blog.aladin.co.kr/sense/4454523

 

 

 

베르톨루치 감독의 <The Dreamers>  나의 리뷰 http://blog.aladin.co.kr/sense/108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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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나 급한 보고서 앞에 두고 이러고 놀고 있잖아요... ㅠㅠ
그리고 어제 저녁에 병원가서 타온 약을 먹고 오늘 오전 내내 몽롱해요.

언니, 나 어제 구차달님이 댓글로 '몽상가' 같다고 적어주셨는데, 언니 페이퍼에서 그 단어 또 봐요.
이럴 때는 감기야 옮든 말든 뽀뽀해드려야 하는거 아니우? 그러니 부비부비~ 쪼옥~

전 그런거 좋아요, 이상주의자, 몽상가, 낭만주의자...
물론 현실 도피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왕이면 이쁘게 세상을 바라보면 좋잖아요?
어짜피 한 평생 사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예요,, 그죠~ 그죠~

프레이야 2012-05-18 21:17   좋아요 0 | URL
놀고 싶을 땐 좀 놀아도 돼요.ㅎㅎ 보고서 같은 건 번개치기로 해야 더 잘 돼요.(마구마구 이래ㅋㅋ)
감기몸살 심해 어쩌나ㅠㅠ 무리하신 거에요. 좀 쉬어야할텐데..ㅠ
몽상가, 난 좋아해요. 그러지 않고 산다면 너무 삶이 무미건조하고 안이한 거 아니에요? ㅎㅎ
근데 내가 말한 몽상가는 세상을 예쁘게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에요.^^
몽상가는 낭만적 혁명가라는 말에 격하게 동감해요. 물론 몽상이 현실이 되기엔 힘들 때가 매우
많지만요. 그래도 꿈을 꾸는 자들이 세상을 바꾸고 나 자신도 내 삶도 바꿀 수 있지 않나요?
좀 위험하긴 해도 우리 몽상가 해요~~~ 좋잖아요 몽상가 ^^

댈러웨이 2012-05-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와락!
올초 알랭 드 보통의 신간 [Religion for Atheists(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 구입하면서 그 사람이 이곳에 온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표를 구하려고 알아봤더니... 음 세 도시 전부 이미 초매진이었겠죠.

3부작 중 이거 못 읽어봤어요. 강추하시는거에요?
팬으로서 아쉬운 건 알랭 드 보통이 너무 가볍게 취급된다는 것요.

음... 그나저나 저와 완전히 대척점인 처녀자리이시군요. ㅎㅎ

프레이야 2012-05-19 12:5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보통이 시드니에요? 초매진이군요!! 한국에 온 적도 있지요.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저도 참 좋아해요. '우리는사랑일까'도 전 좋던데요.
강추라기엔 발 조금만 빼구요.ㅎㅎ 굉장히 지적이고 유쾌한 사람 같아요, 보통은.
대척점이면 어떤? ^^

2012-05-22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2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2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를 낭독하다가, 에이즈로 요절한 미국 사진 작가 Peter Hujar의 사진 제목이 나와,

녹음을 잠시 멈추고 바로 검색 들어갔다.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썼길래 하도 궁금해서...

 

 

 

 

Candy Darling은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앞두고 짙은 눈화장에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새하얀 시트에 싸여 텅빈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얼굴.

그 뒤로는 하얀 국화, 그 왼쪽 앞으로는 병에 무심히 꽂혀있는 한 다발 야생화. 그리고 그녀 앞에 헌사된 (마른) 꽃 한 송이.

흑백의 강렬함에 절묘한 구도!!!   캔디가 응시하는 곳은 죽음 저 너머의 곳일까. 아무곳도 아닌 그 어디일까.

 

우리영화 '헬로우 고스트'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나온다.

며칠 전 우연히 티비채널을 돌리다 이 영화가 나오는 걸 잠시 보다가

몇 해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새록새록.

호스피스 병동은 상대적으로 명확해진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가 모여있고 정말이지 매일 죽음이 있고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말이 그저 관념이 아니라 일상인 곳이겠다 싶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가보지 못했지만 올봄 언젠가 노인요양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엔 50대에서 90대까지 병든 노인들이 계셨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노인들을 돌봐주는 요양사들이 일하고 있었다.

각 병실엔 6-8명 정도의 침상이 있고 화사한 이불 아래 거동이 힘든 노인들이 천장을 그저 보고 누워 있거나

모로 누워있거나 요양사의 도움으로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로 옮겨 앉고 있거나

(전적으로 요양사에게) 용변처리를 도움 받고 있었다. 각 병실의 문앞에는 명패처럼 이름표와 나이가 붙어있어서

침상의 그것에 맞춰 남녀 노인들을 눈으로 찾아보았다. 뭐라 말하기 쉽지 않은 게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나는 요양사 한 분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들었고, 순전한 봉사는 아니어도

이런 일에 자신의 몸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그분들이(대개 4-50대 여성) 달리 보였다.

한 분 요양사가 4-6명 정도의 노인을 돌보고 있었는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까 단련되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뭐든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는 일이면 몸은 조금 힘들다해도 마음은 가벼운 거지.

바깥 햇살이 그분들 표정만큼이나 밝은 날이었다.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 중, 99장 "죽음 또는 삶의 기록"에는

죽음의 사진, 그러니까 죽기 직전과 죽은 직후의 얼굴 사진이 실려있다.

독일의 한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

죽음을 앞둔 스물세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삶과 죽음의 기록을 남긴 것.

이 책에는 어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담은 사진과 6세 남아의 사진을 대조적으로 실어놓았다.

 

사람은 눈을 뜨고 있는 모습과 감고 있는 모습이 참 다르다.

눈동자에 담긴 빛과 어둠, 눈가의 주름, 눈언저리 표정, 눈썹의 모양까지 다르다.

물론 눈을 감으면 눈동자는 덮힌다. 고요히, 평화롭게.

그리고 눈을 감으면(엄밀히 말해 눈이 감기면) 입모양도 달라진다.

눈 아래 그림자 모양까지 달라보인다.

 

 

 

황경신은 엉뚱하게도, "나도 죽은 다음에 누가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주위 반응이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니, "됐어. 셀카로 찍을래. 죽기 직전이라도, 라고 말했다네. ^^

 

이 장의 마지막 줄 문장,

 

죽음도 삶의 일부고, 삶도 죽음의 일부다. 삶을 나눠 가진 우리는 서로의 일부다.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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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1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도 삶의 일부다...
아 졸려서 깊게 생각을 못하겠어요.
으윽, 그래도 문장은 참 좋다. 으윽.
프레이야님 안 졸려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안녕히 잠자리에 드셔요 ^___^

프레이야 2012-05-17 23:51   좋아요 0 | URL
벌써 그런 생각 깊게 하실 필요 있을까요 ㅎㅎ
나중에 나이 더더 먹어가면 안 하려고해도 자꾸 하게 될 걸요.
소이진님 저도 졸려서 이제 자려구요.^^ 굿나잇~~~

다락방 2012-05-1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죽음도 싫고 사진 찍는것도 싫은데요, 이 페이퍼에서 황경신의 말을 읽노라니 저도 죽은 다음에 누가 제 사진을 찍는것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건 괜찮을 것 같아요.

좋은 아침입니다, 프레이야님! (위에 소이진님과는 밤인사를 나누셔서 저는 아침인사로. 흣)

프레이야 2012-05-18 09: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좋은아침이에요!!!
저도 저 문장 읽을 때 마음속에서 반짝, 누가 제 마지막 눈 감은 순간의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모든 건 내려놓은 평화의 얼굴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바쇼의 하이쿠 기행 1,2,3권 중 3권/ 바다출판사

 

1권은 일시품절이라서 2,3권만 사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이 없더니 오늘 생각이 문득 나서 찾아보았다. 1권이 착하게도 있네.

그런데 왜 연락 안 해준거지? 알라딘? ^^ 너도 나처럼 깜박하는구나^^

1권 장바구니로~

 

 

 

 

 

 

 

 

첫 문장

백 개의 뼈와 아홉 개의 구멍을 지닌 나의 이 몸속에 무언가가 있다.

 

 

평생 은둔과 여행으로 살아간 바쇼의 하이쿠 한 자락.

 

여행에 지쳐

숙소 빌릴 시간이여

화사한 등꽃  (48쪽)

 

      

 

요즘 아파트 공원 벤취 위 등꽃이 눈부시다.

꽃은 지면서 연초록 잎들에게 제 자리를 내어준다.

연연해 하지도 않는다.

꽃 진 자리,

그래서 더 애틋하고 살가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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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머리가 그냥 멍해요.
맑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하고 오감이 혼미한 느낌이예요.

이 모든 것은, 너는 지쳤어, 이런 의미겠죠? 오늘 하루종일 놀아야겠어요. ^^

프레이야 2012-05-17 22:13   좋아요 0 | URL
마고님, 오늘 하루종일 잘 놀았어요?^^
머리도 생각도 좀 비우고요.
잘 놀고 잘 쉬는 것도 일하고 공부하는 것만큼 중요하겠지요.
저도 잘 못하지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