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안에 또다른 미미 문원아이 18
소중애 지음, 장지선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름은 여러번 접했던 소중애 작가를 이 책의 책날개에서 처음 얼굴을 보았다. 짧은 컷트머리에 덩치도 있어뵈고 크고 둥근 알의 안경을 쓰고, 씨익 웃고 서 있는 뒤로 낡고 작은 배 한 척이 묶여있다. 바다도 조금 보인다. 현재 아산의 모 초등학교에서 열한 명의 1학년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적혀있다. 바다처럼 품이 참 넉넉해보이는 인상이다. 

글쓴이의 말처럼, 겉똑똑이들이 많이 사는 세상에 속똑똑이 미미를 만나러 얼른 가고 싶어진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미미는 올해 입학을 해야한다. 눈이 이상하고 발육도 늦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미미는 먹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점심을 급식으로 먹을 수 있어 학교가 더없이 좋은 건 할머니도 미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입학식 날부터 미미는 사고뭉치에 모자라는 아이로 낙인된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대화가 솔직하게 나온다. 교사라는 입장에서 두던하는 게 아니라 여과없이 내보내주니 오히려 작가에게 믿음이 간다.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여 내보여준다는 점은 결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부정적인 현실을 교정해보려는 의도나 희망 쪽으로 가지않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맺는다. 어찌보면 약자가 오히려 도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미미와 할머니간의 '징글징글맞은' 옥신각신 장면은 웃음이 나오려다가 들어간다. 마음이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사람 사이에 흐르는 깊은 속정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울다가 웃는 꼴이 된다. 위기 부분에서 드러나는 할머니의 슬픈 인생의 곡절과 미미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 둘은 떨어져서는 못 살 사람들이다. 좋은 옷에 깨끗한 음식이 아니라, 걸레세수에 빨지도 않은 양말, 매일 먹는 시래기국이라도 미미는 할머니의 마늘냄새가 그립다.

할머니를 찾아 시장을 헤매다 만난 두사람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유일한 곳,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로 가서 살자고 약조한다. 이 부분에서 난 가슴이 황량해졌다. 이런 식으로 약자가 더 다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게 현실이라 생각하니, 작가의 의도는 독자에게 역작용을 바라는게 아닌가싶다. 이 부분에서 어린이독자와 어른은 생각나누기를 잘 해야할 것 같다. 자칫하면 이 책의 결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이런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고 개선이나 고민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이 말은 그냥 해보는 소리인줄도 모르겠다. 워낙 자존심도 세고 강인한 사람이니 미미도 할머니도 상처 입은 기억을 되살려줄 이 동네에서 '도망'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속정이 깊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도 개복엄마가 있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잘 살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건 단지 내 바람일지 모른다.  "도망갈라문 힘이 있어야 한다. 순대 많이 시켜 먹자." 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억세지만 누그러진 말투에서 "절대 도망가지 않을거야" 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초등 4, 5학년 정도에서 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 비밀 친구, 제8의 힘 나의 첫소설 1
카티 리베이로 지음, 스테판 지렐 그림, 정미애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랑이 주는 느낌은 우울, 차분, 냉정, 원칙, 이성, 폐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다. 이 책은 하드커버에서의 느낌과 책표지에 그려진 어떤 남자아이의 모습이 파란색과 잘 어울린다. 삽화도 파란색 한 가지로 모두 그려져있다. 변기앞 바닥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남자아이, 이 아이가 '나만의 비밀 친구'라고 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카티 리베이로'라는 프랑스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운수 나쁜 날>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책을 만나 썩 기쁘다.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고 힘 있다. '삶은 비극이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동화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나는 첫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마냥 아이라고만 하기도 뭣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보면 불쑥 커보이는 아이가 또 어느 날 보면 마냥 어린애 같기도 한 모순을 거의 날마다 겪으며 아이들을 만난다. 뭔가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역시 순진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아이다.

작가는 주인공 남자아이를 화자로 하여 1인칭 시점을 쓰고 있다. 이 아이는 곧 6학년이 될 아이지만 또래보다 생각이 많다. 평범한 아이들은 겪지않을지도 모를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다. 부모의 이혼을 혼자 감당해야하고 아빠의 새 여자친구와 그 가족을 안아들여야하며, 뇌성마비 여동생까지 동생으로 맞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온갖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감수해야하며 그들의 말장난을 참아내야하며, 종내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한다.

남자아이는 냉소적이다. 비관적이기도 하며 다소 고립적이다. 가령 이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위로 차원의 말, '행운'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날린다. 삶은 비극이다, 라는 말은 조리스 루이가 '허풍을 떨려고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 얻어 낸 결론일 뿐이'다. 사람들이 두 가정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된 거라고 위로할 때, 아이는 속으로 '내 가족은 둘로 불어난 게 아니라 둘로 쪼개진 거'라고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고 또박또박 (속으로) 따진다.

아이가 마음의 변화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되는 과정이 참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아빠와 새여자친구 클레르 아주머니와 그의 식구들과의 3주간의 바캉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그래서 원제는 'vacances force 8'이다. 7월 1일부터 21일간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 아이의 내면은 두려움에 일렁이기도 하고 노을빛을 보고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섬세한 심리 그리기가 돋보인다. 그 소중한 일기장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리 특별나지도 않는 소재의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점점 매료된다.

아름다움을 가장한다거나 군더더기 같은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간결체의 문장이 산뜻하다. 아이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인물들이 가식없이 내뱉는 말과 생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대한 상대를 생각하여 자제하는 말 속에 따뜻한 유머가 살짝 감추어져있다. 특히 새 가족이 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길지 않은 대사 속에 연륜이 묻어나는 따스함이 보여 대가족의 장점이 이런 데서 오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하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성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입양이란 말이 책 속에 나오는데, 이것의 풀이가 남다르다. '안토닌 할아버지는 나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나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이 가족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해 '아빠도 제임스의 가족에 입양된 셈'이다. 혈연중심의 가족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올리비아를 혐오하던 처음의 생각은 가족들이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중엔 이야기듣기를 좋아하는 올리비아를 위해 이야기도 들려주고 휠체어로 산책도 도와준다. 절대 동생으로 인정하려하지 않던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운 게 장점이다. 제임스와도 만화책으로 허물이 없어져 하마터면 조리스는 비밀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뻔 했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고약한 '할망구'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제임스와 조리스의 결의는 웃음이 훅훅 난다.

책제목인 '나만의 비밀친구'는 일기장이다. 그것에 주인공이 붙인 이름이 '제 8의 힘'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제 8의 힘'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예의 그 복수전이다. 못된 할망구를 위한 복수전의 행동방침을 세우고 이름을 그것으로 정했다. 그때 제임스가 그 이유를 묻는데, 조리스는 그저 '우리 식구가 모두 여덟 명이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3주간 떨어져 있는 엄마, 아빠와 헤어진 엄마를 내내 그리워하던 주인공은 이제 클레르 아주머니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를 정말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지 뭔가.

그럼 엄마는? 친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아이는 새로운 가족을 '밀물과 썰물'처럼 받아들이려한다. 삶은 비극이라기 보다, 엄청나게 많은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고 또 닥쳐오는 것임을 아이는 이제 조금 이해한다. 작가는 어쩜 밀물과 썰물로 삷의 슬픔과 기쁨을 이야기할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끌린다.

그래도 '가끔은 어른들의 삷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있는' 주인공은 아직 아이다.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떠나기 하루 전 날, 조리스는 제임스에게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제임스도 일기를 쓰게 되어 나중에 서로 일기장을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를 위해 처음 써 놓았던 일기들을 뜯어낼 수 있는 스프링 노트를 일기장으로 고른 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지난 날 써놓은 일기를 지금 보면 유치한 말과 생각들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법하다. 조리스도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꽤 괜찮은 녀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번지에 새로 온 아이 아이북클럽 30
레나테 아렌스 크라머 지음, 최진호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다는 뇌스틀링거의 생각처럼 이 동화의 작가는 힘든 주제를 들고 나왔다. 동화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처럼 이상적인 세계에 빠졌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말을 끄내기 두려운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가정학대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지만,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신고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난 경우는 전체의 0.5%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얼마전 어떤 아버지는 6세 남자아이를 학대, 폭력하였고 어떤 젊은 엄마는 어린 아이들을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집에 가두어두고 방치한 것이 이웃의 신고로 드러났다. 직접 폭력 못지않게 방임이나 착취도 아동학대이고 그렇게 학대를 받아온 아이들은 부정적인 자기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부모 아래 형제자매와 그런대로 단란하게 사는 클리오나 같은 아이와는 너무나 판이한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다. 술로 날을 보내며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 방임하는 어머니, 어린 두 동생들에게 벗어나 무작정 도망을 한 패트라는 11살 여자아이는 자상한 보육원 원장의 눈에 띄어 말끔하게 단장한 아름다운 보육원에서 살게된다. 특별히 친한 여자친구는 없고 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클리오나는 새로 온 이 아이를 편견없이 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섬뜩한 느낌뿐이다. 

어느 날 초콜릿 사건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도사리고 있던 패트가 클리오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인다. 이 일을 시작으로 둘은 조심스레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고요한 파도를 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주위 친구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말, 너무 다른 환경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작고 큰 갈등을 낳는다.

패트의 이 말은 참 가슴 아프다. "우리같은 아이들을 보살펴야하는 보육원 원장님에게 보살펴할 가족이 왜 있는거지."  패트가 유독 믿고 따르며 좋아하는 어른은 돌리 원장님인데, 세살짜리 아들과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패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질투심에 몸을 떤다. 패트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던 게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살핌이란 말이 생각났다. 

클리오나는 패트의 마음의 돌을 꺼내려하는 꿈을 밤새도록 꾼다. 패트는 이 돌로 인해 눈물샘마저 메말라버린 아이이다. 하지만 나중에 패트의 영어작문시간 글에서 드러나듯, 자기고백적인 글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돌을 들어내고 패트는 잊고있었던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좋아졌다는 걸 뜻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패트는 길고긴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 빠져나오려한다. 패트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클리오나의 인내심 있는 노력이 전편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패트의 언니 로레인은 보지도 못한 패트에 대해 보육원에 사는 아이라는 말만으로 심한 편견을 드러낸다. 그런데 로레인이 패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계기가 전혀 없고 심정적으로라도 납득되는 부분이 없는 게 흠이다. 학급의 아이들경우도 그까진 아니라도 다소 비약이 되어있다. 패트가 쓴 작문이 긴장감이 있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패트의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고 아이들은 패트에 대한 호감을 보인다. 결말 부분, 패트의 생일파티에 반아이들 모두 초대되고 여지껏 있었던 갈등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이라 맑은 심성으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해결이 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바람인지, 좀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특별한 악의로 따돌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맞다면 이런 행복한 결말도 그려봄직하다. 그래도 아이들을 믿고싶은 게 내 맘이기도 하다.

패트의 아빠처럼 학대를 일삼는 사람을 격리수용하는 체벌만이 해결의 방법일까?, 하는 나의 질문에 6학년 아이들 몇이 한 답변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격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해야한다고, 이웃에서도 무관심보다는 적절한 신고를 해야한다고.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소재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 동화이지만,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 촛점을 두어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갖가지 왜곡된 모습에 눈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화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파리 2004-05-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는 행운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은 고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지요. (당시 고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않좋았다고 하죠. 헐~) 그러나 지금 어린이 학대와 고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나, 부정적인 관념들이 깨끗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토탈 7777입니다. 배혜경님은 이벤 안하세요?(이벤을 노리는 이파리~)


프레이야 2004-05-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파리님. 저라도 편견을 싹 지우고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보단 그래도 생각하며 고민하는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필요하겠죠, 아이들에게요. ^^ 근데 토탈 7777 전 몰랐네요. 행운의 숫자가 넷이나!! 이벤트라, 어떤 게 좋을까요? 귀띔해주세요. ^^

밀키웨이 2004-05-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웁니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그 부모들이 미워서요.
그런데요, 놀이터에 나갔을 때 입성이 꼬질꼬질하고 뭔가 좀 경계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주위에 있으면 차력형제가 그 아이를 피해서 놀았으면...그렇게 바라게 됩니다.
또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도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하시는 집보다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친구와 놀았으면~~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입니까....

프레이야 2004-05-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우리는 참 이율배반적이죠. 저도 그래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언어폭력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니, 더욱 신경써야겠어요. ^^
 

이제 마음이 좀 정리된다.

어제 아침 서재를 들락거리고 있는데 희원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전 왕따 사건으로 피해자의 아버지가 교장실로 항의를 하는 바람에 오늘 학교로 좀 오시란다. 순간 가슴이 마구 뛰면서 화도 좀 났다. 그만한 일로 담임을 통하지 않고 교장실로 간 그 아버지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선생님에게 좀 딱딱한 어조로 내 기분이 전달되도록 했다. 그러고 오후 3시에 교실로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지난 주 금요일, 생전 처음으로 희원이가 반성문을 썼다며 내게 부모님 말씀을 써달라고 하며 종이 두 장을 내밀었다. 앞장엔 희원이가 쓴 반성문이고, 뒷장은 여학생 몇명이서 직접 끄적거린 왕따리스트 카피였다. 선생님은 '설마 내 아이가....' 이런 의심을 어머니가 가질까봐 증거서류?를 첨부하신 거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속으로 아주 놀랬다. 반듯하고 순진하고(내 아이라서가 아니라) 분별력 있는 아이가 이런 짓을 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의 태도와 말투에서 충분히 잘못을 느끼고 문제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난 놀라움을 감추고 겉으론 좀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곤 자초지종을 물었다. 희원이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편이라 자신의 부정적인 요소나 학교에서의 부정적인 일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칭찬을 받은 일은 나에게 얘기하지만 꾸중을 들었거나 자존심에 금이 간 일은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단 내가 그 반성문 아래에 '부모님 말씀'에 적은 글은 이렇다. '이 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잘 지도해주십시오'  그 종이를 토요일날 아이가 선생님께 갖다드렸고 아이는 주말에도 나에게 왕따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묻고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아이의 생각은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한두번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고치려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나의 말은 이렇다.

- 어떠한 이유에서든 한 사람을 다수가 모의하여 따돌린다는 건 또 하나의 폭력이다. 사람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단점을 가지고 그 사람이 따돌림을 당해야한다면 우리 중에 어느 누가 그에 해당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무슨 권리로, 무슨 완벽한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희원인 많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로 떠오른 이 문제를 이번 기회에 곰곰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고, 아이가 쓴 반성문의 내용처럼, 다른 아이의 말만 듣고 그 아이를 왕따로 지목하는 일에 함께 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이 리스트를 만든 여섯 명 아이들의 엄마들과 선생님이 한 자리에 앉았다. 사실, 가담한 사람 앞으로 다 나오라는 선생님 말에 용감하게 나간 아이들은 이 여섯이고 더 적극적으로 한 아이들 몇은 안 나가고 앉아있은 아이도 있단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먼저 손을 든 점에서는 난 희원이를 다독여주었다. 나서지 않은 아이들이 비겁한 것이라고.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조용한 교실에 지우개 가루가 많이 어질러져 있었다. 나와 선생님은 비를 들고 간단히 청소를 하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다른 엄마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건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생님은 이 일로 스승의 날이고 뭐고 교장실 불려가서 학생지도 잘 못 한 거 아니냐고 꾸중듣고, 피해자 엄마 항의 받고, 주말에 집에서도 아무런 일이 잘 되지 않더란다.

교장실로 찾아간 아버지의 아이는 작년에도 왕따를 당한 아이고 행동과 언어습관이 몹시 거칠고 거짓말도 잘하고 문제가 있다는 걸 선생님도 부모님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3월부터 선생님이 주시하면서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 아이를 격려해주고 그래서, 작년처럼 아이 입에서 학교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말은 안 나와서 그 엄마도 참 반가워하고 있었단다. 그런데도 반아이들이 그 아이옆에도 가지 않으려하고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면 야유하고 따돌리기 시작하더란다. 남몰래 두어달 동안 선생님이 각별히 신경을 쓰신 흔적이 보여 선생님께 죄송했다.

사실 희원이는 좀 억울한 경우라고 하셨다. 내가 놀란 것은, 처음에 희원이도 왕따 리스트에 들어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서다. 그걸 작성한 아이들이 그 리스트를 희원이에게 보여주며 너도 여기에 가담하여 한명을 지목하면 그 리스트에서 빼주겠다고 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난 이 내막을 아이가 아닌,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희원인 그런 이야기일랑 자존심이 상해 엄마에게 못 하나보다. 왕따를 하는 가해자들에게 물으면 그냥 재미로, 장난삼아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도 이 아이들이 무슨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란 것도 알겠다고 하셨다. 고학년지도가 이래서 어렵단다. 학습지도보다는 이런 문제 때문에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단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엄마들은 집에서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좋은 말로 잘 지도하기로 하고 교실을 나왔다.

어쩌면 이 기회에 꾹꾹 눌러두었던 문제가 표면화되어 더 좋은 분위기로 이끌어질 수도 있겠다고 선생님께 희망적인 말씀을 한마디 던졌다. 왕따를 당한 그 아이의 사례를 몇가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힘겨움이 엿보여, 이래저래 걱정을 끼치게 되고도 오히려 발끈했던 내가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다. 선생님의 딸도 중학생이 되고 얼마간을 매일 용돈을 빼앗기고 들어왔단다. 안 주면 왕따 시킬거라고 협박을 하더란다. 그래도 선생님은 담임께 항의도 하지 않고 기다렸단다. 시간이 지나자 그 담임이 알게 되고 일이 해결되었다고 하시며, 담임을 통하면 해결 못 될 일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며 장난으로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하셨다.

교문을 나서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개성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가지고 그 사람을 집단적으로 모독할 수 있는지. 학교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면 좋겠다. 나와 다른 점을 보듬어줄 줄 알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 가방을 메고 나가는 아이의 뒷통수에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희원아 점심 맛있게 먹어. 그리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라고 말했다. '응, 여자친구들이랑은 다 잘 지내.' 이러고 가는  아이의 등이 오늘따라 가엾어 보인다. 마음도 몸도 아름답게 자라기를, 내 아이의 다름이 서로에게 눈엣가시가 되지 않는 세상이기를, 그래도 믿어볼 수 있는 건 착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닌가싶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4-05-1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생각은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한두번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고치려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은 거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왕따 당하는 아이들에게 전혀 문제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아이들에겐 그게 안 먹혀 들어갈 때가 많고,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저도 화를 내며 '왜 너는 다른 애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니?'하고 야단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 아이에게 쏟는 관심을 차라리 다른 애들에게 나눠주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압니다.
님과 같이 모인 학부모님들은 좋으신 분들이네요. 담임 선생님께서도 현명하시구요. 작년에 우리 학교에 비슷한 왕따 사건이 있었는데,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었습니다.

진/우맘 2004-05-1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놀라셨겠네요. 그래도 참, 차분하게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경우라면...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데요. 뭐라할까...뭐라할까...머리만 긁적이다 가요.

아영엄마 2004-05-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따 문제.. 저는 늘 걱정입니다.
아영이가 워낙 행동이 느려서-아직도 복도에서 밥 먹곤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못난 아이로 비치고 왕따당할까봐요...
그리고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왕따를 시켜야 하는 삭막한 현실도 답답하고.. 선생님들도 여러모로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업무도 과중한데 아이들의 면면을 두루 살피셔야 하니.. 그래도 희원이는 좋은 선생님이랑 엄마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프레이야 2004-05-1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진/우맘님, 아영엄마님, 네, 병이 깊어지기 전에 잘 발견했다싶어요. 선생님이 참 좋으시더군요. 그 아이에게 하루에 한번씩은 '말조심해. 예쁜 말 써.' 이렇게 주의도 준대요. 계속 왕따를 당하다보니 성격이 더 비뚤어지고 난폭해진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가 사실 불쌍하기도 했어요.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보살펴주어야할 아이 같았어요.

조선인 2004-05-1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2때 친하게 지내던 무리로부터 갑자기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요.
전 몹시 당황하고 기가 죽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방과 후 저를 불러 너가 왜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줬지요.
제가 잘 모르겠다고 머뭇거리자 잘난 척하는 것 때문이라며 그 예를 세세히 들어줬습니다.
그제서야 무심코 한 저의 언행이 친구들에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다행히도 어른스러웠던 그 친구 덕에 다른 친구들과도 금새 화해할 수 있었고,
그날의 일들은 제 인생의 소중한 교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희원에게도 오늘의 사건이 귀중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04-05-1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그런 경험이 있었군요. 참 성숙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저도 때때로 내가 물에 기름처럼 한데 어울리지 못하는 이질적인 존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느낌은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고독을 즐기는 성향도 있구요. 웃고 떠들고 난 후의 공허감이 두려울 때가 솔직히 있지요. 하지만 그런 태도가 남들에겐 좋지않게 보일 수도 있겠다싶네요. 조선인님, 희원이게도 귀중한 경험이 되기를 바래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박예진 2004-05-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인데 ... 워낙 글솜씨가 좋으셔서 넋 나간 채로 읽었네요 .... 제가 어렸을 때도 왕따당한 아이가 있기는 있었어요. 제가 왕따시킨 것은 아니였지만 , 보통아이는 아니었구요 , 왜 있잖아요...다른 애...그런 애였거든요 . 저도 왕따 안 당하도록 친구들에게 더더욱 친절히 대해야겠어요.

waho 2004-06-06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무섭네요. 따돌림 당하는 애들은 항상 있지만 요즘은 애들이 넘 무서워져서 따돌림의 정도도 심해지는 것 같아요. 희원이도 맘에 상처가 됐겠네요. 아이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음 좋겠네요. 님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프레이야 2004-06-06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댁님, 힘든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음 쓰여요. 잘 넘겼으면 좋겠어요.
희원인 요즘 이 일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고 그 친구도 별 무리 없이 학급에서 잘 지내고 있대요. 선생님께 쓴 편지(일기장에)에서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하는 걸 보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다 자라는 과정이 아니겠어요? 다치고 치유되고 그러면서 강해지기도 하구요. ^^
 
어휴, 나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하라구? 아나스타샤 5, 미국동화
로이스 로우리 지음, 최덕식 옮김, 신혜원 그림 / 산하 / 199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을 헤아리며>라는 감동적인 동화를 쓴 로이스 로우리가 일곱편의 시리즈물로 아나스타샤를 주인공으로 재미있는 동화를 썼는데, 이 책은 그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아나스타샤는 사춘기의 예민하고 영리한 여자아이이다. 생각도 많고 성장의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다. 미국동화이지만 우리에게도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가 깃든 통통 튀는 대사가 재미있고 일상의 이야기이지만 흐름도 빠르다.  

이 책의 삽화는 <하느님의 눈물>에서도 그림을 그린 신혜원님이 그렸다. 담고 있는 생각거리는 얕지 않지만 계몽성을 강조하지 않는 위트있고 가벼운 터치의 이야기처럼 삽화도 마치 만화처럼 그려놓았다. 쓱쓱 진한 연필로 그려 놓은 것 같이 어릴 때 본 명랑순정만화의 분위기이다. 아나스타샤는 올빼미안경을 쓴 13살(중1 정도)의 여자아이이고 세살 난 남동생(우리나이론 다섯 살쯤)이 있다. 시인이자 영미문학교수인 아빠와 화가인 엄마 사이에서 별 어려움없이 평범한 보통의 가정에서 산다.

이 다섯번째의 이야기에서는 엄마가 대부분 담당하는 집안일을 아나스타샤가 몸소 겪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 주된 흐름이다. 중간에 끼어있는 또다른 이야기는 이성에 대한 것이다. 남자친구에게서 첫번째 데이트 신청을 받고 낭만적인 꿈을 꾸고 열정적인 저녁준비를 했다가 어설프게 꿈이 깨어지는 비애(?)도 겪는다. 그와 동시에 아빠도 첫사랑의 아름다운 환상이 깨어지는 배신감을 겪고 마음의 열병이 몸에 나타난건지 수두를 앓는다. 아빠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5학년 아이들도 이 부분을 그리 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 아나스타샤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꽤 그럼직하고 실감난다. 이름으로 특이한 별명을 지어 부르고 브래지어끈을 잡아당기는 남자친구들에 화가 나기도 하는 아나스타샤를 엄마는 옛날 자신의 솔직한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며 다독인다. 솔직히 좋은 감정도 들었다고, 하지만 이젠 아무런 느낌이 없어진 나이가 돼버린 걸 엄마는 오히려 씁쓸해한다. 친구같은 엄마와 딸 사이 같다. 나도 이런 사이로 딸과 지내고 싶다.  

아나스타샤는 일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맛있는 간식도 못해주고 그외의 가사일도 얼렁뚱땅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아빠와 작당한다. 엄마는 조직적이지 못해 그러니까 시간표만 짜면 모든게 해결될 거라고 득의양양하게 키득거린다. 하지만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미소만 짓고 있는 엄마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시간표대로 일이 다 되는 것도 아닐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말이다.

딸 아나스타샤는 엄마의 생활과 엄마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가정주부로서 역할을 해야하는 열흘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엄마의 출장 때문이다. 시간표를 빡빡하게 시간대별로 짜놓고 출발하여 시작은 순조로운 것 같았지만 날이 갈수록 시간표는 예기치 못한 일로 자꾸 수정되고 생활은 거의 뒤죽박죽이다.  첫 이름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크루푸닉 가족의 시간표>로 시작하지만  대폭 수정된 '낭만적인 밤을 위한 시간표'를 거쳐, 마지막의 그냥 '집안일 시간표'에서는 '후유증이 엄청나다'고 하며 '엉엉 울었다' 라고 쓴다.

아나스타샤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로스앤젤레스에 가 있는 엄마에게 앞당겨 오라고 전화를 하고 돌아온 엄마는 엉망이 되어 있는 집안을 세 시간만에 정돈한다. 엄마의 가사일에 도움을 주는 해결책도 마련되었다. 냉동식품을 해동하기 위한 전자레인지와 지겨운 가사일에 활력을 주기 위한 '탭댄스 강습권'이 그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엄마는 해결 못하는 게 없는 놀라운 사람'이란 걸 이제 인정하고 항복한다.

탭댄스 신발을 신고 춤을 추며 2층을 오르락거리는 엄마가 아나스타샤가 보기엔 좀 '주책스러워 보였지만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얘기 나누며 우리 딸에게 엄마가 주책스러워보이지만 재미있을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니, 공연보러 가서 좀 오버할 때라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딸이 좋다. 아나스타샤는 엄마를 이해하는 폭이 성큼 커졌다. 엄마도 똑 같은 일상에 활력소가 필요한 사람이고 가사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복병처럼 나타나는 것이 하루의 일상이고 우리의 인생 자체이다.

삶이란 그리 녹녹하게 조직적으로 엮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상치 못하는 것들의 경이로운 변종으로 나타나는 것이란 걸 더 살면 느낄 것이다. 정말 되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것이 없다. 따져보면 무엇이든 계획하고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안개속 희미한 윤곽을 부여잡고 뿌연 길을 걷다가 아주 우연한 것이 필연인 것처럼 나에게 붙박혀온 것 같다. 우리의 하루가 그러한데, 하물며 긴긴 삶이 그렇게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것인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4-05-18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제대로 준비하고 시작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로 가고 싶어요. 계속...

starrysky 2004-05-1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아나스타샤. ^^ 시인이자 교수인 아빠와 화가인 엄마, 사춘기에 접어든 엉뚱한 딸 아나스타샤와 천진난만 꼬마 천재 샘의 이야기가 사람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빨아들이지요. 예전에 모아둔 시리즈가 거의 없어져 속상했는데 이렇게 다시 나왔군요. 기회 되면 사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04-05-1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arry sky님, 반갑습니다. 저도 이 시리즈 무척 좋아합니다. 산하출판사에서 나와있더군요.
님의 서재에서도 뵙기로 해요.^^

ROSE 2004-05-20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대부분의 (저를 포함해서...) 딸들이 엄마를 아니, 엄마의 생활과 답답함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그때문에 엄마와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엔 엄마를 이해하고 그래서 닮아가는 게
아닐까 하네요.....
많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엄마에겐 항상 어린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왠지 엄마한테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