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대구우방랜드로 차를 달렸다.

그저 눈썰매를 타기 위해서였는데, 우리 식구중 타고 싶은 사람은

작은 딸 한 명. 나는 약간은 타고 싶으면서도 귀찮기도 하면서 어정쩡한 상태.

큰 딸은 아빠랑 이리저리 밖에서 서성이고 나는 희령이를 위해

계속 줄을 서주느라 허리가 아파왔다.

에라 나도 한 번 타보자 싶어 플라스틱 썰매에 엉덩이를 데고

출발 신호와 함께 쌩~ 내려가느라 갔는데 어째 속도가 줄기 시작하더니

중간 쯤에서 아예 멈춰버린다. 부끄러~~

일어나서 썰매를 들고 눈썰매장 내리막길을 뛰어서 내려왔다.

희령인 야호~하며 쌩~하고 시원스레 잘도 내려가더니만

난 우째서 그런고. 아마도 경사가 넘 완만하여 그런거야.. 위로하며..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로 몸을 좀 녹이고 화장실 데리고 갔다오니

이번엔 튜브썰매를 타겠단다.

왕체력의 희령이를 따라 또 줄서주기~

바람은 차가왔는데 햇살은 그런대로 따스했다.

눈썰매장에서 몇시간을 떨고 이제 그만 점심 먹으러가자고 달래는데

희령이 놀이기구에서 눈을 못 떼고 입이 뾰족하게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마법의 성 안을 도는 작은 기차 앞에서 50분을 줄 서기.

꺄오~ 함성을 질러주며 같이 타고 나왔다.

순간의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오랜 시간 줄 서기를 하는 인내심을

터득했을 거라 위안하며 놀이공원을 나왔다.

대구 찜갈비가 유명하니 온 김에 동인동 찜갈비골목으로 차를 몰아

두 냄비를 먹었다.  부산까지 와선 달콤한 던킨도넛으로 마무리.

희령이가 좋아라하니 무심한 엄마 마음이 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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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1-2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작년여름에 물썰매 타면서 저만 혼자서 비스듬하게 가는 것을 경험하고
이건 무게의 문제야..(혼자서 좌절했어요ㅠㅠ)
그나저나 더 타시지 그러셨어요..익숙해지면 괜찮은데요.

사는 이야기 좋네요. 잘 안올리는 주제에 남사는 이야긴 좋아라 합니다^^;;

프레이야 2006-01-2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zz... 새벽별님~ ^^ 반딧불님^^ 더 타면 더 망신일거 같아서요..
 
엄마의 역사편지 1 - 문명의 발생에서 첫 번째 밀레니엄까지
박은봉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사 둔지는 몇 해전이다. 딸은 한번쯤 읽는 눈치였는데 난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6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읽게 되었다. 잘 되었다싶어 반가웠다.

밀레니엄의 단위로 세계역사를 두 권의 책에 모았다는 점과 역사편지라는 형식을 땄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게다가 편지를 쓰는 이가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점도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을 준다. 초등학생이라면 생소한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입말로 쓰여있다가 건조체로 쓰여있다가 해서 어조에 통일감이 없다. 사진 자료와 삽화를 적절히 배치하여 역사의 흐름이나 단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아쉬운 점은 지도자료와 간단하게라도 연표가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의 수직구조와 수평구조를 함께 읽어나가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오히려 수평구조를 보는 눈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쓴다. 지구의 이 편 저 편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했던 주요사건들을 너른 시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보여줌에 있어서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았다. 처음 세계사를 접하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혼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 시야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연표를 그려서 스스로 내용을 간략히 구조화해보면 일목요연해질 것이다. 부록으로 이런 것이 뒷편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읽는 이가 스스로 해 보면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예를 들어 900년 무렵, 한반도엔 후삼국시대, 유럽은 노르만인에 벌벌 떨고,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라고 짚어주는 것을, 저자는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를 세계역사와 동일선상에 놓고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점도 좋다. 저자의 역사관은 치우쳐있지 않고 열려있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에 대하여 지적해주는 부분도 있어서 이 책으로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고 다른 책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좀더 비판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되도록 쉬운 단어와 화법으로 복잡할 것만 같은 세계사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도록 전하려한 노력이 보이는 책이다. 몇번 반복해서 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들어올 것이다. 정확한 연도를 밝힌 사건도 있지만 대략 어느 시기(몇 세기경)라는 정도로 시기를 알려주는 부분은 전체적인 흐름을 소화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끝부분에서, '세번째 밀레니엄이 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세번째 밀레니엄을 기쁘게 맞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말이야.' 라고 저자는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사고를 당부한다. '후삼국과 고려시대' 라는 꼭지가 먼저 오고 이 꼭지가 오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저자는 무슨 의도에선지 바꾸어두었다. 1천년이 오면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다. '나'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로부터 났고 미래를 향해있다는 점을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글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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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는 '스트레스 안 받고 내 주위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적혀있다. 이런 책에 거의 처음으로 손이 간 걸 보면 관계를 잘 꾸려가지 못하는 미숙한 나의 방식, 그 자체가 내겐 늘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나보다. 간혹 관계를 잘 꾸려가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서도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렇다면 누구든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하기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렵다는 말이다.

얼마 전 문학회의 홍보일을 맡은 관계로 전체공지를 한 일이 있는데, 내용인즉 정식으로 문학회의 회원으로 등록 되어 있진 않지만 간혹 참여하는 어느 선생님의 부친상에 대한 것이었다. 윗분의 명령?으로 나는 공지를 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윗분이 즉시 전화로 내게 하시는 말이(좀 화난 음성으로) 정식 회원도 아닌 사람의 일까지 이런 식으로 공지를 하면 회원들에게 부담만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납득이 되어 나는 즉시, 그분은 **문학회 회원은 아님을 밝히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만 문상을 가시라는 공지를 다시 하였다.

바쁜 와중에 왜 이리 복잡하게 일을 하게 되나 싶다가, 역시 관계 안에서는 말 한 마디, 글 한 줄도 오해의 소지가 되고 불화의 꼬투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으로, 말 한 마디, 글 한 줄이 좋은 관계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니 어찌 보면 희망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이라는 부제도 달려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벗이라 생각한다면 관계가 참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소노는 1931년 도쿄생이다. 삶이 가져다준 지혜와 여유로  벗을 공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아 놓았다. 소노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소소하거나 다소 커다란 일들에서 벗을 공경하게 되는 마음의 변화들을 솔직하게 옮겨놓았다고도 보인다.

책의 표지에 있는 사진에는 눈이 시원해지는 녹색 잎사귀들이 옹기종기 붙어 매달려있다. 이래저래 얽혀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짐을 느낀다. 역시 나는 보는 것, 듣는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나약한 사람인가보다.

목차를 보면 모두 11장으로 나뉘는데 아무 곳에서부터 보아도 무방하겠다. '우리들 모두 있는 그대로 족하다'로 시작하여 끝에는 '사랑과 동떨어진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장으로 맺는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관계를 조금씩 넓혀가며 시댁어른, 남편, 부모님, 벗, 직장 사회생활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와의 편안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거창하지 않으며 짧고 인상적인 글로 보여준다. 모두 소노의 소설이나 칼럼 등 자신의 글에서 발췌한 부분으로 보인다. 

소노의 경우법은 스스로가 완전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나태하고 적당히 거절하고 적당히 무지하고 적당히 일하고, 남에게도 친절한 간섭은 삼가는 것이다. 소노의 사고방식은 틀에 매어있지 않고 전통적이거나 규범적이지 않아 시원시원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은 '베품과 받음의 의미'이다. 예를 들면, 인과응보가 아니라서 인생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준 만큼 받으려든다면 얼마나 불편한 관계가 될까. 그리고 '우정의 기본은 존경'이라고 이 장에서 말하고 있다. 

'증오로 구제받는 경우도 있다'라는 장에서는 인간은 평화만이 아니라 싸움도 좋아한다고 가식없이 말한다. 나와 상대의 부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라는 이야기이다. 살아가면서 '성실과 불성실의 배분'이 삶을 덜 피곤하게 한다는 것도 알았다. 종교인다운 구절이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은 흥미로운 분배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모든 재능을 때와 경우에 맞게 사용하고 계시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고 어느 상황에서든 성실하려고만 하면 쉽사리 피곤해질 것이고 상대에게도 짜증의 불똥이 튈 것이니 말이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죽음과 장례에 대한 단상들도 자주 나온다. 장례식은 가족행사라고 하며 가정사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얼마전 내가 문상에 대한 공지를 하였던 일과 연관되어 기억된다(회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윗분의 말씀..). 소노의 말처럼 세상사의 잣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사는 것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죽은 다음에는 한 가닥 미련 없이 깨끗이 잊혀지는 게 좋다'며 '존재 남기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신선하다. 오랜 세월 이 세상에서 '소란을 피워왔으므로' 죽어서까지 존재를 과시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말이다. 세상 그 어느누구보다 절대자만이 알아주는 '나'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글을 모두 읽어보면 저자는 명랑하고 따스한 사람이라 느껴진다. '진정한 예의는 진지함'이라고 생각하며 나와 상대 모두에게 너그러워질 것을 충고한다. 시무룩한 표정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은 친정어머니에게 듣는 말처럼 자상하게 들린다.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아내로서 문학인으로서 또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그저 우왕좌왕 살아오며 터득한 삶의 지혜들이 연륜과 함께 전해온다. 거드름 피우지 않고 솔직한 말투, 튀는 발상, 넉넉함이 배어있는 사고방식 그리고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다운 순진함이 여전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이래저래 얽혀들 때 목차에서 와닿는 소제목을 찾아 펼쳐보는 것으로도 스스로 위안이나 해답을 얻을 수 있겠다.

" 최악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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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1-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 설날 선물로 받은 것 같아요. 물만두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네요..

아영엄마 2006-01-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당선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1-3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몸무게 다들 느셨을테죠. 아영엄마님도 ㅋㅋ
축하,, 감사드려요.

조선인 2006-01-3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 선물, 축하드려요. *^^*

글샘 2006-02-03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최악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 말은 어디 적어 두고 싶은 말이네요.

프레이야 2006-02-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글샘님 감사드려요^^ 오늘 날씨가 좀 맵네요. 감기조심하세요~~
 
늑대와 아벨
알레산드라 로베르티 그림, 세르지오 라일라 글, 김완균 옮김 / 효리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아벨의 이야기는 헤어짐에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이별이다.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물건들을 잘 간직하고 아벨이 도착한 곳은 숲이다. 숲은 자연이다. 이곳에는 주인이 이미 있다. 바로 늑대라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 주인은 손님이 반갑지 않다. 허락도 없이 자신의 땅에 들어온 아벨이 못내 못마땅하다. 아벨이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고 밭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는 행동이 얄밉기만 하다.

숲의 주인, 늑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아벨은 가지고 있다. 칼로 나무를 깎고 씨앗을 뿌리고 냄비에 재료를 넣어 요리를 한다. 무엇보다 아벨은 날마다 무슨 책을 보고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지혜가 담긴 책이다. 늑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벨을 괴롭혀보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게다가 아벨이 냄비에 요리한 음식을 훔쳐와 먹다보니 입맛에 길들여져 날 것으로는 어떤 것도 맛이 없다.

아벨은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하고 농사를 짓고 문자를 해독한다. 아벨은 숲의 주인이 늑대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면서 그 주인과 친해지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 땅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늑대는 처음부터 적의를 품고 아벨을 내쫓고 싶어했다. 승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인간인 아벨이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늑대를 품어준다. 아벨은 지혜의 책을 날마다 보며 그 해답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해치려고만 하는 늑대를 오히려 감싸주고 돌봐준다. 늑대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새 풀어졌고 아벨은 자신 안에서 적이 아닌 친구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 그림책은 평온한 얼굴을 한 아벨의 가족사진에서 출발한다. 첫그림이 마치 퇴색한 옛날가족사진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 장부터는 전면이 그림으로 넓게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채도를 낮추어 차분하고 편안해보이는 인상을 주면서 색연필로 그린듯 섬세하기도 하다. 아벨은 영특하고 순해보이는 얼굴이다. 늑대의 곤두선 털은 그와는 반대의 느낌을 준다. 앞부분의 속지와 뒷부분의 속지에는 숲의 빽빽한 나무들이 보인다. 앞부분의 늑대와 아벨, 그리고 뒷부분의 늑대와 아벨이 서로 어떻게 하고 있나를 보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시작과 끝을 잘 연결한 세심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늑대와 아벨>은 몇 가지 생각거리를 풀어볼 수 있는 책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인간이 먼저 나서서 해야할 일 같은 게 아닐까싶다.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생각거리는 '관계를 좋게 만드는 방법'이다. 바람직한 관계는 '우정'이 바탕이 되어야된다고 생각한다. 친구 같은 관계는 수평적이며 열린 관계이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도와주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가 않지만 아벨은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던 늑대에게 그런 행동으로 대응한다. 이는 상대의 마음을 송두리째 풀어주고 내 쪽으로 오게 하는 비법 아닌 비법이라 생각된다. 아벨의 지혜의 책!! 그 내용을 친구랑 토닥거리기 일쑤인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하는, 할아버지 손바닥처럼 품 넓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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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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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이 믿음직하면서 살갑다. "나는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 밖을 보는 통로는 '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안을 훔쳐보는 통로도 문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도 문을 열어야 가능하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내 보인 '문'은 햇살이 은은하게 비쳐 온기를 담고 있다. 세상 밖과 안이 불투명하게 막혀있지 않고 잘 통할 것만 같이 열려있는 느낌이다. 비록 그 문이 닫혀있다해도 말이다. 그 문 옆에 앉아 책을 펼치면 속눈썹 위로 햇살이 아른거리며 기분 좋을 정도로 눈이 부시고 잠이 스르르 들 것만 같이 편안하다.

이런 분위기는 이 책의 책장을 다 덮을 때까지 이어진다. 굳이 예스러운 문체를 고집하지 않는 이야기방식도 그렇고 사라진 인물들을 살려내는 데 있어 저자가 바라보는 시선이 또한 그러하다. 이는 무리없이 읽어내려가며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점에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특히 초반부)  다소 몽환적이다싶은 묘사가 이덕무란 인물을 현실비관적이거나 유약한 인물로 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서두의 이런 분위기는 점점 현실적이고 강인한 미래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덕무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을 간서치라 하며 겸양한 태도를 보인다. 또한 자신이 책과 만나는 독특한 방식을 감동스럽게 풀어낸다. 가난한 살림에 할 수 있는 건 책 읽는 일밖에 없는 무능한 자신의 처지를 한스러워하며 책을 팔아 생계를 잇는 대목은 콧등이 찡하며, 한편 답답하다.

중간부분에서, 억눌린 한을 참된 벗들과의 교제를 통해 나누고 시대를 함께 아파한 그는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같은 마음의 벗들을 소개한다. 또한 홍대용과 박지원을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을 가능케한 스승으로 소개한다. 모두 저자의 입을 통해 상상력에 힘입어 소개되는 형식이다. 실제 연도와 구체적인 일화, 살아있는 대화와 웃음을 통해 각 인물들의 사상과 업적, 이덕무와의 연관성이 소개된다. 간혹 중복되는 사항도 있어 조금 다듬었더라면 하는 곳이 살짝 보인다. 

인물들은 모두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책 밖으로 걸어나온다. 이렇게 과거의 사람을 눈앞에서 만나는 순간의 설렘이 가장 큰 미덕이다.  이덕무가 오감을 통해 책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나누었듯이,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대부분 실학자들)은 오감으로 느껴지는 개성적인 사람들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홍대용이다. 과학과 기술을 중히 여기고 혼천의를 만든 실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인물인데 완전히 생명력이 부여되어 튀어나왔다. 왕산악 뺨치는 수준급의 거문고 소리라니, 얼마나 멋스러운가. 그 시대에 누구나 의심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자세한 관찰과 예리한 비판의 눈으로 물음표를 던지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 이는 자기 개혁으로부터 세상의 개혁도 나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식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덕무가 벗과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넓혀가듯, 공간적으로도 작은 방 안에서 시작하여 백탑으로 중국으로, 다시 규장각으로  넓혀간다. 이들, 변혁의 의지를 품은 인물들의 배후에는 정조가 있다. 이들이 세상 속으로 나와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실현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며 정조의 개혁의지가 담겨있었던 화성 담의 매끈한 벽돌이 떠오른다. 이것을 실어나르기 위해서도 수레가 필요하다가 피력한 박제가가 거침없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실현되지 못한 이상을 예견했을까. 이덕무가 책만 보는 바보라고 자칭한 이름에 세상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깔려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과거의 일과 과거의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마지막 장에서는 조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맺는다. 물론 이것도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이지만 책 속 이야기 서술 속에서는 미래에 속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이어져있는 시간이듯이 과거의 인물과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구세대는 신세대와 맺어져있고 옛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사고방식에 깊이 연관지어져 있다. 서로 나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나누지 않으면 이어질 수 있는 고리가 마련되지 않을 것 같다. 

버려졌던 발해의 역사를 오랜 세월 찾아 모으고 <발해고>를 쓴 유득공을 비롯하여 녹색눈의 호걸 박제가 등 막연했던 인물들이 성격을 띄고 살아나오니만큼,  읽고 나면 나이와 적서를 가리지 않고 진정한 벗을 삼은 이덕무의 지혜와 인품이 전해져오기도 한다. 실학자들과 그 시대의 못다 이룬 혁신에 대해 근거있는 상상력으로 쉽고 재미나게 풀어쓴 책이면서 지금 우리의 미래까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책의 가장 뒷부분에서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과 책에 대해 가나다 순으로 간략히 정리를 해 놓아 참고하기에 괜찮다.  

옛 서화집을 넘기듯 오른쪽 책장의 우측에 세로로 그려져 있는 삽화에서 은은한 묵향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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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6-01-1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참 인상적입니다. 제목만 보고 스쳤던 책이었는데 한데 읽어보고 싶군요.

프레이야 2006-01-1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미난 책입니다. 중상주의 실학자 이덕무로만 알고있었던 인물이 말을 걸더군요.

글샘 2006-01-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쓴 책이지요. 리뷰도 참 멋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