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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아벨
알레산드라 로베르티 그림, 세르지오 라일라 글, 김완균 옮김 / 효리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아벨의 이야기는 헤어짐에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이별이다.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물건들을 잘 간직하고 아벨이 도착한 곳은 숲이다. 숲은 자연이다. 이곳에는 주인이 이미 있다. 바로 늑대라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 주인은 손님이 반갑지 않다. 허락도 없이 자신의 땅에 들어온 아벨이 못내 못마땅하다. 아벨이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고 밭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는 행동이 얄밉기만 하다.
숲의 주인, 늑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아벨은 가지고 있다. 칼로 나무를 깎고 씨앗을 뿌리고 냄비에 재료를 넣어 요리를 한다. 무엇보다 아벨은 날마다 무슨 책을 보고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지혜가 담긴 책이다. 늑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벨을 괴롭혀보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게다가 아벨이 냄비에 요리한 음식을 훔쳐와 먹다보니 입맛에 길들여져 날 것으로는 어떤 것도 맛이 없다.
아벨은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하고 농사를 짓고 문자를 해독한다. 아벨은 숲의 주인이 늑대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면서 그 주인과 친해지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 땅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늑대는 처음부터 적의를 품고 아벨을 내쫓고 싶어했다. 승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인간인 아벨이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늑대를 품어준다. 아벨은 지혜의 책을 날마다 보며 그 해답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해치려고만 하는 늑대를 오히려 감싸주고 돌봐준다. 늑대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새 풀어졌고 아벨은 자신 안에서 적이 아닌 친구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 그림책은 평온한 얼굴을 한 아벨의 가족사진에서 출발한다. 첫그림이 마치 퇴색한 옛날가족사진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 장부터는 전면이 그림으로 넓게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채도를 낮추어 차분하고 편안해보이는 인상을 주면서 색연필로 그린듯 섬세하기도 하다. 아벨은 영특하고 순해보이는 얼굴이다. 늑대의 곤두선 털은 그와는 반대의 느낌을 준다. 앞부분의 속지와 뒷부분의 속지에는 숲의 빽빽한 나무들이 보인다. 앞부분의 늑대와 아벨, 그리고 뒷부분의 늑대와 아벨이 서로 어떻게 하고 있나를 보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시작과 끝을 잘 연결한 세심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늑대와 아벨>은 몇 가지 생각거리를 풀어볼 수 있는 책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인간이 먼저 나서서 해야할 일 같은 게 아닐까싶다.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생각거리는 '관계를 좋게 만드는 방법'이다. 바람직한 관계는 '우정'이 바탕이 되어야된다고 생각한다. 친구 같은 관계는 수평적이며 열린 관계이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도와주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가 않지만 아벨은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던 늑대에게 그런 행동으로 대응한다. 이는 상대의 마음을 송두리째 풀어주고 내 쪽으로 오게 하는 비법 아닌 비법이라 생각된다. 아벨의 지혜의 책!! 그 내용을 친구랑 토닥거리기 일쑤인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하는, 할아버지 손바닥처럼 품 넓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