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는 '스트레스 안 받고 내 주위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적혀있다. 이런 책에 거의 처음으로 손이 간 걸 보면 관계를 잘 꾸려가지 못하는 미숙한 나의 방식, 그 자체가 내겐 늘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나보다. 간혹 관계를 잘 꾸려가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서도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렇다면 누구든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하기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렵다는 말이다.

얼마 전 문학회의 홍보일을 맡은 관계로 전체공지를 한 일이 있는데, 내용인즉 정식으로 문학회의 회원으로 등록 되어 있진 않지만 간혹 참여하는 어느 선생님의 부친상에 대한 것이었다. 윗분의 명령?으로 나는 공지를 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윗분이 즉시 전화로 내게 하시는 말이(좀 화난 음성으로) 정식 회원도 아닌 사람의 일까지 이런 식으로 공지를 하면 회원들에게 부담만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납득이 되어 나는 즉시, 그분은 **문학회 회원은 아님을 밝히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만 문상을 가시라는 공지를 다시 하였다.

바쁜 와중에 왜 이리 복잡하게 일을 하게 되나 싶다가, 역시 관계 안에서는 말 한 마디, 글 한 줄도 오해의 소지가 되고 불화의 꼬투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으로, 말 한 마디, 글 한 줄이 좋은 관계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니 어찌 보면 희망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이라는 부제도 달려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벗이라 생각한다면 관계가 참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소노는 1931년 도쿄생이다. 삶이 가져다준 지혜와 여유로  벗을 공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아 놓았다. 소노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소소하거나 다소 커다란 일들에서 벗을 공경하게 되는 마음의 변화들을 솔직하게 옮겨놓았다고도 보인다.

책의 표지에 있는 사진에는 눈이 시원해지는 녹색 잎사귀들이 옹기종기 붙어 매달려있다. 이래저래 얽혀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짐을 느낀다. 역시 나는 보는 것, 듣는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나약한 사람인가보다.

목차를 보면 모두 11장으로 나뉘는데 아무 곳에서부터 보아도 무방하겠다. '우리들 모두 있는 그대로 족하다'로 시작하여 끝에는 '사랑과 동떨어진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장으로 맺는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관계를 조금씩 넓혀가며 시댁어른, 남편, 부모님, 벗, 직장 사회생활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와의 편안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거창하지 않으며 짧고 인상적인 글로 보여준다. 모두 소노의 소설이나 칼럼 등 자신의 글에서 발췌한 부분으로 보인다. 

소노의 경우법은 스스로가 완전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나태하고 적당히 거절하고 적당히 무지하고 적당히 일하고, 남에게도 친절한 간섭은 삼가는 것이다. 소노의 사고방식은 틀에 매어있지 않고 전통적이거나 규범적이지 않아 시원시원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은 '베품과 받음의 의미'이다. 예를 들면, 인과응보가 아니라서 인생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준 만큼 받으려든다면 얼마나 불편한 관계가 될까. 그리고 '우정의 기본은 존경'이라고 이 장에서 말하고 있다. 

'증오로 구제받는 경우도 있다'라는 장에서는 인간은 평화만이 아니라 싸움도 좋아한다고 가식없이 말한다. 나와 상대의 부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라는 이야기이다. 살아가면서 '성실과 불성실의 배분'이 삶을 덜 피곤하게 한다는 것도 알았다. 종교인다운 구절이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은 흥미로운 분배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모든 재능을 때와 경우에 맞게 사용하고 계시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고 어느 상황에서든 성실하려고만 하면 쉽사리 피곤해질 것이고 상대에게도 짜증의 불똥이 튈 것이니 말이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죽음과 장례에 대한 단상들도 자주 나온다. 장례식은 가족행사라고 하며 가정사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얼마전 내가 문상에 대한 공지를 하였던 일과 연관되어 기억된다(회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윗분의 말씀..). 소노의 말처럼 세상사의 잣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사는 것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죽은 다음에는 한 가닥 미련 없이 깨끗이 잊혀지는 게 좋다'며 '존재 남기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신선하다. 오랜 세월 이 세상에서 '소란을 피워왔으므로' 죽어서까지 존재를 과시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말이다. 세상 그 어느누구보다 절대자만이 알아주는 '나'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글을 모두 읽어보면 저자는 명랑하고 따스한 사람이라 느껴진다. '진정한 예의는 진지함'이라고 생각하며 나와 상대 모두에게 너그러워질 것을 충고한다. 시무룩한 표정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은 친정어머니에게 듣는 말처럼 자상하게 들린다.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아내로서 문학인으로서 또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그저 우왕좌왕 살아오며 터득한 삶의 지혜들이 연륜과 함께 전해온다. 거드름 피우지 않고 솔직한 말투, 튀는 발상, 넉넉함이 배어있는 사고방식 그리고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다운 순진함이 여전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이래저래 얽혀들 때 목차에서 와닿는 소제목을 찾아 펼쳐보는 것으로도 스스로 위안이나 해답을 얻을 수 있겠다.

" 최악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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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1-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 설날 선물로 받은 것 같아요. 물만두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네요..

아영엄마 2006-01-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당선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1-3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몸무게 다들 느셨을테죠. 아영엄마님도 ㅋㅋ
축하,, 감사드려요.

조선인 2006-01-3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 선물, 축하드려요. *^^*

글샘 2006-02-03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최악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 말은 어디 적어 두고 싶은 말이네요.

프레이야 2006-02-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글샘님 감사드려요^^ 오늘 날씨가 좀 맵네요.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