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지음 / 마음의숲

2012년 8월 29일 녹음 시작, 현재 83쪽까지.

 

 

 

 

매미가 울지 않는 여름은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그러나 매미가 우는 여름은 또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

 

아파트 단지에서, 거리의 나무에서, 뜰 안의 감나무에서, 어두운 숲에서 매미들이 울고 있다.

이제 절정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늘 잘못 본 것처럼 하늘에서 긴 시선을 그으며 무엇인가가 툭, 하고 바닥에 꽂힌다.

그리곤 조용하다. 매미들의 합창도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개미들도 사라졌다. 그 뜨겁던 햇빛도 한풀 꺾이지 않았는가?

녹색은 어두워가고, 뜨거움 대신 후텁지근함이 대기를 감싼다. 이제 여름은 가장 어두운 침묵을 준비한다.

 

- <당신을 위해 지은 집> p56 '장엄하는 장대비' 중 

 

 

 

 

돌아보면 여름은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다. 다정하기도 비정하기도 했다.

몇 번의 이사를 모두 여름에 했고, 내 병과 엄마의 병 모두가 불볕 더위 여름 한가운데를 통과했으며,

내 고독과 욕망이 들끓던 때도 여름날일 때가 많았다. 더 다가가고 싶었고 더 멀어지고도 싶었던,

나무가 녹색 盛裝을 할 때면 나는 매양 헐벗고 싶었다. 버거웠을지도.

기약도 없이 생의 무더위가 선고되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예측불허, 단언할 일은 아닐 듯.

매미가 울든 울지 않든 여름은 고독했고, 매미 울음 같은 내 바닥에 장대비 꽂히듯 장렬하기도 했다.

환청처럼 매미 울음이 들린다. 부끄럽지 않다.

안녕! 나의 여름!

 

 

 

덧: 불가에서는 '장엄'이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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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바나나 2012-09-0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문장 중 고독이란 단어가 유독 보이는 건
제가 '어떤 책'에 끌려있는 상태라 그렇겠지요?ㅋㅋ
저, '당신', '집'이런 단어에도 시선이 멎어요~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인데 만나니 반갑네요.
안녕!, 이란 단어 보낼 때도 만날 때도 쓰는 인사지요^^
아름다운 가을 만끽 하시길~


프레이야 2012-09-06 21:38   좋아요 0 | URL
당신, 집.. 저도 좋아하는 말이에요.
장바구니 담아두셨군요. 반쯤 읽었는데 꽤 읽을 만한 에세이에요.
작가의 생각이 꼿꼿하고 빛나요.
안녕! 만날 때도 쓰는 인사, 맞네요.
바나나님의 가을도 충만하시길^^

비로그인 2012-09-0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가을이 오는게 너무 좋아요. ㅎㅎ
긴팔 옷을 첨을 꺼내입었을 때의 느낌.
울퉁불퉁한 홍로 사과.
기분 좋은 서늘한 공기.
이제는 별로 따갑지 않은 다정한 햇살이요~

프레이야 2012-09-06 21:39   좋아요 0 | URL
만치님, 긴팔옷 처음 꺼내입을 때 느낌, 포근한 느낌이요.
전 요새 연두색 사과 먹고 있어요.ㅎㅎ
오늘 가을하늘은 어찌나 맑은지 투명했어요.
만치님의 가을이길^^

네꼬 2012-09-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우리의 뜨거운 여름!

프레이야 2012-09-06 21:41   좋아요 0 | URL
안녕! 네꼬님^^
올여름, 유난히 뜨거웠어요. 너무 뜨거워 고역이었는데 다 지나가는 것,
부질없는 것이네요.

블루데이지 2012-09-0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왔다 읽고 누르고만 가요~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2-09-06 21:41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ㅎㅎ
아이 울어서 후딱 가신 건 아닌지요^^

페크pek0501 2012-09-0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간다고 생각하니 섭섭해져요. 그렇게 힘들게 했던 무더운 여름인데도요.
떠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선 다 섭섭해지는 걸까요?

프레이야 2012-09-06 21:4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정말 몇 해째 무더위가 제 생애 몇 번의 여름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서늘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투명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맑은 가을하늘처럼요.^^

반딧불,, 2012-09-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구가 가슴에 사무치네요. 사족도 없고 좋다..

프레이야 2012-09-07 09:36   좋아요 0 | URL
반딧불님, 가을이에요.^^

자목련 2012-09-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곁에 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꽤 읽을 만한 에세이라 하시니, 괜히 믿음이 가요.
언제 만날지는 모르지만..
가을이네요. 가을이라는 말에 어떤 떨림은 없지만 그래도 가을이에요..

프레이야 2012-09-08 09:03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함성호 시인, 저도 처음인데 문장에서 대체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인상이에요.
좋은 내용이 많아요. 감상적이기만 한 에세이와는 다른, 그러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더군요.
가을, 행복하게 누리시길 바래요^^

책읽는나무 2012-09-0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엄....그런뜻도 있었군요.
천둥소릴 함께 듣고, 지금 이시간도 함께 할 수 있는건가요?^^
주말 이른 아침엔 다들 조용하신데,
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외롭지 않아요.
책 표지도 좋고,읽고 싶기도 하고...고민하게 만들어 주시는군요.ㅋ

비가 개이니 왠지 좋은일이 생길 것같네요.
우리 한 번 기대해볼까요?^^
행복한 주말 되시길~~


프레이야 2012-09-08 16:49   좋아요 0 | URL
확실히 조용하네요.ㅎㅎ
비는 개었고 그저 조용한 토요일이에요.
이 에세이는 내용이 좋아요. 글쓴이의 생각이 요모조모 현명하고 치우치지않고 올바른 것 같아요. 쳑표지도 참 마음에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