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은 ebs fm 책읽어주는라디오는 베스트셀러 편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 듣기를 완전히 우연에 맡기고 있는데, 그때그때 나에게 오는 어떤 우연이 설렌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The Big Picture], 나로선 처음 들어본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다. 흥미진진하다.

 

 

 세벽 네시, 조시가 또 울었다.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주인공은 벤자민 브래드포드.

잘나가는 변호사에 아름다운 아내, 아이 둘(생후 4개월 된 조시 포함)과 함께,

겉보기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꾸려 살고 있는 벤자민 브래드포드는 사진가가 되는 꿈을 갖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은 우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그가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아내와 옆집 사는 사진가 게리와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게리에게 노골적인 질투심을

드러내는 언사를 아내앞에서든 어디서든 하는데...

시청자들의 문자메시지를 즉석에서 받아 소개하면서 스포일러가 될까봐 앞으로의 스토리는

자제하고 라디오는 내일 또 보자는 말로 맺는다. 내 마음대로 생각에는,

앞으로 벤의 삶은 놀라운 우연과 반전으로 전복되고 그것이 전화위복이 될 조짐이 보인다.

 

 

 

사회자(성우?)가 프로그램을 맺으며 이런 말을 한다.

사랑이 끝나는 건,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 이미 사랑은 끝나는 것이라고.

 

 

얼마 전 '문장'에서 받았던, 무지하게 유쾌한, 손현숙 시인의 시, "공갈빵"이 떠오른다.

 

 

  

 공갈빵 / 손현숙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하던 봄날, 우리 엄마 갑자기 내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저쯤 우리 아버지,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지 “현숙이 아버......” 엄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는 “뭐라카노, 아주마시! 나, 아요?”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달아나버린 거지
 
  먹먹하게 서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서러웠거든

우리가 대문 밀치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어디 갔다 인자 오노, 밥 도고!” 시침 딱 갈기고 큰소리쳤고

엄마는 웬일인지 신바람이 나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렸던 거야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밥때를 꼭꼭 챙기면서 내내 잘 속았다, 잘 속였다, 고맙습니다,

그 아버지랑 오누이처럼. 올해도 목련이 공갈빵처럼 저기 저렇게 한껏 부풀어 있는 거야
 
 
  시_ 손현숙 - 1959년 서울 출생.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등이 있음.

현재 문광부 파견 도서관작가, 〈동물자유연대〉를 통해 자료를 받아 숙성시킨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에세이’

원고를 넘기고 출간을 기다리는 중.

 

 

 

이런 신간소개도 나오는 걸 듣고 차에서 내렸다. 한 권 더 있는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ㅠ

 

 

  <외로워지는 사람들>(원제는 Alone Together) 은

지난 주 한겨레 토요판에서도 보고 찜해둔 책.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에 카톡, SNS 등 수많은 기계적인 매체를 이용해 소통을 시도하지만 소통은 더 불가해지고 더 고독해지고 진정 가슴을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할 벗은 줄어든다. 이젠 더 말할 필요도 없는 현상이 되었는데, 이 책은 그런 걸 부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관계에서 무엇을 바라느냐"에 초점 둔다.  한겨레에서 본 기사(과학책 번역가 김명남) 중 일부를 옮기자면, 우리가 가상 연결망에 마음을 빼앗기는 까닭은 위험도가 낮으면서 늘 가까이 있는 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거절과 마찰을 두려워해서든, 감정을 남에게 승인 받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타인지향적 자아감이나 게으름 탓이든, 우리가 계속 통제 가능한 약한 유대만을 원하는 이상, 로봇이 인간의 말상대가 되는 미래는 시간문제다.

 

 

 

어제 제주에 사는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친구가 몹시 외롭고 힘든 마음 상태에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저번 수능 이후 그렇다는 걸 알았는데 쉽게 달려가 볼 수도 없는 거리라...

내가 아는 그 친구의 성격은 웬만한 난관에도 낙담하지 않고 현실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기반으로 꿋꿋한 쪽이었는데

그게 일부였다는 걸 알았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아이들 진학문제, 어른들 건강과 죽음의 예고 등

사실 그런 것들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말을 빌자면, '유감으로 생각할 일이 전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것 또한 다 지나가는 고비 중의 하나다.

다른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더니 그 친구도 동감에 동감, 사실 예민해 보이는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말에도 동감한다. 감수성만 예민하다고.^^ 아이들 애 안 먹이는 것도 감사한 줄 알라고.

지금 사는 게 너무 허무하다고 세상의 슬픔은 모두 자기한테 와 있는 것 같다고 가라앉아 있는 제주 친구가 끝에는

보고 싶다는 말을 보냈다. 그런 말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마음이 짠해져서 부산 오면 꼭 연락하라고 답했다.

정말이지 나는 늘 약한 유대만을 원하며 관계로부터 편안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덜 상처 받으려고 혹은 게을러서, 아니면 또다른 잡다한 그 무엇의 까닭으로.

아무튼 비겁하고 이기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나저나 이탈리아 도시기행은 언제쯤 해볼까. 저 책 표지부터 근사하다!!!

 

 

빅 픽쳐, 낭독하는 중간에 막간곡으로 나온 노래^^

Mrs. Cold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2-06-2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 픽쳐>는 되게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재미지다고 소문이 아주 많이 퍼졌었어요. 저는 물론 읽어보진 않았지만 엄마가 소장 중이더군요. 언젠가는 그 책을 뺏어올테지요. ㅋㅋ

프레이야 2012-06-26 21:04   좋아요 0 | URL
우와~~ 소이진님 어머니께서요? 뺏어오세용~~
저도 검색 좀 해보니 엄청 재미나다고 유명한 책이더라구요.
흥미진진ㅋㅋ 알라딘에 완전 반값에 파네요. 히히~ 살까말까 고민중^^

아무개 2012-06-27 08:32   좋아요 0 | URL
전 빅 픽쳐를 시립도서관에 비치신청 했는데 왜인지 '거절'당했어요 췌....
근데 문광부 파견 도서관작가는 뭐에요? @..@

외로워지는 사람들 확~ 떙기네요

프레이야 2012-06-28 01:44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저도 '외로워지는사람들'이 땡겨요.
문광부 파견 도서관작가는 저도 잘 몰라요. 근사해 보여요.^^
근데 왜 '빅 픽쳐'를 거절했을까요, 시립도서관에서요..ㅠㅠ

비로그인 2012-06-2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갈빵이 시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인가보군요. ㅎㅎ
전 이런 시 알아요.

--------------------------------------------------

공갈빵이 먹고 싶다 /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며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프레이야 2012-06-28 01:46   좋아요 0 | URL
호호~~ 만치님, 이 시 좋으네요. 고마워요.
저 위의 시는 공갈빵도 공갈빵이지만 시침 뚝 떼고 벙글벙글 핀 목련꽃이 시심을
불러온 것 같아요. 우리야 뭐 목련꽃이든 공갈빵이든 그게 그걸까요? ^^

하늘바람 2012-06-27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빅 피처 이야긴 많이 들어보았어요.
아침 좋은 시 읽고 공갈빵 먹고파 하며 갑니다.

프레이야 2012-06-28 01:49   좋아요 0 | URL
공갈빵 먹고파요 저도.ㅎㅎ
몸 안에 바람만 장전하고..

진주 2012-06-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갈빵, 세상 좀 살아본 사람의 시로군요~^^

저는 어제 커피번을 사이좋게 뜯어 먹으며 '살아야 함'을 이야기 했답니다.
비 묻은 바람이 아카시아 나무를 뒤흔들고 있었고요,
그 바람결에 커피 냄새,빵 굽는 냄새가 섞여 날아와
제 이야기에 힘을 실어 주었어요.

그 분이 힘을 내서 살아갈 희망을 얻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커피도 마시고 번도 먹고 공갈빵도 먹으면 얼마나 좋아요!
ㅎㄱ님도 부산 바닷바람 쐬면서 행복하세욥!

프레이야 2012-06-28 01:57   좋아요 0 | URL
진주님, 살아야함.. 어머니랑 나눈 이야기인거죠?
커피번은 저도 좋아하는 빵이에요. ^^
저도 그분이 살아갈 희망을 잃지않고 힘 내시길 바래요.

진주 2012-12-10 19:55   좋아요 0 | URL
앙...ㅎㄱ님 답글을 왜 이제사 봤을까요?
번을 먹으며 이야기 나눴던 그 사람은, 자살을 기도하던 알콜 중독자이시죠...
6개월 세월이 흘렀네요...지금 재활을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거예요..^^

라로 2012-06-2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빅픽쳐 읽었어요. 좋았지만 그런 소설의 단점(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허무감)은
결말 부분이 늘 미약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잘 안 읽게 되나봐요.
작가도 힘이 드는거지요,,암튼 이건 다 제 느낌.
하지만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 관계가 끝나다는 말에는 심히 공감.
오늘 부산에 바람이 부나요? 비가 오나요??

프레이야 2012-06-28 02:01   좋아요 0 | URL
저도 저런 류의 베스트셀러를 잘 안 읽는 편이라 뭐라 말은 못하겠어요.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 실질적으로 사랑은 끝난다는 말은, 의심 그 이전에 이미 사랑이 끝났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의심이 든다는 건 자신의 내부가 스스로 의심스러운 거지요.
오늘 이곳은 비가 오는 듯 싶더니 오후엔 오지 않고 바람만 좀 불었어요.
해운대 바다는 보지 못하고 무슨 강의만 실컷 듣고 맛있는 밥 먹고 그랬답니다^^

hnine 2012-06-2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현숙 시인의 시는, 시가 아니라 '소설'이네요...
공갈빵, 만들어본 적 있는데 부풀리게 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납작한 채 부풀지 않거나, 터져 버리거나.
즉, '공갈'도 어렵다고 결론을...^^

프레이야 2012-06-28 02:03   좋아요 0 | URL
빵 잘 구우시는 나인님도 공갈빵은 어렵군요.
잘 부풀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군요. 공갈도 제대로 해야 멋지지 어설프게 하면
서로 상처만 남을까요. ㅠㅠ 이왕이면 신명나는 공갈 한 판 제대로 갈기로
이 세상 떠야할텐데요.^^

순오기 2012-06-2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손현숙 공갈빵 속의 어머니는 보통 엄마들의 모습 아닐런지...
어쩌면 저렇게 사는 게 행복일지도요.^^
음악~~ 좋아요!^^

프레이야 2012-06-28 21:04   좋아요 0 | URL
언니, 어제 잠을 거의 못 잤더니 낮에 졸음운전으로 사고날 뻔 할 정도였어요.
정신없이 자다 일어났네요. 공갈빵의 속처럼 속 다 게워내고 허허실실 살 수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