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방 베란다 정리를 대대적으로 했다. 어릴 때 갖고놀던 장난감이랑 인형들은 죄다 버렸다. 그외에도 잡다한 것들을 버리고 정리했다. 그러다 스케치북 형태의 그림일기장이 하나 눈에 띄었다. 펴보니 작은딸이 여섯살 적에 썼던 것. 주로 놀이를 한 내용이 많았다. 선생님 놀이, 엄마놀이 비누방울 놀이, 소꿉놀이, 그네타기, 자전거 타기, 장사놀이, 먹는돌뽑기 놀이, 풍선놀이... 하나씩 읽어가다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그대로 옮겨놓고 싶다. (맞춤법도 하나 안 틀렸네^^)

   
 

2003년 4월 9일 수요일  

제목 : 풍선놀이 

엄마도 있었다. 나는 검정색 풍선을 불어서 엄마에게 묶어주세요 라고 말하니까 묶어 주셨다. 나는 풍선을 잘 분다. 엄마 언니는 풍선을 못 분다. 왜냐면은 언니랑 엄마는 힘이 약해서 그렇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힘이 세다. 나는 호랑이띠라서 무섭다. 풍선놀이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엄마아빠언니는 토끼띠 말띠 닭띠라서 내가 무섭다. 언니는 닭띠다. 그런데 풍선은 검정색이였다. 풍선은 내가 던졌는데 천장에 닿았다. 풍선을 만져보니까 흙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착한 일 : 엄마말을 잘 들었어요.) 

 
   
   
 

2003년 4월 25일 금요일 

제목 : 강아지똥과 갈매기똥 

처음에는 강아지똥이 갈매기똥을 무서워했어요. 갈매기똥은 "안녕 강아지똥아 우린 깨끗한 똥이야." 

이제 더러운 걸 먹어서 더러운 똥이 되었어요.

 
   

학교 갔다온 아이한테 이 그림일기장을 보여줬더니 자기도 보고는 아주 신기해 하며 웃고 즐거워했다. 풍선에서 왜 흙기분이 난다고 했을까.. 이러며 갸우뚱.  

이랬던 아이,  12살이 된 지금, 최근 일기장을 보고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새 사춘기라 감정의 동요도 잦고 나와도 신경전을 벌일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한발씩 양보하고 "서로" 다독여주며 잘 지내는 것 같다. 엄마아빠가 세상에서 1순위로 좋지만 그런데, 아빠에겐 쬐금 미안하지만 실은 엄마가 더 제일 좋아,라고 적당히 뻥도 치는 통통여우.^^  아니 진심이라고 믿어.

 

   
 

2009년 6월 6일 토요일 

제목 : 코렐라인, 비밀의 문 

엄마와 함께 조조영화로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코렐라인은 다른 곳에서 'Pink Palace Apartment'로 이사를 왔는데 그곳에는 많은 비밀이 있었다. 주변에 이상한 사람도 몇 있었고 새 집에는 비밀의 문이 있었다. 그 문은 인형들의 세계로 가게 되는데 그 속에는 나쁜 마녀가 완벽한 코렐라인의 엄마로 변장하고 영원히 행복을 누리자고 유인한다. 그러나 마녀가 코렐라인에게 쓴 수법에 당한 유령들을 발견한 코렐라인은 마녀에게 맞서 싸운다. 결국 코렐라인은 마녀를 물리쳤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행복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안정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제목 : 생각하는 것에 따른 차이 
 
오늘 난 특별한 것을 느꼈다. 저녁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영어듣기 숙제를 했다. 게다가 영어 듣기 숙제를 할 때면 들리는 걸 받아적기를 해야 돼서 더 힘들다. 오늘은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숙제를 다 끝낼 각오로 숙제를 했다. 듣기 파일은 mp3 파일이라 mp3를 붙들고 공책에 글씨를 빼곡히 썼다. 그런데 오늘따라 영어가 덜 어렵게 들렸다. '아, 드디어 조금 실력이 향상된건가?' 난 이때까지 항상 나에게 힘든 건 거의 포기하는 상태로 그 일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께서 포기하지 말고 해 보라고 하셨다. 그대로 따르니까 그래도 좀 좋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가장 크게, 결정적으로 깨달은 건 포기와 꾸준히 도전의 두 갈림길 중, 꾸준히 도전의 길을 따라가면 결국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이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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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6-2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일기는 정말 다 큰 것 같네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스스로 느끼는 저런 '특별한 기분'이라는 것이 학습 효과에 있어서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9-06-21 07:57   좋아요 0 | URL
네, 생각이 틀에 박혀가는 건 아닌가하면서도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잘 자라고 있단
생각에 나름 뿌듯해요. 특별한 기분은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느껴서 갖는 거라
학습에도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시켜서 억지로 하는 건 그다지 효과가 좋지 못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6살때 일기는 너무 사랑스러워요 ^^

프레이야 2009-06-21 07:58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그때의 일기가 더 좋아요. ^^
저것말고도 어찌 웃긴지, 보면서 저 혼자 완전 깔깔 넘어갔어요.

울보 2009-06-2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섯살인데 일기를 정말 잘쓰네요,,
정말 귀여운 소녀네요,,

프레이야 2009-06-21 07:59   좋아요 0 | URL
울보님 류도 잘 자라고 있지요. 많이 의젓해졌구요.
저 때는 애들이 다 참 순진하고 귀엽지요.

카스피 2009-06-2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쓰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주네요.일기는 정말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는 타임 머신같군요^^

프레이야 2009-06-21 08: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기록이 소중한 것 같아요. 저도 일기를 죽 썼었는데
이제 다 어디로 갔는지 없고 대학생 때 썼던 것 하나만 어디 있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고민했었구나,싶어요.

turnleft 2009-06-2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리야님 입에 걸린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네요 ^^

프레이야 2009-06-21 08:00   좋아요 0 | URL
다 보여요? ㅎㅎ

바람돌이 2009-06-21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살 때 저정도 일기라니.... 그러니 지금도 이렇게 똑똑하게 딱부러지게 일기를 쓰는군요. ^^
이렇게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고도 뿌듯하시죠? 제가 그렇거든요.ㅎㅎ

프레이야 2009-06-21 08:01   좋아요 0 | URL
뭐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 신기 + 뿌듯 ㅎㅎ

순오기 2009-06-2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여섯 살 때 쓴 일기를 버린 건 아니겠죠?^^
바로 이런 것들이 보물이 되는 것이죠~~ 사랑스런 통통여우!

프레이야 2009-06-21 14:36   좋아요 0 | URL
네, 아이가 제방에 챙겨두더군요.ㅎㅎ
지가 봐도 신기한가 봐요.

세실 2009-06-2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일기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아요. 결론이 이미 삶을 통달했습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9-06-21 23:05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좀 놀랐어요. 많이 자랐구나싶어서요.
무슨 말이든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새삼 했구요.
4월에 토익을 처음 응시했는데 625점 받았어요.(우힛~ 팔불출엄마모드ㅋㅋ)
점점 자신감을 얻어가는 것 같고 스스로 뭘 깨달았다는 게 좋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