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 분들 많겠지만 나는 안구건조증이 심한 편이다. 노트북이나 폰을 안 보면 확실히 덜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실은 노트북이나 폰 안 본다고 건조증이 덜하다는 말이 딱히 맞는 것도 아니다. 책 보는 때도 그렇고 햇살도 건조증에 안 좋은 것 같아 밖에 나갈 땐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데, 어제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말을 오래 하면 눈이 더 건조하고 뻑뻑해지는 걸 느꼈는데 나만 예민하게 느끼는 건가 싶어 아무에게도 말 못했다. 어제 도서관의 송이샘이 그런다. 쉬는 시간에 내가 눈을 껌뻑대고 있으니까 눈 건조하냐면서 친구도 마스크 쓴 이후로 눈이 더 건조해져서 너무 힘들다고 한다고. 헉. 그랬구나 맞았어 내 느낌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렇다. 입과 볼 부분도 더 건조하다고 나는 느끼는데 나의 친구는 더 촉촉해지지 왜 건조하냐고... ㅎㅎ 다들 사정이 있는 건데. 친구는 녹내장 진단을 받고 약물로 관리하고 있다.
엄살쟁이 투덜이 나는 올해 3월에 백내장 수술과 다초점렌즈 삽입 후 안구건조증이 더더 심해진 경우다. 백내장 수술은 4년을 고민하다 더는 미룰 수 없어 하게 되었다. 겁이 났지만 수술은 간단했고 안대를 푼 당일은 완전히 새 세상이어서 놀랐다. 세상이 이렇게나 선명한 색으로 들어오다니... 그동안 뿌연 세상에서 살았다니... 그런데 차츰 이후가 쉽지 않네.
정기검진을 가면 의사는 눈이 좀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여전히 시리고 서걱거리고 뻑뻑하고 자주 눈물이 한가득 어려서 앞이 흐리다고 말했다. 검사를 해보더니 눈물층이 불안정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안구건조증은 눈물이 부족한 것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 눈물샘이 분비하는 눈물이 쉽게 마르거나 흐르지 않아 안구 표면이 쉽게 손상되는 증상이다. 배수구로 물이 흘러내려가듯 통해야 하는데 눈물이 잘 흘러가지 못해 고이거나 너무 빨리 말라버린다는 말이다. 물이 말라도 고여도 위험하군. 다행히 결막이 손상된 정도는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또 눈물약이나 몇 박스 받아 돌아왔다. 습기를 꾸준히 공급하고 유지하도록 생활 속 지혜를 발휘해야 할 듯. 세수할 때 눈을 뜨고 눈을 씻어주는 것도 좋다고 들었다. 80세에 시력도 좋고 눈건강도 좋은 어느 분이 평생 관리해온 비법 중 하나란다. 레이저요법 6회 받아도 소용없고 그냥 메리골드차, 아로니아액, 결명자진액 이런 거 마시며 버티는 중. 차츰 나아지겠지^^ 나물 삶고 난 냄비에 고개 박고 스팀 흡수하는 것도 일시적이지만 좋다.
하반기에 성인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테마가 있는 시 감상' 수업을 하고 있는데 어제는 어느새 7차시였다.
불편한 몸으로도 한 번도 안 빠지고 오시는 분들 만나러 가는 길이 즐겁다. 처음 시를 대하는 분도 있고 평소에 시에 관심이 많은 분도 있는데 새로운 발견이라며 좋아하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준비한 자료를 드리긴 하지만 내 목소리를 통해 듣는 시로 감상을 하시게 되니 전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어제는 '동물, 함께하는 생명'을 테마로 여러 시를 소개하고 들려드렸는데 의외로 이런 재미난 시를 발견했다.
낙타라도 될까요
모현숙
의사 선생님, 눈이 너무 뻑뻑해요
낙타처럼 긴 속눈썹이 없는 환자분,
안구건조증이 심각하네요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그리움이
눈 속에서 모래처럼 굴러다니네요
눈이 온통 사막이네요
의사 선생님, 눈이 뻑뻑해서 잘 보이지 않아요
그리움이 굳어서 노안이 되신 환자분,
샅샅이 모두 다 보려고 하지 말아요
뻑뻑한 그리움엔 인공눈물을 처방할게요
인공눈물 넣고 3일 후에 다시 나오세요
의사 선생님, 사막에서 엄청 울다가 다시 올게요
낙타를 타고 오든지
그리움을 안고 오든지
새파랗게 젊어져 오든지
- 출처 : 詩공간 동인지 <가을전어와 춤추다> 중에서 (북랜드, 2020년)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가까이서 보았던 낙타는 정말이지 눈이 크고 순하고 속눈썹이 길었다.
내 속눈썹은 오늘도 내 눈을 찌르는데, 다자이 오사무를 엄살계의 대부라고 부르며 엄살쟁이는 엄살쟁이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라고 귀여운 멘트를 날리는 박 시인은 속눈썹 위에 '당신'이라는 현란하게 흘러가는 생을 올려놓고 긴 속눈썹처럼 긴 여운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유희한다. 파주에서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1980년 생 시인.
2007년 1월 나온 박연준 시인의 첫 시집 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내 나쁜 몸이 당신을 기억해
온몸이 그릇이 되어 찰랑대는 시간을 담고
껍데기로 앉아서 당신을 그리다가
조그만 부리로 껍질을 깨다가
나는 정오가 되면 노랗게 부화하지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눈을 감아
감은 눈 속으로 현란하게 흘러가는 당신을
낚아! 채서!
내 길다란 속눈썹 위에 당신을 올려놓고 싶어
내가 깜박이면, 깜박이는 순간 당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며 작아지겠지?
티끌만큼 당신이 작게 보이는 순간에도
내 이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싱싱하게 파닥일 거야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내 눈은 깜빡깜빡 당신을 부르고
내 길다란 속눈썹 위에는
당신의 발자국이 찍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