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이분이 그분이었다. 장준하, 리영희, 심산 김창숙 평전 등을 쓰셨던 김삼웅 선생. 몰랐는데 이 분도 책을 어마 어마 읽으신다. 그야말로 책벌레라 칭할 만하다. ‘동방오현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정여창이라 하는데 정여창의 호가 일두였다고 한다. 김삼웅 선생께서 읽으신 책들 중에 쭉정이는 버리고 알갱이만 남기셨다고.







 

대저 지금에 글을 하는 자에게 폐단이 세 가지가 있다. 화려하게 꾸미기를 힘쓰는 자는 옛사람이 이미 했던 말을 취하여 그 뜻을 따르면서도 글자를 바꾸어 화려한 수식으로 이를 꾸미니, 이는 썩은 거죽에 무늬를 얹고, 마른 백골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한가지다. 언뜻 보면 혹 화려해 보이지만 눈동자를 움직여 가까이서 살펴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고상하고 예스러우려고 애쓰는 자는 그 얼굴과 생김새, 의관과 옷과 신발이 왕왕 옛사람과 비슷하지만, 성정과 신체가 함께하지 않으니, 이를 두고는 흙으로 빚은 인형의 비슷함이라고 말할 뿐이다. 글이 순하고 쉬움에 힘쓰는 자는 흙이나 거름흙, 기왓장이나 벽돌의 붙이를 죄다 거두어들여 조악하고 탁하고 더럽고 지저분함을 가리지 않으니 천박하여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

 

오직 뜻을 안에서 운용하고, 문사가 겉으로 창달하며, 법은 옛날에서 취해오더라도 말은 자기가 만들어, 평탄하여 구차하거나 어렵지 않으며, 우뚝하여 절로 가까이 쉽게 여길 수 없는 것, 대저 이러한 뒤라야 진문장이라 할 것이다.

 

- 홍길주, <여인론문서> 요즘 문장가들의 세 가지 폐단.

 

글을 읽으면서 문의만 찾아서는 완전하지 못하다. 또 사물에서 얻는 것과 글에서 얻는 것에만 힘쓴다면, 글에서 해득은 명료하나 일생 동안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음으로 공부를 하면 문장에 명료하지는 못하나 마음과 글을 통하게 된다. <사서><오경>도 마음을 말하였다. 심체는 곧 도심이며 체명은 곧 도명이다. 이는 학문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 왕수인, <전습록>

 

나의 독서 방법을 말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정이요, 둘째는 박.

우선 에 대해 말하자면 종전에는 독서삼도라는 아주 좋은 독서법이 있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아 사도가 생겼으니 안도眼到, 구도口到, 심도心到, 수도手到가 그것이다.

 

안도란 개개의 글자를 인식하는 것으로, 책에서 글자들을 모아 이룬 것인데, 만일 확인하지 않는다면 독서라 할 수 없으며 구학할 필요가 없다.

 

구도란 선인들에 따르면 책 한편을 완전히 외우는 것을 말한다. 요즘 책을 줄줄 외어 암송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우리들이 시가나 정수한 문장을 외운다면 그것은 최소한 작문을 할 때 좋을 영향을 끼칠 것임에 틀림없다.

 

심도란 매 글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요, ‘수도란 점을 찍어 단을 나누어가며 마음에 느낀 바를 적는 것을 뜻한다.

 

둘째, ‘에 대해서 말하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다윈은 생물학의 진화를 연구할 때 30년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수많은 연구 자료를 쌓았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우연히 맬더스의 <인구론>을 읽고 크게 깨달아 생물 진화의 원칙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아무리 평범한 책이라도 그 속에 커다란 힌트가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독서인이란 을 겸비한 사람을 가리키며 금자탑처럼 크고, 높고,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우기 위해서는 피라미드와 같이 박대해야 하며 지고해야 한다.

 

- 후스, <독서> 중에서.

 

만 권의 책을 읽고, 내가 쓴 시를 남이 읽어 동하지 않는다면, 저승에 가서까지 이루고 말겠다.


-두보.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는데, 하나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고, 둘은 지식에 대한 탐구이며, 셋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

 

- 버트런드 러셀

 

책은 인류 투쟁의 역사에서 건져낸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수많은 훌륭한 전당과 위대한 조작품을 잿더미로 만든 파란의 역사에서, 오직 책만이 지금까지도 건재하게 남아 있다. 위대한 사상과 영혼만이 장구한 시간의 시련을 견디어냈으며, 수세기에 걸쳐 작가의 마음속에서 성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다시 새롭게 활자 속에서 되살아나, 당시의 사상과 빛나는 언어를 마치 성현들이 눈앞에 있는 듯이 전하고 있다.

책의 효용 가치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장이 제기되었다. 인간의 인식과 탐구, 그리고 인간의 모든 사상과 감정이 반영되고, 각 시대의 인물을 배양하며 또 미지의 세계로 향한 문을 열게 해준다.

 

- 새무얼 스마일스

 

졸고 나면 글을 읽고, (......) 글 읽기가 끝나면 또 졸았으나, 어떤 이가 깨워줄 리도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때에는 아침에서 저녁까지 졸기도 한다. 가다가 글을 써서 의사도 표현하거니와, 새로이 양금을 배우느라고 두어 곡조를 뜯기도 하고, 혹 친구가 술을 보내면 문득 혼연히 잔잔하여 취한 뒤에 스스로 환송하되, “낭의 위아주의는 양주와 같고, 겸애사상은 묵자와 같고, 집이 가난함은 안회와 같고, 하염없이 앉은 것은 노자와 같고, 세상을 달관함은 장자와 같고, 참선함은 석가와 같고, 불공함은 유하혜와 같고, 술 마심은 유령과 같고, 밥을 얻어 먹기로는 한신과 같고, 졸기 잘하기는 진단과 같고, 거문고 타기는 자상호와 같고, 저서는 양웅과 같고, 스스로 높이는 것은 제갈공명과 같으니, 나는 아마 거의 성인일 될지로다. 그러나, 나의 몸길이는 조교만 못하고, 청렴함은 오릉중자를 따를 수 없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는 껄껄 웃었다.

 

- 연암 박지원, <연암집> 자화상

 

대는 현인과 같다. 왜 그런고? 대의 근본은 단단함이라, 단단함으로 덕을 세우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근본을 보면 곧 잘 서서 빠지지 않음을 생각하며, 대의 성질은 곧음이라, 곧음으로 몸을 세우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면 곧 곧게 서서 기대지 않음을 생각하며, 대의 마음은 비어 있음이라, 비어 있음으로 도를 가지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마음을 보면 곧 이끌어 활용하고, 비워서 받음을 생각하며, 대의 절개는 굳셈이라, 굳셈으로 뜻을 세우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절개를 보면 곧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 쉽고 어려움에 한결같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대는 이러한 것이라, 그러므로 군자는 이것을 뜰의 정원수로 심는 것이다.

 

- 백거이, <양죽기>

 

 

선생의 문장을 천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나 저는 속으로 제가 그것을 아는 것이 깊어서 천하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맹자의 문장은 말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어서 깍고 새기고 베고 자른 말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날을 범할 수 없으며, 한유의 문장은 긴 강과 거대한 황하가 질펀히 넓게 흐르고 돌아서 고기와 자라와 교룡 등 온갖 괴이한 것이 두렵고 당혹스러운데, 이것을 누르고 막고 가리고 덮어서 스스로 드러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깊은 빛과 푸른색을 바라보고는 또한 스스로 두려워하고 피하여 감히 다가가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문장은 구불구불 굽어 있고 갖추어져 가고 몸이 백 번이나 꺽였는데도 조리가 통하고 거침없이 펼쳐 있어 끊어지는 일이 없으며, 기운이 다하고 말이 지극하여 급히 말하고 이론을 다 펴되 여유롭고 한가하며 편안하여, 힘들고 애쓴 듯한 태도가 없습니다. 선생의 문장은 맹자와 한유의 문장이 아니요, 구양자의 문장입니다.

 

- 소순 , <상구양내한서>

 

나는 천성이 높은 것을 좋아한다. 높은 것을 좋아하면 거만하여 낮추지를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낮추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와 부귀만을 믿는 저 사람들에게 낮추지 못한다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나 선함이 있다면 비록 노예나 하인일지라도 절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나는 천성이 깨끗함을 좋아한다. 깨끗함을 좋아하면 편협하고 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권세에 빌붙고 부귀에 아첨하는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뿐이다. 남에게 자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하고, 그 마음이 하기 때문에 취하는 범위가 넓고, 그 취하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남에게 자신을 잘 낮춘다는 사람이란 본래 천하에서 가장 높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 이탁오, <자찬>

 

 

한 놈이

나라에 대한 큰 죄가 몇입니까?”

물은데, 강감찬이

네가 앉아 들으라!”

하시더니, 하나씩 세신다.

 

첫째는, 나라의 적을 두는 지옥이 일곱이니,

 

하나는, 국민의 부탁을 받아 임금이나 대신이 되어,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멘 사람으로 금전이나 사리사욕만 알다가, 적국에 이용된 바가 되어 나라를 들어 남에게 내어주어, 조상의 역사를 더럽히고 동포의 생명을 끊나니, 백제의 임자며, 고구려의 남생이며, 발해의 마지막 임금인 인찬이며, 대한 말일의 민영휘, 이완용 같은 무리가 이것이다. 이 무리들은 살릴 수 없고 죽이기도 아까우므로, 혀를 빼며 눈을 까고, 쇠비로 그 살을 썰어 뼈만 남거든 또 살리고 또 이렇게 죽이되, 하루 열두 번을 이대로 죽이고 열두 번을 이대로 살리어, 죽으면 살리고 살면 죽이나니, 이는 곧 매국 역적을 처치하는 겹겹지옥이니라.

 

둘은, 백성의 피를 빨아 제 몸과 처자를 살찌우던 놈인, 이놈들은 독 속에 넣고 빈대와 뱀 같은 벌레로 피를 빨게 하나니 이는 줄줄지옥이니라.

 

셋은, 혓바닥이나 붓끝으로 적국의 정책을 조래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몰아 그물 속에 들도록 한 연설장이나 신문기자들은 혀를 빼고 개의 혀를 주어, 날마다 컹컹 짓게 하나니 이는 강아지지옥이니라.

 

넷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먹을 것 없으니 정탐질이나 하리라 하여, 뜻 있는 사람을 잡아 적국에게 주는 놈은 돗(돼지)껍질을 씌워 꿀꿀 소리가 나게 하나니, 이는 돼지지옥이니라.

 

다섯은, 겉으로 지사인 체하고 속으로 적 심부름하던 놈은 그 소행이 더욱 밉다. 이는 머리에 박쥐감투를 씌우고 똥집을 빼어 소리개를 주나니, 이는 야릇지옥이니라.

 

여섯은, 딸깍딸깍 나막신을 끌고 걸음걸음 적국 놈의 본을 뜨며, 옷 입고 밥 먹는 것도 모두 닮으려 하며, 자식이 쓰던 내 말을 버리고 적국 말을 가르치는 놈은 목을 잘라 불어 넣으며 다리를 끊어 물에 던지고, 가운데 토막은 주물러 나나리를 만드나니 이는 나나리지옥이니라.

 

일곱은, 적국 놈에게 시집가는 년들이며, 적국 년에게 장가가는 놈들은 불칼로 그 몸을 절반으로 끊나니 이는 반신지옥이니라.

 

둘째는, 망국노를 두는 지옥이니,

 

하나는, 나라야 망하였건 말았건 예수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 하며, 공자의 글이나 잘 읽고 산림 속에서 독선기신한다 하여 조상의 역사가 결단남도 모르며, 부모나 처자는 모두 남의 종이 된 건 생각지도 않고, 오직 선과 천당을 찾는 놈들은 똥물에 튀기어 쇠가죽을 씌우나니 이는 똥물지옥이니라.

 

둘은, 정견을 가진 당파는 있어야 하지만 오직 지방색으로 가르며, 종교로 가르며, 개인적 감정으로 가르며, 한 나라를 열 쪽으로 내어서 해외로 다니며 싸우고 이것을 일로 아는 놈들은 맷돌에 갈아 없에야 새싹이 날지니 이는 맷돌지옥이니라.

 

셋은, 말도 남의 말만 알고 풍속도 남의 풍속만 좇고 종교나 학문 역시 같은 것도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알아 러시아에 가면 러시아인이 되고, 미국에 가면 미국인이 되는 놈들은 밸을 빼어 개같이 만드나니 이는 엉금지옥이니라.

 

넷은, 동양의 아무 나라가 잘되어야 우리의 독립을 찾으리라 하며, 서양의 아무 나라가 우리 일을 보아주어야 무엇을 하여볼 수 있다 하여, 외교에 의뢰하여 국민의 사상을 약하게 하는 놈들은 그 몸을 주물러 댕댕이를 만들어 큰 나무에 감아두나니, 이는 댕댕이지옥이니라.

 

다섯은, 의병도 아니요, 암살도 아니요, 오직 할 일은 교육이나 실업 같은 것으로 차차 백성을 깨우치자 하여, 점점 더운 피를 차게 하고 산 넋을 죽게 하나니, 이놈들의 갈 곳은 어둥지옥이니라.

 

여섯은, 황금이나 여색 같은 데 빠져, 있던 뜻을 버리는 놈은 그 갈 곳이 단지지옥이니라.

 

일곱은, 지식이 없어도 아는 체하고, 열성이 없어도 있는 체하며, 죽기는 싫으나 명예는 차지하려 하여 거짓말로 남 속이고 다니는 놈들은 불로 지져 뜨거움을 보여야 하나니, 이는 지짐지옥이니라.

 

여덟은, 머리 앓고 토하여 가며 나라 일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남의 입내만 내어 마찌니의 <소년 이태리>를 본떠 회의 규칙을 만들며, 손문의 <군정부 약법>을 번역하여 자기의 주의로 삼아 특유한 국민성이 없이 인쇄된 책으로나 일을 하려는 놈들의 갈 지옥은 잔나비지옥이니라.

 

아홉은, 잔꾀만 가득하여 일 없는 때는 칼등에서 춤이라도 출 듯이 나서다가 일 있을 때는 싹 돌아서 누울 곳을 보는 놈은 그 기름을 빼어야 될지라, 고로 가마에 넣고 삶나니 이는 가마지옥이니라.

 

열은, “아무래도 쓸데없다. 왼손으로 총을 자으며 빈 입으로 군함깰까, 망한 판이니 망한 대로 놀자하는 놈은 무쇠 두건을 씌워 다시 하늘을 못 보게 하나니 이는 쇠솥지옥이니라.

 

열하나는, 돈 한 푼만 있는 학생이면 요릿집 에 데리고 가며, 어수룩한 사람이면 영웅으로 치켜세워 저의 이용물을 만들고 이를 수단이라 하여 도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놈의 살 곳은 아귀지옥이니라.

 

열둘은, 공자가 어떠하다, 예수가 어떠하다, 나폴레옹이 어떠하다, 워싱턴이 어떠하다 하며, 내 나라의 성현 영웅을 하나도 모르는 놈은 글을 다시 배워야 하나니, 이놈들의 갈 곳은 종아리지옥이니라.

 

이밖에도 지옥이 몇몇이 더 되나, 너희들이 알아둘 지옥은 이만하여도 넉넉하니라.

 

- 단재 신채호, <꿈 하늘> 중에서.

 

시는 심오한 진리가 피어나는 것이나, 괴상하여 비속한 데 물들지 않으며 정답고 아름다워 스스로 이치에 맞는 것이다. 문장은 가슴에서 흘러나와 맑기 그지없는 것이 마치 호수의 물결이 바람 없이 고요하여 삼라만상을 갖춰 나타나는 것과 같다.

 

- 홍양호의 시론.

 

그림에도 절품이 있고 묘품이 있고 신품이 있다. 화가의 솜씨가 극치에 달하면 절품이나 묘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신품은 사람의 솜씨만으로는 미칠 수 없다.

 

빛깔이나 격식의 틀에서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신품이 될 수 있다. 지극히 신묘하다는 것은 본질을 온전히 구현했다는 것이며 본질을 온전히 구현했다는 것은, 그림에 담고자 하는 사물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림 자체가 그 사물인 것이니 천지조화의 이치가 바로 그러하다.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참이며 흰 것을 검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 참과 거짓은 아이들도 잘 분간하거만 소경은 보지 못한다. 종소리를 종소리라고 하는 것은 참이며 종소리를 경쇠 소리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 참과 거짓은 어리석은 사람도 곧 분별하건만 귀머거리는 듣지 못한다.

 

가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가리는 것이 작으면 작게 미혹되고 가리는 것이 크면 크게 미혹되게 마련인데, 조그만 가림이란 흑과 백, 종과 경쇠 따위이며 큰 가림이란 나라와 세상에 이어지는 문제이다.

 

- 신흠의 시론

 

이 세상에서 귀천과 빈부로 높낮이를 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문장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빛남과 같고 구름이 하늘에 떠다님과 같다. 눈 있는 자는 누구나 바라볼 수 있어 조금도 가려 숨길 것이 없다. 그러므로 비천한 선비라도 무지개같이 찬란한 빛을 드리울 수 있으며, 조고나 맹상군 같은 자들이 그 세력이 나라와 집을 풍부케 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련마는 문장에서는 업신여김을 당한다. 이루 미루어 보건대 문장은 일정한 가치가 있어 겱코 부유함에 뒤지지 않는다고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는 이렇게 말했다. “후세에 어찌 공정한 판단이 없으리오. 지금은 성현을 운운하지 말지니라.”

 

한과 망은 같아서 나비들이 분분히 담을 넘나들고

망과 한이 같아서 백로가 배가 고파 모래언덕에 서 있네

동과 정이 같아서 넓고 푸른 연못이 거울처럼 비추이고

정과 동이 같아서 긴 다리 밑에 드리운 그림자는 술 깃발처럼 나부끼네

난과 역이 같아서 백척간두의 기예를 드러내고

역과 난이 같아서 네거리에서 손을 잡고 헤어지네

내와 거가 같아서 물밀 듯이 치는 큰 파도는 서쪽으로 흘러가고

거와 내가 같아서 말을 타며 몸을 뒤집어 활을 쏘네

비와 낙이 같아서 장례를 치르면 나팔을 불고

낙과 비가 같아서 딸 시집보낸 집에서 매일 눈물짓네

빈과 부가 같아서 금과 옥을 가득 실은 배가 노 저으면 건너가고

부와 빈이 같아서 석승이 누더기 옷을 입네

중과 경이 같아서 많은 술자 실은 배가 가벼이 지나가고

경과 중이 같아서 버들가지 분분히 화랑에 흔들리네

유와 무가 같아서 선자의 바람을 타고 공간을 거닐고

무와 유가 같아서 손으로 떠올린 물에 밝은 달이 그 안에 있네.

 

- 소동파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니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구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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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전을 가장 잘쓰는 분으로 유명하죠. 평전 전문 작가이십시다..

시이소오 2016-07-26 14:19   좋아요 0 | URL
한국사 책으로도 알려지셨죠. 존경할만한 어른이십니다. ^^

stella.K 2016-07-2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김삼웅도 김삼웅이지만 시이소오님도 대단하심다.

김창숙이면 거 독립운동가 맞죠?
그분 일대기 연극을 본적이 있는데
많이 아쉽더군요. 보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ㅠ

시이소오 2016-07-26 18: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당. 김창숙 평전도 읽어야 하는데, 올해엔 꼭 읽어야겠어요. ^^

start 2016-07-2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삼웅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공통점 만으로도 더욱 반갑고 좋네요^^

시이소오 2016-07-29 21:30   좋아요 0 | URL
저도 좋네요. 아직 존경스러운 어른들이 많다는것도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