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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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어디 그럼 나도 소설 따위나 써 볼까’, 하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 하루키에 따르면, 누구나 소설 따위는 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이건 나잖아.’ 나 역시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과연 하루키처럼 35년 간 소설을 써 낼 수 있을까.

 

19784월 진구 구장, 야구트르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센트럴리그 개막전, 1회말 히로시마의 선발투수 다카하시가 제 1구를 던지자, 힐턴은 좌중간 2루타를 쳐냈다. 이때 하루키는 생각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에피퍼니의 순간. ‘본질의 돌연한 현현’.

 

하루키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 나에겐 에피퍼니의 순간 따위 없었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하루키는 무언가를 쓰는 게 고통이었던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그리고 , 이제부터 뭘 써볼까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걱, 무언가를 쓰는 게 고통이었던 적이 없었다니! 소설의 형식은 아니지만 사실 나 역시도 무언가를 계속 써왔다. 지금이야 훈련이 되어서인지 글을 쓴다고 해서 체력이 고갈되지는 않지만, , 삼십대 시절엔 하루 종일 글만 쓰다보면 다음날은 거의 기진맥진으로 뻗어버렸다. 그럼에도 일인지라 계속 써야할 수밖에 없었다. 고역이었다. 어떤 작품에 대해 그것도 소설이냐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써내는 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분명 고된 일이다. 하루키는 수영이나 달리기를 한다. 숱한 작가들이 산책이나 운동에 시간을 들이며 건강을 챙기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다보니, 불현 듯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로서의 각오>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이 많다. 하루키나 겐지나 습작시절이 없었다. 하루키가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군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면 겐지는 22살 때, 첫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와 상을 수상했다. 이후 문단과의 거리를 두는 점도 비슷하다. (마루야마 겐지는 이후로 문학상을 거부했다.) 또한, 두 소설가는 삼십년이 넘도록 전업 작가로 소설을 써내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하루키가 다자이 오사무 과라고 한다면 마루야마 겐지는 단연 미시마 유키오 과. 겐지는 게이나 여자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이다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연히 마루야마 겐지보다는 하루키가 더 잘 팔린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어디 그럼 나도 소설 따위나 써 볼까싶다가도 <소설가의 각오>를 떠올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도 사소설 같은 건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겐지에 따르면, 그래봤자 미국의 웨하스보다 가벼운 일인칭 소설의 뒤를 쫓아가는 피에로로 전락할 뿐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가볍다면 겐지의 소설은 묵직하다. 그럼에도 두 작가의 조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가의 조언을 종합하자면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얼마만큼 고독을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의 자세라고 말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이고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다.

 

소설가는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심연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려내야만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텅빈 백지 앞에서 하루키처럼 마냥 즐거움을 느끼며 글을 쓸 수 있을까. 혹은 겐지처럼 몸 전체를 예민한 레이더로 만들어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평생토록 고독을 견뎌낼 수 있는가?’

 

Yes라면 쓰시라.

 

나는 소설 따위쓰고 싶지 않다. 그저 읽고 싶다. (읽는 것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게 문제다.)

 

소설가는 바닥까지 내려가서 쓰시라.

독자인 나 역시 바닥으로 내려가 읽겠다.

 

우물에서 만나자.   


밑줄 친 글 


p110.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p150.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 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의 초고가 3,600매였습니다.

 

내가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망치질을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P245. 그처럼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좋아, 이번에는 이런 것에 도전해보자라는 구체적인 목표 대부분은 기술적인, 눈에 보이는 목표-를 한두 가지씩 설정했습니다. 나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단 한 단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처럼. 소설가의 좋은 점은 설령 쉰 살이 되더라도, 예순 살이 되더라도, 그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P251. 그는 뭔가 얘기 끝에 고교 시절의 친한 친구 네 명에게서 거부당했던 체험을 사라에게 말합니다. 사라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즉시 나고야로 돌아가 십팔 년 전에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쓰쿠루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꼭 봐야 할 것을 봐야 해.”라고.


사실 나는 사라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다자키 쓰쿠루가 그 네 명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즉 사라의 말 한 마디가 거의 한 순간에 이 소설의 방향과 성격과 규모와 구조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P270. 리키 넬슨이 만년에 발표한 노래 <가든파티>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이런 기분, 나도 잘 압니다.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봐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나 자신이 별 의미도 없이 소모될 뿐입니다. 그러느니 모른 척하고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만일 평판이 좋지 않더라도, 책이 별로 팔리지 않더라고, ‘, 어때, 최소한 나 자신이라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P283. 예전에 개인적으로 존 어빙을 만나 대화했을 때, 그는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봐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독자에게 메인라인을 히트hit하는 거예요. 말이 좀 험하기는 하지만.” 미국 속어로 메인라인을 히트한다는 것은 정맥주사를 맞는다, 즉 상대를 애틱트(마약중독자)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커넥션을 만든다......이건 알아듣기 쉬운 비유이기는 한데 이미지가 좀 반사회적이라서 나는 직통 파이프라는 온건한 표현을 썼지만 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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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ka 2016-05-2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전에 미루야마 겐지 소개 받았는데 읽어봐야겠군요. 다자이 오사무과와 미시마 유키오과의 비교가 재밌네요 ㅎㅎ

시이소오 2016-05-28 08:02   좋아요 0 | URL
저도 마루야마 겐지 작품을 더 읽어봐야 겠어요.
`국가`는 진도가 잘 나가시는지요? ㅎㅎ

ethika 2016-05-2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1권 다 읽으면 말씀드릴게요 ㅎㅎ아직까지는! 재밌네요 ㅎㅎ

시이소오 2016-05-28 08:05   좋아요 0 | URL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물에서 만나자.... 줗군요.. 아. 갑자기 그 시가 생각나네요. 벼랑에서 만나자..

시이소오 2016-05-28 11:40   좋아요 0 | URL
기억이 날듯 날듯한데 모르겠ㅇㅓ서 검색했어요
조은 시인 시죠 ㅋ
조아요^^

cyrus 2016-05-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혼자 글 쓰는 작가를 음울하다고 표현해놓고선 자신은 글 쓰는 일이 즐겁다고 말하니까 하루키는 작가 세계의 ‘먼치킨’(센 캐릭터)입니다. ^^

시이소오 2016-05-28 12:03   좋아요 0 | URL
쎄죠ㆍ단 한번도 라이터스 블럭을 경험한 적이 없다니
천부적인 소설가죠^^

깊이에의강요 2016-05-2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매일 20매정도의 원고를 쓴다는 성실성이 뭔가 너무 직장인스러운...^^;

시이소오 2016-05-28 22:35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대가들은 다들 직장인ㅊㅓ럼 썼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5-2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없어요ㅋㅋ
영감을 받아 번개처럼 며칠밤을 새우며 썼을거라는 환상은 ...
말그대로 환상^^

시이소오 2016-05-28 22:4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앤소니 트롤롭 ㅇㅖ를들죠
직장인처럼 썼다는게 알ㄹㅕ지자 인기 확 떨어졌대요.
영감으로 쓰는건 릴케나 ㅋ

2016-05-29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9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